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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변수의 굴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최근연재일 :
2020.08.11 17:50
연재수 :
3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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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14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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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0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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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글자
26쪽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4)

DUMMY

더러운 기분.

탐탁지 않은 데다가,

출혈의 보람이라곤 개미의 눈썹만큼도 없는 승리.


옥스토브라카 성으로 들어서는 모든 브린타이나 남부군이 공통적으로 품고 있는 생각들이었다.


“깨끗합니다. 사람도, 보급품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부관의 보고는 그렇지 않아도 잔뜩 구겨져 있던 크리스의 표정을 한층 더 깊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을 제대로 파악한 이는 부관도, 곁에서 난감한 듯 시선을 회피하고 있는 지휘관들도 아닌, 오직 디미르뿐이었다.


“적의 흔적은?”


디미르의 질문에 부관은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한다.


“계곡까지 깔끔합니다. 매복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흐음, 알았다. 수고했어. 병사들에겐 군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라 일러라.”


“옛.”


부관의 퇴장과 함께 다시 찾아온 어색한 침묵.

본래 방위의 목적보다는 교역소의 역할을 하던 옥스토브라카 성이었기에 크리스를 비롯한 군의 수뇌부들은 집무실을 개조한 지휘통제실에 모여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오열의 검성이 서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이제는 크리스의 입술이 굳어있는 것이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으니까 새벽을 틈타 물러간 것 아니겠습니까? 겉으로는 견고해 보였어도, 실상은 놈들도 한계였을지도 모릅니다.”


“이대로 밀고 올라가시지요, 폐하. 이것은 기회입니다.”


몇몇 지휘관들이 목소리를 모아 의견을 내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의 시각은, 치열하게 치고받던 적이 갑자기 하루아침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후퇴’라고 밖에 보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손으로 직접 성을 취하지 못한 건 자존심이 상할 일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병력의 규모, 그리고 시기에서 전략적 우위를 지니고 생각했던 적이, 점령했던 거점을 포기하면서 물러났다는 사실은 분명 고무적인 사실이었다.



“너흰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고 있어.”

그러나 마침내 열린 크리스의 입술은, 모든 지휘관들의 이성을 얼어붙게 만든다.

“우리의 상대가 누구냐? 바로 그 ‘오열’이다. 그가 단순히 ‘버티기가 어려워서’ 하룻밤 새에 물러난 것이라 생각하나? 이해한다. 모두 짜증나겠지. 그렇게 두들겨도 열 수가 없었던 문을 놈이 선심 쓰듯 열어두었으니까. 하지만 내 기분이 더러운 건 단순히 놈들이 선심 쓰듯 미련 없이 물러났기 때문이 아니다.”

본래 시장의 책상이었을 상황판. 그 위로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는 전술지도와 문서들을 크리스는 단번에 바닥으로 던져버리고서 그 위에 엉덩이를 올려놓는다. 오랜 기간 지속된 야전생활. 덕분에 제대로 된 목욕조차 하지 못해 피폐함과 피곤으로 얼룩진 그녀였지만, 묘하게 날카로운 요염함만큼은 구질구질한 제복으로도 감출 수가 없었다.

“우리가 옥스토브라카를 점령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라. 우선, 동쪽과 서쪽을 통해 남하하려던 북부의 계획이 무산된 지금, 병참선을 위한 중앙의 최고중요거점이자 남부연합군 전부가 북진할 수 있는 경로인 옥스토브라카 계곡을 얻게 되었어. 동시에 슬슬 나에 대한 의심과 불만을 품기 시작한 남부 영주들에게 눈에 보이는 실적을 증명할 수 있게 됐지.

이 사실을, 블라르가 모르고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면퇴각을 강행했어. 내가 신경 쓰이는 건 바로 그 이유다. ‘오열’정도 되는 지휘관이 전략적 이점을 포기하면서까지 군을 물렸다고 한다면, 그 이유의 규모가 과연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이유의 규모.

생소한 단어에 크리스의 질문을 받은 지휘관과 부관들은 서로 멀뚱멀뚱한 시선을 교환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반응을 예상한 듯, 크리스는 곧바로 짧은 욕지거리와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구린 냄새가 나. 그 인간이 이렇게까지 허겁지겁 움직이는 건 처음 봤어. 그가 우려하고 있는 일이 뭐든지 간에, 난 그 여파가 북부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고.”


“.......그 말씀은.......”


자신들의 왕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장군들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크리스의 불편한 표정과, 그녀의 푸른빛이 감도는 눈동자가 품고 있는 방향성을 어느 정도는 예감하고 있었다.


“북진은 하지 않는다. 당분간 이곳에서 재정비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이상. 디미르, 잠깐 남아.”


모두가 만족과는 거리가 먼 표정으로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가운데, 지명 당한 디미르만이 얇은 미소를 유지하고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둘만이 남게 되자, 먼저 입을 연 것은 디미르였다.


“놀랐는데? 네가 그 정도로 영감탱이를 높게 쳐주고 있을 줄은.”


“기사로서, 지휘관으로서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반역죄인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어.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들은 이야기나 해봐.”


적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블라르의 행동에 휘둘리는 것이 크리스로서 마음에 들 리가 없다. 하지만 왕이라는 자리는 개인의 감정만으로 일을 그르칠 수 없는 무거운 선택의 족쇄. 그런 그가 이렇게까지 움직인 이유에 대해 크리스가 더욱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일단 욘에서 고용한 용병들은 서쪽 해안을 초토화시키고 그대로 흩어져서 유격전을 시작한 모양이야. 정면으로는 북부의 정규군과 싸울 수가 없으니 발이라도 묶어놓겠다는 대통령의 생각이겠지. 문제는 동부인데-”

크리스가 내친 지도를 다시 주워들어 그녀가 앉은 곳 바로 옆에 펼쳐 보이는 디미르.

“벤이 데리고 나간 병력 중 일부는 토우칸 대군의 지휘 아래 바르사이파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어. 토우칸 이라는 사람, 어버버 해보이길래 별 거 아닌 줄 알았더니, 병사를 부리는 데에 있어서는 보통 이상 하는 거 같아. 그리고 벤은 3천 정도의 병사를 이끌고 동부국경으로 향했다고 하더군.”


“동부국경.......?”


“이유는 모르겠어. 통신이 두절됐거든. 토우칸 대군에게도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고 간 모양이던데.”


“.....카나반 검성의 움직임이 블라르가 군을 물린 것과 연관이 있을까?”


“모르지. 시기가 미묘하게 맞물렸을 뿐일 수도 있고.”


“.......”


이미 부르튼 입술을 깨물며 작은 신음을 흘리는 크리스. 아무리 시야를 넓게 해봐도 답이 나오질 않는다.


어째서 오열의 검성은 뒤로 물러났는가.

진정으로 북브린타이나 내부의 문제였다면 자신만 복귀하여 수습하면 됐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 직접 중앙군 전부를 데리고 북으로 돌아간 이유를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다.

이쪽을 방심하게 만들기 위한 수작인가?

아니, 그러기엔 저쪽의 손실, 이쪽의 이득이 너무나도 크다.

다른 지휘관들의 의견대로, 겉보기와는 달리 이미 북부의 중앙군은 한계였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 제아무리 잡군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위에 블라르 트리스탄테가 있다면, 그 숫자가 고작 오백이라 할지라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



“한 번 찔러봐야겠어.”


단호한 그녀의 목소리에 디미르는 깜짝 놀라며 웃음을 터트린다.


“뭐? 공격할 거야?”


“아니, 진짜로 찌른다는 의미 말고. 북부가, 블라르가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한 번 캐내 봐야겠다고.”


“어떻게?”


크리스는 다가서는 디미르의 제복 깃을 끌어당겨 그의 얼굴에 자신의 입술을 가까이 가져간다. 만약 그가 이성애자였다면 그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을 테지만, 그는 대신에 그녀의 희미한 미소 속에서 특유의 교활함을 읽어낼 수 있었다.




“너, 가서 니 애비랑 이야기 좀 하고 와라.”




===================




“그라우치 장군의 반역행위에 대한 판결은 무혐의로 결론이 났습니다. 다만 직권을 남용하여 멋대로 생도 신분인 기사들을 포섭하려고 했던 행위에는 책임을 물어, 그를 정식으로 북부사령관직에서 해임하기로 했다는군요.”


찻잔을 내려놓는 오로메의 혀에는 씁쓸한 차의 뒷맛만큼이나 싸늘한 향이 머물러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네요. 개인적으론 장군직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늙은 여인과 마주앉은 채, 난감한 듯 웃어 보이는 로빈.

훈련 중인 생도들을 포섭하려 했다는 이유로 반역죄의 의심을 받게 된 그라우치 장군이었지만, 실상은 자신의 신변을 위해 그가 벌인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로빈이다. 그러나 자신과 라즈텔라무스 가문의 수준에서 꼬리를 자르라는 그라우치의 충고를 결국 차마 물리칠 수가 없었기에 장군직 박탈에 대한 재판부의 권고를 받아들여야 했던 것이다.


“분가이긴 하지만, 라즈텔라무스 가문의 실각은 우리 라즈팔라무스 본가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겁니다. 무엇보다도 북부군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직접 원정까지 동참해본 저로서는 착잡하네요. 그가 있었기에 지금의 아르보리스가, 지금의 북부군이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폐하에게도 새로운 북부사령관의 지지는 필수적입니다. 비록 그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말이지요.”


“.......”

로빈은 곧바로 차를 들이켜 자동적으로 솟아오르는 불편한 신음을 감춘다.

그라우치가 공식적으로 물러남에 따라, 임시로 그의 자리를 채우고 있던 전 아르바티앙 영주 자히르 드라흐마가 정식으로 북부사령관에 취임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의회가 기울어지기 시작한 참이다.

귀족파로선 표면적으론 중립이나 로빈과 치정 관계가 얽혀있다는 소문이 자자한 자히르이니, 적어도 친왕당파 계열은 아닐 것임에 그의 임명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고, 왕당파로선 귀족파 출신의 군벌이 아닌 자가 북부지휘관을 맡게 된다는 사실에 만족한 것이다.

“다 지난 일인데요, 뭐. 그런 거에 계속해서 연연하고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왕이 그렇게 한가한 자리도 아니고.”



“아, 그러셔? 맨날 놀고먹기 바쁜 주제에.”


노골적인 비웃음과 함께 집무실로 나타난 새로운 목소리. 자신을 향해 이런 식으로 짓궂게 말할 수 있는 인물은 하나뿐임을 알았기에, 로빈은 마주 웃으며 뒤를 돌아보는데-



“........잉?”


“ ‘잉?’이라니, 뭐야 그 반응은!?”


목의 오른쪽으로 단정히 풀어 내린 금빛의 머리카락. 특유의 태양과 같이 빛나는 눈가로 얇은 화장이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를 돋보이게 해주고, 분홍빛의 입술은 그 윤기를 더해 별처럼 빛난다. 하얀 어깨와 풍만한 가슴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난 순백의 드레스는 목 아래에서 교차하는 아찔한 끈으로 로빈의 이성을 뒤흔들어 놓았고, 얇은 비단결이 탄탄하면서도 부드러운 몸의 윤곽을 그대로 보여주며 무릎 위에서 끊어진다. 언제나 마구잡이로 입어대던 근위대의 바지 대신, 훤히 다리를 드러내놓고 있었던 덕분에 지나의 몸가짐은 그에 맞추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조신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머, 아뮤르 양,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오늘 저녁에 입으실 연회복이로군요?”


넋이 빠진 로빈을 대신하여 오로메가 먼저 크게 찬사를 내보인다.


“아, 예....... 왕실의장가가 로빈에게 먼저 보여주고 오라고 해서....... 오로메님 말씀 중에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저도 이제 퇴근하는 길이었습니다. 너무 부끄러워하실 필요 없어요.”


“부, 부끄럽다는 게 아니라.......!”


높은 굽의 구두가 영 어색한지 급하게 다가서려는 지나가 중심을 잃고 휘청거린다. 그러나 그녀는 놀라운 균형감각으로 로빈이나 오로메가 반응하기도 전에 스스로 자세를 다잡을 수 있었다.


“자, 폐하. 약혼자께서 직접 허락을 받기 위해 오셨잖습니까? 한 말씀 하셔야지요.”


“아뇨! 따, 딱히 허락을 맡으려고 온 건-”

황망한 걸음을 내딛던 지나는 또다시 완벽하게 중심을 잃고 넘어진다. 하지만 이번엔 로빈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 그녀의 쓰러지는 몸을 끌어안아준 것이다.

“아.......고맙.......”

평소의 목소리로 로빈을 올려다보려던 지나의 말끝이 흐려지고, 그녀는 얇은 화장으로는 감출 수 없는 홍조를 띄우며 애써 시선을 돌려버린다. 그 사랑스럽게 빛나는 투명한 눈동자를, 로빈은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

“......때.......”


“어, 뭐?”


“.......어떠냐고.”


갈 곳을 잃은 시선과 새침한 목소리. 다름 아닌 그 ‘아뮤르 지나’가, 그 모든 부끄러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이곳에 온 이유를 마침내 로빈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 싶었지만 벌겋게 달아오른 지나의 얼굴 앞에서 차마 웃을 수가 없었기에, 자신 또한 시선을 돌리며 작게 입술을 움직인다.


“뭐, 예쁘네.”


“.......진짜?”


“응, 잘 어울려. 근데 치마가 좀 짧.....아니, 잘 어울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야수의 눈길에 굴복하고 마는 로빈. 지나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히히 웃으며 어색한 발걸음을 돌린다.


“그럼 이걸로 할게? 오로메님도 저녁때 봬요!”


“예, 아뮤르 양. 아니, 이제 왕비님이라 해야 할까요?”


“헤헷.”


혀끝을 살짝 내밀며 웃어 보이고는 집무실 밖으로 사라지는 지나의 목소리. 로빈과 오로메는 다정한 시선으로 그녀의 뒤를 쫓고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오로메의 입에선 현실로 적셔진 단어가 나오고 만다.


“그녀를 공식행사에 대동하는 것은 분명 좋은 방법입니다만, 이렇게 막무가내로 일을 진행하려 하시면 교회의 반감을 사실 수 있습니다.”


“.......들으셨군요.”


“예, 교회에서 그녀에게 부적합판정을 내렸다지요.”


“상관없어요. 저희대로 방법을 찾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걱정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걱정은 하지 않겠다.

이 말에 담겨있는 의미를 로빈은 재빨리 집어낼 수 있었다.

왕의 결혼이라는 것은 어떻게 발버둥을 쳐봐도 정치적인 의미를 곁들일 수밖에 없다. 즉, 결혼은 하나의 수단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 수단이 오히려 약점이나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왕실을 넘어 왕당파, 그리고 의회 전체에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왕당파 대표가문의 하나인 라즈팔라무스 가문의 가주로서, 오로메는 로빈이 바라보고 있는 곳이 꿈이나 이상이 아닌 현실이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레기라 대사제께서 집무실로 직접 면담을 청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예.”


주름은 깊지만, 그 깊은 주름만큼이나 이 노인의 통찰력은 날카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로빈은 대답하는 목소리에 최대한의 평상심을 싣기 위해 노력한다.


“.......아뮤르 양의 이야기 외엔 별다른 것이 없었습니까?”


“예, 별다른 건 없었습니다. 그저 대사제로서 제 입장을 확인하려고 하신 모양이에요.”


이 말에 거짓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대사제로서’의 방문은 별다를 게 없었으니까.

문제는, 그가 ‘대사제’로서가 아닌, ‘세뮈엘의 목소리’로서 자신에게 했던 이야기였지만.


그러나 그의, ‘그녀’의 목소리는 로빈의 마음속에 조금의 의심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로빈이 대사제의 조언을 듣고 난 이후, 그의 오랜 친구를 떠올리면서 걱정했던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으니까.



‘그 새끼, 결혼식엔 올 수 있으려나.’





==================




눈을 감고 있어야 할지, 그렇지 않으면 말똥하게 뜨고 있어야 할지,

고도는 아직까지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자니 이 행동에 사적인 의미가 부여되는 것만 같아 거북했고, 눈을 뜨고 있자니 소름끼치는 눈동자가 자신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녀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에 일은 끝난다.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방금 전까지 자신의 입술과 엉켜있던 악마의 혀를 바라보며 고도가 퉁명스럽게 묻는다. 그에 보르케의 얼굴을 하고 있는 악마, 데로는 비죽 웃으며 고도의 타액으로 반짝이는 그의 입술을 훔치며 대답한다.


“물론 니 새끼의 몸이 나의 은총을 완벽하게 받아들일 때까지지. 걱정하지 마라, 결과는 점점 나아지고 있잖아?”


“.......”

그의 능글맞은 웃음에 반박할 수가 없다. 그의 말대로, 전투마법사로서는 물론이고 혈마력의 운용까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능숙해진 자신이었으니까.

“그럼 이거 말고 다른 방법은 없어? 굳이 이럴 필요 없이 빠르게 끝내는 방법 말이야.”


“바로 그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한 거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면 니 새끼의 마음부터 부서져 버릴 테니까. 뭐, 그래도 좋다면, 확실한 방법이 있긴 하다만.”


“뭔데?”


“지금 하는 행위보다 진하고 격렬한 것. 그게 뭐일 거 같나?”


“.......”

잠시 데로의 말을 곱씹어보던 고도는 마침내 그의 미소가 지닌 의미를 깨닫고 미간이 구겨진다. 그 직후에 날아들 것이 욕지거리와 주먹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악마는 미리 방문을 열고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하아, 진짜.......”


학회장이 그와 함께 원정에 동행하도록 권유했을 때부터 일이 이렇게 될 것을 예상했어야 했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욕망의 노예. 그의 추천서가 지닌 힘을 알고 있기에 거부할 수가 없었다. 만약 먼 이국의 땅에서 노숙에 노숙을 거듭하게 될 줄 알고 있었다 해도, 그녀에게 선택권은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오늘은 비어있는 군영에 머무를 수 있었기에 오랜만의 실내, 그것도 문과 침대가 있는 방에서 머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뜨거운 물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너도나도 샤워실로 몰려간 덕분에 벽 너머는 조용하기만 하다. 물론 고도도 뜨거운 물을 갈망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성격상 다른 이들과 알몸을 공유하며 샤워를 할 자신은 없었기에 기다리고 있는 참이었다. 비명에 가까운 탄식을 지르며 그녀는 침대 위로 쓰러졌고, 피곤으로 물든 눈꺼풀이 서서히 무게를 더해가는 순간-


“아, 또 왜!?”

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노크소리에 고도는 신경질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그러나 문 앞에 서있는 것은, 줄곧 그녀를 괴롭혀왔던 악마가 아니었다.

“.......벤?”


“미안, 자고 있었어? 그럼 내일 다시-”


“아냐, 그냥 샤워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아, 그래? 그럼 잠깐 괜찮아?”


“응, 들어와.”


고도는 침대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의자를 내어주고 자신은 침대에 걸터앉는다. 길었던 여정만큼이나 짙은 피곤을 공유하는 두 표정 사이로 어색한 침묵이 흐를 뻔했지만, 벤은 아무렇지도 않게 적막을 깨버린다.


“너, 괜찮아?”


“뭐가?”


“혈마법말이야. 내가 부탁한 거긴 해도, 너무 무리하는 거 같아서.”


“무리인 거 같으면 부탁을 하질 말던가.”


“.......그러게. 미안.”

순순히 고개를 숙이는 벤. 고도는 시선을 돌리고 입술을 깨문다.

이렇게 말하려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선 어째선지 이렇게밖에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그 사실에 짜증이 솟구친 것이다.

“그럼 다시 한 번 물을게. 너, 정말 괜찮아?”


“.......”


한층 두꺼워지고 무거워진 벤의 목소리에, 고도는 무언가 짜증을 내뱉으려던 입을 다물고 그의 먹색 눈동자를 바라본다.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왜 자신이 샤워시간조차 남의 눈치를 보고 있는 건지.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주변에서 웃고 떠들던 이를 시체로 다시 일으켜 세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저 한 명의 혈마법사가 혈마법을 이용하는 것뿐이지만, 병사들, 기사들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그렇게 가벼이 받아들일 수가 없다.

자신의 부하, 자신의 동료, 자신의 연인.

그들이 멀고 차가운 이국의 땅에서 편히 쉬지도 못하고 다시금 푸른 안광을 빛내며 시체로 일어서는 모습을 그들로선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으리라.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불편함은 날카로운 눈총이 되어 고도에게 쏟아진다. 그들에게 있어, 명령을 내린 검성보다도 그 명령을 행하는 고도야말로 ‘이단자’의 모습 그 자체였으니까.


하지만 고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원체 그런 성격이었거니와, 그들이 뭐라 한다고 해서 주눅이 들 리도, 주눅이 들 이유도 없는 그녀였다. 다만, 그녀의 신경을 긁는 것은 오직 하나뿐.


“그렇게 신경 쓸 거면서 왜 명령을 내리냐니까?”


“왜냐면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이 너무도 불편해.”


“.......왜 불편한데?”


“.......모르겠어.”

벤은 떨어트렸던 시선을 바로잡아 고도의 바닷빛 눈동자를 직시한다. 그 시선에, 불편함은 고도의 가슴 속으로 옮겨간다. 악마의 키스와 함께 부딪쳤던 그 불편함과는, 어딘가 다른 향기를 품고 있었다.

“.......내가 잡은 놈. 또 다른 나. 그 녀석이 말했어. 나와 녀석의 차이는, 결국 각자 만난 사람의 차이일 뿐이라고.”


“.......”


“나에게 있어 첫 번째 만남은, 혼자서 오두막을 짓고 있던 나를 찾아낸 로빈의 웃음소리였지. 그리고 나에게 있어 두 번째 만남은, 슈테인울프와 어색한 눈싸움을 하고 있는 너였어.”


차분해지는 벤의 목소리와 마른 표정. 그것들에 대해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고도는 잠자코 그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지는 벤의 깊은 한숨.

그리고-




“그냥 그렇다고.”


.......


“뭐어?”


“응?”


“그게 다야?”


“그럼?”


“뭐가?”


“응?”


구겨지는 고도의 표정.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벤.


“아, 이런 얘기가 불편했다면 미안해. 그냥 이 말을 하고 싶었어.”


“그러니까, 그게 다냐고?”


“응, 미안. 혹시나 보르케가 뭐라고 하면 내가 대신 사과할게.”


벤의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고도는 강하게 얻어맞은 듯 머리가 아찔해 온다.


“.......보르케가 여기서 왜 나오는데?”


“.......너랑 그렇고 그런 사이잖아? 아까도 여기서 나가는 걸 봤는데.”


결국, 고도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반쯤 이불에 쓰러져야 했다.


“야, 나랑 걔랑 그런 사이 아니거든?”


“뭘 그런 게 아니야. 키스까지 해놓고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차분하게 툭 던진 벤의 한마디. 고도의 얼굴을 경악으로 물들이기엔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뭐?! 야! 아니, 그건....... 아니아니, 너 그걸 어떻게..... 아니 그건 그런 게 아니라.......”


“아, 괜찮아. 난 별로 신경 안 쓰니까.”


“신경 안 쓴다니? 잠깐, 야, 그런 게 아니라-”


포탄처럼 터트리려던 자신의 혀를 간신히 삼키는 고도.

그녀는 차마 보르케가 사실 데로에게 몸을 빼앗긴 상태고, 주기적으로 그에게 혈마력을 주입받는다는 사실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사실을 알게 된다면 벤이 무슨 생각을 할지 너무도 확연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에게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을 불편하다고 했던 그다. 만약 그가 자신이 그녀를 몰아붙였다고 생각한다면, 분명 자책으로 인해 괴로워할 터.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뚫어야 할 것인가.

필사적으로 총명한 머리를 굴리는 고도.

하지만 좀처럼 답을 도출할 수가 없었고, 그녀의 입은 어항 속의 붕어처럼 뻐끔뻐끔 시간만을 삼키고 있다.


다급해진 그녀는,

결국 이성을 잃고 만다.

절대 내뱉어서는, 들추어내서는 안 될 그 말이 폐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그 ‘감정’은, 그녀의 차가운 이성이 절대로 내지 말아야 한다고 참아왔던, 바로 그 말이었다.



“벤! 나는-”



“찾았다아!”



부서질 기세로 문이 활짝 입을 벌리며, 유쾌한 목소리가 방을 뒤흔든다.

막 샤워를 끝내고 나온 모양인지,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수건을 감싸고 있는 리즈였다. 문제는, 그 수건만이 그녀가 몸에 두르고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야! 리즈! 너 지금 무슨-!”


“벤! 셰르가 찾아! 국경지역 방위군에게 동원령이 선포됐데! 아마 곧 우리 위치가 발각될 거 같다고 하는데?”


“알았어. 알았으니까 좀....... 고도, 쟤한테 뭐 좀 걸쳐줘.”


“아, 응.”


장난스럽게 웃으며 침대로 뛰어드는 리즈의 위로 침대 옆에 벗어두었던 자신의 로브를 덮어주는 고도. 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걸어나간다.


“벤! 이제 어쩔 거야? 국경을 넘을 거야?”


무엇이 그리도 신이 났는지, 리즈는 침대 위에 앉아 원숭이처럼 방방 뛰기 시작한다. 덕분에 유일하게 그녀의 몸을 가리고 있던 수건이 흘러내렸고, 고도는 기겁하며 벤이 뒤돌아보기 전에 이불로 왕녀의 몸을 가려야 했다.


“응.”


“아무리 동맹관계라고 해도, 위장한 우리를 진짜로 받아들여 줄까?”


“아니, 우릴 공격하겠지.”


“뭐어?”


이번엔 고도의 반문이었다.

북브린타이나와 제국은 밀약을 맺은 관계. 공식적인 입장표명은 없었지만, 모든 전문가로부터 확실시된 사실이다.

그런데 북브린타이나군으로 위장한 우리를 공격한다?


“반드시 공격할 거야. 아니, 공격해야만 해. 그래야.......”


사뭇 진지해진 얼굴로, 벤은 말끝을 흐리며 방문을 닫는다. 서두르는 그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져만 가고, 남아있는 것은 반라의 왕녀와 그런 왕녀를 당혹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마법사 한 명.


“.......저기, 리즈는 그 꼴로 벤을 찾아다닌 거야?”


“아아니, 별로. 바로 냄새를 쫓아 왔거든.”


“벤에게선 아무런 냄새도 안 난다며? 근데 어떻게 찾아?”


대답대신, 리즈는 히죽 웃으며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이불 속으로 얼굴을 파묻는다. 여전히 기분이 좋은 듯한 표정과, 뜨거운 샤워로 인해 달아올라 있는 살결.


“그야-”


그 속에서,

왕녀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여기서 달콤한 냄새가 났으니까.”


작가의말

언제나 미흡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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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수의 굴레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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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10) +4 15.12.17 922 16 22쪽
192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9) +4 15.12.12 873 20 16쪽
191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8) +6 15.12.07 884 24 17쪽
190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7) +4 15.12.02 868 24 18쪽
189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6) +6 15.11.26 992 20 16쪽
188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5) +6 15.11.21 865 23 18쪽
187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4) +10 15.11.16 913 25 17쪽
186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3) +10 15.11.11 856 22 20쪽
185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2) +6 15.11.07 867 20 19쪽
184 (18막) 우리가 다시 목소리를 품기 위해서 (1) +8 15.11.01 1,081 27 18쪽
183 (막간) 나의 태양에게 +8 15.10.27 885 29 11쪽
182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8) +12 15.10.22 923 28 23쪽
181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7) +8 15.10.17 1,043 27 19쪽
180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6) +8 15.10.12 950 28 22쪽
179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5) +12 15.10.07 857 25 21쪽
178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4) +6 15.10.02 922 27 24쪽
177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3) +8 15.09.27 853 23 21쪽
176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2) +6 15.09.22 842 23 20쪽
175 (17막) 새로운 흐름은 절대로 '그냥' 오지 않는다 (1) +4 15.09.17 999 25 20쪽
174 (막간) 결국 안식 따윈 허락되지 않았다 +8 15.09.12 919 26 21쪽
173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10) +6 15.09.07 816 24 24쪽
172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9) +6 15.09.02 917 24 19쪽
171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8) +8 15.08.28 1,002 24 17쪽
170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7) +8 15.08.24 1,148 27 22쪽
169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6) +16 15.08.18 1,022 33 20쪽
168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5) +8 15.08.13 875 24 21쪽
»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4) +10 15.08.07 991 27 26쪽
166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3) +6 15.08.02 984 23 17쪽
165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2) +6 15.07.28 966 30 28쪽
164 (16막) 회색빛의 철, 그 끝에 맺힌 눈송이를 (1) +12 15.07.23 936 26 16쪽
163 (막간) 겨울에게 작별하는 방법 +10 15.07.17 1,155 28 19쪽
162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11) +4 15.07.12 1,067 27 18쪽
161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10) +10 15.07.07 1,018 26 22쪽
160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9) +7 15.07.02 997 22 20쪽
159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8) +8 15.06.27 981 30 21쪽
158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7) +10 15.06.22 832 28 24쪽
157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6) +8 15.06.17 1,054 28 20쪽
156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5) +10 15.06.12 1,216 27 16쪽
155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4) +6 15.06.07 872 35 24쪽
154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3) +6 15.06.01 921 35 20쪽
153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2) +8 15.05.27 905 35 23쪽
152 (15막) 마침내 마주치는 눈동자 속에서 (1) +8 15.05.22 832 31 20쪽
151 (막간) 와인보다 진한 것 +8 15.05.17 1,106 31 13쪽
150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11) +6 15.05.11 993 34 19쪽
149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10) +8 15.05.06 792 34 21쪽
148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9) +11 15.05.01 1,004 33 17쪽
147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8) +15 15.04.26 1,148 28 21쪽
146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7) +12 15.04.21 979 33 21쪽
145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6) +8 15.04.16 1,059 31 17쪽
144 (14막) 나의 파도가, 너의 파동을 집어삼키리라 (5) +8 15.04.11 1,131 34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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