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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거인 님의 서재입니다.

히로익멘션 : 이즈의 모험가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철거인
그림/삽화
가락송이
작품등록일 :
2022.05.12 17:09
최근연재일 :
2022.09.19 21:17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4,639
추천수 :
453
글자수 :
321,744

작성
22.05.19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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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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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11쪽

#2. 제미니 겔드 (3)

DUMMY

청년을 따라 도착한 여관방의 딱딱한 침대 위에서도 막연한 불안감은 계속해서 크로커스를 괴롭혔다. 본인 스스로도 그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기에 더욱 그러했는지도 몰랐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차갑고 상쾌한 밤공기와 은은하게 비추는 달빛, 그리고 별무리가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었다.


고개를 올려 바라본 밤하늘은 바다나 육지나 다를 게 없었다. 크로커스는 수없이 반짝이는 별들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별을 단번에 찾아낼 수 있었다. 바다 위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길잡이가 되어주던 고마운 별이었다. 그는 그 별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기라도 했던 것일까? 하늘에서 별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푸르게 타오르던 별똥별은 새까만 밤하늘에 그 하얀 꼬리를 기다랗게 늘어놓으며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짧게 탄식하며 별이 남겨 놓았을 흔적을 쫓아 시선을 아래로 향했던 크로커스의 눈에 기묘한 광경이 포착되었다.


마을 한 구석에서 새하얀 무언가가 그림자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먹이를 찾기 위해 밤거리를 배회하는 도둑고양이나 들짐승일거라 추측하였으나 그 기이한 움직임을 보고나서야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림자는 어디로 움직여야 할지, 어디에서 숨어야 할지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횃불의 일렁이는 불빛이 가까워지기라도 하면 소리 없이 어둠속으로 파고들었으며 때로는 울타리를 가볍게 뛰어 넘거나 또 때로는 자경단원의 사각 속에 숨어들어 유유히 지나치는 대담함까지 엿보이고 있었다. 그림자는 자경단의 감시를 어떻게 피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세상에 저런 고양이가 어디에 있어!"


그 기묘한 그림자의 정체가 마법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아니더라도 작은 단서 정도는 얻을 수 있겠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었다.


크로커스는 장검을 챙겨들고 황급히 여관을 빠져나왔다. 1층으로 내려가는 낡은 나무 계단의 삐걱거리는 소음이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그 작은 소리에마저 추적이 방해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최대한 발소리를 죽인 채 조심스레 그림자의 뒤를 쫓았다. 그림자가 어디를 향해 움직이는지 이미 알고 있었던 데다 도시와는 달리 복잡하지 않은 마을의 구조 덕분에 빠르게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자의 지척까지 접근한 크로커스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놈이 새하얀 색상의 고급스런 로브로 전신을 감추고 있었던 까닭에 그것을 야생동물의 털가죽으로 착각했던 것이었다. 그는 상대가 오만한 건지 멍청한 건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만약 놈이 검거나 어두운 색깔의 로브를 두르고 있었더라면 이렇게 꼬리를 잡힐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림자는 민가의 울타리에 밑에 몸을 숙인 채 조심스레 걸어가고 있었다. 아직 그의 접근을 눈치 채지 못한 지금이라면 충분히 붙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 때였다. "거기 누구냐!" 고함소리가 밤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크로커스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서 자경단원 두 사람이 그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횃불이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크로커스는 그제서야 자신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림자를 쫓는데 너무 열중하느라 자신의 행동 역시 남의 눈에 수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자각하지 못했었다.


자경단원의 고함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가 크로커스를 발견한 그림자 역시 더 이상 숨으려 들지 않았다. 어둠속에서 뛰쳐나온 놈은 빠른 속도로 어두운 마을 거리를 달려 나갔다.


크로커스 역시 그림자를 잡기 위해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등 뒤로 당황해하는 자경단원의 고함소리가 들려 왔지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림자를 잡는 게 우선이었다.


놈의 움직임은 충분히 재빨랐지만 크로커스를 따돌릴 정도는 아니었다. 둘 사이의 거리는 점점 좁혀들었고 놈에게서 풍기는 향기마저 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그는 놈의 로브를 잡아채기 위해 손을 내뻗었으나 그림자가 돌연 방향을 틀면서 텅빈 허공을 움켜쥐어야 했다.


놈은 이 마을의 지리를 자세히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어디에 어떤 건물이 있고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 훤히 꿰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이라도 하듯 울타리와 담벼락을 자유자재로 타 넘으면서 크로커스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몇 번이고 놈의 움직임을 놓칠 뻔 했지만 크로커스는 기를 쓰고 악착같이 따라 붙었다. 격렬한 추격전이 계속 되면서 민가가 나타나는 빈도는 확연히 줄어들었고 숲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놈이 이용할 수 있는 장애물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크로커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조건이 같다면 잡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놈은 마을의 경계를 지나 나무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크로커스 역시 망설이지 않았다. 그가 비록 뱃사람이었지만 숲 속 탐험쯤은 이미 이골이 나있는 지경이었다. 설사 상대가 숙련된 레인저라 할지라도 놓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크로커스가 숲 속으로 자신만만하게 한 발짝 발을 들이미는 순간 놈의 흔적은 그림자처럼 사라져 버렸다. 숲 어디에서도 놈의 하얀 로브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자 크로커스는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귀를 기울여 봐도 놈이 도망치면서 내는 발소리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숨을 몰아 쉬던 크로커스가 허탈한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뒤늦게 도착한 자경단원들이 크로커스를 포위하듯 둘러쌌다. 아니, 포위가 맞았다. 그들은 크로커스를 남의 집 담을 넘다 붙잡힌 도둑놈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림자를 붙잡기라도 했다면 내세울 변명이라도 있었겠지만 놓쳐버린 이상 그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을 거란 건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었다. 결국 크로커스는 두 손을 들어 올려 저항할 뜻이 없다는 의사를 전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자경단에게 둘러 싸여 숲을 벗어나는 도중 밤바람에 실려 온 희미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언젠가 맡아 본 기억이 있는 꽃의 향기였다.




※※※※※※※※※




졸지에 성의 던전(지하감옥)을 구경해야만 했던 크로커스는 날이 밝자 마자 알현실로 끌려오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두 손은 포박당한 채 체격 건장한 병사 두 명이 그의 양옆을 지키고 서 있었다.


"제길 또 이런 전개인건가······. 고문당하지 않은 걸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겠군."


힘없이 중얼거린 크로커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어있는 영주의 왼편에 서있던 문관 혹은 집사로 보이는 노인이 그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당황하는 대신 씨익 웃어주었으나 그 노인은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더욱 인상을 찌푸리기만 할 뿐이었다.


크로커스는 노인의 변덕이 곤혹스러웠다. 어째선지 파도프의 얼굴이 떠올랐다.


알현실의 내부는 좋게 말하면 고풍스러웠고 나쁘게 말하면 유행에 뒤떨어져 있었다. 곳곳에 오래된 엘프 문화의 흔적이 엿보이고 있었다. 벽에 걸려있는 태피스트리부터 구석에 세워진 낡은 화병에까지 유물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물건들로 가득했다. 아마 영주의 취향이 검소한 편이거나 둔감할 정도로 유행을 따를 생각이 없어 보였다. 혹은 이전 시대 엘프의 역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크로커스가 이 성의 주인의 성격을 이리저리 재고 있을 때 문 밖에 서있던 시종이 큰 소리로 외쳤다.


"영주님 드십니다!"


검은 머리의 엘프가 젊은 기사 한 명을 대동하고 알현실 안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크로커스를 흘끗 쳐다보고는 곧바로 옥좌에 올랐다.


"저자가 밤사이에 붙잡혔다는 바로 그 자인가?"


엘프가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로 묻자 노인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영주님. 밤사이 지정된 숙소를 이탈한 것도 모자라 영주님의 재산인 숲에 침입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노인이 그의 뒤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이자 시립해 있던 시종이 무언가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크로커스의 장검이었다.


"저자가 지니고 있던 무기입니다. 그 야심한 시간에 칼까지 들고 무얼 했겠습니까? 이 잡듯 온 마을을 헤집고 다니며 산책이라도 했을까요? 필시 불온한 계략을 꾸미려던 게 틀림이 없으니 처형으로 본을 보이심이 마땅할 것입니다."


다짜고짜 처형을 주장하는 노인의 카랑카랑한 외침에 크로커스는 혀를 찼다. 반면 반대 쪽에 서있던 기사는 정반대의 주장으로 그를 변호해 주었다.


"그건 모르는 일이지요. 듣자 하니 누군가의 뒤를 쫓고 있었다던데 자초지종을 들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제대로 된 재판도 없이 여행자를 처형하면 영주님의 명성에 누가 될 뿐입니다."


두 가신의 상반된 조언에 엘프 영주는 잠시 고민했으나 기사의 의견이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는지 크로커스에게 발언할 기회를 주었다. 크로커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영주가 폭급한 성격의 소유자였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크로커스에게 기회가 주어졌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그 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최대한 정중하게 보이도록 천천히, 그러나 느려 보이지는 않을 정도로 허리를 굽혔고 양손은 손가락을 붙인 채 아랫배로 향하게 했다.


"Suilad, nin est- na- Crocus Highlander."


이전 시대 엘프들의 언어와 예법이었다. 그가 구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엘프어였으나 효과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시종일관 무표정을 유지하던 엘프 영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놀랍군! 내 종족의 오랜 흔적을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솔직히 그대 같은 사람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는데 말일세. 아주 기분 좋은 오산이로군."


호의로 가득한 영주의 목소리를 들으며 크로커스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이어진 영주의 명령에 따라 병사가 포박을 풀어주었다. 그는 올바른 해답을 도출해 내었고 그 보상은 무척이나 값진 것이었다.




※※※※※※※※※




이 글이 누군가의 취향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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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9. 버려진 요새 (3) +8 22.08.15 38 3 13쪽
49 #9. 버려진 요새 (2) +8 22.08.08 48 4 13쪽
48 #9. 버려진 요새 (1) +6 22.07.29 73 3 14쪽
47 #8. 검은 황야 (4) +8 22.07.25 59 2 20쪽
46 #8. 검은 황야 (3) +6 22.07.22 44 2 13쪽
45 #8. 검은 황야 (2) +6 22.07.19 50 3 11쪽
44 #8. 검은 황야 (1) +4 22.07.18 54 2 10쪽
43 #7. 추적 (6) +10 22.07.15 61 6 16쪽
42 #7. 추적 (5) 22.07.13 51 2 12쪽
41 #7. 추적 (4) +4 22.07.11 43 5 11쪽
40 #7. 추적 (3) 22.07.08 58 3 13쪽
39 #7. 추적 (2) +2 22.07.06 57 5 14쪽
38 #7. 추적 (1) 22.07.01 46 4 10쪽
37 #6. 광산 문제 (6) +2 22.06.29 25 5 20쪽
36 #6. 광산 문제 (5) +2 22.06.28 75 4 12쪽
35 #6. 광산 문제 (4) 22.06.25 47 4 14쪽
34 #6. 광산 문제 (3) +2 22.06.22 44 5 14쪽
33 #6. 광산 문제 (2) 22.06.19 36 3 11쪽
32 #6. 광산 문제 (1) +2 22.06.16 57 3 14쪽
31 #5. 재판 (3) +4 22.06.14 59 3 19쪽
30 #5. 재판 (2) +2 22.06.09 42 3 11쪽
29 #5. 재판 (1) +4 22.06.08 76 3 14쪽
28 #4. 가베라 (5) +2 22.06.05 52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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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4. 가베라 (2) +4 22.06.02 63 4 16쪽
24 #4. 가베라 (1) +2 22.06.01 55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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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3. 오롤로죠 자이츠 (6) +8 22.05.29 66 7 10쪽
21 #3. 오롤로죠 자이츠 (5) +4 22.05.28 76 7 13쪽
20 #3. 오롤로죠 자이츠 (4) +5 22.05.27 50 6 13쪽
19 #3. 오롤로죠 자이츠 (3) +8 22.05.26 104 9 13쪽
18 #3. 오롤로죠 자이츠 (2) +4 22.05.25 73 8 12쪽
17 #3. 오롤로죠 자이츠 (1) +4 22.05.24 91 10 11쪽
16 #2. 제미니 겔드 (9) +7 22.05.23 107 12 15쪽
15 #2. 제미니 겔드 (8) +7 22.05.22 73 11 11쪽
14 #2. 제미니 겔드 (7) +4 22.05.21 77 13 11쪽
13 #2. 제미니 겔드 (6) +10 22.05.20 99 10 15쪽
12 #2. 제미니 겔드 (5) +8 22.05.20 115 12 10쪽
11 #2. 제미니 겔드 (4) +14 22.05.19 112 12 11쪽
» #2. 제미니 겔드 (3) +10 22.05.19 108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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