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고철거인 님의 서재입니다.

히로익멘션 : 이즈의 모험가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철거인
그림/삽화
가락송이
작품등록일 :
2022.05.12 17:09
최근연재일 :
2022.09.19 21:17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4,630
추천수 :
453
글자수 :
321,744

작성
22.07.01 09:05
조회
45
추천
4
글자
10쪽

#7. 추적 (1)

DUMMY

밤이 깊었다. 하늘에 떠오른 달은 절반이 넘도록 차올라 있었고 무수한 별들은 스스로를 불태우며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그 어마어마한 기운이 영체의 바다를 건너 지상 세계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밤은 신비롭고도 요사한 생명체의 시간이었다. 드넓은 초원에서 사냥감을 쫓던 늑대무리가 하늘을 향해 높이 울부짖었다. 그 중에는 두 발로 땅을 딛고 일어나 분노에 가득 찬 울음소리를 뿜어내는 녀석도 있었다. 어딘가의 동굴 속에서 빠져나온 박쥐 무리는 주인의 머리 위에서 한데 뭉쳐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자는 푸른빛이 감도는 핏기 없는 피부와 새빨갛게 충혈 된 두 눈을 지니고 있었다. 버려진 폐가 안에선 집기들이 제멋대로 날아다녔고 원인 모를 악취와 소음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었다.


또한 밤은 마법이 충만해지는 시간이었다. 요정들이 숲속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었고 인어들은 물낯 위로 올라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오래도록 잊혔던 영웅들의 넋은 신들의 연회장에서 끝없이 셈 솟는 술잔을 기울이며 각자의 무용담을 자랑스레 늘어놓았다. 그 외에도 달과 밤을 섬기는 수많은 존재들이 달빛과 별빛으로 가득 차오른 마법의 기운에 취해 그들의 열정을 불살랐다.


그러니, 밤은 마법사의 시간이기도 했다.


"보름달이라면 더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제미니가 널찍한 공간을 돌아보면서 중얼거렸고, 그는 곧바로 무릎을 굽히고 앉아 바닥에 복잡한 도형들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만든 특수한 도료가 제미니의 손길에 따라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바뀌어 갔다.


"자네들의 부탁대로 비어있는 방을 내주기는 했다만 대체 뭘 하려는 건가?" 그 광경을 본 루고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대답은 엉뚱한 사람이 대신 해주었다.


"보면 모르나? 마법이잖은가."


"그걸 묻는 게 아니라는 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아이제어?" 루고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대답했다.


도네인강의 협상 이후 네거스힐의 병력은 철수했으나 아이제어는 여전히 브레포드에 남아있었다. 크로커스 일행의 보고를 기다리겠다는 구실로 오직 소수의 병력만이 남아 그를 호위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루고는 아이제어의 체류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광산 문제를 해결한 일행이 영주들에게 보고를 마친 뒤, 빈 방이 준비될 동안 그들은 마법 의식에 사용할 재료를 구하기 위해 바쁘게 뛰어 다녀야만 했다. 그들에게 부족한 건 시간이었다. 당장 구할 수 없는 재료는 임기응변으로 메꿔 가면서 간신히 모든 준비를 끝마칠 수 있었다.


활짝 열린 창문 사이로 흘러든 달빛이 방안을 환히 비추었다. 크로커스는 그 사이에 서있었다.


"송구하지만 저희가 공작 전하의 비밀 요원이란 걸 잊으신 겁니까? 저희에 대해선 앞으로도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뻔뻔스런 태도로 루고와 아이제어에게 비밀을 지켜줄 것을 요구했다.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아주 적은 가능성에 불과할지라도 소문이 퍼져나가면 돕스의 마법사들에게 추적자의 존재를 알려주는 꼴이 될지도 몰랐다. 아니면 얼음공작이 '이즈의 비밀 요원들'에 대해 알게 되거나. 어느 쪽이든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다.


크로커스는 꿀 먹은 벙어리 신세가 되어버린 영주들을 뒤로한 채 제미니가 준비 중인 마법의 의식 쪽으로 두 눈을 고정시켰다. 그가 싸우는 도중 선보이던 마법들도 신기하기는 매한가지였지만 복잡하기 짝이 없는 마법의 원은 한결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커다란 동그라미 안에는 여러 종류의 룬 문자와 도형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원의 바깥에 마련된 작은 제단 위로 불을 밝힌 촛대가 하나씩 양 끝에 세워져 있었고, 그 사이에 룬 문자를 새겨 넣은 황동 그릇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본래라면 격식에 맞춘 의식용 제기를 사용해야 했겠지만 급한 대로 루고의 저택에서 쓰는 일상 용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룬 문자는 제미니의 지시에 따라 가베라가 직접 새겨야만 했다. 의식의 핵심인 돋보기는 그 그릇 속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제미니는 마법의 원에 잘못 그려진 부분이 있지는 않은지 빠르게 점검을 마쳤고 비어있는 가운데 부분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깊숙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제단을 바라보았다. 그 제단이 의식을 통해 모여들 막대한 마법의 힘을 한곳에 모아 의지의 형태로 구체화시켜줄 것이다. 일종의 변환기인 셈이었다.


제미니는 눈을 감고 깊은 명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작디작은 인간의 몸속에 끝 모를 우주가 펼쳐졌다. 수많은 마법이 별처럼 불타오르며 거대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그는 그 사이를 떠다니는 한 톨의 먼지와도 같았다. 마법사의 의식이 명상을 통해 영체의 바다와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하늘을 운항하는 달과 별들의 기운을 찾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이성을 마비시키는 듯한 차디찬 온기, 그리고 무수하게 많은 빛 덩어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그 느낌이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제미니의 정신은 의식의 급류 위에 올라타 순식간에 휩쓸려 들었고 도착한 곳에 그가 찾는 마법이 있었다. 그는 온 정신을 집중해 그 기운을 받아들였다. 천체의 움직임을 통해 미래를 읽고 해석케 해주는 미지의 힘이 그의 강한 의지에 반응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근원으로부터 뽑아져 나온 수백 수천 가닥의 실들이 그의 의식 속에서 하나로 엮여 뚜렷한 형상을 만들어 내었다. 그는 어떤 주문을 외워야 할 지 깨달았다.


"디에 푸흐크 리베 베르민 노스 보 아드샙트."


제미니의 입에서 불분명한 단어들이 튀어 나왔다. 방안의 어느 누구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오직 가베라만이 정확한 발음을 알아들었으나 그 뜻을 알아들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디에 푸흐크 리베 베르민 노스 보 아드샙트."


다시 한 번 같은 주문이 반복되었다. 제미니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주문을 멈추지 않았다. 힘들게 구한 재료들을 섞어 그려낸 마법의 원에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주문이 반복 될수록 마법의 원은 달빛과 별빛을 빨아들이며 더욱 더 강한 빛을 뿜어내었다.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란 눈으로 제미니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땀을 뻘뻘 흘리며 주문을 외우는데 여념이 없었다. 마법의 원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빛이 방안을 가득 채웠을 무렵 제미니가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마지막 주문을 외쳤다.


"이베 리 에노!"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이 전부 준비에 불과하다 주장이라도 하듯 빛이 폭발했다. 사람들은 그 압도적인 밝기에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의식을 통해 모여든 막대한 기운이 제단을 향해 흘러들었고 황동 그릇에 새겨진 룬 문자 속으로 끊임없이 빨려 들어갔다. 룬 문자가 발갛게 달아오르며 황동 그릇이 거칠게 요동쳤다.


이윽고 모든 것이 끝이 났을 때에는 더 이상의 빛도 마법의 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법의 원이 그려졌던 그 모양 그대로 불에 타버린 듯한 자국만이 바닥에 남아 의식이 진행되었음을 되새겨 줄 뿐이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의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제미니는 앉은 자리에서 신음을 흘리며 일어나 제단에 가까이 다가갔다. 촛불은 꺼져 있었고 황동 그릇에 새겨져 있던 룬 문자는 녹아내려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가 그릇에서 돋보기를 집어 들었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어 보였다.


제미니는 돋보기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지긋하게 노려보기만 하였다. 얼마 후 그가 고개를 들어 일행을 향해 말했다. 그의 얼굴은 피로로 찌들어 있었지만 방안의 어느 누구보다도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대성공이야!"




※※※※※※※※※




그 무렵 루고의 저택에서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는 돕스의 마법사들이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된 일정에 지쳐 세상모르고 잠에 취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는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불침번을 서던 다른 마법사가 그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는 악몽을 꾸었다고 둘러대고는 자리에 누워 버렸다.


마법사는 분명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주변에는 잠에 빠진 마법사들 밖에 없었고 유일하게 깨어있는 이도 교대 시간만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모닥불만 바라보고 있었다. 올빼미라도 있나 싶어 나무 위를 살펴보았지만 울음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가 찾아낸 거라곤 오직 하늘 위에 떠있는 달과 별들뿐이었다.


결국 그가 느꼈던 감시의 눈초리는 착각에 불과했다고 결론을 내린 마법사는 투덜거리며 다시 잠을 청했다. 아침이 밝으면 고된 일정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자둬서 체력을 온존시켜야만 했다.


이미 피로가 잔뜩 쌓여 있던 마법사는 눈을 감자마자 금세 잠에 빠져 들었다. 때문에 그는 알아차리질 못했다.


밤하늘에 떠있는 달과 별이 유독 밝게 빛을 뿌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점성술은 그의 특기 분야가 아니었다.




※※※※※※※※※




이 글이 누군가의 취향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히로익멘션 : 이즈의 모험가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부 완, 휴재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22.09.20 47 0 -
공지 연재 주기 관련 +2 22.08.08 37 0 -
공지 첫 후원 감사드립니다 22.08.08 50 0 -
공지 이제야 도입부가 끝났습니다. +2 22.06.14 64 0 -
55 #1부 종장 +6 22.09.19 51 1 10쪽
54 #10. 우블케 (3) +4 22.09.14 45 1 21쪽
53 #10. 우블케 (2) +6 22.09.06 48 1 13쪽
52 #10. 우블케 (1) +8 22.08.27 30 3 11쪽
51 #9. 버려진 요새 (4) +6 22.08.20 59 2 21쪽
50 #9. 버려진 요새 (3) +8 22.08.15 38 3 13쪽
49 #9. 버려진 요새 (2) +8 22.08.08 48 4 13쪽
48 #9. 버려진 요새 (1) +6 22.07.29 73 3 14쪽
47 #8. 검은 황야 (4) +8 22.07.25 59 2 20쪽
46 #8. 검은 황야 (3) +6 22.07.22 44 2 13쪽
45 #8. 검은 황야 (2) +6 22.07.19 49 3 11쪽
44 #8. 검은 황야 (1) +4 22.07.18 54 2 10쪽
43 #7. 추적 (6) +10 22.07.15 61 6 16쪽
42 #7. 추적 (5) 22.07.13 50 2 12쪽
41 #7. 추적 (4) +4 22.07.11 43 5 11쪽
40 #7. 추적 (3) 22.07.08 58 3 13쪽
39 #7. 추적 (2) +2 22.07.06 57 5 14쪽
» #7. 추적 (1) 22.07.01 46 4 10쪽
37 #6. 광산 문제 (6) +2 22.06.29 25 5 20쪽
36 #6. 광산 문제 (5) +2 22.06.28 74 4 12쪽
35 #6. 광산 문제 (4) 22.06.25 47 4 14쪽
34 #6. 광산 문제 (3) +2 22.06.22 43 5 14쪽
33 #6. 광산 문제 (2) 22.06.19 36 3 11쪽
32 #6. 광산 문제 (1) +2 22.06.16 56 3 14쪽
31 #5. 재판 (3) +4 22.06.14 59 3 19쪽
30 #5. 재판 (2) +2 22.06.09 42 3 11쪽
29 #5. 재판 (1) +4 22.06.08 76 3 14쪽
28 #4. 가베라 (5) +2 22.06.05 52 3 16쪽
27 #4. 가베라 (4) +2 22.06.04 46 4 11쪽
26 #4. 가베라 (3) +4 22.06.03 59 5 12쪽
25 #4. 가베라 (2) +4 22.06.02 62 4 16쪽
24 #4. 가베라 (1) +2 22.06.01 55 5 13쪽
23 #3. 오롤로죠 자이츠 (7) +2 22.05.30 66 6 13쪽
22 #3. 오롤로죠 자이츠 (6) +8 22.05.29 65 7 10쪽
21 #3. 오롤로죠 자이츠 (5) +4 22.05.28 76 7 13쪽
20 #3. 오롤로죠 자이츠 (4) +5 22.05.27 49 6 13쪽
19 #3. 오롤로죠 자이츠 (3) +8 22.05.26 104 9 13쪽
18 #3. 오롤로죠 자이츠 (2) +4 22.05.25 73 8 12쪽
17 #3. 오롤로죠 자이츠 (1) +4 22.05.24 91 10 11쪽
16 #2. 제미니 겔드 (9) +7 22.05.23 107 12 15쪽
15 #2. 제미니 겔드 (8) +7 22.05.22 73 11 11쪽
14 #2. 제미니 겔드 (7) +4 22.05.21 77 13 11쪽
13 #2. 제미니 겔드 (6) +10 22.05.20 99 10 15쪽
12 #2. 제미니 겔드 (5) +8 22.05.20 115 12 10쪽
11 #2. 제미니 겔드 (4) +14 22.05.19 112 12 11쪽
10 #2. 제미니 겔드 (3) +10 22.05.19 107 14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