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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거인 님의 서재입니다.

히로익멘션 : 이즈의 모험가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철거인
그림/삽화
가락송이
작품등록일 :
2022.05.12 17:09
최근연재일 :
2022.09.19 21:17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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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29
추천수 :
453
글자수 :
321,744

작성
22.06.0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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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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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5. 재판 (2)

DUMMY

히아신스는 크로커스의 구명을 위해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 다녔다. 제미니는 덤이었다.


가장 먼저 언니인 아마란스를 찾아갔지만 그녀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동생의 부탁을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란스는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꺼려하였고 차분한 어조로 동생을 타일렀다. 히아신스는 원망 어린 눈길로 그녀의 방에서 뛰쳐 나왔다.


히아신스는 그 길로 곧장 오롤로죠의 집무실을 향해 달렸다. 경비병과 시종들이 문 앞에서 버티고 서있었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한바탕 소란을 벌인 뒤에야 겨우 오롤로죠를 만날 수 있었다.


"무슨 일이지?" 오롤로죠가 말했다.


평소와 다를 것 하나 없는 표정인데도 오롤로죠와 마주한 히아신스는 긴장되어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꼭 쥔 두 주먹에서 식은땀이 흥건하게 배어 나왔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고 마른 침을 꿀꺽 집어 삼켰다.


"그 사람들을 도와주세요. 형부라면 가능하시잖아요." 히아신스는 목소리가 떨리는 걸 감추기 위해 억지로 힘을 주었다. 힘이 너무 과했는지 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오롤로죠가 반문했다. 싸늘한 눈초리가 사정없이 날아와 박혀들었다. 히아신스는 저도 모르게 울컥 눈물을 쏟을 뻔 했다.


겨우 눈물을 참아낸 히아신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 사람들은 시머글림에서 납치될 뻔한 절 도와줬잖아요. 나쁜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녀는 크로커스와 제미니가 자신을 도와주었다는 사실을 내세워보았지만 오롤로죠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자들이 널 도와준 사실과 영주 평의회에서 제기된 혐의는 별개의 문제다. 또한 널 선의로 도왔다는 증거 역시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궁지에 몰린 끝에 널 인질로 잡아 협상을 시도하려했을지도 모를 일이지."


오롤로죠가 냉정하게 허점을 짚어내자 히아신스는 어쩔 줄을 몰라 숨을 헉 들이켰다. 그녀가 황급히 소리쳤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 사람들은 제가 누군지도 몰랐다고요!"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인질로 삼을 수만 있다면 그게 누구든 상관없었을지도 모르지."


오롤로죠의 가정에는 분명한 허점이 있었지만 히아신스는 감정이 격해진 탓인지 끝끝내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말을 믿어 주지 않는 오롤로죠가 야속하기만 했다.


"형부는 아니, 전하께서는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 사람들에게 죄가 없다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그자들이 결백하다면 재판에서 밝혀질 일. 아무 문제될 게 없다."


언니인 아마란스에게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히아신스는 왠지 모를 배신감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형부!" 그녀가 소리쳤다.


"어리군." 작게 중얼거린 오롤로죠가 대기하고 있던 경비병을 불렀다.


"히아신스를 방에 데려다줘라." 축객령을 내린 오롤로죠는 서류더미 속에 고개를 파묻었다. 경비병에게 끌려 나가는 히아신스가 발버둥 치며 저항 해봐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결국 쫓겨나듯이 자신의 방에 도착한 히아신스는 힘없이 침대에 주저앉았다. 잠시 후 아마란스가 찾아와 그녀를 위로해주었지만 축 처진 어깨는 도로 펴질 줄을 몰랐다.




※※※※※※※※※




그 날 밤, 크로커스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이렇게 허무히 끝나리라곤 예상치 못했기에 심란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크로커스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밤하늘에 별들이 모습을 드러낼 시간이었으나 검은 벽으로 둘러싸인 감옥 안에서 별빛이 반짝 일리가 없었다. 색은 같으나 너무나도 달랐다. 한 눈에 들어올 만큼 좁은 감옥임에도 지표로 삼을만한 건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크로커스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희미했던 불빛마저 사라진 완전한 어둠의 세계가 펼쳐졌다. 죽은 자의 영혼이 향한다는 네더가 이런 곳일까? 숨이 턱턱 막혀오는 깊고 짙은 정적이었다. 꿈틀대며 기어오는 망자들의 파도가 그를 집어삼켰다.


끝없이 밀려드는 공포 속에서 허우적대던 크로커스를 끌어올린 건 작디작은 숨소리였다. 들릴 듯 말 듯 미약했던 숨소리는 조금씩 선명해지더니 텅 빈 어둠을 가득 채웠다. 더 이상의 침묵은 없었다.


눈을 뜨자 세상모르고 잠이 든 제미니가 있었다. 침을 질질 흘리며 잠에 빠져있는 태평스런 모습을 보고 나니 모든 근심걱정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크로커스는 문득 오래된 기억들을 떠올렸다.


돌이켜보면 그의 인생은 아슬아슬한 위기의 연속이었다. 그는 언제나 모험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들었고 위험에 빠진 적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때마다 믿음직한 동료들이 그의 등을 지켜주었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크로커스의 눈동자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또 다른 모험이었으며 극복해야할 위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도 이겨내리라 다짐하며 눈을 감았다. 별이 보이지 않는 천장도 숨 막히는 적막도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 않았다.


크로커스는 자신의 이야기가 아직 끝을 맺지 않았단 사실을 스스로 증명할 셈이었다.




※※※※※※※※※




날이 밝았다. 간수가 문을 두들기며 곤히 잠든 두 사람을 깨웠다.


"빨리 일어나지 못 해?"


크로커스는 기지개를 켜며 찌뿌둥한 몸을 풀었다. 제미니는 잠에서 깨기가 싫은지 몸을 웅크리고 꼼지락 거렸다. 졸린 눈으로 하품을 늘어놓는 그를 향해 크로커스가 말했다.


"자면서 침 흘렸다."


"뭐라고?" 화들짝 놀란 제미니가 입가를 소매로 박박 문질렀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크로커스가 말했다.


"우리가 불리한 입장이긴 해도 차분히 설명해나가다 보면 누명을 벗을 기회가 분명 있을 거야. 일이 잘 풀리기를 빌어야지." 그는 우리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뭐라고?" 제미니가 또 한 번 반문했다. 그는 크로커스의 태도가 변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워낙 미묘한 변화였기에 정확히 꼬집어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는 크로커스를 향해 경계어린 시선을 날렸다.


"어제 먹은 게 잘못 되기라도 한 거야? 난 괜찮은 거 같은데. 뭔지는 몰라도 전염되지는 않겠지?"


자기 걱정에 열심인 제미니를 바라보며 크로커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제미니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잠시 잊어버릴 뻔 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이 갇혀있는 감옥으로 한 무리의 병사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발목에 채운 쇠고랑 대신 손에 수갑을 채웠다. 제미니가 아프다며 엄살을 피워도 그들은 묵묵히 자신들이 맡은 일에만 열중하였다. 크로커스는 병사들이 보이는 태도를 통해 그들의 상관이 어떤 유형의 인물일지 조심스레 추측해 보았다.


원리원칙에 충실하고 부하들에게 엄격한 인물, 크로커스가 상상한 얼음공작의 모습이었다. 시머글림에서 붙잡혔던 그들을 굳이 이즈까지 끌고 왔으며 또한 영주 평의회의 의장이기도 한 얼음공작이었다. 재판장 역시 그가 맡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크로커스는 어떤 말을 꺼내고 어떤 사실을 숨겨야 좋을지 병사들을 따라 걸으며 끝없이 생각을 정리했다.


재판은 얼음공작의 알현실에서 진행되었다. 웅장하다란 말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알현실은 이전에 보았던 엘프 영주의 것과는 그 규모면에서 차원이 달랐다. 지금 당장 거인이 들어와도 문제가 없을 거대함에 크로커스는 물론 제미니마저도 압도당했다.


상상 이상의 거대함에 눈둘 곳을 몰랐던 크로커스의 시선은 자연스레 바닥에 깔린 붉은 카펫을 쫓았고, 높이 솟은 하얀 대리석 계단 위에서 존재감을 뽐내는 얼음공작의 옥좌에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신비한 금속을 통째로 깎아 만든 커다란 옥좌는 복잡한 조각과 주위에 박힌 형형색색의 보석들이 함께 어우러져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색깔의 빛을 번쩍거렸다. 저만한 보물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 재화를 쏟아 부어야 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허나 아무리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보물일지라도 그 감상은 보는 사람마다 다른 법이었다.


"얼음공작인데 왜 옥좌는 얼음이 아닌 거야? 재미가 없잖아." 제미니가 물었다.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할 말을 잃은 사이 시종이 오롤로죠의 도착을 알렸다.


알현실의 커다란 문이 활짝 열리며 오롤로죠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문관과 호위 기사 뿐 아니라 시종과 시녀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는 크로커스와 제미니를 향해 눈길 한 번 주지도 않고 곧장 옥좌로 향했다. 다른 이들은 일사불란하게 흩어져 각자의 자리를 지켰다.


크로커스는 그들 중 한 사람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엘프 영주의 성에서 보았던 윌프레드라는 이름의 노인이었다. 카랑카랑하게 소리치는 그의 목소리를 떠올리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대리석 계단 바로 밑에 자리 잡고 서있던 노인과 크로커스의 눈길이 마주쳤다. 지난번과는 달리 윌프레드는 냉랭한 표정으로 크로커스를 무시하였다. 그는 제미니를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오롤로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미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저 영감은 왜 저래? 내가 뭐 실수라도 한 거야?"


크로커스는 제미니가 윌프레드를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재판 도중 제미니가 입을 열면 열수록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제발 부탁이니까 입 좀 다물어." 크로커스가 손으로 이마를 감싸 쥐며 말했다.


"뭐? 왜?" 제미니가 발끈해 외쳤다.


"그야······."


"죄인들은 정숙하라!"


오롤로죠의 옆에 서있던 호위기사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알현실에 모인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손가락질을 해댔다. 크로커스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공손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그저 제미니에게도 그의 의도가 닿았기를 마음속으로 빌어 보았다.


모든 준비가 끝이 난건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문관이 오롤로죠를 향해 작게 속삭였다. 곧 이어 옥좌에 앉은 오롤로죠가 말했다.


"이제 재판을 시작하도록 하지." 그리 크지도 않은 목소리가 알현실 전체로 곧게 뻗어 나갔고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얼음공작의 옥좌로 향했다. 오롤로죠의 싸늘한 시선이 알현실을 한차례 훑고 지나갔다.




이 글이 누군가의 취향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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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9. 버려진 요새 (1) +6 22.07.29 73 3 14쪽
47 #8. 검은 황야 (4) +8 22.07.25 59 2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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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8. 검은 황야 (2) +6 22.07.19 49 3 11쪽
44 #8. 검은 황야 (1) +4 22.07.18 54 2 10쪽
43 #7. 추적 (6) +10 22.07.15 61 6 16쪽
42 #7. 추적 (5) 22.07.13 50 2 12쪽
41 #7. 추적 (4) +4 22.07.11 43 5 11쪽
40 #7. 추적 (3) 22.07.08 58 3 13쪽
39 #7. 추적 (2) +2 22.07.06 57 5 14쪽
38 #7. 추적 (1) 22.07.01 45 4 10쪽
37 #6. 광산 문제 (6) +2 22.06.29 25 5 20쪽
36 #6. 광산 문제 (5) +2 22.06.28 74 4 12쪽
35 #6. 광산 문제 (4) 22.06.25 47 4 14쪽
34 #6. 광산 문제 (3) +2 22.06.22 43 5 14쪽
33 #6. 광산 문제 (2) 22.06.19 36 3 11쪽
32 #6. 광산 문제 (1) +2 22.06.16 56 3 14쪽
31 #5. 재판 (3) +4 22.06.14 59 3 19쪽
» #5. 재판 (2) +2 22.06.09 42 3 11쪽
29 #5. 재판 (1) +4 22.06.08 76 3 14쪽
28 #4. 가베라 (5) +2 22.06.05 52 3 16쪽
27 #4. 가베라 (4) +2 22.06.04 46 4 11쪽
26 #4. 가베라 (3) +4 22.06.03 59 5 12쪽
25 #4. 가베라 (2) +4 22.06.02 62 4 16쪽
24 #4. 가베라 (1) +2 22.06.01 55 5 13쪽
23 #3. 오롤로죠 자이츠 (7) +2 22.05.30 66 6 13쪽
22 #3. 오롤로죠 자이츠 (6) +8 22.05.29 65 7 10쪽
21 #3. 오롤로죠 자이츠 (5) +4 22.05.28 76 7 13쪽
20 #3. 오롤로죠 자이츠 (4) +5 22.05.27 49 6 13쪽
19 #3. 오롤로죠 자이츠 (3) +8 22.05.26 104 9 13쪽
18 #3. 오롤로죠 자이츠 (2) +4 22.05.25 73 8 12쪽
17 #3. 오롤로죠 자이츠 (1) +4 22.05.24 91 10 11쪽
16 #2. 제미니 겔드 (9) +7 22.05.23 107 12 15쪽
15 #2. 제미니 겔드 (8) +7 22.05.22 73 11 11쪽
14 #2. 제미니 겔드 (7) +4 22.05.21 77 13 11쪽
13 #2. 제미니 겔드 (6) +10 22.05.20 99 10 15쪽
12 #2. 제미니 겔드 (5) +8 22.05.20 115 12 10쪽
11 #2. 제미니 겔드 (4) +14 22.05.19 112 12 11쪽
10 #2. 제미니 겔드 (3) +10 22.05.19 107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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