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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거인 님의 서재입니다.

히로익멘션 : 이즈의 모험가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철거인
그림/삽화
가락송이
작품등록일 :
2022.05.12 17:09
최근연재일 :
2022.09.19 21:17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4,572
추천수 :
453
글자수 :
321,744

작성
22.05.16 21:42
조회
559
추천
43
글자
9쪽

서장

DUMMY

두꺼운 강철문이 열리며 한 초로의 남자가 나타났다. 육중한 문의 두께를 보자면 힘깨나 써야 했을 텐데 노인은 비쩍 마른 체격에도 불구하고 숨 한번 몰아쉬지 않고 성큼성큼 발을 놀렸다. 서너 걸음 쯤 움직였을까? 뒤를 돌아본 노인이 가볍게 손을 흔들자 열려있던 문이 절로 움직이더니 쾅 소리와 함께 닫혀 버렸다.


“염병할 폭풍 같으니. 빌어먹을.”


그는 결코 화를 참는 법이 없었다. 흠뻑 젖은 로브를 거칠게 털어내며 끊임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회합의 결과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갑작스레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순식간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윽고 수발을 드는 노예들이 수건과 화려한 로브를 가지고 노인의 양옆에 시립했다. 그는 노예로부터 빼앗듯 수건을 움켜쥐고는 듬성듬성 하얗게 센 수염과 머리칼을 따라 흐르는 빗물을 닦아 내었다. 얼추 물기를 닦아내자 입고 있던 로브를 벗어 던져 버렸다.


그가 입고 있었던 로브엔 드워프제 금실을 사용한 화려하고 복잡한 무늬가 수놓아져 있었다. 그 뿐 아니라 원단은 비단거미라는 마법생물의 거미줄을 다시 한 번 마법적으로 가공해 만든 것으로 평범한 사람이라면 구경조차 하지 못할 값비싼 물건이었다. 그런 귀한 물건을 쓰레기 버리듯 내팽겨 치니 노예들은 주인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워 잔뜩 움츠러들었다.


노인은 노예들의 허둥대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처벌은 다음 기회에 미루기로 마음먹었다. 남의 것도 아니고 자신 소유의 노예를 처벌하겠다는데 누가 뭐라 할까. 아니 설사 남의 소유물이라도 상관없었다. 그가 바로 이 무뢰배들의 도시, 돕스의 지배자 중 한명인 대마법사 켈보림 칠링핸드였으니까.


켈보림은 새 로브로 갈아입자마자 곧장 저택 지하에 위치한 자신의 실험실로 향했다. 거칠게 문을 열자마자 그의 제자 중 한명인 우블케가 구르듯이 달려 나와 고개를 조아렸다.


“헤헤 다녀오셨습니까? 스승님.”


연신 굽실거리며 헤프게 웃음을 흘리는 우블케의 모습에 다른 제자들은 하나 같이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그렇잖아도 왜소한 체격에 볼품없는 외모의 소유자인 그가 스승에게 아첨까지 떨어대니 결코 곱게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켈보림은 우블케의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원래 노예에 불과했던 그가 마법에 소질을 보이자 선뜻 제자로 삼은 것도 그때문이었다. 다른 제자들은 노예 출신의 그를 아니꼬워했지만 감히 스승의 결정을 거스를 수도 없었기에 묵묵히 따를 뿐, 등 뒤에서는 끊임없는 견제가 계속되었다.


따돌림은 기본에 불과했고 어떤 때에는 실험 도중 사고를 빙자해 암살을 시도한 이도 있었다. 허나 우블케는 비천한 출신 덕인지 쓸데없는 자존심도 없었고 무엇보다 눈치가 무척이나 빨랐다. 자신을 낮추는데 거부감이 없으니 시종일관 선배들의 비위를 맞추면서도 다른 이들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거나 교묘하게 이간질하여 불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 와중에 제자 몇몇이 죽어나가기도 했지만 켈보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제자란 새로 구하면 그만인 존재에 불과했고 결과적으로 우블케는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제자 중의 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켈보림은 마법실력 보다도 오히려 우블케의 그런 면을 높이 평가해 때때로 중요한 심부름을 맡기기도 했다. 바로 지금처럼.


“회합은 어떠셨는지요? 다른 마스터들이 스승님의 의견을 따랐습니까?”


“그랬다면 내가 이 시간에 돌아왔을 것 같으냐? 멍청한 놈 같으니! 말라비틀어진 만드라고라 뿌리마냥 쓸모없는 소리만 지껄이는구나!”


“어이쿠, 어이쿠, 죄송합니다. 이 모자란 놈이 또 헛소릴 지껄였습니다.”


켈보림의 욕설에 입꼬리를 끌어 올리던 제자들은 혓바닥에 기름칠이라도 한 듯 거침없이 쏟아지는 우블케의 입담에 대뜸 하나같이 표정들을 일그러뜨렸다.


“다른 마스터들은 모두 겁쟁이입니다! 겁쟁이가 틀림없어요. 아니면 단체로 치매라도 걸린 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친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이참에 쓸모라곤 하나도 없는 마스터들을 싹 갈아 치워버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특히 스카페이스, 갈보년 가랑이 사이에서 기어 나온 사생아 놈은 평소에도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얼굴에 상처가 있으면 다랍니까? 제 놈이 뭔데 건방지게 스승님 앞에서 가면을 쓰고······.”


그의 원색적인 비난을 듣고 있던 제자들은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우블케는 지금 그의 스승인 켈보림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돕스의 마스터 중 한명을 향해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만에 하나 지금의 언사 중 단 한마디만이라도 스카페이스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면 입에 담지조차 못할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켈보림이 대마법사라 불리며 여러 제자들을 거느리는 것처럼 스카페이스 역시 도둑 길드의 수장으로써 돕스의 수많은 무뢰배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게다가 돕스의 도둑 길드는 그 이름과는 달리 도둑질뿐만 아니라 온갖 범죄와 관련되어 있었다.


도둑 길드의 길드마스터인 스카페이스 본인부터가 솜씨 좋은 도둑인 동시에 악명 높은 암살자였다. 그의 손에 목숨을 잃은 이는 셀 수도 없이 많았고 귀족이나 어중이떠중이 모험가들은 물론 유브닐 교단의 고위 성기사 마저 스카페이스의 희생자 명단에 올라 있었다.


다른 마스터들 역시 결코 켈보림이나 스카페이스에게 뒤지지 않는 강자들이었고 당연히 우블케의 언사는 경솔하다 못해 천박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우스운 것은 만약 그의 앞에 스승대신 스카페이스가 서있었다면 조롱의 대상은 켈보림으로 바뀌어 있으리란 점이었다.


“크흠, 그만! 네 놈은 언제나 쓸데없이 말을 보태는 버릇이 있어. 시끄러우니 그 입 좀 다물어라.”


켈보림은 노예출신 제자의 도를 넘어선 아첨이 내심 흡족해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을 쏟아야 했다. 제자들 앞에서 필요 이상으로 다른 마스터들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건 자신의 체면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내가 알아보라고 한 것은 어떻게 되었지?”


“옛 지도와 문헌을 샅샅이 뒤져서 가능성이 높은 곳을 몇 군데 골라 보았습니다. 아마 그 중 한군데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비밀스런 동맹에게서 얻어낸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다. 정말로 모르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불완전한 정보를 흘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켈보림은 개의치 않았다. 이 세상에 완벽히 신뢰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힘뿐이었다. 권력과 재력, 혹은 강력한 마법만 있다면 얼마든지 타인을 지배할 수 있었다.


허나 켈보림은 자신의 힘이 아직 부족하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다. 자신은 다른 마스터들의 견제 때문에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만약 회합에서 그의 의견이 받아들어졌다면 혼란을 틈타 직접 일을 진행하려 했지만 초장부터 계획이 무산되어 버렸다. 너무나 적극적으로 주장했던 탓인지 연례행사나 마찬가지인 이즈와의 전쟁을 다른 마스터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켈보림은 차선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성사시킬 수만 있다면 판도는 뒤집힐 것이다. 다른 마스터는 물론이고 이즈의 통치자인 반쪽짜리 얼음공작 조차도 자신의 행보에 제동을 걸 수 없을 것이다. 그때가 오면 자신이 모든 것을 지배할 것이다.


그날 우블케를 비롯한 켈보림의 제자 몇몇이 어둠을 틈타 돕스의 경계를 빠져 나갔다. 다른 마스터들의 감시자들은 물론 어느 누구도 그들을 의심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곳은 무뢰배와 무법자들의 도시 돕스였다.



※※※※※※



폭풍은 뭍에서만 불어 닥치지 않았다. 거센 비바람이 새카맣게 물든 밤바다 위로 쏟아져 내렸다. 거칠게 요동치는 파도 위에는 한척의 범선이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그 배가 어떠한 모험을 헤쳐 왔는지, 얼마나 많은 바다 사이를 넘나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반평생을 갑판위에서 보낸 베테랑 선원들도 시야를 가득 메운 해일에는 손쓸 도리가 없었다. 그들은 그 무엇보다도 바다의 신의 가호-변덕-가 절실했다. 결국 해일이 배를 덮쳤다.


다행히 배는 무사했다. 터질 듯 부풀어 올랐던 큰 돛은 중앙부터 갈라져내려 깃발마냥 펄럭이고 있었다. 보기엔 흉했지만 그만큼 폭풍의 영향은 덜해졌다.


살아남은 선원들은 돛을 잘라낸 젊은 선원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해일에 휘말리기라도 했는지 특이한 은색 머리칼은 찾아 볼 수조차 없었다. 평소라면 바다에 빠진 선원을 구하기 위해 모두가 달려들었겠지만 또 다른 파도가 덩치를 불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폭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글이 누군가의 취향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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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10. 우블케 (1) +8 22.08.27 29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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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9. 버려진 요새 (3) +8 22.08.15 37 3 13쪽
49 #9. 버려진 요새 (2) +8 22.08.08 46 4 13쪽
48 #9. 버려진 요새 (1) +6 22.07.29 71 3 14쪽
47 #8. 검은 황야 (4) +8 22.07.25 57 2 20쪽
46 #8. 검은 황야 (3) +6 22.07.22 43 2 13쪽
45 #8. 검은 황야 (2) +6 22.07.19 49 3 11쪽
44 #8. 검은 황야 (1) +4 22.07.18 52 2 10쪽
43 #7. 추적 (6) +10 22.07.15 59 6 16쪽
42 #7. 추적 (5) 22.07.13 49 2 12쪽
41 #7. 추적 (4) +4 22.07.11 42 5 11쪽
40 #7. 추적 (3) 22.07.08 56 3 13쪽
39 #7. 추적 (2) +2 22.07.06 53 5 14쪽
38 #7. 추적 (1) 22.07.01 43 4 10쪽
37 #6. 광산 문제 (6) +2 22.06.29 25 5 20쪽
36 #6. 광산 문제 (5) +2 22.06.28 74 4 12쪽
35 #6. 광산 문제 (4) 22.06.25 46 4 14쪽
34 #6. 광산 문제 (3) +2 22.06.22 43 5 14쪽
33 #6. 광산 문제 (2) 22.06.19 35 3 11쪽
32 #6. 광산 문제 (1) +2 22.06.16 54 3 14쪽
31 #5. 재판 (3) +4 22.06.14 58 3 19쪽
30 #5. 재판 (2) +2 22.06.09 41 3 11쪽
29 #5. 재판 (1) +4 22.06.08 74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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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4. 가베라 (4) +2 22.06.04 45 4 11쪽
26 #4. 가베라 (3) +4 22.06.03 58 5 12쪽
25 #4. 가베라 (2) +4 22.06.02 62 4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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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3. 오롤로죠 자이츠 (4) +5 22.05.27 49 6 13쪽
19 #3. 오롤로죠 자이츠 (3) +8 22.05.26 100 9 13쪽
18 #3. 오롤로죠 자이츠 (2) +4 22.05.25 73 8 12쪽
17 #3. 오롤로죠 자이츠 (1) +4 22.05.24 90 10 11쪽
16 #2. 제미니 겔드 (9) +7 22.05.23 106 12 15쪽
15 #2. 제미니 겔드 (8) +7 22.05.22 72 11 11쪽
14 #2. 제미니 겔드 (7) +4 22.05.21 76 13 11쪽
13 #2. 제미니 겔드 (6) +10 22.05.20 97 10 15쪽
12 #2. 제미니 겔드 (5) +8 22.05.20 113 1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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