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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거인 님의 서재입니다.

히로익멘션 : 이즈의 모험가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철거인
그림/삽화
가락송이
작품등록일 :
2022.05.12 17:09
최근연재일 :
2022.09.19 21:17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4,584
추천수 :
453
글자수 :
321,744

작성
22.05.22 13:13
조회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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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
11쪽

#2. 제미니 겔드 (8)

DUMMY

"에아닌은 어디에 있지?" 엘프 영주가 분노해 소리쳤다.


그녀의 방을 청소하고 있던 시녀는 겁에 질려 몸을 벌벌 떨었다. 화를 내는 적이 드물었던 영주의 분노였기에 더욱 공포에 질릴 수 밖에 없었다.


"그, 꽃구경을 하러 가신다고······."


엘프 영주는 미간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발트 경!" 그는 자신의 기사대장을 불렀다.


"지금 당장 에아닌을 찾으러 가야겠네. 병사들을 단단히 무장시키게."


"굳이 직접 가실 필요가 있으십니까? 저와 부하들이 아가씨를 모셔오겠습니다."


"아니, 내가 직접 가야겠다. 혹시라도 그 마법사가 에아닌의 앞에 나타난다면 내 손으로 요절을 내버려야 겠어!"


기사대장의 우려에도 강경한 태도를 보인 영주는 망토가 휙 휘날릴 정도로 거세게 몸을 돌렸다. 그는 갑옷과 무기를 챙기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영주의 분노에 찬 일갈에 기사대장마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빌어먹을 마법사 한 놈 때문에 온 영지가 엉망진창이었다.


"망할 놈이 하필 아가씨를 건드려서는······."


기사대장의 한탄이 엘프 양식으로 지어진 복도를 타고 멀리 울려퍼졌다.




※※※※※※※※※




크로커스는 화염의 구체가 쏘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가 아무리 빨리 움직이더라도 마법이 영향을 끼치는 범위에서 완벽하게 벗어나기는 힘들어 보였다. 운이 따라주더라도 최소한의 부상은 피할 수 없을테고 싸우는 내내 움직임을 제한할 것이 분명했다. 최악의 경우엔 화염에 휩싸여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작열하는 불길이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고 파괴하리란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꽃들도 전부 불타버리겠지." 크로커스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차가운 분노가 마음 속 두려움을 모조리 몰아내었다. 정수리에서부터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가 싸늘하게 식어 내렸다. 그는 냉정한 눈길로 소년의 작은 움직임 하나까지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크로커스는 소년을 쓰러뜨리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찾아 하나하나 따져보았다.


소년은 이 대치가 슬슬 지겨워 지고 있었다. 상대가 무엇을 꾸미고 있든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가 화염의 구체를 날리기 위해 손가락 끝으로 크로커스를 가리키려 할 때였다.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제미니 겔드! 이 멍청아, 당장 그만두지 못해!"


크로커스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차렸다. 에아닌이었다. 그녀는 홀연히 나타나 그와 소년의 사이를 가로 막았다. 이글거리는 불덩이를 향해 장검을 집어 던지려 했던 크로커스는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에아닌, 위험합니다! 빨리 피하세요!"


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에아닌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미니라 부른 소년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제미니, 내가 말했지. 조용히 숨어 있다가 네 등대로 돌아가라고 했을 텐데?"


그녀는 마치 사고를 친 동생을 혼내는 누나라도 되는양 엄한 태도로 제미니를 꾸짖었다.


"그렇지만······."


제미니는 그녀의 말에 반박한번 제대로 못하고 쩔쩔매기만 하였다. 화염의 구체는 어느샌가 사라져서 보이질 않고 있었다.


"네가 한밤중에 내 방에 몰래 숨어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 아냐!"


"그건 네게 사랑 고백을 하려고······."


"입 다물어, 제미니 겔드! 네가 그런식으로 제니퍼나 다른 여자들을 꼬신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에아닌의 추궁에 곤란해진 제미니는 대화의 주제를 돌리기 위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아네모네를 엮어 만든 화관이었는데 서투른 솜씨 탓에 줄기가 얼기설기 삐져나와 있었다.


"네가 좋아하는 꽃으로 직접 만든거야." 제미니가 헤실거리며 말했다. 하얀 아네모네 화관을 받아든 에아닌이 눈을 흘겼다.


"그말은 내가 좋아한다는 걸 알면서 꽃밭을 마법으로 불태우려 했다는거네?"


그녀가 쏘아붙이자 제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그 모습을 본 에아닌은 고개를 숙이며 좌우로 흔들었다. "이 멍청이."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에아닌과 제미니의 대화를 들은 크로커스는 대략적으로나마 사건의 내막을 파악할 수 있었다. 딸의 방에 몰래 숨어든 소년의 행동에 분노한 영주가 다짜고짜 현상금을 걸었을 것이다. 그리고 크로커스는 이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느꼈던 막연한 어긋남의 실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하지만 아직 확인해야 할 사실들이 남아있었다.


"에아닌, 궁금한 게 있습니다." 크로커스가 질문을 던지자 에아닌은 뒤를 돌아 그를 바라보았다.


"예,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그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미니를 대할 때와는 분위기가 딴판으로 변해있었다. 크로커스는 그녀의 청회색빛 눈동자가 여전히 아름다운 빛깔을 띠고 있다고 느꼈지만 이전만큼 신비롭게 여길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와 소년 사이에 그가 비집고 들어갈 틈 따위는 없었다.


"저 마법사, 제미니라고 했죠. 저 친구는 돕스의 마법사가 아닌 겁니까?"


"돕스라구요?" 에아닌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갑자기 돕스가 나오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니에요. 제미니는 시머글림 출신인걸요. 저 아이는 그곳에 벌써 자신만의 등대를 가지고 있을 정도에요."


"아이라니!" 제미니가 투덜거렸지만 크로커스는 일부러 무시했다. 에아닌의 목소리에선 소년이 일구어낸 성과를 자랑스러워하는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왔고 그것은 그의 가슴에 상처로 남았다. 작지만 꽤나 아픈 상처였다.


"이 망토 역시 제미니가 마법을 걸어 만들어 준거에요."


에아닌이 붉은 케이프에 달려있는 보석 브로치를 어루만지자 빛을 뿜어내면서 붉은 천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역시 에아닌에게는 하얀색이 어울린다니까!" 옆에서 제미니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애써 모르는 척 했다.


"하얀 망토! 에아닌, 당신이 어젯밤의 그 도망자였군요!" 크로커스가 탄성을 질렀다. 그는 하얀 망토가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었는지를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엘프인만큼 에아닌 역시 당연하게도 엘프였다.


"예, 엘프는 인간과 달리 나무를 타는 능력이 뛰어나니까요. 게다가 이 망토에 걸려있는 여러 가지 마법의 도움도 받았구요." 그녀가 제미니를 바라보았고 그 표정에는 살짝 미소가 어려 있었다.


"에아닌이 다치면 안 되니까. 그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제미니의 변죽에 크로커스는 그 입을 틀어막아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에아닌의 앞이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제미니에게 먹을 걸 가져다주려고 했는데 크로커스씨에게 들키는 바람에 일이 커졌지 뭐에요." 그녀가 씁쓸한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그제서야 크로커스는 모든 의문을 플어낼 수가 있었다. 수배 중이던 제미니가 어떻게 발각되지 않을 수 있었는지, 에아닌이 어째서 그에게 관심을 보였었는지, 그리고 수수께끼 같았던 그녀의 발언까지도 말이다. 결국 제미니가 돕스의 마법사라고 생각했던 그의 추측은 완전히 빗나간 셈이 되어버렸다.


"이젠 제가 물어도 될까요? 어째서 제미니가 돕스 출신이라고 생각한 거죠?" 궁금증을 느낀 건 크로커스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조심스레 의문을 표하는 그녀의 눈에는 살짝 경계심마저 엿보이고 있었다.


크로커스는 잠시 고민을 하다 결정을 내렸다. 정치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었으나 에아닌이라면 현명하게 대처할 거란 믿음이 있었다. 어쩌면 일개 여행자인 자신보다 나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멍청한 표정으로 딴청이나 부리는 제미니가 마음에 걸렸지만 에아닌이 잘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은······."


크로커스가 돕스의 마법사들이 꾸미고 있는 음모에 대해 말을 꺼내려던 그 순간이었다. 따끔한 통증과 함께 낮은 파공성이 그의 귓가를 스쳤다. 반사적으로 손을 가져다 대자 뜨뜻미지근한 액체가 손가락을 적시고 있었다. 피였다.


"이게 무슨?"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그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사달이 벌어지고 말았다.


"아······." 넋이 나간 듯한 에아닌의 목소리가 그의 주의를 끌었고 크로커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녀의 가슴 위로 깃털이 달린 나뭇가지가 돋아나 있었다.


에아닌의 커다란 두 눈에는 고통과 공포가 한가득 아로새겨져 있었다. 무언가를 말하려고 연분홍빛 입술을 벌렸지만 소리가 되어 나오지는 못했다. 그녀는 허물어지듯 그 자리에 쓰러졌다.


"에아······."


"에아닌!"


그가 그녀의 이름을 마저 부르기도 전에 제미니가 먼저 소리 질렀다. 바닥을 기기라도 하듯 허겁지겁 달려든 소년이 땅바닥에 쓰러져있던 그녀를 안아 들었다. 크로커스는 깃털달린 나뭇가지의 정체가 화살이란 걸 그제야 인식할 수 있었다. 화살이 박혀있는 부분에서 붉은 피, 그의 얼굴에서 흐르는 것와 똑같은 색의 엘프의 피가 쉬지 않고 흘러 나와 망토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완전히 감기지 않은 두 눈에서 점점 생기가 사라져가기 시작했고 살짝 벌려진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던 알아듣지 못할 신음소리마저 끊겨가고 있었다. 그녀의 하얀 피부가 유난히도 하얗게 보였다.


제미니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울부짖으며 품에서 작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유리병을 꺼냈다. 주머니에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였으나 크로커스는 호기심을 느낄 겨를도 없이 제미니가 하는 행동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병의 입구를 막고 있던 마개를 뽑자 달콤한 냄새가 풍겨왔다. 크로커스는 그것이 회복의 물약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제미니가 회복의 물약을 쏟아 버리듯 에아닌의 상처에 뿌리는 걸 지켜보며 마음을 졸이던 도중 또 한발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그를 스쳐지나가지 않았다. 에아닌의 가슴에 꽂힌 것과 똑같이 생긴 화살이 그의 등 어깻죽지 부근을 파고들었다.


갑작스런 충격에 크로커스는 신음을 흘리며 크게 휘청거렸다. 하마터면 정신을 잃은 에아닌의 위로 쓰러질 뻔 했으나 이를 악물고 버텨내었다. 그녀의 부상에만 신경을 쓰다 저격수를 깜빡해버린 대가였다.


고개를 돌리자 멀리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저격수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보였다. 저격수는 활에 새로운 화살을 메긴 채로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커다란 덩치와 등에 매고 있는 창, 그리고 아직도 부어 있는 얼굴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의 정체는 사냥꾼 빈스였다.




이 글이 누군가의 취향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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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8. 검은 황야 (2) +6 22.07.19 49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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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3. 오롤로죠 자이츠 (6) +8 22.05.29 65 7 10쪽
21 #3. 오롤로죠 자이츠 (5) +4 22.05.28 76 7 13쪽
20 #3. 오롤로죠 자이츠 (4) +5 22.05.27 49 6 13쪽
19 #3. 오롤로죠 자이츠 (3) +8 22.05.26 101 9 13쪽
18 #3. 오롤로죠 자이츠 (2) +4 22.05.25 73 8 12쪽
17 #3. 오롤로죠 자이츠 (1) +4 22.05.24 91 10 11쪽
16 #2. 제미니 겔드 (9) +7 22.05.23 106 12 15쪽
» #2. 제미니 겔드 (8) +7 22.05.22 73 11 11쪽
14 #2. 제미니 겔드 (7) +4 22.05.21 76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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