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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거인 님의 서재입니다.

히로익멘션 : 이즈의 모험가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철거인
그림/삽화
가락송이
작품등록일 :
2022.05.12 17:09
최근연재일 :
2022.09.19 21:17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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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4
추천수 :
453
글자수 :
321,744

작성
22.07.19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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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8. 검은 황야 (2)

DUMMY

일행은 날이 밝기가 무섭게 블랙무어의 경계선을 넘었다. 그들은 긴장을 유지하며 주변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위험은 없어보였다. 아직까지는.


블랙무어의 땅은 그 이름만큼이나 새까맣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들판에 가까웠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거친 잡초가 뿌리를 내렸고 드물지 않게 꽃도 피어나 있었다. 여러모로 불길한 소문과는 다른 모습에 일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그들은 괴상야릇한 광경을 마주하고 흠칫 몸을 떨어야만 했다. 그것은 여러 모험으로 잔뼈가 굵은 크로커스에게도 낯설기 짝이 없는 풍경이었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지나 어느 언덕의 꼭대기에 올랐을 때였다. 탁 트인 너른 들판을 기대했던 그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내리막 아래에 펼쳐진 경치는 예사롭지가 않았다. 지표면에 솟아난 커다란 검은 바위들, 일반적인 모습의 바위가 아닌 기묘하게 뒤틀린 검은 기둥들이 지평선 너머까지 곳곳에 퍼져 있었다.


그제서야 일행은 어째서 이곳이 블랙무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검은 바위의 겉면은 하나같이 매끄러웠고 광채를 띠었다. 그러나 어떤 건 끝이 가시처럼 뾰족 솟아 있었고 또 어떤 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두꺼워지는 등 제각각 다른 모양새를 가지고 있었다. 이 기묘한 바위들의 형태적인 공통점이라곤 금속처럼 빛을 반사하는 표면과 하늘을 향해 울부짖듯 비틀려 꼬인 기형적인 구조뿐이었다.


여기에서 그쳤더라면 검은 기둥의 입체적인 아름다움에 감탄을 터뜨렸을지도 몰랐겠지만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바위 주변을 장식한 소름끼치는 물체가 일행을 기겁하게 만들었다.


여러 동물들의 크고 작은 머리뼈가 사각뿔 모양으로 쌓여 있었고 그 외의 다른 부위를 이용해 만든 기괴한 상징물이 허수아비처럼 높이 세워져 있었다. 그중 유독 큰 바위의 앞에는 으스스한 제단이 차려져 있기도 했는데 사냥한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큰 사슴이 그 위에 놓여 있었다. 제물의 목에서 흘러나온 굳은 피가 땅바닥을 까맣게 물들였다.


크로커스는 그제서야 자신의 결정에 의구심을 품었지만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어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블랙무어를 빠져나가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는 동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에 입술을 세게 짓씹었다.


"으엑, 저게 대체 뭐야?" 제미니가 역겨운 표정으로 얼굴을 구기고 혀를 내밀었다. 그는 나오지도 않는 헛구역질을 해 대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무런 말도 꺼내지는 않았지만 가베라의 얼굴 역시 딱딱하게 굳어 있긴 마찬가지였다. 가베라는 눈썹 사이를 좁히고 그의 눈이 닿을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어떠한 움직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제미니, 가베라, 내가 괜한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당신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한 길로 방향을 정해야 했어요. 정말 미안합니다." 동료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크로커스의 표정은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제미니가 코웃음을 쳤다. "위험? 고작 이런 촌구석의 야만인들 따위로? 나를 정말 위험에 빠뜨리고 싶었으면 다른 차원의 괴물이라도 불러냈어야지." 그는 팔짱을 낀 거만한 태도로 말했다.


"블랙무어의 야만인들에 대한 소문을 들어보긴 했어도 이 정도일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무엇보다 우리 모두 동의한 일이 아닙니까." 가베라가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동료들의 배려에 감격한 크로커스는 쑥스러운 마음을 감추기 위해 헛기침을 내뱉으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도 머쓱한 나머지 손가락으로 코 밑을 훔치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제미니가 물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던지 아니면 계속 나아가던지 둘 중 하나뿐인데······." 크로커스는 말끝을 흐렸다. 여행의 목적과 동료들의 안전이라는 두 가지 명제가 마음속에서 충돌을 일으키고 있었다. 또 다시 섣부른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이대로 나아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 제단을 보아하니 우리는 이미 야만인들의 영역 깊숙이 들어와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지금부터 되돌아가더라도 그들과 마주치지 않는단 보장은 없어요. 차라리 이대로 밀고 나가는 쪽이 훨씬 나을 거라 봅니다."


강하게 뜻을 내비치는 보기 드문 가베라의 모습에 일행이 나아갈 방향이 정해졌다. 크로커스와 제미니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들은 언덕을 내려가 앞을 향해 움직였다. 돋보기에 깃들어 있는 마법이 가리키는 방향인 동시에 블랙무어를 가장 빠르게 가로지를 수 있는 방향이기도 했다. 크로커스를 포함한 일행 모두가 사방으로 경계의 눈초리를 보냈다.


일행이 검은 기둥 중 하나를 지나칠 때였다. 제미니가 손가락으로 기둥을 가리켰다.


"블랙무어의 야만인들은 무슨 생각으로 저런 짓거리를 해 놓은 거지? 아무런 마법의 효과도 없었을 텐데?"


검은 기둥의 밑동에 하얀 물감이 덕지덕지 칠해져 있었다. 가느다란 굵기의 선이 구불구불 물결을 치며 바위를 휘감았고 손바닥 모양 그대로 찍힌 자국 수십 개가 아주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거기엔 어떠한 규칙성도 질서도 찾을 수 없는 혼돈 그 자체였다.


"글쎄, 아무래도 그들이 섬기는 신앙의 대상이 아닐까 싶다만." 크로커스가 말했다.


"뭐? 저딴 돌덩이를 신으로 믿는다고?" 제미니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거야 알 수 없는 노릇이지." 짧게 대답한 크로커스는 오래 전에 겪었던 모험을 떠올렸다.


멀고 먼 바다를 지나 도착한 어느 땅에서 광신도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즈히셋하라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이름의 낯선 신을 섬기던 그들은 처음에는 선원들에게 친절을 베풀었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신을 믿도록 강요하는 태도와 사고방식의 차이로 인해 다툼이 벌어지고 말았다. 결국 선원들은 쫓기듯 배를 타고 떠나야만 했다.


그 광신도들도 처음 보는 형태의 물건을 신의 상징으로 섬기고는 있었지만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은 적어도 문명이라는 이름아래 절제된 규칙과 합리성을 지니고 있었다. 블랙무어의 야만인들처럼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폭력성과 잔인함을 겉으로 드러내는 일은 드물었다.


크로커스는 그때의 경험을 통해 블랙무어의 야만인들을 대처할 방안을 찾고자 했으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야만인들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답답한 마음에 검은 기둥을 살피던 중 표면에 반사된 빛이 눈을 찔렀다. 뇌리 속에서 무언가가 번뜩이며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이런 바위를 봤던 것 같은데?"


손에 잡힐 듯 말 듯 떠오르지 않는 기억이 그를 괴롭혔다. 크로커스는 머리를 부여잡고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애를 썼다.


"이런 곳에서 잠이라도 잤다가는 분명 가위에 눌리고 말거야. 햇빛 아래에서도 유령이 튀어나올 거라고." 제미니가 투덜거렸다.


제미니를 쳐다본 크로커스는 가슴이 뻥 뚫리는 충격을 받았다. 불만 가득한 한마디에 그의 기억이 되살아난 탓이었다.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날 보는 건데?" 제미니가 앙칼지게 물었다.


"네 말대로야. 유령!" 크로커스가 두서없이 유령을 외쳤다.


"그게 그렇게 대단한 일이야? 취미 한 번 이상하네." 제미니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크로커스가 유령을 보고 싶어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유령이 보고 싶으면 내가 마법으로 불러다 줄 수도 있다고? 특별히 센 놈으로 불러 줄 테니까 앞으로 불침번에서 난 빼줘." 제미니가 은근슬쩍 협상을 시도했다.


"그게 아니라고, 이 멍청아." 크로커스가 얼굴을 찌푸리며 쏘아 붙였다. 그가 떠올린 것은 이즈의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 보았던 망자의 환영이었다. 제미니가 아쉬움에 혀를 찼다.


"저 바위기둥, 어디선가 봤다 싶었는데 네 말 덕분에 떠올랐어. 우리가 갇혀 있었던 이즈의 지하 감옥이 저거랑 비슷한 재질로 되어 있었다고. 기억 안나?"


그의 열띤 목소리에도 제미니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대신 가베라가 관심을 보였다.


"이즈의 감옥이 저 바위로 만들어 졌다는 말입니까?"


"정확히 똑같은 물질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하게 생기긴 했어요." 크로커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거 참, 의외의 발견이군요."


엉뚱한 곳에서 이즈와의 유사점을 발견한 가베라는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미슬론드에서 가장 뛰어난 문명의 상징으로 평가받는 이즈와 정확히 그 반대인 블랙무어 사이에 연관점이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만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제미니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라니? 이게 얼마나 굉장한 일인지 모르는 거야?" 크로커스가 경악스런 표정을 지었다.


"손에 잉크 좀 묻혔다고 자랑해대는 학자 나부랭이야 좋아할지도 모르겠다만 지금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


"그거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발견은 모험의 꽃과도 같은 것이었으나 제미니에게 그러한 동경은 조금도 없었다.


"이 바위덩이가 마법적으로 가치가 있다면 모를까, 지금 우리가 신경 쓸 건 얼마나 빨리 이 기분 나쁜 곳을 빠져나가느냐 그거 아니었어? 엉뚱한데 기운 쓰지 말라고."


제미니라고 아예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그의 눈에 비친 검은 기둥은 그저 겉모양만 특이한 돌덩이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런 쓸모도 없이 검기만 한 돌덩이보다야 조금이라도 편한 여행길이 우선시 되는 건 그에겐 아주 당연한 노릇이었다.


크로커스 역시 보다 현실적인 제미니의 지적을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미지에 대한 호기심을 가슴 속에 묻어둔 그는 언제고 이 비밀을 파헤치겠노라 굳게 다짐하였다.


가베라는 잠시 호기심을 느꼈지만 더 이상 의문을 품지는 않았다. 제미니의 말대로 일행의 안전이 우선이라 생각한 그는 더욱 철저하게 주변을 감시했다. 시각 뿐 아니라 청각과 후각까지, 이용 가능한 모든 감각을 예리하게 갈고닦은 그의 감시망은 작은 날벌레 하나라도 놓치는 법이 없었다.


일행은 계속해서 움직였고 어둠이 찾아올 때까지 결코 멈춰 서지 않았다. 더 이상 앞을 보기 힘들 지경이 되어서야 안전히 쉴 수 있는 지형을 찾아 황야를 헤매야만 했다. 운이 좋게도 금방 적당한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그날 밤 야영지를 세운 그들은 하루 종일 쌓인 피로에도 불구하고 쉽게 눈을 감지 못했다.




이 글이 누군가의 취향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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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8. 검은 황야 (4) +8 22.07.25 59 2 20쪽
46 #8. 검은 황야 (3) +6 22.07.22 44 2 13쪽
» #8. 검은 황야 (2) +6 22.07.19 50 3 11쪽
44 #8. 검은 황야 (1) +4 22.07.18 54 2 10쪽
43 #7. 추적 (6) +10 22.07.15 61 6 16쪽
42 #7. 추적 (5) 22.07.13 51 2 12쪽
41 #7. 추적 (4) +4 22.07.11 43 5 11쪽
40 #7. 추적 (3) 22.07.08 58 3 13쪽
39 #7. 추적 (2) +2 22.07.06 57 5 14쪽
38 #7. 추적 (1) 22.07.01 46 4 10쪽
37 #6. 광산 문제 (6) +2 22.06.29 25 5 20쪽
36 #6. 광산 문제 (5) +2 22.06.28 74 4 12쪽
35 #6. 광산 문제 (4) 22.06.25 47 4 14쪽
34 #6. 광산 문제 (3) +2 22.06.22 43 5 14쪽
33 #6. 광산 문제 (2) 22.06.19 36 3 11쪽
32 #6. 광산 문제 (1) +2 22.06.16 56 3 14쪽
31 #5. 재판 (3) +4 22.06.14 59 3 19쪽
30 #5. 재판 (2) +2 22.06.09 42 3 11쪽
29 #5. 재판 (1) +4 22.06.08 76 3 14쪽
28 #4. 가베라 (5) +2 22.06.05 52 3 16쪽
27 #4. 가베라 (4) +2 22.06.04 46 4 11쪽
26 #4. 가베라 (3) +4 22.06.03 59 5 12쪽
25 #4. 가베라 (2) +4 22.06.02 63 4 16쪽
24 #4. 가베라 (1) +2 22.06.01 55 5 13쪽
23 #3. 오롤로죠 자이츠 (7) +2 22.05.30 66 6 13쪽
22 #3. 오롤로죠 자이츠 (6) +8 22.05.29 66 7 10쪽
21 #3. 오롤로죠 자이츠 (5) +4 22.05.28 76 7 13쪽
20 #3. 오롤로죠 자이츠 (4) +5 22.05.27 49 6 13쪽
19 #3. 오롤로죠 자이츠 (3) +8 22.05.26 104 9 13쪽
18 #3. 오롤로죠 자이츠 (2) +4 22.05.25 73 8 12쪽
17 #3. 오롤로죠 자이츠 (1) +4 22.05.24 91 10 11쪽
16 #2. 제미니 겔드 (9) +7 22.05.23 107 12 15쪽
15 #2. 제미니 겔드 (8) +7 22.05.22 73 11 11쪽
14 #2. 제미니 겔드 (7) +4 22.05.21 77 13 11쪽
13 #2. 제미니 겔드 (6) +10 22.05.20 99 10 15쪽
12 #2. 제미니 겔드 (5) +8 22.05.20 115 12 10쪽
11 #2. 제미니 겔드 (4) +14 22.05.19 112 12 11쪽
10 #2. 제미니 겔드 (3) +10 22.05.19 107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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