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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거인 님의 서재입니다.

히로익멘션 : 이즈의 모험가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철거인
그림/삽화
가락송이
작품등록일 :
2022.05.12 17:09
최근연재일 :
2022.09.19 21:17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4,631
추천수 :
453
글자수 :
321,744

작성
22.05.29 13:56
조회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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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0쪽

#3. 오롤로죠 자이츠 (6)

DUMMY

두 사람은 무작정 달리고 또 달렸다. 한참을 그렇게 달리고서 숨을 고르기 위해 멈춰 섰을 때엔 낯선 벽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크로커스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샌가 해는 완전히 저물어 까만 밤하늘 아래 반짝이는 별빛이 좁디좁은 지붕 사이 틈새로 쏟아져 내렸다. 넋을 잃고 바라볼 법한 풍경이건만 지금의 그로써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경비들을 따돌렸으니 다행인건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제미니가 말했다. 땀을 식히기 위해 부채질하는 그의 손에서 시원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본래라면 좁은 범위안의 대상을 꽁꽁 얼려버릴 한기를 발산해내는 하급 냉기 주문을 즉석에서 응용, 개조한 결과물 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제미니는 한결 살 것 같다는 얼굴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제미니의 목소리는 계곡의 메아리마냥 귓가에서 웅웅거렸고, 벽에 등을 기대고 서있던 크로커스는 그의 물음에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거친 돌 벽의 미지근함마저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열이 올라 머리가 지끈거리며 눈앞이 빙글거렸다. 사지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 가만히 서있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이었다.


"노숙하기는 싫은데." 딱히 대답을 들으려던 건 아니었는지 제미니의 투덜거림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소년의 투정을 묵묵히 듣기만 하던 크로커스는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잠시잠깐의 휴식이나마 취하고 나니 기분 나쁜 열기가 조금은 가라앉는 듯 했다.


"이 근처에 어디 숨을 만한 장소가 없을까?" 크로커스가 물었다. 경비대의 추적을 피하려는 의도는 물론이거니와 무엇보다도 안전한 피신처가 필요했다. 지금 그는 제대로 된 휴식이 절실한 상태였다. 할 수만 있다면 적절한 치료 역시 마찬가지였다.


"글쎄······." 제미니는 말을 흐렸다.


"우리가 지금 어디쯤에 와있는 건지 도무지 파악이 안 되서 말이야. 항만 구역은 아닌 것 같고 어느새 행정 구역까지 넘어와 버린 건가? 그런데 건물들이 지저분한 걸 보면 그건 또 아닌 거 같단 말이지. 여기가 어딘지만 알아도 방법이 있을 것 같긴 한데."


쫓아오는 경비대를 따돌리는 데에만 열중한 나머지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게 화근이었다. 한밤중에 얽히고설킨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느라 방향감각마저 잃어버렸다. 제미니가 아니더라도 길을 잃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크로커스는 생각했다.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대책을 세워야 할 필요는 있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쫓겨 다닐 수만은 없는 노릇인데······." 크로커스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두 사람이 아무리 날고뛰어도 피해 다니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무려 영주 평의회 전체가 나선 일이었다. 용케 지금의 위기를 모면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더욱 많은 병력이 그들을 쫓아 미슬론드 전역을 헤집을 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정말 국경을 넘는 것 말고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더구나 크로커스 본인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의 몸 상태로는 제미니의 발목만 붙잡을 공산이 컸다.


"선장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크로커스는 옛 상관을 떠올렸다.


그는 크로커스가 아는 이중 가장 현명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의 선택을 내릴 줄 알았고 그의 지휘아래 숱한 위기를 헤쳐 나올 수가 있었다. 그 때 겪었던 일들 중 도움이 될 만한 경험은 없을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데 집중하던 크로커스의 귓가로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얼핏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만큼 작은 소리였다.


"방금 네가 낸 소리야?" 크로커스가 제미니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소리? 무슨 소리를 말하는 건데?" 스스로 만들어낸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넋을 놓고 있던 제미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제미니의 멍한 표정을 바라보며 그저 착각에 불과했다고 납득하려던 그 순간, 똑같은 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이번엔 보다 크고 뚜렷했으며 크로커스는 그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비명소리, 그것도 젊은 여성의 비명소리였다.


"비명소리다! 누군가가 위험에 처한 것 같아!" 크로커스가 놀라 외쳤다.


"비명소리? 난 아무것도 듣지 못했는데?"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제미니가 반문했다.


"확실해." 크로커스는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분명 저쪽에서 소리가 들렸어. 위험한 상황일지도 몰라. 가서 도와줘야해."


"도우러 가자니 너랑 내가?" 제미니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반문했다.


"그럼? 여기 가만히 앉아서 손 놓고 있겠다고?"


"당연한 거 아니야?" 제미니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는데 뭘 근거로 남의 일에 끼어들겠다는 거야? 무엇보다도 너랑 나는 지금 쫓기는 신세야. 누군지도 모를 남의 일에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크로커스는 제미니의 단호한 어조에 순간 할 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의 말은 얼핏 타당해 보였고 틀렸다고 반박할 구석 역시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쉽게 납득할 수도 없었다. 곤경에 처한 이를 돕는 일이었다. 살다보면 손익을 따지지 않고 행동해야 하는 순간이 있는 법이었고, 지금이 바로 그런 때라고 크로커스는 생각했다.


"그래서 여자가 위험에 처했는데 그냥 지켜만 볼 거야?"


"뭐라고?"


"비명을 지른 건 여자의 목소리였어. 그것도 젊은 여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제미니가 소리 높여 외쳤다.


"비명이 들린 곳이 어디야? 당장 도와주러 가자!"


대답도 듣지 않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한 제미니의 작은 등을 쳐다보며 크로커스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짧다면 짧은 도피생활 동안 제미니의 성향을 파악할 기회는 무척 많았다. 그가 파악한 제미니는, 속물이었다. 그것도 아주 밝히는 속물이었다.




※※※※※※※※※




"당장, 이거 놓지 못해!" 히아신스가 억눌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온힘을 다해 발버둥 쳐보았지만 어린 소녀의 힘으로는 괴한 여럿을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가 없어 눈물이 핑 도는 그 순간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꼬맹이였잖아?"


알게 모르게 신경을 거슬리는 말투였으나 그런 걸 따질만한 여유가 히아신스에게는 없었다. 입을 틀어막은 손을 겨우 뿌리친 그녀는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제발 도와주세요!"


히아신스는 목에서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도움의 손길을 구해 보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괴한의 손아귀가 이전보다 더욱 단단하게 그녀의 입을 단단히 틀어막아 버렸다. 그녀는 어느 때보다도 절박하고 간절했지만 정작 그 마음이 상대에게 전해졌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네 말만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대체 무슨 꼴이야! 괜히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생겼잖아." 방금 전 들었던 앳된 목소리였다. 히아신스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에 마음속으로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심한 욕들을 퍼붓기 시작했다.


"지금 그런 걸 따질 때냐? 먼저 저 애부터 구하고 난 다음에 따져도 늦지 않잖아!" 앳된 목소리에 답하듯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토록 간절했던 구원의 손길에 안도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그들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한 히아신스는 깜짝 놀라 눈만 껌뻑 거렸다. 만약 양손이 자유로웠다면 몇 번이고 눈을 비벼 보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기묘할 정도로 길쭉한 지팡이를 들고 삐딱하게 서있는 다갈색 머리의 소년과 건장한 체격임에도 왠지 모르게 안색이 파리해 보이는 하얀 머리칼의 청년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영주의 가족을 헤치고 영지에 방화를 저지른 흉악범이자 영주 평의회 전체에 수배령이 떨어진 범죄자들의 인상착의와 똑 닮아 있었다. 희망이 절망으로 변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반면 히아신스를 납치하려던 괴한들에게도 뜬금없이 나타난 두 사람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영주 평의회의 최고 실력자인 얼음공작의 친인척을 납치하는 일이었다. 최대한 은밀히 일을 진행해도 모자랄 판에 이미 한바탕 소란을 벌인 뒤였다. 당연하게도 목격자는 적으면 적을 수록 좋았다.


"괜히 남의 일에 상관하지 말고 꺼지시지." 괴한들 중 우두머리 격인 사내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두 사람이 등을 돌리는 순간 급습할 마음으로 주변을 향해 슬쩍 눈짓을 보냈고, 그것을 본 괴한들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조용히 무기를 꺼내 들었다. 다만 눈앞의 두 사람이 어떤 인물들인지 알지 못한 게 그들의 실책이라면 실책이었다.


"들었지? 더 이상 일 키우지 말고 그냥 너랑 나 갈 길이나 가자, 응?" 다갈색 머리의 소년, 제미니가 말했다.


"진짜 미친 거야? 지금 저 꼴을 보고서도 그냥 가자는 말이 입에서 나오냐! 넌 그냥 귀찮은 것뿐이잖아!" 하얀 머리칼의 청년, 크로커스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년에게 버럭 화를 냈다.


"아니 왜 나한테 소리를 지르고 지랄인데! 오지랖은 너 혼자서나 떨든가! 난 상관하지 않을 테니까!" 제미니 역시 크로커스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이 글이 누군가의 취향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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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8. 검은 황야 (4) +8 22.07.25 59 2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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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8. 검은 황야 (2) +6 22.07.19 49 3 11쪽
44 #8. 검은 황야 (1) +4 22.07.18 54 2 10쪽
43 #7. 추적 (6) +10 22.07.15 61 6 16쪽
42 #7. 추적 (5) 22.07.13 50 2 12쪽
41 #7. 추적 (4) +4 22.07.11 43 5 11쪽
40 #7. 추적 (3) 22.07.08 58 3 13쪽
39 #7. 추적 (2) +2 22.07.06 57 5 14쪽
38 #7. 추적 (1) 22.07.01 46 4 10쪽
37 #6. 광산 문제 (6) +2 22.06.29 25 5 20쪽
36 #6. 광산 문제 (5) +2 22.06.28 74 4 12쪽
35 #6. 광산 문제 (4) 22.06.25 47 4 14쪽
34 #6. 광산 문제 (3) +2 22.06.22 43 5 14쪽
33 #6. 광산 문제 (2) 22.06.19 36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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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4. 가베라 (2) +4 22.06.02 62 4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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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3. 오롤로죠 자이츠 (7) +2 22.05.30 66 6 13쪽
» #3. 오롤로죠 자이츠 (6) +8 22.05.29 66 7 10쪽
21 #3. 오롤로죠 자이츠 (5) +4 22.05.28 76 7 13쪽
20 #3. 오롤로죠 자이츠 (4) +5 22.05.27 49 6 13쪽
19 #3. 오롤로죠 자이츠 (3) +8 22.05.26 104 9 13쪽
18 #3. 오롤로죠 자이츠 (2) +4 22.05.25 73 8 12쪽
17 #3. 오롤로죠 자이츠 (1) +4 22.05.24 91 10 11쪽
16 #2. 제미니 겔드 (9) +7 22.05.23 107 12 15쪽
15 #2. 제미니 겔드 (8) +7 22.05.22 73 11 11쪽
14 #2. 제미니 겔드 (7) +4 22.05.21 77 13 11쪽
13 #2. 제미니 겔드 (6) +10 22.05.20 99 10 15쪽
12 #2. 제미니 겔드 (5) +8 22.05.20 115 12 10쪽
11 #2. 제미니 겔드 (4) +14 22.05.19 112 12 11쪽
10 #2. 제미니 겔드 (3) +10 22.05.19 107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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