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그녀를 믿어도 될까요?
본 웹소설은 픽션이며 인물, 지명, 종교, 사건 등은 실제 역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렇게 연향의 준비로 우리는
오랜만에 주린 배를 야식으로
꽉꽉 채웠다. 살이 찐다며
제천이 기름진 걸 밀어낼 때
난 다행히 다이어트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 유정이의 몸을
감사해 하며 이것저것
먹었다.
‘ 햐~ 이 자식 축복받은 몸이네.
비루한 26살의 유정은 물만
먹어도 붕어마냥 부었는데. '
“ 오늘은 어째 잿밭에 더
관심을 가지는군. "
“ 성균관에서 주는 야식은
양도 적고 거기다 맛까지
없어 입만 버리는데 여기
서라도 잘 먹을까 하는
마음이 식탐을 부르는구만.
무엇보다 배가 든든해야
다음 날 숙취도 덜 하는
법이지. 그나저나 헛개
나무 열매를 좀 구해야
할 텐데. "
“ 쯧쯧,
어떻게든 많이 마실 욕심이니.
이거 원 자네 이러는 거
자당께선 아시는가? "
“ 어허~ 큰 일 날 소리. ”
입에다 손가락을 대며 조용히
하라고 협박하니 제천은
철없는 장의의 행동에 혀를
찬다.
“ 초이입니다. ”
“ 오냐~ ”
초이를 두고 신성군과 다툼이
일었다는 소문은 뜬소문에
그쳤지만 다른 이도 아니요
신성군이라는 타이틀 덕에
화제성을 몰아 초이의 머리
올리는 값이 배로 뛰었단다.
원래도 애기기생의 머리를
올리는 데 드는 비용이 대궐
같은 큰 집을 사는 비용과
맞먹어 웬만한 부자가
아니고서야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헌데 거기에 값이 더 올라
감히 올려보겠다 호기롭게
나서는 이가 없어 함부로
희롱하는 일이 적어진데다
감히 그녀를 두고 해코지를
대놓고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 저를 이용하셨다 생각되시어
걱정이 많으셨다고 들었습니다. "
“ 물론 너에게 미리 일러두기는
하였으나 너의 기분은 생각지
않고 낸 계책이 된 꼴이어서
미안하지. "
“ 괜찮습니다. 도련님 덕분에
제 몸값이 몇 배로 오른 데다
본의 아니게 눈에 띄게 되어
쉬이 저를 해하지는 못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도련님의
마음을 알고 있음에 제가
도움이 되었다면 그것으로
족하오니 이젠 마음 놓으셔요. "
“ 그래 유정.
어찌되었거나 결과적으론
그 자가 섣불리 나올 수
없게 되었으니 초이를 보호한
셈이 되었어. "
“ 그렇지요. 물론 언제까지고
기약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희 쪽에서도 배후가 누구인지
무엇을 노리는 지에 대해 생각
할 시간을 벌기까지 했으니 "
“ 자네들 말대로라면 좋지.
내가 누누이 말했듯이 가늘고
길게 큭큭. 초이와 신성군마마를
건드리지만 않는다면야 구태여
내 쪽에서 그들을 자극할 필욘
없어. 제천 너무 깊게 파고
들진 말게. "
“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도 일 크게 키울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의 향내가 적당히 몸에
배일 때쯤 제천의 재촉으로
아쉬움을 내비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연향에게 다음을
기약하며 홍루를 나섰다.
성균관으로 돌아가는 길목의
시전들은 시각이 늦어져
거의 문을 닫은 상태라
조용하다. 그러다 보니
괜히 몸이 으슬으슬 추워져
앞서가던 녀석들 사이에
파고들려는데
퍽-----
누군가 내 어깨를 치고 지나
간다. 갑작스러운 어깨빵에
기분이 살짝 나빠진 나는
어깨를 문지르며 상대를 마주
하는데
“ 처음이었습니다. 아이가
그리 기뻐하는 모습을 본 게
감사합니다. "
“ 아니~잘못했으면 사과를
할 것이지 뭔 소리... ”
죄송하다면 될 일을 아이는
뭐고 기뻐하다니 아무래도
술에 취해 사람을 잘못
알아본 듯 해 괜히 일
벌리기 싫어 알았다며
보내려니 갑자기 내 손을
잡아당긴다.
“ 뭐...뭐 하는 겁니까~ ”
그렇게 내가 소리를 높이거나
말거나 상대는 전혀 개의치
않고 내 옷소매에 자신의
손을 쑤욱 밀었다 빼고는
“ 홍루의 누이에게 전해주시오. ”
란 짧은 말을 남기고
자리를 부리나케 떠났다.
“ 어..어.. 이보시오~! ”
그렇게 도망치듯 가는 이의
뒷머리를 향해 소리쳤으나
마치 무엇에 쫓기기라도
하듯 잽싸게 사라졌다.
“ 왜 그러는가? ”
앞서 가던 석환이 뒤돌아
내게 다가왔다.
“ 아니 사람을 쳤으면 사과를
할 것이지 대뜸 아이가 그리
기뻐하는 모습이 처음이었다면서
내 손을 끌어 소매에 무언가를
넣고는 도망치듯 가 버렸어. "
“ 아니. 그게 무언가 어서
꺼내어보게. "
석환은 아무래도 취기가 오른
사내가 아무거나 집어든
물건이라 생각해 버리려는 듯
내게 손을 내미는데
“ 여기서 말고 동재로 가서
꺼내시지요. 시각이 늦었습니다. "
제천이 중간에서 석환의 손을
제지한 뒤 우리를 잡아당겼다.
그래서 어차피 시간도 늦었고
해서 서리가 번을 바꾸기 전에
들어가기 위해 발길을 재촉했다.
『 오늘은 이 녀석과도 동침인
것이야? 이거~이거 순진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허~ 』
월아가 음흉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에 어이가 없는 난
석환과 제천이 이부자리를
보는 동안 다문 잇새로 말을
흘렸다.
“ 암만 영혼이 여자라 해도
엄연히 껍데기는 남자거든.
뭔 상상을 한 거야? "
『 상상이라니. 있는 모습을
말한 것 뿐인데. 사내 둘을
사이에 두고 히야~ 복도 많은
여인이구나. 』
“ 미친~! ”
“ 네? ”
갑자기 내가 욕을 하니
제천이 놀라 쳐다본다.
“ 아..아니야. 월아가 자꾸
열 받게 해서. "
“ 하... 월아낭자도 있습니까.
이보시오~ 안 보이지만 제 말은
들을 것이라 믿어봅니다. 따로
할 말이 없다면 사내들만
있는 곳에 오래 머무는 건
예가 아닌 듯 하니 나가
주시지요. "
『 싫은데? 나가는 것도
드는 것도 내 마음이다. 』
“ 월아 적당히 해라. ”
『 쳇. 네가 아까 무엇을
가지고 왔다기에 궁금해서
그런 것이야. 나도 좀 보여줘.』
별 걸 다 간섭이다. 하지만
억지로 가라고 하면 성질만
건드릴 것 같아 제천에게
알아서 나갈 것이니 신경
쓰지 말라 말한 뒤 사내가
소매에 넣은 것을 꺼내니
“ 이건 쪽서가 아닌가? ”
“ 그러게. 뭐지? ”
“ 에이~ 이왕이면 분내 나는
여인에게 받은 향서(香書)면
더 좋으련만 시커먼 사내가
무슨 쪽서를. "
“ 으이구 석환~
내 것이 아니야. 홍루의
누이에게 전해 달라 하였어. "
“ 홍루의 누이라니? ”
“ 나야 모르지. ”
무슨 암호도 아니고 궁금한
쪽서는 내 것이 아니라 함부로
열 수도 없으니 누구를 말한
것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 사람을 잘못 본 것일까? ”
“ 글쎄요. 술 냄새가 났다거나
눈이 풀렸거나 그러하였습니까? "
“ 나도 처음에는 취객인가
했는데 술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어. 그러고 보니 말투가
어눌하지 않았으니 맨 정신
이었을 거야. "
“ 그렇다면 일부러 장의를 치고
간 것일 수도 있겠군요. 필시
누군가에게 이 것을 전해야
하는데 직접 전할 수 없어서
처음에 뭐라 하였다구요? "
“ 처음이었습니다. 아이가 그리
기뻐하는 모습을 본 것이. "
“ 흠... 우리가 만나는 이가
많지 않으니 그들 중 하나
일 테니 연향, 신성군, 초이...
아~! 초이입니다. "
“ 초이? ”
“ 예. 처음 초(初)
기쁘다 이(怡)
맞을 것입니다. 원체 비밀이
많은 이이지 않습니까? "
한자로 해석한다면 초이가
맞지만 나와 초이가 엮인 걸
아는 낯선 이라 괜히 기분이
찝찝했다.
“ 나와 초이의 관계가 그리
명확하지 않고 소문에 그친
사이인데 어찌 그것을 이용
한단 말이지? "
“ 유정 자네 생각은... ”
“ 내가 소설을 쓰는 것일 수도
있지만 왠지 석연치가 않아.
나와 초이의 관계를 재차
확인하려는 것일지도. 잘못
초이에게 건네었다가 의심만
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서. "
“ 그럼 장의.
우선 내용을 한 번 보시지요.
읽어보시고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
주인에게 줘야 할 편지를
중간에서 몰래 읽는 다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혹시
함정일 수도 있는 상황이라
나중에 초이에게 설명하기로
하고 편지를 열었다.
「 그간 너를 살피지 못했는데
날에 좋은 이야기가 들려
자세히 듣고 싶구나.
시각이 허락되거들랑
에먼 자를 괴롭히지 말고
그 서신이라도 좀 보내렴.
곳곳에서 궁금해 하니. 」
“ 그냥 안부를 묻는 것인데? ”
별 거 없는 내용에 싱거워진
난 그대로 서신을 접으려니
제천이 막는다.
“ 글쎄요. 안부를 묻는 정도라면
굳이 장의를 통할 필요가 있을
까요. 연향의 시비를 통할 수도
있을 텐데. 눈치를 살펴가며
건넨 것이 신경 쓰입니다. "
“ 그냥 연서일 수도 있지
않을까? 너무 어렵게만 생각
하지 말고. "
“ 아니요. 연서라고 하여도
우리 같이 체면이나 규율에
빠져 있는 양반들과 달리
남녀관계에 있어서 좀 더
자유로운 신분들입니다.
그런데 이리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맞지가 않지요. "
“ 제천의 말에 일리가 있어.
그리고 소문이 돌기는
하였으나 실제적으로
그것에 대해 확인 한 이는
없어. 그런데도 마치 두
사람 사이에 친분이 있다고
확신하며 건넸다는 게
석연치 않아. "
물론,
초이와 접촉해야 하는데 이미
신분이나 얼굴이 노출 되어
어려운 것이라면 뜬소문에라도
한 번 걸어볼 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짜 나와
초이가 확실하지 않다면
괜히 일만 키우게 될 수도
있을 텐데.
“ 그럼 우선은 초이와 만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지. 직접
만나 부딪혔던 사내의 인상을
말하여 아는 듯 하면 그냥
서신만 건네주면 되니까. "
그렇게 하여 이야기를 마무리
한 뒤 월아에게는 따로
소식을 전해주는 이 중 귀찮지
않다면 초이 곁을 좀 살펴
달라 부탁했다.
“ 연향언니면 모를까 저는 이리
나오면 어머니께 혼이 납니다. "
연향에게 사정하여 서림으로
초이를 불러 달라 하였다. 물론
연향도 함께.
“ 조용히 좀 지내는 가
했습니다. ”
“ 연향~ 내가 좀 일을
만들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이리 또 대놓고 티를 내나
서운하게 시리. "
“ 걱정이 드니 하는 말이지요.
저희들이야 천한 신분에
무지하여 일에 휘말렸다
하여도 운이 좋아 면천 될
수 있지만 도련님들은 그리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번 일이야 어찌
무사히 넘어갔다고는 하나
다음은 어찌 될지 기약
할 수 없습니다. "
연향의 말이 맞다.
이들이야 몰라서 그랬다고
무지함을 무기로 들이밀 수
있지만 유생이며 양반들인
우리는 아무래도 위험부담이
더 크다. 그렇기에 연향은
초이도 초이지만 나를
우리를 걱정하는 것이겠지.
“ 일은 더 벌리지 않을
것이야. 내 목숨이 여러 개도
아니고. 하지만 초이가
완전히 위험에서 벗어난 게
아닌 듯하여 자네가 좀
초이를 감싸 돌아야 하지
싶어. "
“ 무엇을 말입니까? ”
“ 어제 누가 초이를
보고 싶다며 나를 붙들고
매달리더란 말이지. "
나야 연향이를 믿지만
초이가 완전히 자신을
연향이에게 의탁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연향이 보는
앞에서 서신을 마음대로
꺼낼 수 없어 우선은 내가
본 자의 면을 설명할 때
초이의 반응부터 살피기로
했다. 워낙에 빠르게
달아난 덕에 사진처럼
판에 찍은 듯 말할 순
없었지만 초이가 알아
들을 수 없을 만큼 휘리릭은
아니어서 천천히 설명을
하니
초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 초이야, 설마 그 은호라는? ”
연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초이. 두 사람이 주고받는 눈빛은
충분히 신뢰가 묻어났다.
그렇다면 굳이 연향을 물리고
초이하고 독대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 그런데 뜬소문이
두메산골까지 전해
졌는 지 생면부지인
그 자가 내게 무언가를
부탁하더란 말이지. "
그렇게 말하며 조심스럽게
서신을 그녀들 앞으로
꺼내놓았다.
그런데 내가 편지를 상에
놓자마자 초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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