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드디어 술이 조금씩 익어간다.
본 웹소설은 픽션이며 인물, 지명, 종교, 사건 등은 실제 역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밤새도록 울다 새벽이 다 되어서야
겨우 눈을 붙인 나는 수탉의 요란스러운
울음소리에 부스스 자리에 일어났다.
“ 보고 싶어. ”
하룻밤으로는 부족했는지 복잡한 마음이
입으로 튀어나와 다시 먹먹해진 기분을
서둘러 털어내려 주섬주섬 옷을 챙기는데
------쓰윽쓰윽
바깥에 비질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끼익
“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
기분 좋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하인을
보고서야
“ 아, 주말이구나. ”
깨달았다. 싱글거리며 이마에 땀을 닦던
하인에게 가볍게 답인사를 한 뒤
옷을 입은 후 석환이를 찾았다.
“ 아니, 유정 밤새 비천당에 있었어? ”
“ 아니. ”
“ 그래? 도대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리 눈이 부어 있는 건가? "
그제야 난 얼굴을 매만지니 눈두덩이가
두 배로 불어 있었다.
“ 이런... ”
“ 밤에 나는 벌은 없었을 터인데. ”
“ 밤에 피어 새벽에 지는 꽃을 보러 온
벌들에게 된통 당했어. "
“ 아아~ ”
“ 그냥 좀 넘어가자. ”
“ 홍학유의 말이 자네를 건드렸나보군. ”
“ 뭘? ”
“ 소아에 대한 자네의 마음. ”
그랬다. 분명 여기의 유정이는 자신의
마음이 소아가 같은 지를 두고 의심했다.
“ 하~ 할머니가 말씀하신 게 이거구나. ”
“ 무엇을 말이야? ”
“ 확실한 건 소아낭자를 다시 만나면
알 것 같다. "
“ 그리 보고 싶은 것이야? 후후 ”
“ 그래~ 보고 싶다 정말 미치도록 보고
싶다 됐냐~ "
진짜 보고 싶다.
저 쪽의 유정이가 나와 같은 생각이길
간절히 바라는 만큼.
“ 이러다 귤을 몇 개나 드실지 모르겠군요. ”
마음이 복잡해져서인지 유정의 실력만큼은
아니었어도 어느 정도 해 나갔는데 수업도
엉망, 순과점수는 나락.
“ 그러게나 말이다. 뭐 사제가 사형을
앞지른다 해서 뭐라 할 사람 없는데
먼저 가 나 좀 챙겨주라. "
“ 됐습니다. 무능한 사형을 책임 질만큼
착하지 않으니 알아서 앞서주시지요.
밀어는 드릴 터이니. "
공부도 하기 싫고 드러눕고만 싶은 오늘.
내일 역시 그러할 것 같은데 게을러진 걸
눈치 챈 석환이 다가왔다.
“ 꽃 나들이라도 갈까? ”
“ 가고 싶다. ”
“ 그리 공부가 하기 싫어 어찌 해. ”
“ 그냥 살랑대는 나무그늘 아래에서
한잔 딱~ "
“ 한잔으로 족하겠습니까? ”
언제 왔는지 제천이가 찰랑거리는 술병을
흔들며 내게 왔다. 그런데 어디선가 익숙한
단향이 코를 찌르기에 난 잽싸게 빼앗아
마개를 열었다.
“ 어어~~ 장의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음주는 아니지요~ "
“ 이런... 이거 어디서 났어? ”
“ 오다 주웠습니다. ”
“ 장난하지 말고 누가 준 거냐고~ ”
“ 진짠데? ”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며 제천이 말대로
성균관 내에서 음주라 미친 짓인 거
알지만
‘ 맞는지 확인해야 돼. ’
그렇게 한 모금이 입을 다 벌리기도 전에
넘어가니 아는 맛이 더 무서운 법.
“ 미쳤는가~! ”
어느새 입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술병을
석환이 재빨리 빼앗더니 또 이런다라는
표정으로 인상을 구긴다.
“ 미친...건 맞아. ”
“ 하~ 꽃향이 아무리 그리워도 그렇지.
그것이 어찌 술의 단내와 비교가 돼.
내 조만간 소아에게 서신을 넣어 둘 터이니
그만하고 동재로 돌아가세. "
“ 석환~ 그럼 난 푸주에 들러 주전부리라도
내 놓으라 해 가져가도록 할 테니. 어서
이 정신 나간 장의를 부탁하네. "
그렇게 나는 석환이에게 붙들리다시피
하며 동재로 돌아왔다.
“ 이 맛 기억 안나? ”
내가 주루로 아니 여기 유정이가 가자
했고 석환이는 따라 나섰으니 분명 유정이
혼자만 마시진 않았을 텐데.
“ 그 날의 술이라면 내 입에도 대지
못하였어. ”
“ 내가 가자고는 했어도 어쨌든 동행
했으니까 나눠 마셨을 거 아니야. "
“ 쯧쯧, 자네가 혼자 들이붓는 바람에
난 입도 적시지 못했어. "
아...
‘ 나발을 불었었지. ’
그리고 조건이
‘ 하나 더 있었지 참. ’
쿵짝이 맞아야 한다. 괴짜할머니가
만들어 놓은 함정에 유정이랑 같이
빠져야 한다는 것.
만약
‘ 여기서 내가 마셔도 저쪽에서의
유정이가 마시지 않는다면?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 마음이 담기지 않는다면 암만
퍼 마셔도 소용없다고 했지. '
“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아~ ”
그렇게 석환이를 망부석으로
만들어 놓고 잠시 생각에 빠진 동안
제천이가 내 방문을 밀고 들어왔다.
두툼한 베이컨계란말이, 뜨끈한
어묵탕, 바삭한 튀김모듬이
“ 먹고 싶다. ”
“ 하하... 이것이라도 어딥니까~ ”
눈치 빠른 제천이는 내가 무얼 먹고
싶어 하는 지 아는 듯 멋쩍은 웃음으로
손을 드는 데 거기엔 북어국 만들고
남은 자투리, 심심한 쑥부쟁이나물과
나박김치가 들려있다.
“ 약과는? ”
“ 그 귀한 것이 어디 매일 있겠습니까. ”
“ 그렇지. ”
제사상에 올라가는 것인데다 어른들이
드시지 않으면 얻어 걸리는 것이니 그렇게
생각하며 곧바로 풀이 죽는 나를 보던
제천이 씨익 웃으며 내 입에 물려주는 건
“ 므어야~ ”
“ 후후, 마침 00상유가 어제 제사였다며
조금 싸온 것을 나눠주기에 몰래 두었지요. "
참~ 우리 제천이가 달라져도 너무 달라져
낯설다. 그리 까칠했던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에세이가 몇 편이나 나올 수 있을지
“ 어우~ 간지러워. 언제부터 그랬다고
그냥 하던 데로 해. "
“ 유정, 원래 채찍을 들기 전에 당근부터
먹이는 법이야. "
“ 넌 그 입 좀 다물어. ”
“ 입을 닫으면 어떻게 한잔을 해~
제천 어서 앉게. "
그렇게 우리는 입으로 들어가는 통로만
보일 정도로 불을 약하게 밝힌 뒤 주거니
받거니 밤을 이었다.
“ 우리 간이 커도 이리 클 수가 없습니다. ”
“ 든든한 술친구가 없으니 어떡해. ”
“ 연향이도 곧 나온다 하니 그때 회포나
풀자고. "
“ 신성군이 어찌 지내는지 궁금하네.
유배가면 몸이 제일 고단할 텐데. "
“ 마음고생에 비하면 견딜 만 할 것이야.
비천당에서 굴렀던 거 생각 안나나? "
“ 큭큭큭, 하기야 구르라고 했으면
어디까지 굴렀을 양반이니. 진짜 4차원이
따로 없다니까. "
“ 4차원? ”
“ 있어. 정신세계가 원체 다채로워서
단순한 나나 석환이 그나마 좀 광범위한
제천이 너도 이해 못할 위인. "
“ 아직 술이 반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헛소리는 자~~ 그만하고
내 술이나 어서 받게~ "
“ 아~ 진짜 마시고 다음 날 눈 떴을 때
내 방이면 좋겠다. "
“ 당연히 자네 방이지 쯧쯧. ”
‘ 네들이 시간을 거스르는 맛을 알아? ’
그렇게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세 잔으로 넘어가며 입이 풀리고
서로에게 애틋해지는 순간이 왔다 갔다...
“ 으...으...음... 물... ”
목이 탄다. 머리도 아프고
------스윽
그 순간 굉장히 시원한 무언가가
뺨에 닿았다.
“ 아~ 좋다. ”
목마름도 잊고 차가운 거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흥흥 거렸다. 그러다
------스으윽
뺨에서 떨어지려는 걸 느끼고 곧장
잡아당기는데
“ 잠깐만. ”
----------번쩍
절대 잊을 수 없는 목소리.
그런데 멍청하게 술 한 잔에 놓친
그...
“ 술을 얼마나 마셨길래. 또 이 모양이야. ”
----------와락
이든이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무작정
안겼다. 징그럽다고 떼어놓으려 해도 상관
없었다.
“ 보고 싶었어. ”
술독이 남아 목을 긁었는지 갈라진
목소리에 힘이 없어 이든이에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고개를
푹 숙이며 매달리는 내 허리를
감싸는 녀석의 두 팔.
“ 돌아올 거지? ”
돌아온다니 나는 분명 내 방에서 눈을
떴는데 무슨 말이냐고 물으려는데
녀석은 팔에 힘을 줬다.
“ 이..이든아~ 그만.. 숨 막혀~ ”
그만~~~~~~
“ 그만하라고~!! ”
“ 음냐음냐... 냐암.. ”
“ 하~! ”
꿈이다.
“ 야이~ 떨어져 이 자식아~ ”
나를 끌어안고 잠든 석환이를 발로
차 버린 후 자리에 일어났다.
“ 에이 씨~ ”
혹시나 했는데 이든이까지 만나서 정말
돌아간 줄 알고 좋았었는데.
“ 아~!! 짜증나~! 날 시험해~!!
이 망할 할망구가~!! "
제천이가 가지고 왔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어딘가 숨어서 킬킬거릴 것만 같은
생각에 나도 모르게 빽 소리를 질렀다.
“ 아~ 간밤에 꿈자리가 뒤숭숭하구만.
고목을 끌어안나 싶더니만 그것이 호랑이로
변해 냅다 던지는데 진짜 같이 허리가
아직도 아파. "
허리를 부여잡으며 어그적 걷는 석환에게
난 차마 아무런 말 못하고 앞만 쳐다보니
“ 별 희한한 걸 꾸고는 큭큭. 어쩌나
사내에겐 허리가 생명인 것을. "
“ 걱정 말게. 내 아직 건재하니 ”
“ 야~ 석환이는 그렇다 치고 제천 너는
왜 갈수록 성필상유냐? "
“ 이 정도 농은 농 축에도 끼지 않지요.
해가 지나도 어린 티는 좀체 벗지를
못하나 봅니다. 장의~ "
“ 어유~ 진짜 내가 말을 말아야지. ”
그렇게 녀석들의 놀림을 받으며
식당으로 들어서는데
“ 아~~ 냄새 좋다. 맡자마자 해장 되는
기분인데? "
“ 쉿~ 일부러 들으라 그러시는 겁니까? ”
“ 하여간에 조심성 없기는 내가 아는
유정은 이리 칠칠치 않았는데 "
“ 몸의 기운이 해를 넘길 때마다 순환하고
바뀌듯이 성격 역시 그 영향을 받는 것이야.
아 됐고~ 속이 허하니 국 많이 달라고
해야지~ "
제철나물들에 쑥국까지 생선찜이나
고기국이 없어도 든든하다.
“ 아~~ 배부르다. 확실히 조반을 잘 먹어야
두뇌회전이 잘 되어 스승님의 가르침이 쏙쏙
들어오지. "
“ 그럼 오늘 수업에는 기대하여도 좋습니까? ”
“ 내가 허우적대는 게 더 재미있을 테지만
뭐 어쩌겠어. 장의가 되어서 언제까지고... "
“ 장의~! ”
대화를 뚝 끊고 서리가 앞을 막아서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
“ 제가 어제 받아두고선 깜빡하여
송구합니다. ”
“ 무엇을? ”
---스윽
“ 여기서 펼치기에는 그러하니 나중에
보십시오. "
무슨 편지인지 누가 보낸 것인지 말도
하지 않고 소매 안에 찔러 넣은 뒤
총총걸음으로 사라지기에 더 묻지
못하고 뒤에 따라오는 이들 눈을 피해
슬쩍 보려는데
“ 아~ 서리가 이리 비밀리에 주는 것은
들키지 말라는 것인데 눈치가 없어도 참. "
제천이 얼른 내 손을 저지해 앞으로 밀며
“ 급한 것이 아닌 듯 하니 수업을 듣고 나서
보아도 될 것입니다. "
그렇게 궁금해 죽겠는 걸 겨우 참고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비천당으로 가 펼쳐보니
소아의 서신이다.
“ 보고싶다라... ”
“ 누가? ”
“ 나한테 이리 말할 사람이 누구겠어? ”
“ 뭐~ 어머님일 수도 있고 다온낭자일 수도. ”
“ 어머님은 눈으로 말씀하시는 분이라 굳이
서신으로 하시지는 않지. 다온이는 너도 알잖아. "
“ 그래 소아낭자께서 뭐라고 하시며 보고
싶다는 겁니까? "
아니 이것들은 남의 연애에 왜 이리 관심이
많은지. 구태여 여기까지 쫒아 와서
참견이다.
“ 그냥 보고 싶다란 말 뿐인데 아니
뭐가 그리 궁금해~ "
“ 저야, 아직 모르는 것이 많으니 옆에서
배우고자 함입니다만. "
아주 능청스러운 제천의 말에
웃음만 나온다.
“ 경험 많은 석환이에게 묻거나
그걸 책으로 쓰는 홍학유에게 물으면
될 것을 초보자인 나한테 뭘 배워? "
“ 하나는 알고 둘은 몰라. 능수능란한
나나 홍학유에게는 말로만 들을 수 밖에
없는 걸 자네의 애련에는 보이잖은가
실수는 더 없는 경험이 되거든. "
“ 하~ 내가 연애를 왜 안 해봐~ ”
“ 뭐? ”
‘ 아... ’
여기 유정이는 모쏠인걸 깜빡하고 나도
모르게 열 받아 실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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