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등잔 밑의 그늘이 제일 안전할 줄 알았다.
본 웹소설은 픽션이며 인물, 지명, 종교, 사건 등은 실제 역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흠... ”
주지스님이라 해서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일 줄 알았는데 뜻밖에
중년의 비구니다.
“ 일전엔 젊은 사내더니 이번엔
여인네라 이거 참. "
“ 스님, 야심한 밤에 이리 불쑥 찾아와
죄송합니다. 허나 전에도 그렇듯 사연이
많은 이라 염치없지만 당분간만 좀... "
“ 사내는 연향의 부탁이라 어쩔 수
없었지만 한밤중에 이리 우르르
몰려와서 떼를 쓰시다니 더는 안 됩니다. "
“ 죄송합니다. 이 아이가 그 때
그 사내가 찾던 여동생입니다.
두 사람의 길이 엇갈린 듯하여 혹시
여기를 다시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
“ 하~ 누이를 찾아가야 한다기에
말리지도 못했는데 이거 참...
우선은 연향의 면을 보아 데리고는
있겠으나 이 곳도 그리 안전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니 속히 데려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
“ 고맙습니다 스님. ”
그렇게 스님에게 가까스로 허락을
받은 뒤 초이가 나중에 일어났을 때
당황할 것을 대비하여 간단히
상황에 대한 것을 써서 초이의
머리 맡에 둔 뒤 우리는 서둘러
절을 나왔다.
“ 오라버니? ”
도둑고양이마냥 살금살금
까치발을 들고 느릿느릿 걸어가다
뒷덜미를 제대로 잡혔다.
“ 하...하하... 시각이 이리 야심한 데
아직 잠을 자지 않았던 것이야? "
“ 하아~ 점점 가관이십니다. 겨울
휴학기도 얼마 남지 않은 마당에
도저히 안되겠습니다. 어머니께
고하던지 읍~ "
난 고자질을 하러가겠다는 다온의
말에 급히 손으로 입을 막은 후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 푸~~ 하~~ 무슨 짓입니까~! ”
“ 쉬쉬~ 그러다 어머니 깨시겠다. ”
“ 어머니가 무섭기는 합니까? ”
“ 자자, 역정만 내지 말고 내
자초지종을 얘기해 줄 것이니 우선
앉아 보거라. "
“ 대체 오라버니 밖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 겁니까!? "
길게는 설명하기 어려워 간단히
이야기 하니 어이가 없는 표정이다.
하기야 원래 유정이라면 이런
간 큰 짓은 꿈도 꾸지 못했을 테니
반응이 이럴 수밖에.
“ 그럼 이제 어찌할 것입니까? ”
“ 어찌하기는 무얼 어찌해. ”
“ 홍루도 안전하지 못하다면 초이가
갈 곳이 없잖습니까. 그렇다고 절에
계속 있을 수도 없고. "
“ 시비로 집에 들이면... ”
“ 어머니께는 어떻게 설명하실
생각입니까? "
끄응------
“ 집으로 들이는 것은 아니 됩니다.
소아언니가 허락 한다 해도
제가 아니 되니 오라버니의 비상한
머리로 방법을 잘~~ 강구해보셔요. "
내 머리 속을 훑고 지나가는 꼬맹이.
은근슬쩍 집으로 들이려 했는데 실패다.
“ 나 역시 반댈세. ”
초이의 거처를 어떻게 할지를 두고
제천과 함께 석환이의 집을 찾아
말을 꺼내기 무섭게 내 말을 단칼에
썰어버린다.
“ 생각이라는 걸 해 보고 답을
내던가 하지. "
“ 소아의 입장도 생각하게. 자네는
점점 더 뻔뻔해지는 것 같단 말이지.
그리고 소아도 소아지만 자네 집이나
우리 집은 제일 의심되는 장소인 걸
모르나. 아직도 우리는 그들 감시 하에
있다는 걸 제발 잊어버리지 말고
새기게 새겨~ "
“ 석환의 말이 맞습니다. 우선은
초이의 몸을 추스르는 것이 먼저이니
시일을 두고 방법을 고심해 보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고초를 여러 번 겪었으니 혹여 마음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
“ 그 똥고집이 쉽게 마음을 바꿀까.
그냥 엄한 생각만 하지 않는다면야
더할 나위 없을 텐데. "
그렇게 찻물이 식어지는 것도
잊은 채 애꿎은 잔만 만지작거리다
“ 제일... 위험한 곳이 제일...
안전할 수도 있다... 그래~!! "
내가 갑자기 무릎을 치며 오두방정을
떠니 두 사람은 못 본 눈이라도
살 요량으로 똥 씹은 표정이다.
“ 큭큭큭, 이거~ 이거 왜 그 생각을
못했지. "
“ 무슨 말인가? ”
“ 그들의 방법을 이용해 보는 것이야. ”
“ 대관절 무슨 말입니까. ”
“ 다들 잘 들어봐. 제일 허접했던
곳에 비밀문건과 초이를 감춘 것처럼
우리도 초이를 그런 곳에 두는 것이지. "
“ 그게 어디인가? ”
“ 궁궐 안 ”
“ 에에?! 거긴 허술한 게 아니라
위험한 곳이지요. 제일 들키기 쉬운 "
“ 그러니까 거기가 제일 안전할 수도
있다는 거지. 원래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어. 설마 초이를 거기에 둘 거란
생각을 할까? "
“ 아무리 그래도 그건... 그리고 무엇보다
궁내에는 어떻게 들일 생각이야. "
“ 궁녀로 들어가는 건 어렵지만 무수리나
비자로 들어가는 건 그렇게 까다롭지
않지. 신성군 마마께 부탁하여 숙원
마마의 무수리나 비자로 들이는 것이지.
잘만 된다면 글월비자 같이 궁 밖
출입이 자유로운 비자도 있으니 초이에게
나쁘지 않은 제안이 될 수도 있을 테고. "
“ 뭐 지금으로선 나쁘지 않은 방법이나
신성군마마께 어찌 허락을 구할지
괜히 숙원마마까지 곤란케 하진
않을까요? "
“ 무작정 들여 달라는 게 아니라
도성이 좀 잠잠해질 때까지만
보호해달라고 졸라봐야지. "
“ 쉬이 가라앉을 원성이 아니야. ”
“ 우선은 신성군부터 만나보도록 하자고.
그러고 나서 생각하기로 해. "
절이라고 마냥 안전할 수 없다.
무엇보다 초이 스스로 홍루를
나간 것이기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알 수 없으니.
“ 어머니 곁이라... ”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다.
숙원마마께서 원치 않다면 억지를
부릴 수 없는 노릇이니 하지만 난
최대한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고
싶었다. 어쩌면 이것이 초이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일 것만 같았기에.
“ 안 그래도 경빈마마의 견제에
어머님이 마음 붙일 곁붙이가
필요했는데 잘되었네.
이 참에 잘 되면 잠시가 아니라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
다른 이라면 모를까 초이라면
나 역시 안심이 되니. "
“ 허나, 이는 숙원마마께 최종으로
말을 넣어야 할 것입니다. 마마는
또 다른 생각을 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
“ 너나 나처럼 잔머리가 많으신 분이
아니다. 마음 약하고 정이 넘치는
그저 어린아이 같은 분이시지.
내가 잘 말씀드리면 흔쾌히 허락하실
터이니. 초이가 안쓰러워서라도 당장
데려오라 하실 것이야. "
그렇게 우리는 신성군과 헤어지고
며칠 뒤 궁에서 초이의 입궁을 허한다는
약식 문서를 받자마자 절로 향했다.
“ 시주님~!! ”
기쁜 마음으로 절에 도착했는데 눈 앞엔
절문 앞에서 동자승과 씨름하는 초이를
발견했다.
“ 그 몸으로 어디 가려고~!! ”
“ 놓으십시오. ”
“ 차라리 나하고 가자. ”
“ 네?? ”
오해할 수 있는 말이다. 석환이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발언이지만 초이를 당황시키기에는
최적의 단어라 난 곧바로 뱉은 뒤
초이를 잡아끌어 말에 올렸다.
“ 무... 이게 무슨 짓입니까~ ”
“ 가면서 설명할 터이니 잔말 말거라.
석환, 제천 두 사람은 먼저 출발하게. "
“ 큭큭, 오해하기 딱 좋은 그림입니다. ”
뭐가 재미있는 지 제천은 웃음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석환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낮게 욕지거리를 뱉은 뒤
박차를 가했다.
“ 사람을 무슨 짐짝마냥 그게 무언가. ”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신성군은 버둥거린
초이의 행색에 눈살을 찌푸렸다.
“ 온 몸이 어디를 얻어맞은 것마냥 욱신
욱신 거립니다. 어찌나 고집을 피우던지. "
“ 아무리 그러해도 저는 안 갑니다. ”
하여튼 꼬맹이가 고집은 쇠심줄보다
질겨 혀를 내두르는데 신성군이 근엄한
표정으로 초이를 바라보며
“ 내가 아무리 민심을 사지 못하였어도
엄연히 존귀한 이임을 알 것인데 지금
천하디 천한 기생의 허락 따위를 구할
성 싶으냐. "
“ 마마... ”
그래도 자기 편을 들어줄 줄 알았던
신성군이 무섭게 꾸짖자 서운한 초이는
이내 심통한 표정으로 나를 한 번
흘겨 본 뒤
“ 말씀하십시오. ”
“ 오늘부로 김가 초이는 광원당의
목란원 임숙원마마의 처소로 배정 되어
글월비자가 되었으니 단정히 하여
숙원마마를 배알하도록 하거라. "
“ 하명 받잡겠사옵니다. ”
못마땅한 표정이나 웃전의 명령에 불복
할 수 없는 신세이니 어쩔 수 없이
따랐다.
“ 초이야, 등잔 밑은 어둡다. 그 속에서
조금만 숨어 있거라. 이는 그 분들도
원하는 것이야. 부모가 자식을 보호
하려하는 것과 같으니. "
“ 알지도 못하면서 오지랖 적당히
하시지요. "
“ 쯧쯧, 글월비자면 바깥 출입이
자유롭다 했어. 그러니 조금만 참자. "
그러거나 말거나 내 말에 팩 하고
돌아서선 곧장 신성군을 따라 궁으로
들어갔다.
“ 이제 손 떼시게. ”
드디어 꾹 참고 있던 석환이 내게
한마디 했다. 고마워하기는커녕
되려 화를 내는 초이도, 그걸 능글맞게
받아주는 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 알았다. 알았어 나도 지쳐서 더는
못하겠거든. 그러니까 그만 째려봐. "
“ 석환, 원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야. 이제
장의도 충분히 하고 싶을 만큼 했으니
더 하라고 해도 하지 않을 거야.
그렇지요 장의? "
“ 그럼~ 아직 시간도 있겠다.
우리 목부터 축이자고 아이고 삭신이야~ "
레이저가 아주그냥 두 눈에서 반짝이다
못해 내 뒤통수를 갈기는 것 같아 서둘러
앞섰고 제천은 웃으면서 석환을 달래어
뒤를 따랐다. 당분간은 홍루의 단주는
못 마실 걸 생각하니 속이 허한 것이
벌써부터 고파왔지만 술은 깊을수록
단내를 풍긴다하였다.
‘ 조금만 참자, 조금만 참고 있다
더 달달하게 마시자고. '
그렇게 초이가 숙원마마의 그늘로
숨고 난 뒤 한동안은 도성 내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신성군에게서
온 연통에는 초이가 차분히 마마를
보필하고 있다는 말로 걱정을 덜어
주어 비로소 나는 끝자락의 겨울
방학을 쉴 수 있었다. 뭐...
다온이가 가드를 쳐주었던 나의 밤
생활이 끝에 살짝 어머니께 흘러
들어가 길고도 긴 잔소리 터널에서
조금 헤롱 거려야 했지만.
“ 으아~!!! 해방이다~~!! ”
드디어 겨울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성균관으로 돌아 온 난
길고도 긴 잔소리 터널에서 해방 되어
성필과 이혁을 향해 뛰었다.
“ 어허~ 나이를 먹었으니 좀 더
차분해질 줄 알았는데 쯧쯧 어찌
우리 장의는 여전히 아이 같을까. "
“ 우우~
성필상유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
“ 큭큭, 말도 말게. 닭살 돋아 그만
하래도 이젠 어른이니 그러면
안 된다나 "
“ 어른이라구요? ”
“ 크흠~ 장차 한 아이의 아비가 될 텐데.
언제까지고 철없이 굴어야 쓰나. "
“ 아비라 하면 네에~~??
오오~!!! 아니 흠흠, 경하 드립니다. ”
나의 축하에 입이 귀에까지 걸리는
성필과 주책 맞다면서도 함께
기뻐하는 이혁의 모습으로 두 번째
맞이하는 새 학기는 산뜻하기 그지
없다.
“ 그러니까 이번 신방례는... ”
작년에는 갑작스런 빙의로 인해
동재는 신방례를 치루지 못해 이번은
제대로 치르려고 내 대학 때
신입생 환영회를 떠올리며 신나게
떠들고 있는 데 누군가 내게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 제천~ 마침 잘 왔어. 이번 신방례는
말이세. 아주그냥 신박하게 "
“ 비.. 비.. 아니 그 곳에서 찾습니다. ”
뜬금없이 그.. 곳 아?
우리의 비밀장소로 쓰였던 비천당을
앞에서 말하지 못할 때 사용하는
은어다. 이혁과 성필이 보고 있어
다급한 표정을 얼른 지우고 눈짓을
하기에 난 나중에 다시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제천을 따라
비천당으로 향했다.
그 곳엔 석환과 신성군이 먼저와
기다리고 있었다.
“ 아니... 무슨 일입니까? ”
“ 초이가 사라졌다. ”
“ 네에??? ”
궁에 있을 아이가 갑자기 사라지다니.
이 또 무슨 일이란 말인가. 산뜻하게
시작될 새 학기가 초이의 실종으로 인해
칙칙하게 바뀌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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