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결) 94화 다녀왔습니다.
본 웹소설은 픽션이며 인물, 지명, 종교, 사건 등은 실제 역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주. 글. 래 ”
기분 나쁘다. 내 동생이 저리 애를 태워도
신경 하나 쓰지 않는 것이 이럴 것이면
뭐 하러 더블데이트를 승낙한 건지.
‘ 나쁜 남자 컨셉도 계속하면 진짜
나쁜 놈 소리 듣는다 적당히 해라. ’
“ 다온낭자가 원하는 것이 여기에
없는 듯 하니 포목점으로 가보세. “
“ 너 진짜... ”
다온이 속상해 하는 눈빛에 난 괜시리
화가 나 한소리 하고 싶었지만
옆에 소아가 있었기에 겨우 눌러 참고
“ 다온아 우선은 포목점으로 가... ”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찬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가는 다온이.
‘ 내가 뭘 잘못했다고. ’
억울하다.
“ 도련님 저희는 조금 천천히 가지요.
아직 다 보지 못하여서 말입니다. "
“ 그럴까요? ”
어쩜. 마음씀씀이까지 이리 고운지.
눈치를 채고 소아가 발걸음을 늦춰
둘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여 난
느긋하게 소아랑 이것저것 구경하며
천천히 따랐다.
“ 좋아합니다. ”
-------사라락
눈을 질끈 감고 용기를 내었다. 꽃잎이
떨어지고 그 위에 잎이 올라 봄이
끝났음을 얘기하자
“ 잘 못 들었는데. ”
순간 부끄러워진 다온이는 애꿎은 천을 끌어
당겨 벽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내
큰 손에 걷혀 사라졌고
“ 비단이 부딪히는 소리가 원체 크게 들려
그대가 무어라 하였는지 정말 듣지
못하였으니 다시 한 번 더 말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
어쩜 이리 얄미울까 마음을 비추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임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속상해진 다온은
“ 여기도 볼 것이 없습니다. 돌아가지요. ”
그때 돌아서는 다온의 눈에 든 것은
푸른 꽃이 자잘이 수놓인 댕기였다.
“ 이것..은.. ”
“ 물어보지 못하여 한참을 고민하였습니다.
허나 다행히 눈은 그대의 손에 머물러 있어
이리 쉽게 찾을 수 있었지요. "
------와락
다온이가 이리 용감했나싶을 정도로
석환은 당황하였으나 둘 데 없이
버둥거리던 두 팔을 이내 다온이의
허리를 살며시 안았다.
“ 새로운 봄이 돌아온다 하여도 저는
도련님뿐입니다. 어디 가실 생각은 아에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에요. "
떨리지만 귀에 쏘옥 들어오는 귀여운 협박.
“ 이거 원. 무서워 다른 여인을 눈에
담을 수 있겠습니까. "
“ 정말... ”
사랑스러운 다온이를 내려다보는 석환은
아무래도 제대로 임자를 만났다는 듯
환하게 웃었고 그 웃음에 의미를 눈치 챈
다온은 따라 웃었다.
“ 지금쯤 어찌 되었을까요? ”
허기가 져 간단히 요깃거리를 사서 오른
언덕에 녀석들이 없는 것을 확인한 소아는
내게 물었다.
“ 글쎄요. 다온이가 원체 강단이 있는
아이라 한 번 이거다 싶으면 절대 놓칠
않아서 말입니다. "
“ 석환오라버니도 무섭다고 도망가는
샌님은 아닙니다. "
“ 그럼 천생연분일 테지요. ”
그렇게 녀석들의 뒷담화를 하고 있으니
기운차게 손 꼭 잡고 오는 녀석들이
우리를 확인하자마자 신났다.
“ 그대와 내가 저이들에게 옷 한 벌을
지어 달라해야겠습니다. "
“ 후훗, 그 얘기는 다온이의 얼굴에
연지곤지를 확인한 뒤에도 늦지 않지요. "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 봄을 확실히
보낸 뒤 즐겁게 하루를 마무리 했다.
------탁
“ 너무 합니다~! ”
우리들 이야기에 제대로 삐친 제천이다.
“ 워워~ 자네도 곧 짝이 생길 것인데
무슨 걱정이야. "
“ 석환 자네마저 이러긴가~ ”
“ 쯧쯧, 중추절에 이미 눈치 챈 줄 알았는데. ”
“ 장의께서도 그러는 거 아닙니다. 이제
양쪽에서 꽃향을 뿌려댈 터인데 고목나무
신세는 언제 면할지. "
“ 제천, 제법 똑똑해졌군. 이제야 내 말을
이해하고 말이지. "
“ 아~ 자네 진짜~ ”
“ 자자, 그러지들 말고 오늘은 내 저번에
동재에서 몰래 먹었던 귀한 술을 쏠 테니
코 삐뚤어지게 마셔보자고. "
“ 주모~ ”
이번엔 넉넉하게 시간을 아니 인경도
상관 없을 거라 생각하고 주막에 들르니
“ 어서오...시유.. ”
“ 오늘은 주모 역할인가 보군요. ”
“ 그 노인네 저쪽 세계로 건너간 지가
언제인데. 아침부터 부산스럽더니 올 걸
알았나보네. "
“ 뭔 헛소리는 딴소리 하지 마시고 술 좀
내 주시오. "
“ 자네가 믿거나 말거나 장난은 내가
친 게 아니니까 괜히 시비 걸 생각 말고.
안 그래도 노인네가 술상을 봐두라 했으니
안으로 드슈. "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지만 우선은 미리
준비해 놨다고 하니 징징대는 제천이부터
밀어 넣었다.
“ 여차하면 여기 드러누우면 되겠네~ ”
적당히 취해서는 얌전히 구석으로 드러
누운 제천이를 뒤로 하고 나는 석환이의
잔을 채우며 말했다.
“ 봄이 지고 여름이 피기 시작하면 아마도
변덕을 부릴 수 있어. "
“ 그렇겠지. 더운 날은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날 테니까. "
“ 내가 너무 오냐오냐하여 고집 세고
욕심이 많은 아이지만 천성은 누구보다
여린 아이라 자네를 속 썩이는 일은
없을 것이야. "
“ 누가 뭐라 했는가. 아직 겪지도 않은
일을 뭐 하러 미리부터 걱정해.
부딪히다보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을.
그리고 자네 아나? 가족에게는 보여도
정인에겐 감추는 것이 여인인 걸? "
“ 으휴~ 사내도 똑같다. 좋은 것만 보이려
애쓰는 것은 사내나 여인이나 매 한가지.
그러니 많이 아껴줘. "
“ 자네야말로 소아 울리거나 한다면
내 가만 있지 않을 것이야. :
“ 웃을 일 밖에 없어 그럴 일이 생길
시간이 있을까 모르겠다. "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석환이가
소아를 돌아오는 유정이가 어련히
알아 하지 않을까.
‘ 설마 지 동생 내 맘대로 엮어줬다고
없던 일로 만들진 않겠지? '
『 야~ 』
“ 어? 너 여기 어떻게?? ”
“ 누구... 월..아? ”
이제는 익숙한 듯 내가 엉뚱한 곳을
향해 아는 척을 해도 무서워하지
않는 석환이.
흠... 알코올의 힘인가?
“ 월아 왔는가~ ”
『 술 먹고 난 뒤는 여인이나 사내나
어우~ 꼴도 보기 싫군. 』
헤실대며 월아를 찾는 석환이를
못마땅히 보던 월아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 분명 가기 전에 기별을 넣으라
했을 텐데? 』
“ 오늘은 그냥 한 잔 하러 온 거야.
설마 너한테 말도 없이 떠날까봐. "
『 언제는 말을 하고 왔고? 』
“ 미안하다. 매번 네가 필요할 때
말동무가 되어주지 못해서. "
귀신이 울면 험악해질 줄 알았는데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니 귀신 인 줄
모르겠다.
『 할멈이 놀러오라 해서 온 것이야.
너 보러 온 게 아니고.』
내 이럴 줄 알았다. 월아와의 인연도
할머니가 디테일하게 만들어 놓은
계획 중 하나였다는 거.
“ 에이~ 괜히 그런다. 자~ 술 한 잔
받아. "
『 장난하냐? 』
안 되면 월아한테 제대로 당할 지도
모르지만 어쩐지 이 곳에선 월아 손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내가 주는 마지막 잔일 지도 모르는데
안 먹을 거야? "
그런 나의 말에 어이없는 표정이나
혹시나 하는 마음은 녀석도
마찬가지인 듯 천천히 손을 내미는데
『 ....!? 』
잔을 받고도 믿기지 않는 듯 한참을
바라보기에
“ 고약한 성격이긴 해도 술맛은 끝내줘.
언제 또 한 번 마셔보냐. "
그렇게 자연스레 입으로 가져가 한 잔을
쭈욱 들이키는데
“ 어?? ”
찬 기운은 여전해도 색이 없던 얼굴에
화색이 돌고 빛이 나기까지
“ 뭐지? ”
“ 어~!! 월아?? ”
제천이를 깨우던 석환이가 눈을
재차 비비며
“ 히야~ 여기 무슨... 허허.. 야~ 제천
일어나봐~ 월아가 보여~ "
제천이를 탈탈 털어내는 석환이를 뒤로
하고
“ 오래 이승을 떠돌다 보니 한이
무엇이었는지 알 길 없어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네가 안쓰러우셨나보다.
여기도 너의 영역이 아닌데 찾을 수
있게 길을 열어주신 것도 그렇고. "
“ 그리고 너와 마지막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것도. "
“ 한 때는 원망만 했는데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시네. "
“ 후후, 제천이는 술이 깨겠는데. ”
목소리도 듣지 못하고 보지도 못했던
월아를 눈앞에 두고 얼떨떨해 하는 제천.
아무래도 내일 눈 뜨며 말할 테지.
“ 내가 어제 꿈을 꾼 듯해. ”
멍 때리며 말하는 녀석을 상상하니 우습다.
“ 이제 돌아가는 것이야? ”
“ 쉬잇, 이 녀석들은 모른다. ”
“ 어차피 돌아갈 것인데 알 든 모르든
상관없지. 귀신과의 이야기부터가
허무맹랑하니. "
“ 하긴. 월아 ”
“ 말해. ”
“ 약속을 지키지 않고 여기로 와서
미안하다. "
“ 알긴 아네? ”
“ 너 보면 나중에 궁금해질 것 같고
그리고... "
“ 그리고? ”
“ 보고 싶어질 것 같아서. ”
“ 하? ”
“ 이 녀석들에게 나는 19살의 유정이지만
너에게 난 26살과 27살의 유정이니까. "
터놓은 마음이라도 석환이나 제천이에겐
19살의 유정이의 심정을 대면한 거지만
월아에게만은 있는 그대로의 날 것.
26살의 철없는 유정이로 만났으니
“ 이 세계에서 만난 친구라 더 보고
싶어질 것 같다. "
“ 어쩌면 노인네가 이걸 노렸었나. ”
“ 뭘? ”
“ 찾지도 못한 것에는 미련 버리고 그냥
받을 수 있을 때 떠나라고. "
월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갸웃거리니
이제껏 보지 못했던 따뜻한 미소가 얼굴에
오르는 월아. 그리고
“ 마음은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채워지는 것임을 이제야
깨닫는다고 고맙다. "
“ 나도. 친구가 되어줘서 ”
------사르르륵
“ 어..어..어~ 나 아직 월아낭자랑
제대로 얘기도 못했는데~ "
“ 울어? ”
술이 들어가도 눈치는 빠른 석환이다.
“ 이제는 보지 못할 테니까. 나도 모르게
자자~ 이제 제천이도 일어났으니까 2차
가자~~ "
“ 아니 장의 울~ 읍~ ”
“ 술이 들어 간다 술~술~술~ ”
* * * *
“ 유정아... ”
목소리가 들린다. 남자목소리인데
“ 아버지? ”
내 거친 대답에 희미하게 들리는 웃음소리.
“ 석환이랑만 마신 게 아니라 제천이도
같이 마셨으니 어머니께는 아무 말...!? "
흐릿하던 시야가 비비던 손 뒤로 환해져
찌푸리니 들어오는 얼굴.
“ 잠이 덜 깼네. ”
“ 이..이든이야? ”
벌떡 일어나 눈앞에 녀석을 확인한
나는 주변을 둘러보니 낯익은 곳인데
낯선 느낌?
“ 방주인이 바뀌니 분위기도 다르지?
그래도 네 방 맞아~ "
“ 근데 너 내 방엔 왜? ”
“ 어제 유정이가 같이 있어 달라
하더라. "
“ 뭐? ”
이 곳에 남았던 유정이도 무언가를
느꼈을까. 할머니가 아주그냥 디테일하게
동선까지 자연스럽게 만들어 두셨던 걸.
억지로 끼워 맞추듯 술 먹고 가자가
아닌 분위기를 만들어 아니어도 속상하지
않게 되었을 때
“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가도록
한 거네. 할머니가 아주그냥 용의주도
하단 말이지. 고약해 아주~ "
“ 할머니는 찾지도 못했는데 도대체
누굴 만났길래. "
“ 있어, 장난치기 좋아하는 철딱서니
없는 할머니. "
“ 네가 딱 나이 들면 그렇겠네. ”
“ 내가 뭘? 내가 어떤데~ ”
“ 지금도 이렇게 딴 데만 보고 하나도
신경을 안 쓰고 있잖아. "
아...
어색해서 그런 건데 알면서 모른 척
하는 건 자기도 마찬가지면서
“ 이젠 진짜 안 갈 거지? ”
“ 내가 가고 나니 꽤 편했을 텐데.
그 유정이는 댕댕이처럼 순해서. "
“ 너무 심심했어. 난 순한 맛보다 매콤한
맛에 더 익숙하게끔 길들여져 있었거든. "
“ 뭐래~ ”
시간을 좀 돌아왔지만 어쨌든 찾았고
잡았으니 욕심 많은 나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 그렇게 과거로 돌아갔을 때
내가 어떻게 했는지를 얘기해 주려다
“ 혹시, 나 없는 동안 유정이가 무슨 일
벌리거나 하진 않았어? 한의원은? "
“ 일은 성실하게 잘 다녔고 별 탈 없이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사람들이 되려 네
눈치를 아니 녀석 눈치를 볼 정도였지. "
다행히도 한의원에서 짤리지는 않았다.
내가 원체 덜렁대고 정신없던 것과
달리 유정이가 꼼꼼하고 차분한 성격이라
오히려 무난했나보다.
“ 아... 다시 돌아가면 피곤해 지겠네. ”
“ 아~ 그 보다 매일매일 뭘 쓰는 것
같던데. "
일긴가.
부스럭대며 서랍에서 꺼낸 건 스프링노트.
붓만 들었다가 볼펜이 낯설었을 텐데
그 생각이 드니 우습다. 터치만 했던
내가 일일이 누르고 쓰고 휘갈겼던
처음이 생각나서 그러면서 노트를 펼치는데.
“ 야이~ 자식이~!! ”
“ 왜..왜? ”
“ 가는 마당에 나한테 엿을 멕여~ ”
한문공포에서 겨우 벗어났더니 여긴 더한
악필한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야~~ 세종대왕님이 만들어 주신 귀한
언문 놔두고 왜 하필 한자냐고~!! "
- 작가의말
- 완결을 알립니다.부족하지만 끝이 있다는 걸깨달아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음에여기까지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감사 인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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