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본 웹소설은 픽션이며 인물, 지명, 종교, 사건 등은 실제 역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상선 자네는 내가 또 잃는 것이
맞다고 보는가? "
-----저릿...
잃을 거란 말이 그동안 보였던 것이
진심이 아닌 거짓이었다란 말보다
덜 아플 거라 선택하였으나 가슴을
치는 고통은 다르지 않았다.
“ 그 어떤 것을 선택 한다 하여도
전하의 어심을 어루만질 수 없음에
소인은 그저 비통할 뿐입니다. "
중종의 애달픈 물음에 상선은 눈빛이
흐려지며 주군의 슬픔을 한껏 위로할 수
없는 자신을 책망한 듯 더 이상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 상선의 태도에 중종은 이번에도
늙은 뱀들의 손을 들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자괴감이 들어 자리에서 박차
일어나
“ 옥사로 갈 것이니 상선 자네 외엔
따르는 이들을 물리도록 하라. "
“ 전... 전하~ ”
“ 내 숙원에게 물을 것이다. 그것에
대답만 들을 것이니 앞장 서거라. "
“ 아니 되옵니다. 추국이 열리기도 전에
이런 전하의 걸음이 숙원마마를 감싸
돌려는 것으로 비춰져 대신들의 노기는
물론이거니와 민심까지 돌아설 수
있습니다. 허니... "
“ 하나만, 하나만 물을 것이다. ”
고집을 꺽지 않을 모양새에 결국
상선은 준비하겠다 말을 한 후
돌아서 한숨만 내쉬었다.
------저벅저벅
깊은 밤.
하나의 그림자가 어두운 옥사의 횃대를
밝히고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제일 안쪽 옥사의 입구 앞에 섰다.
“ 전...전하?? ”
희미한 인영이나 분명한 중종이다.
이에 소스라치게 놀란 숙원은 지친 몸을
일으켜 문 앞으로 다가가려다 그만
두었다.
“ 이 곳은 전하께서 걸음하실 곳이
못 되옵니다. 속히 돌아가시옵소서 "
“ 내 숙원 그대에게 물을 것이 있어
온 것일세. "
무얼 물으려 이 곳에 온 것인지 걱정이
드는 숙원은 입술을 깨물다 곧 결심을
굳힌 후
“ 하문하시옵소서. ”
“ 아영... ”
무슨 말을 물으려는지 숙원의 대답에
한참을 고민하던 중종의 입에서 나온 건
숙원의 이름이었다.
------움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중종의 떨리는
음성에 잠시 무너지는 숙원이다. 자신을
탓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 아영 그대의 이름을 오랜만에 불러
보는군. 그럴 때가 차라리 더 나을
수도 있었으려나. "
잠시 감상에 빠졌다 나온 중종은
천천히 말을 더했다.
“ 그대가 짐을 위해 했던 말들과
행동들 그것들은 진심이었소? "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말을 억지로
뱉어내는 중종의 표정에 숙원은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옥사의 찬기를 담아 답을 하였다.
“ 전하께 드렸던 진심은 임가
아영이라는 이름 하나였습니다. "
-----꿈틀
차가운 숙원의 대답을 들은 중종은
허탈감에 잠시 중심을 잃었다.
이에 멀찍이 대기하고 있던 상선이
놀라 곁으로 오니 손을 내저었다.
“ 이름도 속여야 완벽하였을 텐데. ”
“ 어찌 제 이름을 들려주지 않을 수
있었겠사옵니까. 그 날의 일로
전하께서 친히 명을 내리셨을 때
명단에 올랐던 이름이었으니.
명부를 확인하시어 똑똑히 보기를
억울하게 명을 달리하신 부모님을
대신하였음을 알릴 수 있어야하니. "
원망의 눈빛으로 자신을 책망하는
숙원의 모습에 더는 희망이 없음을
깨달은 중종은 붙잡고 있던 옥사의
문을 거칠게 내리친 뒤 일어서 돌아
서려는데
“ 허나, 제가 남겨야 했던 진심에
미처 생각지도 못한 진심 하나를
더한 것이 신성군입니다. "
떨리는 음성으로 중종을 발걸음을
붙잡는 숙원의 한마디.
“ 그건 그 어떤 거짓으로도 가릴 수 없는
진심임을 부디 알아주십시오. 죄 많은 저로
인해 아무 것도 모르는 신성군을 연이를
버리지 말아주시옵소서~ "
엎드려 마지막 사정을 하는 숙원이었다.
차라리 거짓으로라도 자신을 은혜 하였다
변명이라도 해주길 바랐는데 끝까지 자신을
기만하는 그녀가 원망스럽기만 한 중종은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멈췄던 걸음을
거칠게 내딛어 옥사를 떠났다.
그렇게 임의 모습이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숙원은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며 읊조렸다.
“ 부디... 부디... 저로 인해 그와 같은
고통을 또 다시 겪지 마시옵소서. 흐..흐..흑 "
고통을 토해내며 자신에게만은 속을
드러냈던 중종이 또 다시 고통을 반복할까
두려웠던 숙원의 마지막 거짓말이 그렇게
울음으로 바뀌어 옥사를 물들였다.
“ 뭐.. 뭐라하였습니까? ”
“ 역도들의 수장이 임숙원이라고 하더군.
나~ 원 그리 허약해 보였던 이가 뒤에서
그리 악독한 짓을 꾸미고 있었다니.
이래서 사람은 겉으로 보아선 알 수
없는 것이라 한 것이야. "
혀를 끌끌 차며 서재장의가 내뱉은
말에 난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 역도들의 수장이라니... 이게 무슨... ”
“ 말 그대로일세. 역도들이 활개를 치게
도왔던 배후가 바로 임숙원이라고. "
충격을 받고 할 말을 잃은 나를 보던
서재장의는 바싹 다가서며
“ 가느다란 동아줄은 썩은 것이나
마찬가지지. 지금이라도 잘라내고
현명하게 처신하길 바라네. "
신성군과 어울리고 있던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던 듯 경고를 제대로 날린 후
유유히 내 앞을 지나쳐 갔다.
“ 자네들은 알고 있었어? ”
비천당으로 모인 뒤 석환과 제천에게
물었다. 이에 그들은 대답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 임숙원마마는 진즉에 알고 있었던
것이군. 그러니 초이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았던 것이고 자기편이니까. 그러해도
신성군은 별개로 두어야지. 마마를
뵐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변명이라도
늘어놓으라고 하고 싶어. "
“ 그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
뭔가 알기라도 하듯 제천이
대답하기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녀석을 재촉했다.
“ 뭐? 뭐가 더 있어? 설마 신성군이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거야? "
“ 그것은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건
이번 사건으로 조사를 하던 중
숙원마마께서 초이.. 아니 신보옥의
외당고모라 합니다. "
“ 뭐...라고..?? ”
일면식도 없는 남이라고 주장해도
될까 말까인데 하필 임숙원이 초이의
외당고모라면 신성군과는 6촌이니 진짜
아니라 해도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 어찌~저찌 궁으로 들어와 전하의
눈에 들었다고는 하나 죄인의 신분으로
왕을 기만하고 왕실을 능멸한 것에
대한 죄는 피할 수 없어. "
“ 그래도 신성군은 죄가 없어.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로 프레임을 씌운다니
말도 되지 않는 억지지. 잘못이 있다면
부모 잘못 만난 죄 밖에 더 있냐고~!! "
태어나게 해달라고 사정 한 적 없을
신성군을 단지 엄마가 죄인이었다는 걸로
연좌하여 죄를 묻겠다니 말도 안 되는
억지다.
“ 허나, 그들 모자를 벌하지 않는다면
왕실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언제든 왕권에 대항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꼴이니 그리고 그리고... “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석환은 입을
다물었다. 당연히 할 수 없을 것이다.
“ 그 날의 일을 조장하고 음해하였던
이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덮기 위함이니
결코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
뒷말을 가까스로 매듭짓는 제천 역시
눈가가 붉어졌다.
“ 결국... 내가 했던 게 그들을 위한
플랜이었던 거네. 내가 초이랑... 신성군을...
내가 그들에게 팔아넘긴 거였어... "
의심했어야 했는데 멍청하게도
내 근거 없는 자만이 모든 걸 망쳤다.
“ 그들의 수를 읽지 못한 건 자네만이
아니야.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너무 자책하지 말게. 자넨 나름대로
충분히 할 만큼 하였어. "
“ 아니~~!! 내 자만이 덫이란 걸
그걸 간과한 멍청한 짓을 저질렀어.
내가 그들을 사지로 몬 것이라고~!! "
멍청한 나 때문에 일어난 일들로
차마 울지도 못하는 것에 그저 소리만
질러댈 수밖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 결정의 날
“ 왕실의 지엄함에 감히 도전을 한
역도들에게 참형을 내리시옵소서.
그리고, 주상전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이용하여 눈을 흐리고 귀를
멀게 한 임숙원 모자의 지위를
박탈하여 폐서인으로 내치시어 흔들린
왕권을 보존하옵소서. "
작정을 한 듯 박수림의 손을 잡은
좌찬성이 엎드려 크게 외쳤다.
그러자 좌찬성을 필두로 대신들이
차례로 엎드려
“ 윤허하여주시옵소서~!! ”
역도들을 처결해 왕권을 감히 넘보지
못하도록 함과 동시에 모자에게는
자비를 베풀어 민심을 잡자는 것이나
이는 결국
‘ 다시 꼭두각시가 되란 소리군. ’
그들의 속셈이 빤히 보이는 말에
중종은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 뜻대로 하시오. ”
결국,
중종은 신경질적으로 낮게 뱉어 결정을
그들에게 돌려 원하는 걸 쥐어준 뒤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렇게 날치기하듯 결정된 일들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 역모에 가담한 죄인들의 형을 집행
하라~! "
“ 흐..흐흑~~~ 초이야~~ ”
연향은 파리하게 마른 초이와 다른
이들이 차례로 오르는 것에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 초이야... ”
사극드라마에서나 보던 형틀은 그저
장난감에 불과했다. 실제로 눈앞에
놓인 것을 두고 난 기함했고 무서웠다.
바들거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나에게
초이는 희미하게 웃었다.
‘ 원망해야지. 그렇게 용서하듯 웃어주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 '
울음이 나는 걸 끅끅거리며 참아내는 데
뒤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누군가에 의해
놀라 돌아보니 제천와 석환이다.
“ 지금 제정신입니까~!! ”
내게 소리를 지르며 끌어내기에
“ 왜~ 왜 이러는 거야~!! ”
“ 잔말 말고 따라오기나 해~! ”
그렇게 구석진 곳으로 끌고 온 그들은
냅다 나를 팽개치며
“ 자네 아무리 마음이 그러해도
그렇지. 제정신인가~! 말도 없이
수업을 빠지고 이 곳을 오면 어찌해~! "
“ 수업을 들으면 무엇해. 그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다는 걸 지금 눈앞에서
확인한 것을. "
“ 하아... 자네 ”
“ 장의, 아무리 그러하여도 이건 아니지요.
어린아이도 아닌 장의께서 이리 행동
하시면 다른 유생들이 무어라 하겠습니까. "
“ 장의는 개뿔~!! 감투도 아닌 것에
자만해서는 사람 몇을 그냥 황천길로
밀어 넣었어. 영웅놀이에 미쳐서 멍청하게~!! "
악에 받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26살의 유정을 잘 감춰왔는데 오늘만큼은
그냥 내지르고 싶다. 누가 뭐라 하든
말든
“ 유정~!!! ”
그때 내게 소리치는 제천의 목소리에
당황했다. 이제껏 내 이름을 부르지 않던
녀석인데. 그렇게 멍 때리며 제천을
바라보니
“ 내가 성균관은 그러해도 밖에서까지
자네에게 장의의 호칭을 쓰며 존대를
왜 했는지 아는가? "
“ 그냥 뭐 우선은 장의니까. ”
“ 아니~ 장의라 하여 무조건 존경을
받진 않아. 자네도 알잖은가 서재장의
말일세. "
“ ... ”
“ 자네는 모든 일에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려했어 위험할 수도
있었고 미련할 수도 있었는데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옳다는 것을 무조건
밀고 나갔지. 그랬기에 나나 석환이
투덜거리면서도 따른 거였고. "
“ 하지만 보았지 않아.
내가 한 것들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이런 멍청한 장의를
어떻게 믿고 따를 수 있겠어. "
“ 세상이 장의 생각대로 아름답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허나 그런
이상만 가지고는 지금처럼 실패를
이겨낼 수는 없어. 장의만 마음이
아픈 것이 아니야. 허나 이것으로
우리는 교훈을 얻은 것이니. "
“ 그래, 제천의 말대로 우리는 쓴
교훈을 얻은 것이야. 비록 이번엔
실패하였으나 이것이 밑거름이 되어
다음을 기약할 수 있으니까.
자네는 충분히 할 만큼 하였어. "
그렇게 제천과 석환이 번갈아가며
나를 달래어 성균관으로 밀어붙였지만
한켠에 묻힌 죄책감은 어찌할 수
없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