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봄이 끝나면 알 수 있을까.
본 웹소설은 픽션이며 인물, 지명, 종교, 사건 등은 실제 역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대 놓고 물어보면 놀래겠지? ’
15살 다온이는 현대로 치면 중2.
대한민국에서야 똥꼬 발랄하고
무서울 게 없는 녀석들이지만 분명
세대차가 있을 테니 조선의 중2
다온이는 조금 강도가
“ 푸..푸흡..푸하하하~ ”
세다.
결코 뒤지지 않는다.
‘ 젠장... ’
예상 밖 다온의 반응에 난 여기가
집이 아님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었다.
“ 흠흠, 다온아, 모든 이들의 시선을 굳이
여기다 모을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
“ 큭큭, 죄송합니다. ”
말은 미안하다는데 눈은 재밌어
죽겠다는 이중적인 녀석의 표정에 후회가
밀려 왔으나 이미 물은 엎질러졌으니
목소리를 낮춰 녀석을 끌어당겼다.
“ 녀석아 오래비를 이리 부끄럽게 해야
쓰겠느냐. "
“ 아니~ 오라버니께서 이런 이야기를
제게 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니 그러지요. "
“ 소아낭자에게 대 놓고 묻는 건
자칫 낭자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
“ 흐응~ 여태 나 몰라라 해 놓고 이제야
그 생각이 드는 겁니까? "
“ 내가~ 언제 그러했다고. ”
“ 우와~ 뻔뻔하십니다. 오라버니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이거 실망인데요. "
“ 아 되었고. 그러니까 만약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너는 어떻게 할 것 같냐는
말이지. "
“ 음... 저와 소아 언니는 다릅니다.
그래서 제가 말하는 것이 무조건 답이
아님을 아시지요? "
“ 그렇지. ”
“ 만약에 저라면 모른 척 눈을 질끈
감아 버릴 지도요. "
“ 이 녀석이~ ”
“ 여지껏 소심하였던 오라버니께서
용기를 낸 것이지 않습니까.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많은 않지요.
허나 제 생각엔 소아언니 역시 저와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좀 더 표현해주셔요.
여인들 역시 말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
이든이가 했던 행동의 주체를 나로
바꾸어 물었을 뿐인데 그것이 이렇게
설명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 용기라... 그래도 말을 먼저 해야... ”
“ 말보다 행동이 용기에 힘을 실어줄 때도
있지요. 아~ 석환도련님께서 오라버니가
답답하다는 게 이해가 갑니다. "
뇌에 버퍼링이 걸려 말을 버벅 대니
석환이랑 제천이가 걱정이라며 혀를
차는 다온이는 남은 차를 홀랑 마시더니
“ 이제 들어가셔야 할 시각이지
않습니까? "
“ 어? 어... 집에 데려다줄 터이니. ”
“ 오라버니 핑계로 나왔는데 이리 일찍
들어갈 수는 없지요. 초리에게 이미
데리러 오라 일러두었으니 걱정 마시고
서두르셔요. "
그렇게 손을 연신 흔들며 먼저 출발한
다온이가 사라지는 걸 보면서 중얼거렸다.
“ 석환이라면 모를까 이든이라면
장난으로 그런 행동을 할 리 없는데. "
내가 알고 지내던 시간에서의 녀석이라면.
그렇게 난 다온이에게서 왼쪽도 오른 쪽도
아닌 묘한 중간의 어렴풋하지만 그렇다고
뚜렷하지도 않는 답을 받아 고팠던 술도
잊어버린 채 성균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왁작지껄
“ 아~ 이씨... ”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 데 시커먼
녀석들이 눈치도 없이 우다다를 시전
하니 짜증이 오를 데로 올라
“ 조용히 안 해~!! ”
수업 전이라 자유롭게 노닐 던 녀석들이
나의 빡침에 순간 놀라 일시 정지되어
돌아보다가
“ 에이~아직 스승님께서 도착하시기
전인데~ "
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깨방정을
시전 하는 모습마저도 짜증이 난다.
봄바람이 불면 영혼은 몽롱해질 줄
알았는데
“ 여기 유정이한테 너무 적응을 한 건가.
쯔읍... 남자들은 이 계절을 어떻게
보내려나. "
다온이에게서 애매한 반쪽을 들었으니
나머지는 XY염색체들에게 물어야하는데
“ 갑자기 무슨...? ”
내 물음이 조금 당황스럽긴 하겠지만
그래도 물어볼 수 있을 사람이 녀석밖에
없다. 제천이에게 물어봐야
“ 글쎄요. 저라면 어찌저찌... ”
상상의 대답만 가능하니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네 누이를
그리 음흉하게 만들어서야 쓰나. "
“ 아니~ 그러니까 만약에란 말이야.
만약에 다온이가 너를 덥... 아니 흠흠
고백을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냐고. "
“ 그것이야... ”
“ 친구 동생이라서 부담스럽단 말은 말아.
내가 이리 진지하게 묻는 건 이유가
있으니까. "
“ 설마... ”
“ 사설은 집어치우고 대답이나 해. ”
내가 궁금한 걸 찾으려는 것도 있지만
다온이에게 대한 석환이의 생각이 뜨뜨
미지근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참에
제대로 정리도 할 셈이다.
“ 사랑스러운 이를 밀어내기란 쉽지 않지. "
“ 그으래? ”
“ 아...아니 내 말은 조금은 조심스럽겠지.
허나 그 마음이 예쁘지 않는가.
여인이 용기를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고 "
“ 그럼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거네. ”
“ 솔직한 답을 원해? ”
원한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다온이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내게도
“ 어. ”
“ 혈기왕성한 사내라면 아리따운
처자의 행동에 덥썩 당기겠지. 허나
나는 말이야 자네 친구라서가 아니라
공자의 말씀을 배우는 유생으로... "
“ 짧게 해라. ”
“ 거절을 하는 게 맞다고 보네.
아니 우선은 물러날 것이야. "
“ 왜에~? ”
“ 춘분은 그런 절기이지 않나. ”
“ 하아? ”
봄으로 도망치는 겁쟁이 같으니라고.
“ 하지만 바람이 그치고 꽃잎이
더 이상 피지 않게 되었는데도
변함이 없다면 믿어볼 수도 있음이지. "
“ 무엇을 믿는다는 거야? ”
“ 일순간에 들어선 감정이 아니란 걸. ”
“ 쳇, 겁쟁이 같으니라고. ”
“ 자네도 그러지 않았나. ”
“ 내가 뭘? ”
“ 그 날 소아에 대한 마음이 확실치
않다고. "
녀석이 상기시켜준다. 확실히 여기의
유정은 그랬다 적어도.
‘ 까먹고 있었네. 녀석은 도대체 왜
소아에 대한 감정이 확실하지 않다고
했을까. '
“ 소아가 너무 적극적이지 않았나.
그래서 자네가 겁을 먹은 것이고. "
“ 모르겠어. 나라면 소아의 마음을 무조건
오케이 할 텐데. 적어도 남자가 우는 걸
꼴사납게 보지 않고 되려 위로했으니. "
“ 에잉? 자네 울었나? ”
‘ 아차... ’
“ 아니~ 그냥 마음이 힘들었던 것이야.
여린 여인을 안아주기는커녕 안길 수 있나. "
“ 오호~~~ ”
말실수로 인해 10년치 놀림감을 덥썩 문
석환이의 눈빛이 달라졌다. 진지함이란
1도 찾을 수 없는
‘ 아오~ 이 입~!! ’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진지했던
문답시간은 끝이 났고 명륜당으로 수업을
들으려 돌아가는 내내 시달리고 시달려야
했다.
“ 아... 피곤해. ”
『 돌아갈 생각인거야? 』
오랜만에 월아가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방으로 들어서는 날 발견하고 반려견마냥
반긴다.
“ 여태 어디 있었냐? ”
『 그냥... 뭐... 』
그냥 보이지 않아 별 뜻 없이 물었는데
녀석은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낑낑댄다.
나는 이해하는 데 무심해도 서운하지
않고 영역의 제약이 있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괜찮은데 녀석은
‘ 산 사람 다 됐네. ’
“ 월아 너 나 우는 거 다 봤지? ”
『 아..아니~! 』
“ 세상에서 사람이 제일 무서운 게
맞네. 오히려 네가 더 좋은 걸 보면 "
『 귀신이 좋다니 별일이다. 』
“ 인간들은 양심이란 걸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으면서도 부끄러운 짓을 잘만
하는데 넌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을 만큼
미안해 하니 웃겨서. "
『 나도 내가 이렇게 나서게 될 줄은
몰랐다. 그저 심심해서 끼어들고 싶었나
했는데. 』
“ 심심하다고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지. 내가 생각하기엔 네가 살아
생전에 어떤 사람인지를 무의식적으로
보여준 것 같아. 그러니 그만 해~ "
『 그런데 진짜 돌아갈 거야? 』
“ 답이 있다는데 어떻게 안 돌아가. ”
돌아간다는 말에 금세 시무룩해지는 녀석.
정은 산자나 죽은 자나 예외가 없나보다.
“ 그런데 그 전에 나도 어떤지를 알아야
할 것 같다. "
오래된 친구가 연인이 된다는 고리타분하고
진부한 이야기가 내 얘기가 될 거란
상상은 재미가 없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 너 같은 녀석은 흔치 않았는데... 』
“ 서운하냐? 아니면 나 좋아한 건 아니지? ”
『 예끼~ 암만 거죽이 사내라 해도
엄연히 혼은 여인인 것을 망측하게 』
“ 어허~ 사랑에는 편견이란 있을 수 없어.
좋아하고 사랑할 뿐이지 그것이 남자고,
여자고 그런 건 따지는 게 아니야. "
『 암만 그러하여도 법도가 있는데
생각하기도 싫으니 그런 말은 내 앞에선
하지 마라. 』
오래 전이면 조선일 때보다 더 오래
되었을 수도 있을 월아의 과거는 오히려
자유분방하였을 텐데 월아의 대답은
모순처럼 들려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그러자 곧장 귀신모드 발동.
“ 쏘리, 쏘리. 미안해. ”
『 만약, 돌아가게 된다면 기별은
넣어주도록 해. 말없이 떠나는 거 싫으니. 』
“ 당연하지. 나한텐 귀한 귀신친구인걸. ”
벗이란 단어를 다른 말로 친구라 표현
하는 걸 이미 알고 있던 월아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잠들라는 말을 한 뒤 뒤돌아
사르륵 사라졌다.
“ 여기 봄은 길구나. ”
내가 알고 있는 봄은 여름에 밀리고 겨울에
치여서 아~ 하고 느끼자마자 가버리는데
조선의 봄은 그야말로 느긋한 선비 같다.
“ 장의~ ”
“ 천천히 와라 넘어지겠다. ”
이젠 신입생들도 들어와 어엿한 선배가
되었는데도 나한테 여전히 애 같은
제천이다.
‘ 능청스러웠던 걸 생각하면 햐~ ’
도저히 겹치지 않는 모습.
“ 무얼 그리 골똘히 생각하시기에 저기부터
부르는 걸 못 듣습니까? "
“ 요새 잡생각이 늘어서 말이지. 지금도
자네에게 어떻게 이 자리를 물려줘야
하나 고민이고. "
“ 오오~ 이번 절일제(節日製)는 그럼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
‘ 거기서 그게 왜 나오냐.’
조선 취준생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 중 유생들을 위한 특별 전형인데
암만 그래도
“ 귤이나 하나 까먹으며 생각해보지 뭐. ”
“ 에이~ 초사흘이면 될 것인데 구태여
그때까지 기다립니까. "
“ 아~ 머리 아프게 시험 얘기부터 하고
됐고 석환이는? "
“ 찾아볼 것이 있다며 존경각에 들렀다
온다 하니 우리끼리라도 먼저 들지요. "
나는 다 자랐지만 여기의 유정은 한창은
더 자랄 고3이니 성장기에는 많이 먹어야
한다는 핑계로다가 식당지기를 졸라
간식을 챙겼다.
“ 역시 당 떨어졌을 땐 달달한 게
최고지. ”
뭐든 귀한 이 곳에서 내 최애 간식이
있다는 건 정말 불행 중 다행.
“ 이럴 때 보면 나이에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
-----우물우물
“ 무어..ㄹ? ”
“ 다 먹고 이야기 하십쇼 보기 흉하니. ”
“ 우리 사이에 무슨~ 아까 분명 내가
철없다고 한 것 같은데. "
“ 어찌 또 그걸 그리 해석 하십니까
그냥 좀 귀엽다 생각이 든 것이지요. "
“ 그래봐야 자네와 나 고작 2살
차이인 것을 무슨 노인네마냥. "
“ 가끔은 생각나는 대로 뱉고 뜻대로
행동하는 장의가 부럽습니다. "
“ 자네도 그리하면 되잖아. ”
“ 그게 어디 쉽습니까. ”
“ 아니 어려울 건 또 뭐라고 그냥
욕을 들을 정도만 아니면 되는데. "
“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허나
속을 다 드러내면 나는 가벼워질 수
있지만 자칫 상대에게 마음에 짐을
얹을 수 있기에 조심하는 것입니다. "
“ 짐이라니... ”
대수롭지 않게 중얼대다 뒤로 물러나던
이든이의 행동이 불현 듯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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