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돌아갈 방법은 봄바람에 적혀있다는데...
본 웹소설은 픽션이며 인물, 지명, 종교, 사건 등은 실제 역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겨울에 찾았던 그 곳은 봄옷을 화사하게
걸친 모습으로 탈바꿈되어 우리를 반겼다.
말라 버린 그 때가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지.
‘ 여자들에게 낭만은 필수지~ ’
나는 자연스레 소아에게 청하니
그 날에 앉았던 바위에 나란히 앉아
해 곁으로 넓게 번져가는 노을을
멍하니 응시했다. 그렇게 옅어지는 걸
보고 있노라니 괜시리 뭉클해지는
기분이다.
“ 이제는 어두워지겠지요. 그렇다면
보이지 않게 될 테니 꺼내놓으셔도
됩니다. "
“ 무엇을 말입니까? ”
“ 여태 내려놓지 못하시고 참고만
계셨잖아요. "
바람결에 부드럽게 나부끼는 귀밑머리
아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시선은 노을을 향한 채 차분히 울리는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바로 깨달은
나의 눈가가 곧장 부풀어 올랐다.
“ 우..욱..흐..흐..흑..... ”
결국 겨우 참았던 눈물이 손으로
가릴 새 없이 쏟아져 내렸고 소아는
그저 작아진 나를 낮춰 자신의
어깨에 내린 후 도닥이기만 했다.
“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아무도 미워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이젠 스스로를
탓하지 마셔요. "
할 만큼 했다고 이제는 잊어버리라는
말이 더 가슴을 억눌렀다. 그 모든 게
후회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래서 마음
편히 우는 것도 안 된다 생각했는데.
“ 모두들 나의 잘못이 아니라 하였지만
결과는 탓할 수밖에 없더군요. "
겨우 울음을 멈춘 나는 느리게 입을 열었다.
“ 잘 되면 오죽이나 좋겠지만 세상일이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더군요. 오래 전부터
도련님이 저를 바라보게끔 할 거라
호언장담했는데 이제야 마주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 "
“ 하..하... 미안합니다. 제가 눈치가
없어서. "
“ 그래도 결국 듣지 않으셨습니까
초이와 신성군마마의 웃음소리를.
중추절 때의 초이가 그리 환하게
웃는 데도 투기 하나 나지 않았지요.
어떤 웃음인 지 보자마자 알겠더군요.
만약, 도련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들은 살아있는 동안 단 한 번도
마음 편히 웃지 못했을 겁니다. "
초이가 소아의 꿈에라도 다녀갔는지
그제서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지..지직
그때,
전과 같은 현상이 또 다시 일어났다.
소아의 얼굴이 두 개로 퍼지면서 기억에
있던 현대의 장소가 지금의 장소와
겹치는 듯 하다 순간
---------화악
갑작스럽게 소등이 되었다 환해지더니
눈앞에 있던 소아는 보이지 않고
클로즈업 된 이든이 코앞에 보인다.
“ 이든? ”
그런데 녀석의 눈이 감겨...있..다?
“ 이든아? ”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듯 해 좀 더 크게
부르니 깜짝 놀라며 바라보는 녀석이다.
“ 어?! ”
“ 너... 뭐 하냐...? ”
“ 하..하... 그...그게... ”
멋쩍은 듯 한 표정으로 웃는 녀석.
하지만 난 급한 마음에 묻는 건
나중에 하기로 하고 빠르게 말을
시작했다.
“ 야~ 우리 집 앞 편의점 근처에 폐지
줍는 할머니 찾아~ "
“ 폐지 줍는 할머니? ”
“ 어~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까. 꼭
찾아서 나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해. "
“ 그게 무슨 말이야?! ”
“ 길게 말 못해. 나 또 조선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말하면
알아들으실 거야. "
“ 여태 어디 있었던 거야? ”
“ 뭐?? ”
녀석은 마치 내가 없어진 걸 알고
있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 어떻게 알아... ”
지------지----직
“ 에이~ 씨 또 이래~!!! 야~~
그 할머니 꼭 찾아서 나 돌려달라고
해~!! 알았어~!! "
또 다시 이든이의 얼굴이 난시로 인한
착시마냥 두 개로 나뉘다 또렷한
소아의 얼굴로 바꿨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곳은 소아의 집 앞이다.
‘ 이...이게 어떻게 된 거지? ’
“ 그럼 도련님 저는 이만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
“ 저... 저기... ”
“ 아버님이 출타하시었어도 아녀자가
늦은 시각은 다른 이들 눈에 흉으로
보이니 아쉬워도 조금만 참으셔요. "
아니, 아쉬워서가 아니라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가 궁금해서
물으려는 건데 소아의 얼굴에 홍조가
띄어져 더는 묻지 못하고 손을 들어
흔든 뒤 돌아섰다.
“ 확실해. ”
동재 방구석으로 돌아 온 나는 머리를
굴렸다. 처음엔 너무 당황스러워 그냥
꿈인가 했는데 다시 겪고 보니
말이 된다. 소아와 만나서 이야기
한 곳은 산 중턱인데 이든이와 짧게
만나고 난 뒤에 돌아와보니 소아의 집.
이건 분명 내가 여기에 와서 19살의
유정으로 지내는 동안 여기의 유정인
“ 내 몸에 들어가 있었던 거였어.
아아아~~~!!! "
그야말로 짜증나는 전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상상은 해봤지만 이건 뭐
남매가 뒤바뀐 것도 아니고 함께 같은
공간도 아니니 이거 저거 하지마라
간섭도 못하고
“ 가만... 한의원은... 설마 짤린 건
아니겠지? "
불안이 엄습해 온다. 여기에서는 뭐 딱히
직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오히려 퇴행
하는 기분이었지만 분명 저쪽은 엄연히
직업을 가지고 있다.
“ 아직 퇴사는 아니야. 제 2의 인생도
돈이 모여야 한다고오~~ "
하지만 선비 유정이가 각 제대로 잡고
“ 나는 그럼 이제부터 무엇을 하면
되는 것이오? ”
라고 했을 걸 상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돌아간다고 마냥 좋을 것도
아닌 듯
“ 하아....그래. 다시 시작하면 되지
그러면 돼. 그러면... 우~~우우~~ "
그렇게 이 악물고 파이팅을 해 보지만
구직부터 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곧장 힘이 쭈욱 빠졌다.
“ 장의~ ”
성필이 애타게 외치는 소리에 무거운
눈꺼풀이 겨우 들렸다. 밤새 뒤척인
덕분이다. 길게 하품을 한 뒤 부랴부랴
대충 끼워 입고 나가니 신입생들까지
합쳐 많기도 하다.
“ 가시지요. ”
“ 어제 잠이라도 설친 모양일세. ”
“ 봄이지 않습니까. 만물이 굳은 땅을
나오는 데 힘을 쏟는 게 당연하지요. "
“ 그래서 밤새 기운을 쏟다보니 늦었다?
어쩌누 직접 써야 할 것을 꿈으로 다
날려버렸으니. "
‘ 아놔~ 이 자식의 회로는 왜 하나같이
육욕에만 직결 되냐. '
그렇게 생각을 하고 고쳐주려다 그냥
웃고 말았다. 암만 신입생들을 위해
새로운 강론주제를 고심했다 말하여도
곧이듣지 않을 인간이니.
“ 큭큭, 봄이라 그런 것이지. ”
“ 봄이랑 욕구불만이랑 뭔 상관인데. ”
“ 왜 상관이 없습니까 만물의 소생은
자손번창과도 이어지는 것인데 지금
한창 자라고 있을 태중의 녀석으로
성필 사형이 별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큭큭큭 "
“ 하아... 성필상유가 원체 그러하다
치고 제천이 너까지 이쪽과라니 내가
잘못 본거냐? "
“ 왜? 제천이나 나나 너도 역시 사내가
솔직하지 못한 건 아무 짝에 쓸모가
없어. "
“ 어이구 그러셔요? 하여간에 봄바람은
여자들한테나 부는 건 줄 알았는데 쯧쯧.
잠깐, 봄. 바. 람..? "
그렇게 녀석들의 농담에 짜증이
스물~스물 올라 올 때쯤 떠오르는 장면.
“ 이든이가 얼굴을 바짝 내게 가까이
대고 거기에 눈까지 감았단 말이지.
대체 뭘 하려고...? "
“ 뭐? ”
“ 아니, 그러니까 눈을 감은 채로 상대의
얼굴 가까이 들이대었다면 이건 뭘
뜻하는 것일까? "
“ 설마 소아낭자께서? ”
“ 아니~ 아니야. 소아는 그렇게 가벼운
아이가 아니야. 절~~대 "
“ 모르지. 마음은 낭자께서 먼저 열었다
하지 않았나? "
개구쟁이 표정을 지으며 웃는 제천의
말에 석환의 얼굴이 험악해진다.
“ 어이~ 제천 자네는 뒤통수에 눈을
하나 달아야겠네. "
“ 네? 아... 하하 농일세 농~~ ”
곧장 달려드는 석환의 손짓에 놀라 뛰는
제천의 모습을 두고 나는 고개만 흔들었다.
“ 이 자식들 친구가 도와달라고 물었는데
장난이나 치고 어휴~ "
“ 뭐~~ 뭘~~ 고민합니까아~~ 연모이야기에
일가견이 있는 분을 놔두고오~~ 아니 석환~
내 잘못하였어 그만하게~ "
“ 사랑이야기에 일가견이라... 아..아아~!! ”
“ 뭘 물어본다고? ”
여전히 쌓여진 업무에 시달리는 듯 오늘따라
유달리 짙고도 길게 자라 있는 다크써클을
보니 안쓰럽기 그지없지만
“ 제가 연정이라는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터라 상대가 한 행동을 두고
궁금해서 말입니다. 홍학유라면 바로
답을 알려줄 듯 하여 이리 찾았지요. "
“ 내가? "
“ 아 왜 모른 척 하십니까~ 서책에
담아내는 문장으로만 보아도 전문가가
따로 없는데 말입니다. "
“ 그거야 뭐 늘 아리따운 내자가 곁에
있으니 자연스러울 수밖에. 흠흠~ "
‘ 뻥 치시네. ’
“ 그래서 말입니다. 상대가 눈을 감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 댄다하면 이는
무슨 뜻일까요? "
“ 큼큼... 장의... 모르는 척 하는 건가
정말... 진짜로 모르는 건가? "
짐작이야 하지만 형제라고 해도
믿을 만큼 가까운 이든이가 그럴 리
없다는 걸 알기에 더 이해할 수
없으니 궁금한 것이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인지.
“ 모르겠으니 이리 여쭙는 거 아닙니까. ”
“ 하~ 이거 참.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난감하네. 자네 여지껏
정인과 어찌 보냈는가? "
“ 늘~ 이야기 하고 걷고 차 마시고 ”
“ 벗들과의 만남과 다른 점은 없었나? ”
“ 글쎄요 딱히... ”
“ 하... 자~ 이것부터 가져가게. ”
답답해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내게
내미는 서책 하나.
“ 뭡니까? ”
“ 애련(愛戀)의 기초본 ”
“ 이것을 왜에... ”
“ 답이 눈앞에 있는 데도 모른다고 하니
기초가 부족한 듯 해서 말이지. 자네의
물음에 바로 답을 해 줄 수도 있지만
스스로 깨치는 것이 마음에 더 화악
닿을 것이야. "
모쏠탈출한 지가 언젠데 새삼스럽게
기초라니 초딩도 연애 하는 마당에 무슨.
“ 에이~ 제 아무리 햇병아리어도 알 건
다 압니다. 그냥 여태까지 가만있다
갑자기 태도가 달라져 왜 그런지가
궁금했을 뿐인데요. "
“ 그러니까 더더욱 이것이 필요한 것이야.
자네는 몰라도 한~~~~ 참 모르는 듯 해.
아는 척 하지 말고 그냥 읽어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생각지 말고~ "
그렇게 연애백서를 내 손에 꼬옥 쥐어주고
정록청 밖으로 곧장 쫒아낸 뒤 문을
닫아버린다.
“ 쳇, 귀찮으니까 별 구실을 다 댄다.
내가 모르기는 뭘 모른다고 연애를 안 해
본 것도 아니고 내 나이가 몇 갠데. "
하지만 내가 보는 나와 3자가 보는
나는 엄연히 다르다. 어쩌면 나는
자만을 하고 있을 수도.
“ 에이~ 어차피 강론하려면 한참
멀었으니까 방에서 시간이나 떼우고
있지 뭐. "
그렇게 소매 안쪽으로 깊숙이 서책을
찔러 넣은 후 동재로 향했다.
“ 다온아. ”
“ 네 오라버니. ”
“ 다온아. ”
“ 네 오라버니. ”
“ 다온... ”
“ 아~ 아까부터 왜 자꾸 부르기만
하고 그러냐구요~!! "
결국 녀석이 소리를 빽 지르는 통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 그것이 말이다. 그러니까... ”
“ 할 말 없으시면 전 집으로 돌아갑니다. ”
“ 아니다 내 긴히 물을 것이 있어. ”
홍학유에게 책을 받고 난 뒤 난 따분한
시간을 쪼개는 것에 책읽기를 추가했는데
답이 있긴 하였으나 해석하기에 따라
답이 너무나도 많이
“ 많아서 말이야. ”
“ 무엇을 말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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