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급한 성격이 결국 사고를 쳤다.
본 웹소설은 픽션이며 인물, 지명, 종교, 사건 등은 실제 역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그게.. 그게... ”
대답 잘해야 한다.
“ 당연히 하였겠지요. 애서가(愛書家)이지
않습니까 홍학유의. "
다행히 살벌해지는 분위기를 읽은 제천이
재치 넘치는 기지를 발휘하여 단순한
석환이의 가늘어진 눈이 겨우 풀렸다.
“ 그..그렇지... 아니~ 내가 언제 또 그리
읽었다고. "
“ 무슨~ 밤새 웃다가 울다가 하신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
‘ 이 자식은 새벽잠도 없나. 미친 놈 ’
뭐 어쨌든 고비를 넘긴 것도, 석환이
단순한 것도 다 다행이라 난 소아의
편지를, 연서를 읽으니 언제 볼 수
있겠냐는 애정 어린 투정이 가득이다.
‘ 어른스러울 정도는 아니어도 이리
닭살을 떨 정도로 내려놓지는 않았는데
아주그냥 편지지가 핑크색으로 보이기까지? '
평소와 다른 연서다. 내가 알고 있던
소아는 침착하고 차분하며 말을 할 때에
신중히 생각을 하여 가려하는 이로
우리 다온이와는
‘ 완전 다른 요조숙녀 그 자체인데. ’
하지만 이번 편지에는 애정공세가 장난
아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어리둥절하니
-----홱~
낚아채는 석환.
“ 야~!! ”
“ 하? 내가 아는 소아가 맞나? ”
“ 아니 남의 연서는 왜 뺐아~ ”
“ 자네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지
말해 뭐해. 그런데 도대체 저번에 둘이
만났다더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야? "
나도 그게 궁금하다.
분명 무슨 일이 있었다. 소아의 얼굴이
홍조로 물들기까지 하며 내가 붙잡는 것에
오해까지 하였으니까.
“ 유정이가 이쪽으로 넘어온 게 분명해. ”
“ 뭐? ”
“ 소아낭자를 만나야겠어. ”
“ 오호~ 우리 어리디 어린 장의께서
드디어 어른이 되시려구요? "
“ 그냥 물으려는 거야. 쓸데없는
생각은 말고. "
“ 그럼 따라가도 되지요? ”
이건 눈치가 없는 지 없는 척을
하는 건지 징그러워 죽겠다.
“ 나중에 홍학유의 서책을 한꺼번에
빌려 줄 테니 그걸로 배우게. 남의
연애사에 눈치 없이 끼어들 생각 말고. "
내 경고가 들리지 않는 듯 무시하며
석환이를 조르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어떻게든 녀석들을 떼어놓아야겠다.
“ ?? ”
드디어 외출을 하고 녀석들 몰래 나오기는
했지만 원체 알 수 없는 놈들이라 소아를
보자마자 손을 잡은 후 냅다 뛰기 시작
했다.
“ 허억~허억... ”
‘ 이 놈의 저질체력. ’
“ 후우후~ 어찌... 무슨 일이라도... ”
“ 그것이... 녀석들이 쫒아 올까봐. ”
“ 누구를 말씀이십니까? ”
“ 제 곁을 호위마냥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이들이지요. "
“ 푸..푸훗~ 눈치가 없기는 하지요. ”
제천이와 석환이가 떠올랐는지 웃음을
참느라 말은 더 잇지 않고 그 동안 나는
숨을 제대로 골랐다. 장소도 고르지 않고
뛰었는데
『 뭐냐? 』
“ 으앗~! ”
“ 석환오라버니 왜 그러십니까? ”
소아는 석환이가 온 줄 알고 언짢은 듯
꾸짖는 목소리로 찾았다.
“ 아.. 아닙니다. 뭐가 움직인 듯 하여
그만... "
“ 오늘따라 이상하십니다. ”
안 하던 긴장을 하고 실수를 하니
걱정하는 안색이라 난 곧
“ 그냥 그들와 함께라면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게 되니 괜히 긴장을
했나봅니다. "
“ 석환오라버니가 원체 걱정이 많지요.
저를 아직도 8살 어린 아이로 보시니
말입니다. "
『 아하~ 정인이구나. 뭐 어여쁘기는 한데 』
은근히 뭉개는 듯한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 눈짓으로 꺼지라 하니 눈치 빠른
월아는
『 내 영역에 들어온 건 네 녀석인데 왜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야? 네 녀석이 꺼져~ 』
말투가 앙칼진 것이 굉장히 불만이
찬 듯 해 어쩔 수 없이
“ 여긴 외진 곳이라 아무래도 위험한 듯
하니 밝은 곳으로 장소를 옮기지요. "
“ 그럼 저번에 지는 해를 보았던 그 곳은
어떠신지요? "
그렇게 돌아서는 데 서늘한 찬 기운이
느껴져 옆을 곁눈질 하니 월아가 매섭게
째려보며 지나갔다. 그 모습에 몸서리치며
소아에게 바싹 붙으니 대뜸 신호라고
생각한 줄 팔짱을 끼며
“ 어서 가셔요. 이러다 노을을 놓치겠어요. ”
“ 그럽시다. ”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못마땅해 하는 월아의 눈을 빨리
벗어나야 할 것 같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 바람이 따뜻해지니 해가 길어지는군요.
노을을 보려면 조금 기다려야 할 듯 합니다. "
“ 아~ 길어진 해로 시간을 착각하여
인경꾼이 실수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다는 말을
참 예쁘게도 하는 소아다.
-----살풋
그렇게 말을 이어가다 소아의 고개가
내 쪽으로 기울더니 이내 어깨로 향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 스킨쉽인데? ’
거의 100퍼센트 하지만.
‘ 유정이 녀석이 소아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 한 건 같긴 한데. '
진심이냐가 문제다. 할머니가 나한테만
돌아갈 방법을 말하지 않았을 테니.
긴가 민가하는 녀석이 이 상황에서
이리 빨리 마음을 연 것이 의심스러웠다.
‘ 그래도 녀석도 나만큼이나 간절한 건
알겠네. '
“ 도련님? ”
잠시 멍 때리다 소아를 잊을 뻔한 나는
“ 세상에 ”
“ ..?? ”
“ 그대는 안타깝지만 노을 보기 어려울 듯
하군요. "
“ 왜요? ”
“ 우리 사이를 투기하여 죄다 그대 얼굴로
건너가 나 홀로 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
“ 어머~ ”
‘ 미안해 소아야. ’
처음에는 언제 돌아갈지 불투명한 상태에서
살아남으려 소아의 마음을 이용했고, 지금은
확신이 들지 않는 유정이의 진심을 확인하려
또 이용하는 것 같아 양심에 찔렸다.
“ 오늘따라 왜 이리 이상하실까요? ”
역시 여자는 촉이 좋다.
“ 그러게 말입니다. ”
“ ?? ”
“ 애련은 글로 배우는 것이 아닌가봅니다. ”
“ 음~ 서책의 임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여인의 마음을 제대로 아는 이는 맞나봅니다.
처음 노을을 보러왔을 때 그리 말씀하셨지요. "
-------꿀꺽
‘ 그래, 내가 뭐랬어? 아니 유정이가~ ’
“ 꽃잎이 예쁜 걸 뒤늦게 알았을 땐
이미 바닥에 내려 앉아 사람들의 발길에
채여 사라지고 없으니 알기 위해선
봄을 알리는 바람이 불 때 나무 아래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걸 몰랐다고. "
“ 깨닫고서 후회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지요. "
‘ 유정이 이 자식~ 연애백서라도 읽고 왔나.
올리브유를 한통 죄다 혀에다 뿌리고 으으~ '
“ 많이 늦어 미안하다 하셨습니다. ”
‘ 짜식, 알긴 아네. ’
“ 그대의 마음을 당연하게만 여겼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미안하다
말도 못하였지요. 그러면 더 속상해할 것
같아서 "
“ 아시는군요. ”
말은 서운하다는데 눈은 반달로 지어져
행복해한다. 소소한 기쁨은 항상 풍선처럼
커질 준비를 한다는 게 맞는 말인 듯.
잠시 들었던 고개를 다시 내 쪽으로
기대는 듯 하던 소아의 눈이 감긴다.
‘ .....?! ’
‘ 유정아~ 의심해서 미안해. ’
그리고 유정이로 소아의 마음을 이용
했던 것에 대한 사과로 유정이의
몸을 살며시 서서히 낮췄다.
--------지지...지.....지익
타이밍 한 번 절묘하게 순식간에
바뀌며 보이는 이 곳은
“ 이든아~!! 어딨어~! ”
돌아오자마자 달려간 곳에는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녀석이
“ 어..딨..ㅎ..흐..어..흑흑... ”
아무데도 없다.
-------풀썩
“ 어딨어~ 흐..흐..흑 으앙~!! ”
어린애처럼 펑펑 울었다. 누가 보던
말던 상관없었다.
-------와락
“ 뚝~ ”
“ 나쁜 놈아~ 왜 이렇게 늦어~ 흐흑~ ”
“ 미안해. ”
무서웠다 돌아왔는데 이든이가 없을까봐.
내가 늦은 건 아닐까하고
“ 이제 괜찮아? ”
여기 유정이가 그랬단다.
보러 가고 싶다고 그래서 우리가
틈만 나면 왔던 이 곳으로 왔다고.
“ 혹시나 하고 왔는데. ”
“ 그 할머니가 저주인지 장난인지를
걸어둬서 아직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나 꼭 돌아올 거야. "
“ 여기 왔던 그 애도 똑같은 말을 했어.
반드시 돌아 갈 거라고. 소아가 기다리는
그 곳에. "
“ 녀석 꽤 진지해졌네. 처음에는 잘
모르겠다며 우유부단하더니. "
“ 그럼 너는? ”
유정이의 얘기로 길어지다가
뚝 끊겼다.
갑자기 훅 들어오는 바람에
“ 어..어? ”
앙증맞고 귀여운 곰 인형이 갑자기
근육을 키운 것마냥 어색해져서 말끝이
흐려지는데
-------지..지..익
“ 유정아~ ”
-------스윽 흡~
“ 나... 돌아올 거야~! 대답은 그때
할 거니까~ 기... 기다려~! "
고장 난 인형처럼 유정이가 잠시
버벅이다 이내 정신을 차리기에 이든이
잡으니
“ 하아... ”
“ 유..유정아? ”
“ 우선 돌아가서 이야기를 하시지요. ”
녀석은 가 버렸고 엉뚱한 녀석은 아직도
이든이 옆에서 낑낑대며 미안해 하니
속상했지만 지금은 기다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어 유정이를 데리고 돌아섰다.
“ 미쳤어. ”
돌아와 밤새 이불킥을 해도 사라지지 않는
사실로 인해 아침까지 화끈거렸다.
“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아.... ”
“ 무엇이 장의를 급하게 만들었을꼬? ”
눈치 빠른 성필이가 세안물로 씻어내지
못한 무언가를 발견한 듯 느물거리며
옆으로 다가왔다.
“ 아... 아닙니다. ”
“ 에이~ 아닌게 아닌데~~ ”
“ 어..어서 가시지요 ”
“ 오늘은 이르게 준비하여 천천히 하여도
되니. 어제 정인과 잘 보냈는가? "
“ 그것을 어찌 아시고? ”
“ 어유~ 어찌나 꼭 쥐고 뛰든지 둘이
어디로 도망을 가는 줄 알았다니까.
큭큭큭 좋~을 때지~ "
“ 그런 거 아닙니다. ”
“ 말은 그러해도 이미 얼굴에 다
써 있는 것을 걱정 말게. 나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하였으이~ 흐흐 "
“ 하필 들켜도 저 인간한테 들켜선
아오~ "
“ 그러게나 말입니다. ”
서운한 낯빛을 불쑥 내밀며 제천이가
삐죽거리고 뒤를 이어
“ 우리가 무슨 잡아먹나? 눈치 없는 것도
아니고 적당한 때에 빠질 것인데~ "
‘ 웃기네. ’
하여간에 조만간 사랑의 도피를 시도
했다는 이야기가 퍼질 테니 이걸 어떻게
수습하나 걱정이다.
“ 걱정 말게. 소아 곤란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니. 성필상유의 허세를 모르는
이도 없고 말이지. "
“ 그래도. ”
“ 그건 그렇고 장의~ 어찌 되었습니까?
이번에는 전하셨습니까? "
“ 무..무엇을 말이야? ”
“ 척하면 척이지. 여태껏 미적지근하지
않았나. "
“ 가볍게 보이지 않으려 신중했을 뿐인데
무슨... "
“ 초이, 옹주마마와의 일을 벌써 잊은 것은
아니지? 자네가 소문까지 만들어서 전하의
눈 밖에 나기까지 해 놓고선. "
“ 전하의 눈보다 장인의 눈에 드는 것이
더 중요하니 그렇게 한 것인데 무슨.
설마 넌 아직도 나를 의심하는 거야? "
“ 뭐~ 그건 소아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지. 그러니 지금이라도 잘 하게~ "
하여간에 어지간하다 할 것인데
제천이는 그것마저도 새기려는 듯 하다.
“ 제천아 느껴야 하는 거야. 감정은
절대 글로 써지질 않거든. 이번에 확실히
배웠어. 그래서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
----화악
말끝에서 그 순간이 떠오르자마자
나도 모르게 얼굴을 감쌌다.
“ 그래도 말을 아... 미쳤네. ”
“ 자네... 혹시...? ”
“ 아니야~ 아무 일도 없었어~ ”
“ 오오~ 장의 뭡니까~ ”
“ 따라 오지 마~!! ”
나도 모르게 뱉을 뻔하여 100미터
신기록이라도 세울 요량으로 냅다
진사식당으로 전력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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