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그늘은 걷혔는데 여전히 해는 보이지 않는다.
본 웹소설은 픽션이며 인물, 지명, 종교, 사건 등은 실제 역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며칠 뒤
월아에게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
안절부절 하던 나에게 석환이
초이의 소식을 알려주었다.
“ 잡혀간 곳을 알았지만 초이를
만나러 갈 수 없으니 어쩌고
있는 지 알 수 없어 답답하네. "
“ 아버지께 부탁드려 우선 어디
있는지는 알아내었으니 월아에게
기대를 해보세. "
“ 저희는 초이와 있지 않아
일행이라 우길 수도 없고 장의는
뜬소문에 기름만 붓는 꼴이니 괜히
나서지 마십시오. "
“ 알아. 그러면 다온이랑 소아
낭자를 보낼 수는 없을까? "
“ 유정~ 안 될 말이야. 괜한
일에 그들까지 말려들게 할
셈인가. "
“ 어쨌든 그날 같이 있었으니
동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
“ 쯧쯧쯧. 그날 처음 만난
이들입니다. 다온낭자는 그날
내색을 너무 해서 부탁을
하여도 들어 줄지 알 수
없고 소아낭자는 하...
장의 미안하지도 않습니까? "
끄응---
미안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저 구해 준 것으로
인연이 된 이를 위해 마음을
쓰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을
텐데 그것을 위해 도와 달라
하는 건 아무래도
“ 염치없지. ”
“ 쯧쯧, 그걸 안다면 말을
꺼내지 말게. 소아가 아무리
자네뿐이라 해도 그렇지. "
결국 나를 째려보는 석환이다.
그런 녀석의 기에 한껏
눌린 난 입을 다물고 월아가
빨리 답을 가져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 답이 왔어. 』
집중이 어려워 강론을 짧게
마치고 겨울방학 전 치를
숭학시에 대비하여 이번
승전보는 동재에서 울리자
다진 뒤 내 방으로 걸어
가는 데 조용히 내 곁을
월아가 다가왔다.
“ 숨 넘어가는 줄 알았다. ”
『 내켜하지 않아 하는 것을
겨우겨우 달래어 부탁 하느라
늦었다. 다른 이들은? 』
“ 각자 방으로 갔어. 어떻게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면
비천당으로 갈까? "
『 먼저 가 있을게. 』
답을 가지고 온 월아의 낯빛이
기분 탓인지 흐려 보인다.
“ 나쁜 소식인거야? ”
『 함께 이야기 하지. 』
나를 놀리던 월아가 나은 건
처음이다. 가벼운 귀신의
장난 섞인 농담이 듣고 싶은
기분에 석환과 제천을 부를 때
목소리가 가라앉은 걸 들켰는지
곧장 나와 등을 떠민다.
녀석들도 말을 하지 않았을 뿐
나와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그 모습에 답도 듣지 않았는데
울컥해져 빨리 발길을 돌려
비천당으로 향했다.
『 그 아이의 시간과 너희들의
시간은 아무래도 같지 않나보다. 』
“ 나는 돌려서 말하면 못 알아
들으니까 바로 얘기를 해. "
“ 월아낭자 속 시원히 얘기
해주시오. 초이는 어떠하였소? "
나와 제천, 석환은 끝까지
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월아를
재촉했다. 이에 여지껏 그런
눈을 보이지 않았던 월아는
하기 싫은 말을 억지로 내뱉듯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 모른 척 하면 살 것인데
왜 이리 끈덕이는지 그 아이는
너무나도 태연했다. 거기다
끝까지 임금의 잘못을 물고 늘어
질 심사더구나.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라 잘못하였다 하면
곤장 몇 대로 끝이 날 것인데. 』
철푸덕----
녀석은 결국 혼자인 걸 택했다.
우리가 그토록 노력을 했는데
나는 진심을 보이려고 얼마나
애썼는데
“ 아무래도 초이 그 아이가
우리를 버린 듯 하이. "
“ 선택을 한 것뿐일세. ”
“ 하아... 그 좋은 길 다 놔두고
굳이 가시밭길을 꾸역꾸역 가냐고.
눈 딱 한 번 감는 게 그렇게
어렵나. "
“ 억울하게 부모와 형제를
잃었습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려 했다는 게 어리석었던
것이지요. 장의 그만 놓으시지요. "
“ 아직 신성군에게서 답이 오지
않았어. 그들을 설득할 수만
있다면 초이를 달래어 볼 수도
있을 것이야. "
포기를 할 수 없어하는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제천과
생각에 잠기는 석환이다.
이런 우리들을 말없이 바라보던
월아는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졌다.
“ 홍루에 가서 한잔하지. ”
침묵을 먼저 깬 건 석환이다.
“ 무슨 기분으로 마실 텐가? ”
“ 우연히 만날 수도 있지 않아. ”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데 마냥
손 놓고 있는 것보단 나을 듯
하다.
“ 그래, 한 잔 하다보면
막혔던 속이 뚫릴 지도. "
“ 허... ”
어이가 없어하면서도 제일
먼저 자리를 박차는 건
제천이다.
“ 오셨습니까. ”
곱게 단장을 하여도 걱정을
가릴 수는 없나보다. 수척해진
모습이다.
“ 우리의 술친구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기대하고 왔는데
어찌 자리하셨는가? "
나와 연향의 사이로 흐르는
칙칙한 기운이 싫었던지
석환이 일부러 평소보다 더
가벼운 말투로 연향을 달래 듯
물었다. 이에 연향이 고개를
저으려다 누군가와 눈빛이
마주치더니 우리 뒤를 향해
비즈니스 미소를 가득 올리면서
맞이한다.
“ 마음이 맞으셨나봅니다. ”
연향의 기대에 찬 말에 난
혹시나 하여 재빨리 고개를
돌리니 신성군이다. 그를 확인
하자 나는 괜시리 기분이
좋아져 18살의 유정이라는 걸
깜빡 잊고 없는 애교를 박박
긁어모았다.
“ 마마~~ 술이 고픕니다.
어찌 저희를 잊은 줄 알았습니다. "
연향의 표정이 내 얼굴에
복사되어 붙기라도 했나보다.
나를 보자 신성군은 이내
웃으며 앞장서고 우리는 철없는
어린아이들처럼 한껏 과장된
걸음으로 따랐다.
탁----
“ 어찌되었습니까? ”
“ 이런, 숨넘어가겠네.
아직 술 한 모금 넘기지도
못했는데 재촉부터 하는가. "
“ 초이를 직접 만나 설득하고
싶은 데 그리 하지 못하니
속이 타서 그만 송구합니다. "
“ 우선 목부터 축이지. 여기도
눈과 귀는 존재하니 적당히
가락을 맞춘 뒤 천천히
이야기 하세. "
방으로 들어왔을 때도 일부러
한량마냥 신성군 도포자락에
매달리듯 했지만 그래도 의심을
하는 이들은 있을 테니.
“ 이미 오래 전부터 세워온 듯
하네. 그들을 찾았을 때는
이미 자리를 뜬 뒤였어. "
“ 그럼 그들을 만나지 못했단
말씀이십니까. "
“ 만나지는 못하였으나 내가
올 줄 알았었는지 서신을 하나
남겨 놓고 갔더군. 활시위를
당긴 건 초이지만 맞힌
화살을 회수하는 건 자신들의
몫이니 초이를 부탁한다했어. "
다행인건지 초이의 배후에
있는 이들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초이를 희생한 것은
아닌 듯 하다.
“ 그렇다면 초이는 그들이
움직이기 쉽게 적들의 발목을
잠시 잡는 역할일 수
있겠군요. 장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그들의 성공여부를 떠나 초이가
고집만 피우지 않는다면
가벼운 벌로 구면 할 수
있겠습니다. "
제천의 말대로야 되면 제일
좋을 테지만 왜 난 자꾸만
불안할까. 쓸데없는 사극
드라마를 너무 본 부작용일까
아니면 그냥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별
잡생각이 다 들어서일까.
‘ 나 원래 이런 오지랖까진
있지 않았는데 내가 너무
유정이 캐릭에 몰입했나. '
이런 저런 생각이 스치듯 지나
가 잠시 조용하니 석환이
옆구리를 찌른다.
“ 무얼 그리 생각해. 그런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들에게도 분명 생각이 있을
테니. 우선 믿어보자고. "
“ 자자~ 너무 심각해 말고
연향이 오랜만에 우리들이
모여 솜씨를 발휘하였는데
다 식겠군. "
아직 이렇다 할 말이 없어
연향을 부르지 않았다.
답이 없어 괜한 희망 고문을
하는 것 같아 말미를 조금
더 달라 하니 서운한 빛을
애써 감추며 물러난 터라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고민을 나누었다.
“ 숭학시가 내일로 다가왔군. ”
딱히 방도를 찾지 못하고 날만
보내고 나니 벌써 시험기간이다.
그나마 이것이라도 있어 잡
생각을 떨치긴 했지만 이도
끝나게 되면 집구석에서 손톱을
물어뜯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울적해졌다.
“ 장의~ 이번에는 기대를
해보아도 되겠는가? "
그런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성필이 자식은 서재에 두 번은
뺏길 수 없다며 이를 부득부득
갈아댔다.
“ 자네 장의 좀 그만 괴롭히게.
요즘 무슨 생각인지 낯빛이 좋지
않은데 쯧쯧. "
“ 장의~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가? ”
이혁의 잔소리에 그제야 내 얼굴을
살피는 성필이다.
“ 걱정거리가 딱히 있을 게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성필상유의
뜻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서
허허. "
“ 거보게~ 왜 사람을 몰아세우고
그러는가? 어련히 알아서 할라고 "
성필이한테는 미안하지만 지금은
혼자 있고 싶은 마음에 이혁이
성필이를 끌고 가도록 칭얼대니
눈치껏 성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
그렇게 비척비척 걷고 있는데
“ 장의~!! ”
석환이 나를 향해 뛰어왔다.
“ 조금 있으면 석반시간이라
진사식당에서 만날 것인데
뭐가 급해 이리 뛰어오는 거야? "
“ 이.. 이걸 보게. ”
“ 무엇이길래... ”
-------화들짝
석환이 건네 준 것은 뜯어낸
벽서였는데 평범한 것이 아닌
비밀단체나 음지에 있던 자들이
나랏님이나 양반네들을 비방하는
글을 몰래 밤새 곳곳에다 붙어
두던 일명, 찌라시였다.
“ 이건... ”
〔 하루를 피고 지어도
꽃이거늘 어리석은 백성도
가슴에 칠일동안 피고
진 것이 무엇임을
아는 데 어찌 눈을
감고 귀를 닫으려
하시나이까. 〕
종들이나 억울한 백성이 하소연
하듯 비뚤비뚤 써내려간 언문이
아니다. 필체 좋은 문장가가
또박또박 적어 놓은 한자로
쓴 방이다. 게다가 내용은
“ 임금에 대한 원망을
한자 하나하나에 꾹꾹 눌러
담은 게 하루 이틀 새긴
원망이 아니네. "
“ 그들이 신성군에게 남긴 것을
지금 터트린 모양이야. "
석환이 소아 때문에 못마땅
하긴 했어도 초이에게 잘못이
있었던 게 아니라 우유부단한
행동을 보인 나의 잘못이라
내심 초이 걱정은 했었나보다.
“ 그러면 어떻게 초이를 보러
갈 수 있을까? "
“ 굳이 우리가 가지 않아도
조만간 풀려날 것이야. "
금방 풀려난다고 하니 기뻐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마음 놓고
안심할 수 없다.
“ 초이는 걱정 없겠지만 숨어
있던 그들이 결국 모습을 드러낸
것인데 "
“ 이젠 우리들이 걱정할 것은
없어. 더 이상 이 것에 대해
논의는 그만하지. 우리가 생각
할 것은 딱 여기까지야. "
석환 말이 맞다. 어차피
피붙이도 아니고 남이다. 생각은
인연이 있던 초이에게서 멈추는 게
맞다. 맞는데 그런데 왜 난
전혀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을까.
* 며칠 후
초이의 방면이 결정되어 안심
하라는 연향의 서신에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시험을 치니
결과는
“ 역시~!! ”
“ 쯧쯧, 이제는 만족하는가? ”
“ 암~ 서재장의의 표정을
자네도 보지 않았나. 벌레에
파 먹힌 썩은 과일이 따로
없더군. "
“ 적당히 좀 드러내게. 어찌
감정을 숨길 줄을 몰라. "
내가 서재장의를 제치니
어깨뽕이 다시 올라가는 성필이
마치 장원급제라도 한 듯하다.
“ 이제 겨울휴학시기군요. ”
“ 장의, 이번 겨울휴학에는 무얼
할 생각인가? "
“ 글쎄요. ”
“ 정해진 일이 없다면 우리와
놀이를 가지 않겠는가? "
대한민국의 겨울이라면 해외
여행이나 국내 겨울축제를 구경
가겠지만 조선의 겨울은 과연
어디로 놀러를 가려나?
“ 설원이 끝내주는 관동쪽으로
짧게 다녀올까 하네. 생각
있거들랑 함께 어울리지. "
설원이라 강원도쪽이면 끝내
줄 테지. 물론 거기에 갇힐
확률이 높지만 조선이라면 더
멋질 텐데. 그렇게 생각이
드니 잠시 고민이 들었다.
“ 아닙니다. 이번은 조금 쉴까
합니다. "
하지만 아직 마음이 걸리는 게
있어 생각 없이 놀 기분이 아니라
거절했다. 이에 성필이 못내
아쉬워했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 저는 할 말이 없으니 더는
찾지 마십시오. ”
- 작가의말
설 연휴 전이라 바빠지는 터에
지난 주 내내 야근을 하였더니 ㅜㅜ정신을 못 차리는 중이라 많이늦었습니다.아직 일이 끝난 게 아니라조금만 양해를 부탁드릴께요~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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