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10걸음 같은 한 걸음이 마음의 길이를 닮았다.
본 웹소설은 픽션이며 인물, 지명, 종교, 사건 등은 실제 역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홍학유~~!! ”
“ 으힉~ ”
-----와르르
인기척도 없던 공간에 갑작스런 소음은
서책을 정리하던 홍학유를 냅다 바닥에
던졌고 이에 나는 곧장 달려갔다.
“ 아고고...자네~ 암만 내가 편해도
그러하지 이리 막무가내로 찾아야 쓰나~ "
“ 급합니다. ”
“ 급하면 뒷간으로 갈 것이지 여기로
오면 어쩌누. "
“ 아~ 진짜 말장난을 할 때가 아니고
외출패 좀 주세요~ "
마음이 급해진 난 내가 지금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구분하지 않고 떼를 썼다.
“ 아니 정인이 꽃바람이라도 났다던가? ”
안 그래도 마음이 급한데 장난질하는
홍학유가 짜증나
“ 아~ 진짜~ 다른 사내랑 정분이
났다하여 확인 하러 가야합니다
됐습니까~! "
“ 아니, 왜 내게 화를 내고 그래에~
자자, 기운은 여기서 빼지 말고 거기
가서 쓰도록 하고. "
승질머리를 있는 대로 내니
더 재미 지는지 히죽거리며 외출증을
건네기에 길쭉한 여우눈을 하며 홱
낚아챈 뒤 곧장 성균관 뒷문을 향했다.
“ 분명 그 주모가 맞아. 그 때는 너무
젊어서 조상이니 어쩌니 하며 넘어갔지만
확실해~ "
석환이와 처음 만났던 그 날 할머니와
너무나도 닮아있던 주모를 기억한 나는
곧장 그 길로 냅다 뛰었다.
“ 허억~허억~ ”
주막이 언제까지 하는지 모르고 거리가
있어 성균관으로 돌아갈 시간까지 계산
해야 되니 내겐 시간이 많지 않아 냅다
소리부터 질렀다.
“ 주모~!!! ”
저녁장사를 하지 않은 것인지 마친 지
오래 되었는지 인기척이 없다. 이에 난
“ 이 못된 할망구야~!! ”
신경질적으로 소리쳐 부르니
“ 아니~ 뜨신밥 먹고 왠 헛소리야~! ”
그제서야 못 이기는 척 비척거리며
나오는 주모, 아니 할머니다.
“ 내 이럴 줄 알았어. ”
“ 크흠흠, 여기는 왜에~ ”
할머니는 찔리는 지 눈도 마주치지
않고 귀찮다는 듯 우물 거렸다.
“ 술 다 익으면 돌아갈 수 있는 거 맞아요? ”
“ 내 말했잖아. 두 사람이 알아야지만
된다고. "
“ 아니~ 일 년이면 익고도 남겠는데
무슨 헛소리에요~ "
“ 술이 암만 맛 좋게 익어도 거기에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그냥 술 인거지. "
“ 알아듣게 말씀해주세요. ”
“ 아가씨나 그 도령이나 정말 모르고
이러는 것이야? "
“ 뭘 모른다는 거에요. ”
“ 쯧쯧쯧, 주는 거에 서툴다고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면 못 써. 사람 마음은
당연한 게 없으니. "
“ 아~ 모르겠고. 저 돌아갈 수는
있는 거죠? "
“ 꽃향기에 취한 게 아니란 걸 알게
될 때쯤? "
아까부터 동문서답도 아니고 자꾸만
알아 듣지 못하는 소리만 나열하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 아~ 할머니이~~~ ”
“ 직접 부딪혀봐야 알려나. 에효
어쨌든 지금 들이킨다고 해도 다음날은
같을 것이니까 애먼 데서 숭늉 찾지 말고
잘 생각해 봐요. 그럼 난 이만~ "
“ 할머니~ ”
그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 돌아서는
할머니를 애타게 부르려는 찰나
-------뎅~
애꿎게도 발길을 재촉하는 인경소리가
울렸다.
“ 아 진짜... ”
이렇다 할 단서도, 답도 얻지 못한 채
언제 또 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지
결국 난 할머니를 여기서 다시 볼 수
있을지조차 기약 받지 못하고 성균관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 입버릇처럼 늘 달고 사니 알 수가
있나 쯧쯧. "
------끼익
“ 이번에는 또 무슨 장난을 치신 겁니까? ”
안에서 작아지는 발소리를 확인한
주모가 그제야 문을 열어 할머니를
향해 퉁을 주니
“ 장난이라니. 그냥 안타까워서 ”
“ 어이쿠 퍽이나요. 제발 좀 순리대로
가게 둡시다. 인간사는 인간들이 알아서
잘 돌리고 있는데 굳이 신이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 좋지 않아요~ "
“ 아기들 궁둥이 두들기는 거나 망자를
거두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개입이지 않니. 나는 그저 쪼금 더~ "
“ 언니의 유희지. 무슨~ 적당히 좀 해요.
나중에 언니 없을 때 나를 얼마나
들들 볶을지 이젠 그만 좀 합시다~! "
------탁
매정하게 닫히는 문소리에 잠시 움찔하던
할머니는
“ 인정머리 없는 것. 못 본 척 할래도
저리 애달픈 걸 어찌 그리 지나가. "
주모에게 들릴락 말락 중얼거리다
부엌으로 들어갔다.
“ 찜찜해, 찜찜해 아~~~~!! ”
“ 지리기라도 하였나? ”
할머니를 만나고 온 뒤로 더 머리가
복잡해 이리저리 정신 사납게 움직이니
성필의 목소리가 들린다.
“ 아... 죄송합니다. 생각할 것이 있어 ”
“ 늘 물결 한 번 없던 장의께서 이리
소란스러운 건 처음이라 의아할 뿐이지
죄송할 것까지야 그보다 뭐가 그리
고민인 겐가? "
“ 그냥 뭐... ”
“ 왜? 정인이 만나주지 않는가? ”
거기나 여기나 온통 꽃 타령이다.
“ 사내의 고민이 어찌 살랑거리는 꽃만
있을까요. 나라의 안위도 그렇고 집안 뭐.. "
“ 큭큭, 앞선 역모 건은 이제 사그라든지
오래고, 집안문제는 남이 나서기는 모양새가
여인과의 고민이라면 뭐 언제든 물어보게나. "
“ 하..하.. 그러지요. ”
절대 사절이다. 물에 빠지면 입만 동동
뜰 네 녀석에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렇게 뽀얗게 오르는 꽃들이 점점 성균관을
에워싸는 봄으로 나른해지던 오후
“ 놀러갑시다~ ”
제천이 왠일로 떼를 쓴다.
“ 오늘 스승님의 말씀이 조금 힘들긴 했지.
어디 장의께서 강론을 핑계 삼아 비천당
뒤뜰에라도 자리를 펼치는 건 어떻습니까? "
시커먼 사내들도 꽃구경은 지나기 어려우니
그렇게라도 하자고 석환까지 우아하게
졸라댔다.
“ 그럼 오늘의 강론 주제는
연심(聯心)으로 할까? "
“ 좋지~ 하품을 해대며 건성으로 듣던
상유들과 사제들의 눈을 제대로 튀울
좋은 계책일세. "
“ 부럽습니다 고민이라도 할 수 있어서. ”
“ 제천이, 인연은 말 일세. 누가 이어
주기보다 우연히 건지는 게 더 아득
하다네. 혹시 아나 어디 눈 먼 새가
그대 앞으로 날아들지. "
“ 에에? 내가 노니는 게 아니고? ”
“ 자네는 암만 보아도 심지가 곧아서
팔랑거리는 나비보단 뿌리 깊은 나무에
더 어울리지. "
하기야 모쏠 제천이라면 앞에 갖다줘도
모를 것이다.
“ 아니 내가 어딜 봐서? 나도 말이지~ ”
“ 자자~ 강론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갑론을박이야? 제천은 동기들에게
시각과 장소를 알려주고 이따 보도록 하자고. "
그렇게 예고를 하니 석반시간부터 녀석들이
들떠있다. 이에 서재녀석들도 궁금해져
물어오다 부러운 듯한 시선과 귀한시간을
헛 쓴다고 잔소리 하는 말이 동시에 눈과
귀를 공략하기에
“ 신도 아는 바람을 어찌 우매하게
둘 수 있는가, 특히 왜 혼자인지를
모르는 이들을 위한 특별 강론이 될 테니
서재, 동재 할 거 없이 오도록 하게~
언제든 환영이니. "
녀석들에게 대서느니 얄밉게 약을
올리는 게 낫다 싶어 던지고 비천당에
가니
“ 생각보다 많은데? ”
“ 그러게 말입니다. 홍학유께서 이것을
보고 돌아서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
의외로
서재녀석들이 중간중간 껴있다. 들뜬
눈을 보니 눈치 없는 척 온 듯한데
“ 가벼울 거라더니. ”
오자마자 홍학유가 가늘게 흘기기에
“ 홍학유의 강론이 듣기가 그리 쉬운가요.
말하지 않아도 눈치 빠른 이들이라 이리도
모입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모두들 주목하시게~ "
혹시 내뺄 것을 두고 재빨리 학우들에게
소개하니 헛기침을 두어 번 한 홍학유가
문답형식으로 강론을 시작했다.
처음엔 스승님도 아니고 말단 관원의 말이
뭐에 도움이 될까 하더니만 곧 그의
경험에 빨려 들어간다.
“ 확실히 작가는 경험 없이 글을 쓸 수
없지. "
“ 앞선 이의 경험이야말로 우리에겐 뼈와
살이 되니 귀할 수밖에 암만 글로 익혀도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것이
세상 일이니. "
“ 그래, 너나 제천이나 우리들은 직접
아주그냥 뼈저리게 느끼고 취했으니
절대 잊지 못할 거야. "
“ 후회는 말일세. 다음 이에게 일침을
가할 수 있는 하나의 밑천이야.
절대 잊을 수 없는 교훈이거든. "
“ 이거~이거~ 중요한 시점에 장의가
이리 다른 소리로 귀를 막아서야 쓰나.
자 그럼 모두들 장의의 답을 듣고
생각을 해 보도록 하지. 장의~ "
“ 네 홍학유. ”
“ 자네는 연정(戀情)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
“ 그야 말 그대로 님을 사모하고 그리워
하는 마음이지 않습니까. "
“ 에잉~ 내 뻔한 답을 들으려고 이 많은
상유들과 사제들 앞에서 그리 물었겠는가? "
“ 큭큭, 홍학유 질문이 잘못되었지 않습니까.
장의께서 님을 그리워하기에는 너무 가까이
있어 그닥 마음에 닿질 않는 질문입니다. "
짓궂은 표정으로 웃으며 성필이가 대신
답을 하는데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성필이의 답이 분명 맞는데
‘ 왜 기분이 울적해지는 거지. ’
“ 자네의 말을 들어보니 그도 그럴 것 같군.
그럼 질문을 다르게 해보겠네. 만약 항상
곁에 있을 것 같던 님이 하룻밤사이에
사라진다면 어떨 것 같은가? "
대답을 하려는 그 순간
- 여태 어디 있었던 거야? -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려는 듯 공간이
분리되는 그때 이든이의 마지막 말
그리고 녀석의 흐려지던 눈이 떠올랐다.
------!?
‘ 아니었어. ’
공간이 일그러지며 생겼던 현상도
이든이가 나를 애타게 부르며 흐린 것도
아닌 내 눈이 본 광경이다.
-----또르륵
“ 장의? ”
“ 어? 아... 그러니까. ”
“ 이런~ 생각만으로도 아찔하였나보군.
이리 얼굴이 질릴 정도라니 자 굳이
장의 답을 듣지 않고도 알겠군.
연정이라는 건 그런 것이야. 잠시
눈만 가리고도 이리 아픈 것이니.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으로 일어버린
한 순간을 믿지 말고 돌아서서 보이지
않을 때 무언가 느껴진다면 절대
놓치지들 말게나. 그것이야말로
진짜니까. "
“ 캬아~ 역시 우리 홍학유께서 이리
명쾌한 답을 해주실 줄 알았습니다. "
“ 쯧쯧, 마음에는 답이란 없는 것이네.
이는 나의 소견일 뿐 자네들에게도 각기
답은 있는데 알지 못하여 하나의 예로
일깨워 줄 뿐이고. 이제 가도 되겠는가? "
“ 네. 헌데 내일부터 홍학유를 찾는 이가
좀 많아지겠습니다. "
“ 에잉~ 석환상유 상상하기도 싫으니
그런 말은 하지 말고. 자네들이 알아서
좀 해결해주게. "
연애상담이 연이을 거란 장난스런 석환의
말에 혀를 내두르며 곧장 자리를 뜨는
홍학유에게 나는 고맙단 말도 못하고
여전히 멍하게 자리를 지켰다.
“ 장의... 괜찮습니까? ”
내가 멍청하게 서 있으니 제천이 걱정이
되는 듯 물었다.
“ 아... 괜찮아. 소아낭자에게 그동안
소홀한 것이 생각나 마음이 그러했어. "
“ 쯧쯧, 반성하십시오. 전 있으면 엄청
잘해줄 것인데 쩝. 어디서 내 님을
찾을지... "
그렇게 동재로 앞서가며 중얼대는 녀석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석환이에게
화를 내는 듯 하는 것 같기도 한데.
-----타악
방문을 닫으니 달빛 외엔 어스름 하여
불을 켜려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 보고 싶어. 보고 시..ㅍ... ”
잠깐 멈추었던 아까의 마음이 갑자기
쏟아지는 듯 눈물이 흘렀다.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이부자리도 살필 생각 없이 나는
밤새 이유도 모른 체 울고 또 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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