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엉망으로 풀린 실타래
본 웹소설은 픽션이며 인물, 지명, 종교, 사건 등은 실제 역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옹주께서 어지간하네. ”
술잔을 기울이기 전에 서신을 펼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석환은
삐쭉거렸고 제천은 내용이 궁금하여
석환을 달래면서 기다렸다.
“ 첫 정이 무섭긴 하나, 그래서
더욱 더 이뤄지기 어렵다고들 하지.
아직 어려서 그런 걸 괜한 심통은
접어둬. "
“ 장의가 이리 다부진 데 무엇이
그리 걱정인가. 옹주마마께서도
물러나실 것이야. "
“ 서림 장가도 혀를 내두르는 판에
잘도~ "
“ 그보다 장의 옹주께서 서신에 뭐라
쓰셨습니까? "
눈치 1도 없는 제천이. 궁금하지 않는
연서를 굳이 알려달라는 말에 석환이
심기가 더 다크해지는 걸 못 느끼나.
“ 그저 걱정 가득이지. 아버... 아니
금상의 마음이나 유생들의 마음이나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서로를
상처 줄까봐. "
“ 온실 속의 화초라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자란 덕에 이런
상황이 당황스럽기만 할 테니.
그렇지만 고작 그런 걱정만을 살피려
뻔히 눈치가 많았을 텐데도 굳이
보냈다라... "
역시 눈치 하나는 제천이를 따를 수
없다. 하지만 아직은 꺼낼 수 없는
패라 대충 둘러대었다. 단순한 연서가
아닐 것 같아 떼를 쓴 것도 그렇고
하지만 그냥 연서라 둘러대는 나를
의심하지는 않는 듯 더는 졸라대지
않았다.
‘ 홍루 주인과 아는 사이라... ’
기다리다 결국 초이가 고집을 부리는
통에 얼굴도 보지 못한 채 홍루를
나서 녀석들과 헤어진 후 집으로
돌아가면서 옹주의 서신을 떠올렸다.
「 ------
하여 걱정이 됩니다. 허니 어려운
일에 닥치어 도움이 필요하거들랑
홍루의 가주를 찾으십시오. 관료들이나
다른 이들은 유생에게 있어 독이라
답답하실 것 같아 드리는 것이니
그를 만나거들랑 일전에 제가 드린
가락지를 보이면 될 것입니다. 」
“ 홍루의 주인이라면 연향이 말하던
어머니라는 사람을 말하는 것 같은데
궁궐 내 꽃인 옹주가 어떻게 하층민과
연이 닿는다는 거지? 게다가 도움이
필요하면 찾아가라...? "
궁에서나 알아 볼 얼굴이지 궁 밖을
나서면 지위 낮은 양반들도 못 알아
볼 옹주인데 첫 인상과는 어긋나는
행동이라 의아했다. 하지만 아이라
하여도 결국 궁 안의 사람이니 태어나
제일 먼저 배운 것이 눈치일 것이라
그냥 응석받이는 아닌 것 같고 어쨌든
아직 가락지를 가지고 있으니 여차
하면 그쪽을 통해 전달할 수 있겠다
싶어 불편하게 궁으로 갈 필요가
사라져 별 생각 없이 난 쫄래쫄래
집으로 돌아갔다.
“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
서림으로 급히 부르는 석환의 연통에
무슨 일인가 싶어 도착하니 신성군도
함께였다.
“ 말 그대로일세. 어젯밤 초이가
감쪽같이 사라졌어. "
“ 대관절... 이 무슨 아직 몸도 다
낫지 않은 상태인데. "
“ 연향의 말론 분명 동기들과 잠을
청하러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했어. 그런데 아침에 일찍이 잠을
깬 다른 기녀들이 초이가 사라졌다
하였어. "
“ 마마, 혹시 초이의 물건이나 다른
기녀들의 패물들이 사라지진 않았습니까. "
제천의 물음에 신성군은
----절래절래
힘없는 고갯짓이다.
“ 연향에게 어떤 언질도 없었고
초이의 물건이나 기녀들의 패물들도
그대로 있다라... "
초이가 사라진 것에 잠시 단순
하게나마 가출을 생각해본다면
연향에게 언질이 있을 리 만무한
건 이해된다. 그러나 이 곳을
떠난다면 당장 지내야 할 거처
마련을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경비를
챙겨야 하니 초이의 자리가 어수선
하거나 하다못해 다른 친구의
패물에 손댄 흔적이 있어야 한다.
“ 그럼 마마, 초이의 자리가 훼손
되었거나 싸운 흔적 또는 소리 같은
것이라도 들은 이가 있습니까? "
“ 그것이 잠이 얕은 기녀가 하나
있는 데 간밤에 아무런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하네 허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
싸운 흔적도, 소리도 듣지 못했다라.
“ 장의, 아무래도 연향에게 물어야
할 것이 있으니 기별을 넣어주시지요. "
제천은 짐작 가는 것이라도 있는 듯
연향을 불러 달라 했다.
“ 연향에게 무엇을 물을 참인가? ”
“ 제 짐작이 맞다면 초이는
아무래도 아는 이를 제 발로
따라간 듯 보입니다. "
“ 제천 자네 말대로라면 누군가가
기녀들 방을 찾긴 하였는데 그가
초이와 일면식이 있는 자란 말인가? "
“ 지금까지는 추측일세. 정말 실력
좋은 사냥개가 납치할 확률도
있으나 그렇다면 머리 좋은 초이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을 리
없어. "
“ 제천 자네가 혹 의심하는 이가
오라비라는 자인가? "
“ 그 자일지 또 다른 이일 지는
알 수 없어 연향에게 오라비라는
자의 행방을 물어 보려는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나서서 그 자를 안전
하게 움직일 수는 없을 것 같아. "
제천의 말에 일리가 있다.
신성군이나 우리에게 부탁하기도
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일
믿을만한 이에게 부탁을 했을 터이니.
“ 네, 제가 아는 작은 절 주지스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안전을 우선한 것은
맞으나 한편으론 그 자를 온전히
믿기 어려워 감시를 하기 위함인데
그것은 어찌 물으십니까? "
“ 연향, 그 절이 어디인지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는가? "
“ 설마 그 자가 초이를 데려갔다
보십니까? "
“ 우선 제일 의심이 가는 이라 먼저
찾아보려는 것일세. 물론 아니었으면
해. 그 자는 음험하기 짝이 없어.
자신의 피붙이나 마찬가지인 초이를
자기가 살기 위한 미끼로 쓰려
했으니. "
“ 하아... ”
답답한 노릇이나 지금 상황에서
사람 목숨이 먼저라 연향은 우리에게
지도를 하나 써주었고 나는 어머니께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절을 찾겠다
말씀을 올린 후 곧장 제천과 떠났다.
“ 역시 우리나라 산이 하나같이
험준하기 짝이 없네. 지금이야 터널
만들어 통과하니 다행이지. 어휴~ "
“ 터.. 그게 뭡니까? ”
“ 그런 게 있어. 쉬지 않고 달렸더니
말들도 지치겠어. 기다릴 겸 여기서
쉬도록 하지. "
같이 움직이면 괜히 의심을 살 것
같아 석환과 신성군은 뒤에 출발
하기로 하여 제천과 난 말에게
꼴을 먹도록 한 뒤 가까운 계곡에
앉았다. 산은 확실히 겨울이 빨리
찾아든다. 아래에선 그나마
버티던 어깨가 으슬으슬 춤사위를
치니. 그렇게 몇시진이 흘렀을까
먼 발치서 익숙한 이들이 보인다.
“ 여기야~! ”
“ 얼마 가지도 않고 이리 주저
앉은 꼴이라니 쯧쯧. "
“ 책만 읽은 서생이 어찌 검만
잡은 한량의 체력과 똑같을 수
있겠나. "
“ 하여간에 쉬는 동안 기운을
차린 듯 하니 자자 제천~ 장의를
일으켜서 움직이세. 겨울산은 밤이
빨리 찾아오니. "
“ 큭큭, 하여간에 자네들 따라
다니면 심심하진 않겠어. 그럼
우리는 먼저 움직임세~ "
그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빠르게 달려 도착하니 고요한 절이
보인다.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으나
겨울산이다보니 일찍 어두워져 암자엔
작은 등불 하나가 전부인 듯 희미했다.
“ 계십니까? ”
혹시나 하는 일을 대비하여 신성군과
제천, 나는 뒤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석환이 앞서나가 문을 두드리며 몇 번
부르니 인기척을 느낀 듯 안에서 신발을
끄는 소리와 함께 작은 절문이 열리고
동자승 하나가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 시주들은 뉘십니까? ”
“ 우리는 홍루의 연향이라는 이의
부탁으로 지내고 있는 시주를 만나러
왔습니다. 혹여 최근에 낯선 이가
이 곳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요. "
“ 시주들께서 말씀하신 분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간밤에 누이를 찾으러
가야 한다며 내려가셨습니다. "
“ ...?!! ”
예상이 맞다. 그렇다면 그 자는
왜 초이를 데려갔을까. 혹시 다른
이들의 연락을 받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킨 것일까. 아직 의심이
남은 상태라 마음이 더 복잡해진다.
그렇게 우리는 짧은 답변을 듣고는
돌아섰다.
“ 설마 어린스님이 거짓을 말하지는
않겠지요? "
“ 그럴 리가 있을까. 충분히 연향과
관련이 있음을 증명했으니 달리 말을
하진 않았을 것이야. "
신성군도 나와 같은 생각에서인지
대답은 그러해도 찝찝한 표정이다.
“ 이거 참,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지금으로선 안전할지 않을지 알 수
없는 마당에 갑작스럽게 이리 데려
가다니. "
“ 그들에게 데려갔다고 확신을
할 수도 없어. "
제천의 말이 맞다. 그 자가
그들에게 데려갔을지 다른 꿍꿍이로
데려갔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보다 믿는 사람이니 초이가
그리 아무런 저항 없이 따라
나섰을 테니 무조건 나쁜 생각만
하는 건 아직은 아닌 것 같아
모인 이들을 환기 시켰다.
“ 자자, 더 어두워지면 암만 낮은
산이라 해도 어려울 것이니 길을
서두르지요. 생각은 내려가서도 실컷
할 수 있으니. "
나의 말에 셋은 말에 올라 말머리를
산 아래로 향했다. 그렇게 가까스로
홍루에 도착한 우리를 맞이한 연향은
하루종일 초조함에 단장도 잊은 채
서 있었는지 파리한 기색이 역력해
연향까지 어찌될까 걱정이 된 난
먼저 말에 내려 연향을 다독이며
들어갔다.
“ 그 사람이 거기 없다니요? ”
“ 누이를 찾으러 간다 하였다하네.
아무래도 간밤에 초이를 데려간 이는
그 자가 맞을 듯 해. "
“ 하... 아직 그 자의 말을 다 믿지
못한 마당에 뭐가 그리 급해 내게
언질 한 번 못하고 나선 것이야. "
혹여 초이의 소식이라도 가지고 왔을까
기대했던 연향은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 아직 낙담하긴 일러. 그 자가
그들에게 데려갔을 수도 있으니. "
“ 마마께서는 그리 믿으십니까?
한 번 의심을 산 이입니다. 초이가
얼마나 조심스런 아이인데요.
그래서 둘을 떼어놓은 것이구요.
그렇지 않고서 제가 무엇 하러 그 곳에
데려다 놓았겠습니까. "
“ 그땐 경빈마마의 세력이 개입되어
어쩔 수 없었을 것이야. "
“ 그러니 하는 말입니다. 그들이
어떤 이들인데요. 죽기 전엔 절대
놓지 않는 자들입니다. 흉터를 가진
그 자 역시 그들의 사냥개라면
더더욱 마음을 놓을 수 없는데.
하아... "
그때의 일로 연향은 스스로
추측했던 걸 확신한 듯 더더욱
초이를 감싸 돌았다. 그러다
초이가 일을 내는 통에 우리에게도
조심스러워진 것인데
“ 만에 하나 다른 꿍꿍이가 있어
초이를 데려간 것이라면 필시 초이가
움직이지 않고서는 안 될 무언가를
내밀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리 반항 한 번 없이 따라
나섰을 리 없어. "
“ 마마의 말씀이 옳습니다.
초이를 움직일 수 있는 건 산채의
그들이거나 명부 뿐이니. "
또 다시 명부가 거론되었다.
잊을만하면 그것이다. 물론 그것이
발단이 된 것은 맞으나 초이가
명부에 대해 궁금해 하거나 찾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서재
장의가 필두가 된 그따위 데모에
나서기까지 했을 정도인데.
그 모든 것이 허사가 될 수도
있단 생각에 짜증부터 났다.
“ 산길을 왕래하느라 시각이
많이 지체 되었네. 아무래도 더 두고
있다간 괜한 의심을 살 수 있으니
이쯤에서 파하도록 하지. 우선
자네들부터 나가고 나는 뒷문으로
나가겠네. "
또 다시 고주망태 못 말리는 한량
연기를 해야 하다니
‘ 당신 인생도 고달프다. 에휴 '
그렇게 우리는 하나 둘 비틀거리는
팔자걸음으로 느릿느릿 도포자락 대충
걸치고 나섰고 우리를 보는 이들은
혀를 끌끌 찰 뿐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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