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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마지로의 만려일작(萬慮一作)

낙조십일영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일반소설

완결

견마지로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2
최근연재일 :
2022.08.29 10:35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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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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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9,279

작성
22.08.1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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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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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음력 칠월 열 엿새(3)

DUMMY

“문하시중께서는 문을 여십시오!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모여 아비 잃은 자식처럼 길에 서서 오직 자신을 돌봐줄 이가 없음에 안타까워하고 있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십니까?”

굳게 닫힌 어배동의 문 앞에서 한 자줏빛 관복을 입은 사내가 회색 수염을 꿈틀대며 목청을 높여 소리를 질렀다. 그가 말을 마치자 뒤에 서 있던 다른 대소신료들이 일제히 입을 열며 대문을 향해 소리쳤다.

“문하시중께서는 문을 여시오!”

“문하시중께서는 문을 여십시오!”

그 목소리를 듣고 있던 백성들 역시 고관대작들의 구령이 끝나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대문을 바라보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문을 여시오.

문을 여시오.

사람들의 목소리가 우레가 되고 바람이 되어 어배동의 길을 가득 메우니 잔잔하게 흐르던 바람은 목소리를 타고 시나브로 힘을 얻어 사방을 어루만지며 나뭇가지들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불어오는 바람 사이로 날카로운 쇳덩이 하나가 몸을 비틀어 예기(銳氣)를 띄고 바람과 공간을 베어 날아가 앞에 있는 적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길고 무거운 장도의 찌르기는 이해불가할 정도로 경쾌하고 정확하니 적수의 요혈을 한 방에 뚫고 생명을 앗아갈 재주가 충분하였다.

하나 들어오던 장도는 묵직한 대도의 날에 휘감겨 아래로 떨어지며 그 기세를 잃었다. 예리하던 장도의 찌르기를 한 번 손놀림으로 무기력하게 해버린 대도의 주인은 참을성이 깊었다.

노인은 오직 장도의 공격 한 번을 기다리며 단순에 칼날을 둔하게 하며 자신의 무거운 날을 상대방의 목에 가져가는 데 성공하였다. 장도보다 무겁지만 막아내기 힘든 대도의 패기(覇氣)가 앞으로 밀려들며 장도를 쥔 사내의 목을 한 번에 취하였다.

그러나 장도의 주인 역시 들어오는 대도의 끝을 수염 한 치 사이로 피하더니 자신의 장도를 땅에서 끌어내 하늘로 들어올리며 비어 있는 대도사내의 어깨를 향해 빗겨 올려 베니 대도의 노장은 들어오는 장도를 다시 한번 자신의 칼로 막으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실로 더하고 뺄 것이 없는 검투였다.

“좋을시고!”

낡은 대도를 지니고 있는 노인의 터럭 사이로 자기도 모르게 쾌재가 흘러나왔다.

그에 비해 장도를 지닌 거한은 여전히 표정을 굳힌 채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노장을 보며 가슴 앞으로 칼을 모아쥐었다. 추성 김두북의 눈이 매섭게 이방과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너를 이 자리에서 만난 것이 안타깝구나!”

사내들의 쇳덩이가 다시 서로 부딪히며 울음소리를 내었다. 두 사내의 발이 땅을 디디며 파고 들어 흙을 몸으로 누르고 발자국을 내었다.

발이 떨어지고 발자국이 땅에 남는 순간, 다른 사내가 내딛는 또다른 발걸음은 땅을 사뿐히 밟고 자신의 자취를 굳이 남기지 않은 채 다시 그늘 속으로 몸을 움직였다.

사내의 눈 앞에 사대(射臺) 앞을 지키고 있는 또 다른 위사가 다가오는 사내를 보며 말을 걸었다.

“이보게. 이곳은 내가 있으니 다른 곳으로 가서 번을 서게나.”

“바꾸라는 말을 아직 듣지 못하였소?”

사내의 말에 위사는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끔벅이며 사방을 돌아보았다.

“아니, 내가 여기 온 지 반 각도 안 되었는데 무슨 소리···.”

순간, 젊은 사내의 몸이 거짓말처럼 위사의 앞으로 미끄러지듯 다가오더니 손에 숨기고 있던 장도(粧刀)를 그대로 뻗어 위사의 명치에 박아넣었다.

위사는 입을 떡 벌리고 눈을 홉뜬 채 자신에게 칼을 박아넣은 사내의 얼굴을 뚫어지라 바라보았지만 이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위사를 눈깜짝할 새에 처리한 그림 같은 용모의 사내는 위사를 작은 덤불 안에 밀어넣고는 천천히 활집에서 활을 꺼내들었다. 사대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내는 활과 화살을 든 채 사대를 지나 활터 과녁이 있는 곳까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내의 눈에 사대 옆으로 언덕 아래에 펼쳐진 기와지붕들이 들어왔다. 십영 오대제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자신의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문하시중께서는 문을 여시오!”

“대감! 문을 여십시오!”


칼자루를 잡은 두 손이 보이지 않게 돌아가며 들어오는 대도의 칼날을 막아내었다.

장도의 칼날을 그대로 대도의 날을 타고 그대로 앞으로 나가며 대도의 손잡이를 쥔 김두북의 손을 향했다. 그 순간 대도의 날이 아래로 힘을 받으며 땅을 향해 떨어졌고, 그 서슬에 장도 역시 방향을 잃고 아래로 날이 떨어졌다.

순간 대도가 바다에서 솟구치는 용처럼 그대로 위로 뻗으며 칼날이 이방과의 목을 향해 올라갔다. 이방과는 한바퀴 몸을 돌려 대도의 칼날을 피하고 회전하며 자신의 칼날을 돌려 김두북의 허리를 베어들어갔다.

순간 처렁하는 소리와 함께 대도와 김두북의 녹슨 경번갑에 칼날이 막혔다. 이방과의 눈살이 찌푸러들었고 김두북의 늑대같은 눈초리에 힘이 들어갔다.


“문하시중께서는 문을 여시오!”

“문하시중께서는 문을 여시오!”


하얀 손가락에 잡힌 활시위가 바람에 날리는 비단처럼 화살을 물고 부드럽게 뒤로 당겨지자 활은 완만하게 휘기 시작했다.

오대제는 자신의 활을 쉽게 만작하고 호흡을 가다듬고는 아래를 향해 시선을 내렸다. 활시위가 천천히 시선을 향해 아래를 향하였다. 사내의 눈과 화살촉이 향한 곳은 다름아닌 어배동의 후원 아래, 덧창이 열려 있는 사랑채였다.

사랑채의 열린 창문 안으로 한 사내의 등이 보였다. 거대한 등의 주인은 다름아닌 문하시중 이성계였다. 오대제는 이를 악물었다. 조금전까지 불어오던 바람이 일순간 멈추었다.

호기(好期).

오직 이 순간을 위해 사내는 평생의 무예를 닦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내의 손에 잡힌 화살 한 방이 관중(貫中)할 때, 고려 천하는 다시 구원받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애오라지 오대제 개인의 실력과 하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길 뿐이었다. 이 정도 거리라면 분명 관중이 나올 것이었다.

아니, 나와야 하였다. 오대제는 다시 숨을 가볍게 내쉬고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

열조의 성덕(聖德)들이시어. 오직 이 한 발을 보살펴주십시오.

오대제의 눈이 순간 부릅떠지며 화살을 잡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그 때였다.

조용히 앉아있던 이성계의 몸이 슬쩍 옆으로 틀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와 함께 이성계의 등이 옆으로 움직이며 터럭 허연 이성계의 수염과 부릅뜬 눈이 오대제를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오대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그 순간 오대제는 이성계의 두 손에 활이 쥐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오대제가 들고 있던 활의 양낭고자가 산산이 부서지며 활줄이 풀리고 화살이 땅바닥으로 꽂혔다. 오대제의 머리 위로 양낭고자를 박살낸 화살이 날아가고 있었다.

오대제가 멍하니 자신의 손에 잡힌 박살난 활을 쳐다보는 순간, 다시 날카로운 바람이 자신의 옆을 스쳐갔다.

순간 허리띠가 찢어지고 환도의 칼잡이가 부서지며 화살에 박힌 채 뒤로 날아가버렸다. 등 뒤에 매달려 있던 동개가 그대로 땅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오대제는 멍하니 사랑채를 바라보았다. 이성계는 활시위에 살을 얹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오대제를 더 바라보고 있지도 않았다.

화살 두 발이면 모든 것이 충분하다는 듯, 이성계는 다시 몸을 돌리고 넓은 등을 오대제에게 보였다. 오대제는 그런 이성계를 커다랗게 뜬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손에 들렸던 부서진 활이 땅으로 떨어졌다. 오대제의 입이 부르르 떨리더니 메말라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늘이 나를 버리는구나. 하늘이 고려를 버리는구나!”

신궁(神弓)이성계의 화살 두 발은 오대제의 생명을 가져가는 대신 사내의 정신을 완전히 파괴해 놓았다. 오대제의 눈에 있던 총기는 이미 흐려져 있었다.

사내는 멍하니 사랑채를 내려 보다가 천천히 뒤로 몸을 돌렸다. 사내의 뒤에는 이미 많은 사내들이 서 있었다.

“위사까지 죽이고 들어올 줄은 몰랐네. 네놈 죄는 이제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고.”

이상겸을 위시한 척오조원들은 모두 살기 띈 눈을 한 채 그의 마지막을 예비하고 있었다. 그들을 묵묵히 바라보던 오대제의 입에 뜻하지 않게 허탈한 미소가 새겨졌다.

사내는 자신의 두건을 벗어던졌다. 타래 같은 머리가 흩어져 실바람에 풀어졌다.

“애초에 하늘은 사람에게 후박(厚薄)이 없거늘···”

장천보가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사수시 주부 오대제,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오대제는 장천보를 보더니 덤덤히 입을 열었다.

“나라를 지키지 못한 것보다 큰 죄가 있겠느냐. 내 그 죄가 지엄함을 알고 있으니.”

사내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칼날에 개의치 않았다. 머리를 풀어헤친 옥골선풍의 사내는 고개를 돌려 멀리 만월대가 위치한 송악산(松嶽山) 중턱을 바라보았다.

사내의 눈에서 어느 덧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내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마지막으로 사직에 예를 올리게 해 주시게.”

그 때였다.

갑자기 시퍼런 칼 한자루가 그대로 오대제의 아랫배 깊숙이 밀려들어왔다.

말할수 없는 고통과 충격이 오대제의 눈을 화등잔만하게 만들며 사내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격렬한 고통에 온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오대제는 자신의 몸에 칼을 박아넣은 이상겸의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이상겸은 그의 눈을 보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저항도 못하는 여자의 목을 벤 것은 죄도 아니냐? 그런 깜냥으로 사직에 절을 하겠다고? 너 같은 표리부동한 놈의 절을 죽은 왕들이 받는다더냐?”

눈을 부릅뜬 이상겸의 칼이 쑥 뽑혀나왔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다시 밀려오며 오대제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눈만 희번덕 거린 채 땅을 바라보며 진땀을 흘리는 오대제를 보던 이상겸이 환도를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지랄말고 저승 가서 왕도관에게 죄송하다고 아뢰라! 이름은 왕규영이다. 왕규영!”

이상겸이 환도를 그대로 아래로 뿌렸다. 몸에서 떨어진 오대제의 머리가 땅에 닿았다.

모여있던 척오조의 사내들은 덤덤히 그 광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칼을 칼집 안에 넣었다. 장천보가 여전히 이쪽을 보고 있는 견태고와 이성계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 광경을 빠짐없이 보고 있던 이성계가 몸을 다시 틀어 자신의 옆에 무릎꿇은 견태고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대를 황산에서 구명했다고 했던가. 오늘 그대는 나를 구했구나.”

견태고가 이성계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장군의 무예가 스스로를 구하신 것뿐입니다.”

“난 늙었다. 누군가 지표(指標)를 일러주지 않으면 이젠 제대로 맞추지 못하느니.”

여전히 사랑채의 앞에서는 문을 열라는 백성들과 신료들의 외치는 소리가 파도처럼 계속 몰아치는 중이었다. 이성계는 활을 내려놓고 눈을 감더니 고개를 숙였다.

밀려드는 사람들의 고함은 마치 늙은 장수를 대적하러 달려드는 무형의 군세 같았으니 노장은 자신이 더 자리에 앉아있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견 지유, 그대는 어찌 생각하느냐.”

호랑이가 낮은 소리로 울었다. 사내의 말에 견태고는 머리를 숙이고 두 손을 땅에 짚었다. 사내의 몸짓을 보고 있던 이성계의 부인 강씨가 견태고를 물끄러미 노려보았다.

사내는 이 자리에서 무엇을 말해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

“소졸(小卒)이 무엇을 아뢰리까.”

“전우(戰友)로 묻겠네. 내가 어찌하면 좋을꼬?”

이성계의 말에 견태고는 슬쩍 고개를 들고 늙은 호랑이를 바라보았다. 사각의 얼굴에 풍성한 수염, 그리고 넓은 어깨는 예전 황산에서 봤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터럭의 색깔만 변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호랑이의 눈빛은 변해 있었다. 황산의 피바다 속에서 올려보았던 이성계의 두 눈은 결코 외적에게 백성의 생명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불퇴전의 각오 하나가 오롯이 들어있었지만 지금 안온한 방 안에서 바라본 이성계의 눈 속에는 견태고가 측량할 수 없는 욕망과 슬픔과 위엄과 절개가 같이 혼재되어 있었다.

견태고는 눈을 질끈 감고 다시 고개를 숙이며 입을 벌렸다.

“이미 퇴로는 끊겼사옵니다. 장군.”

강씨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하며 견태고를 노려보았지만 이성계는 견태고의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왕을 폐위시킨 늙은 고려의 장수는 물끄러미 방문을 바라보며 문 밖에서 들려오는 함성을 들었다. 늙은 범이 다리를 펴고 허리를 곧게 세웠다.

강씨가 일어선 이성계를 올려다보았다.

“문을 여시오 부인. 출진(出陣)이오.”

이성계의 명을 받은 강씨가 깊게 고개를 숙인 뒤 일어나 바깥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순간 천지를 뒤흔드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섞여 좁은 방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데, 이성계는 그 목소리를 온 몸으로 받으며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해는 지고 있었다. 낙조(落照)가 서서히 붉게 개경 사방을 물들이는 중이었다. 문득 이성계의 입이 열렸다.

“서주의 견태고. 그대와 등을 맞대고 싸운 것을 기억하겠네.”

늙은 장수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의 모습을 본 노복들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대문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었다. 이성계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집의 문이 하나씩 열리고 가신들의 그의 뒤에 붙었다.

이성계에게 나오라 소리치는 백성들의 소리에 맞춰 이성계가 발을 내딛을 때마다 집의 문이 하나씩 열리며 사람들이 뒤에 붙었다.

결국 이성계가 대문 앞에 섰을 때 노복들이 문을 열자 장려한 낙일(落日)이 사내의 온 몸을 휘감는데, 그 순간 늙은 문하시중의 신위를 목격한 대소신료들과 백성들의 입은 일제히 하나가 되어 한 소리를 외쳤다.

“만세!”

“만세!”

“만세!”

대도의 빛줄기가 그대로 이방과를 향해 뻗어 들어오는 순간, 이방과의 장도가 시선보다 빠르게 움직이며 어깨 위에서 들어오는 대도를 그대로 받아내었다.

태산이 쏟아지는 압력이 이방과의 두 손과 어깨에 얹혔다. 이방과는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뜨더니 그대로 자신의 팔에 혼신의 힘을 모아 내려친 대도를 그대로 들어올렸다.

김두북의 눈이 슬쩍 터졌다. 순간, 이방과의 두 팔에 잡힌 장도가 그대로 대도를 올린 채로 사선으로 떨어지며 다시 김두북의 옆구리를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베어들어갔다.

순간 녹슨 김두북의 경번갑이 터져나가며 장도가 그대로 김두북의 몸을 베어들어갔다 다시 반대로 빠져나왔다.

선혈이 하늘에 퍼지고 땅에 쏟아지자 대도가 하늘을 날아 담벽에 부딪히고는 불품없이 땅바닥에 놔뒹굴었다. 김두북은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이방과를 바라보았다.

늙은 장수의 입에서 신음과 한숨에 새어나왔다.

“하늘이여!”

김두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짙게 깔린 나뭇가지 위로 푸르고 반짝이는 하늘이 노인의 눈에 들어왔다.

“이 나라를 굽어살피시오!”

이방과는 이를 악문 채 하늘을 바라보는 김두북을 향해 장도를 쳐들었다.

곰 같은 사내의 손에 들린 장도가 그대로 다시 아래로 떨어지며 늙은 장수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늙은 장수의 몸이 뒤로 넘어가자 이방과는 장도를 짚은 채 풀썩 자신도 무릎을 꿇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더 이상 몸을 지탱할 수가 없었다.

“다 끝난 것인가.”

사내는 타는 듯한 갈증을 참으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사방에서 만세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오는 중이었다.

해가 뜨기 전에 움직였던 하루의 행보는 석양이 지는 저녁이 되어서야 끝이 났고, 조용히 시작되었던 대소신료들의 행차는 백성들의 환호로 마무리 지어지는 중이었다.

이방과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사내의 입에서 죽은 노장의 말이 그대로 흘러나왔다.

“······하늘이여.”

어두운 골목이 끝나고 환한 햇살이 밝게 들어찬 대로에는 어느 덧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부서진 갑옷과 내동댕이쳐진 대도와 숨이 끊긴 고려의 마지막 무장의 시신을 뒤로 한 채, 이방과는 천천히 밝은 길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모든 것이 낙조 아래에서 새롭게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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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결미(結尾): 조선 태종 십삼년 음력 십일월 스무 엿새 +20 22.08.29 451 31 21쪽
120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열 닷새(6) +2 22.08.29 249 17 19쪽
119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열 닷새(5) +4 22.08.26 250 14 15쪽
118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열 닷새(4) +2 22.08.26 223 11 15쪽
117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열 닷새(3) +5 22.08.25 237 13 16쪽
116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열 닷새(2) +4 22.08.25 229 12 15쪽
115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열 닷새(1) +3 22.08.24 239 17 13쪽
114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열 나흘(4) +2 22.08.24 221 13 14쪽
113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열 나흘(3) +5 22.08.23 241 14 12쪽
112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열 나흘(2) +3 22.08.23 215 12 13쪽
111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열 나흘(1) +4 22.08.22 260 15 15쪽
110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열흘 +1 22.08.22 250 14 16쪽
109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초사흘 +5 22.08.19 288 16 12쪽
108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초하루 +2 22.08.19 278 12 15쪽
» 음력 칠월 열 엿새(3) +7 22.08.18 280 17 16쪽
106 음력 칠월 열 엿새(2) +2 22.08.18 257 13 14쪽
105 음력 칠월 열 엿새(1) +3 22.08.18 256 11 13쪽
104 음력 칠월 열 이틀 +3 22.08.17 277 14 14쪽
103 음력 칠월 여드레 +4 22.08.17 264 13 14쪽
102 음력 칠월 닷새 +4 22.08.16 263 15 12쪽
101 음력 칠월 나흘 +1 22.08.16 248 13 13쪽
100 음력 유월 스무 나흘(5) +5 22.08.15 279 18 17쪽
99 음력 유월 스무 나흘(4) +3 22.08.15 257 12 13쪽
98 음력 유월 스무 나흘(3) +4 22.08.12 284 18 13쪽
97 음력 유월 스무 나흘(2) +2 22.08.12 256 9 14쪽
96 음력 유월 스무 나흘(1) +1 22.08.11 276 13 13쪽
95 음력 유월 스무 이틀 +3 22.08.11 264 12 18쪽
94 음력 유월 스무 하루 +3 22.08.10 288 1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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