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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마지로의 만려일작(萬慮一作)

낙조십일영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일반소설

완결

견마지로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2
최근연재일 :
2022.08.29 10:35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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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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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49,279

작성
22.08.1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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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음력 유월 스무 이틀

DUMMY

네 세가의 자제들은 모두 창령방이 아닌 추동으로 압송되었다. 이방과는 세가의 자제들을 창령방으로 압송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의외로 이번 결정을 극력반대한 것은 다름아닌 이방원이었다.

“이미 형님께서는 판밀직사사의 직이 아닌 삼사의 우사로 벼슬이 바뀌셨습니다. 삼사 우사의 위계가 높지만 사람을 치죄할 명분은 오히려 판사사보다 떨어지니 창령방에서 고신을 했다가는 대간들의 탄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 밀직제학이 삼사 우사보다 낫다는 말이냐?”

이방과의 말에 이방원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람들이 저를 밀직제학으로 보겠습니까? 그저 정달가를 백주에 때려잡은 이방원으로 보겠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방원의 말에 이방과의 표정이 급격하게 찌푸려졌다.

“방원아.”

“아닙니다. 형님. 애초에 이번 계획에 형님의 목숨을 끌어들여 얼토당토않은 계획을 벌인 것이 접니다. 결자해지(結者解之)할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방원은 형에게 한 번도 가시 돋친 말을 내뱉지도, 불손한 언동을 하지도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더라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강경함이 있었다. 이방과는 문득 그런 동생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사내의 입에서 한숨이 섞여 나왔다.

“네가 올해 들어 참으로 많이 바뀌었구나.”

“어려운 세월 아니옵니까.”

“어리석고 아둔한 형이 널 이리 만든 것이 아닌지 부끄럽고 두려울 뿐이로다.”

“아닙니다. 우제(愚弟)가 갈 수 있는 길이 적고 성정이 급하여 이리 되었습니다.”

“어찌 부형(父兄)에게 책임이 없다 하겠느냐.”

형제는 말을 맺었다. 침묵이 두 사람을 감쌌다. 이방과는 등을 돌리고 문을 나섰고, 이방원은 들어오는 척오조와 사대세가의 자제들을 문 안으로 들였다.

이방원은 말을 타고 천천히 북쪽으로 올라가는 형의 뒷모습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이방원의 얼굴에 서린 표정은 실로 많은 것이 들어있었는데, 얼핏 보면 그 어느 감정도 어울리지 않는 무표정 같기도 하였다. 천천히 추동의 거대한 대문이 닫히며 안팎의 소리가 나뉘었다.


*----------*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냐. 이런 곳에 우리를 가두고 무엇을 하겠다는겐가?”

“이놈들! 지금 사람에게 무슨 꼴을 보여주려는 것이야!”

“나와라! 당장 내 순군부에 달려가 이 무도한 일을 발고해야겠다!”

추동의 별채가 아닌 창고 안으로 인도된 다섯 명의 세가 자제들은 자신들이 발을 들인 곳이 창고인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을 데려온 척오조를 보며 눈을 부라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 산비탈 별제(別第)에서 수하들이 죽어넘어지는 꼴을 보고서도 사내들은 지금 자신들이 어떤 처지에 처해 있는지를 알 지 못하는 듯 보였다.

어쩌면 알면서도 세가 나름대로의 저항을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 사내들의 망발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견태고가 손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세가의 사내들이 견태고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긴 곳은 거적자리가 잔뜩 쌓여 있는 곳이었는데 세가의 사내들은 견태고가 가리킨 곳을 보자 더욱 눈에 쌍심지를 돋우고 이를 드러내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 네놈이 우리를 능멸하는가! 장하(杖下)에 죽어봐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창령방의 하인이 얼마나 대단한 권세인지 보자!”

순간, 견태고의 손이 미끄러지듯 아래로 내려가더니 칼집에서 환도를 부드럽게 뽑아들었다.

그것이 신호인 듯 뒤에 서 있던 척오조원 모두 동시에 칼을 칼집에서 잡아 빼는데, 칼이 칼집에서 빠져나오는 소리를 듣고 별초의 절도있는 몸동작을 본 세가의 자제들은 일순간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모두 저 곳에 가서 앉아 있으시오. 한 사람씩 호명을 하면 앞으로 나와 묻는 말에 답하시오. 이곳에서 더 시간을 지체하면 칼이 말을 대신할 것이오.”

“아니······이보시게. 저기···..”

“세가의 자제들은 귀가 모두 막혔는가? 칼로 귓구멍을 소제해 줘야 말을 알아 듣겠구만?”

이상겸의 눈이 기분나쁜 빛을 띠며 번득이자 세가의 사내들은 모두 입을 닫고 엉거주춤 거적자리가 쌓여 있는 곳으로 가 주춤대며 거적 위에 쪼그리고 앉았다. 장천보가 슬쩍 종이를 보더니만 사내들의 이름을 호명하였다.

“구윤사가 원당인 하씨 집안은 나오시오.”

일순간 창고안은 서늘한 공기가 감돌고 불려 나온 사내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견태고를 비롯한 사방의 사내들을 바라보는데, 동료를 잃은 척오조원들의 눈매는 말 그대로 며칠 굶은 늑대나 진배없었다.

하씨 집안의 사내 중 그나마 나이가 있어 보이는 자가 애써 용기를 내어 견태고를 향해 말문을 열었다.

“이 이보시오. 아무리 세사가 험하기로 이렇게 사대부를 함부로 불러들여 협박하는 것이 백주에 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이곳은 추동이오. 그대들이 들어온 곳은 이방과 대감의 집이 아니라 이방원 영감의 집이오.”

견태고의 짧은 말 한 마디에 하씨 집안의 연장자는 얼굴빛이 해쓱하게 변하며 입을 다물었다.

이방원이라는 이름은 누항의 백성들뿐 아니라 기와지붕 아래의 권문세가에도 이미 오한이 드는 악명이 되어 있는 지 오래였다. 견태고는 상대방의 의지가 꺾인 것을 확인하자 재차 말을 이었다.

“지금 여기 모인 네 가문이 자신들의 재산으로 역도 오현도의 살업에 지원하여 중대부 서정영, 영원장군 정백중, 중승 이진헌, 통례문부사 김성진의 죽음을 도왔다는 혐의를 받고 있소이다. 그대들이······”

“잠깐! 그것은 모함이오! 우리는 그들의 죽음에 아무런 관련이 없소이다!”

“맞소이다! 그런 증거가 있소이까! 이것은 과한 처사 아닌가!”

견태고가 채 밀을 잊기도 전에 앞에 불려나온 하씨 집안의 젊은이와 거적자리 위에 앉아있던 세 명의 사내들이 일시에 입을 열었다. 이상겸이 그들을 보더니 이를 부드득 갈며 빽 고함을 질렀다.

“조용히 안 하느냐! 어디 추동에서 언성을 높이는가!”

이상겸의 일갈에 순식간에 창고 안은 조용히 변하였다. 견태고는 자신을 여전히 노려보고 있는 하씨 가문의 어린 자제를 보더니 또렷한 말투로 또박또박 말을 내기 시작했다.

“대중대부 오현도가 살수들을 숨기고 살수들의 재정을 지원한 무량원에 그대들의 돈이 관련되어 있소이다. 무량원은 그대들에게서 들어온 네 갈래 큰 돈을 오현도의 원당에서 들어온 것으로 위조하여 장부를 만들었으나, 오현도의 원당은 이미 폐사(廢寺)나 마찬가지였소. 그 네 갈래 큰 돈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찾아낸 것이 여기 모인 공자들의 가문이오.”

순간 견태고를 노려보던 하씨 집안의 젊은이는 안색이 변하였다.

“증거를 보여달라고 하면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소이다. 우리는 무량원의 장부를 압수하여 그곳에서 재물이 들고난 흐름을 모두 추적하였소. 그 중에 구윤사의 돈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쓰였는지조차 말할 수 있소이다. 한번 장부를 대조해 보며 심문을 해 보겠소?”

“아니, 저기 그러니까···. 내가 돈의 흐름은 잘 모르는······”

순간 모여 있던 세가의 자제들은 모두 낭패라는 듯 얼굴표정이 급격하게 변하였다.

생김새와 차림으로 보건대 아무런 학문없이 힘만 믿고 자신들을 끌고 온 것처럼 보이던 우락부락한 장정들의 입에서 예상 외의 똑부러지는 말과 증거에 대한 내용이 흘러나오자 오히려 말문이 막힌 것은 사대부들이었다.

일이 이렇게 흘러가자 거적자리 위의 사내들이나 앞에 불려나온 사내들이나 누구 하나 이제 입을 열려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이제 하나요.”

“그게···뭐요?”

이제 하씨 집안의 사내들은 체념한 듯 보였다. 견태고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오현도가 마지막으로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말하시오. 그의 별장과 원당은 이미 모두 수색을 마쳤소이다.”

그때였다. 창고의 문이 활짝 열리며 붉은 허리띠에 푸른 답호를 두르고 문라건을 쓴 사내가 뒷짐을 진 채 천천히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다름 아닌 이 집의 주인, 이방원이었다. 그는 견태고와 이상겸을 보고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하씨 집안의 사내 둘을 보며 슬쩍 고개를 숙여보였다.

“이방원이오.”

“아, 네! 네! 영감의 이름은 익히 알고 있사옵니다!”

“제 이름을 잔칫집에서 들으신 거요 아니면 상문(喪門)에서 들으신 거요?”

이방원의 보며 입을 열었던 하씨 집안의 연장자는 웃는 이방원의 얼굴을 보다 자기도 모르게 무릎이 휘청거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냉랭하니 모든 것이 얼어붙을 것 같은 한기가 돌았다면 지금은 마치 화약이 가득 차 있는 곳에 불씨가 하나 들어온 듯한 팽팽한 긴장감이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불려온 다섯 명의 사내는 물론이요 그들을 감시하는 척오조 역시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방원은 그들을 바라보더니 예의 웃는 얼굴이 되어 사색이 된 권문세가의 사내들을 다독였다.

“이거 참, 살풍경하기 그지없구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우리 사람들이 공자 여러분의 목이라도 베러 온 것처럼 보일 지경이오.”

이방원의 입이 열릴 때마다 세가의 사내들은 점점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는데, 이방원은 그런 사내들의 모양새를 보는 것을 즐기는 듯싶었다.

이방원은 잔잔히 흐르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견지유가 말은 부박하게 하였지만 그것이 우리가 여러분께 바라는 것이오. 제대로 협조만 해 주신다면 그 보답은 잊지 않고 해 드리겠소이다.”

“보답이라 하셨습니까?”

거적자리에 앉아있던 사내 하나가 문득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숭문동 보덕사에 원당을 지니고 있는 주씨 집안의 동량이었다. 사내의 말에 이방원은 고개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마따나 여러분이 관원들을 해한 흉수를 도운 것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는 알 지 못합니다. 분명 그 돈이 괴수 오현도에게 전해진 것은 사실이오. 하지만 우리가 무슨 연유로 그들에게 귀하들이 재물을 줬는지는 모르는 일 아닙니까?”

이방원의 눈이 번득였다.

“그저 해아도감에서 맡긴 아이들이 불쌍해서 관음행의 발로로 양식들을 전해주었는데 그것을 오현도가 전횡하였는지. 아니면 오현도가 지니고 있는 발칙한 야심에 동조를 한 것인지 우리는 모르지요.”

순간 네 가문의 사내들 모두 눈빛이 번쩍였다.

이것은 이방원이 내 주는 신호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앞으로 불려나온 하씨가문의 사내들도 얼굴에 혈색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방원이 그들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씩하니 미소를 짓는데, 이방원의 매서운 눈 아래 귀밑까지 올라온 시뻘건 입술은 몇 마디의 협박보다 더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다.

“게다가 여러분은 개경에서도 알아주는 문예(文藝)를 갖춘 세도들 아닙니까? 여러분이 설마 천하의 화평을 위해 불철주야 일하는 재추와 문하시중 대감에게 해코지를 하기 위해 적도들과 연합했다는 오명을 이 이 모(某)는 듣고 싶지는 않은 겝니다.

“아, 물론이오! 우리가 어찌 문하시중 대감의 신변을 위협하는 일을 하겠습니까!”

앵화사를 원당으로 쓰는 이씨 집안의 동량이 입을 열었다. 그를 시작으로 앉아있던 네 세가의 동량들은 모두 입이라도 맞춘 듯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방원을 향해 말을 걸기 시작했다.

“세상에, 우리 가문은 몰랐습니다! 무량원에 들어간 우리 재물이 그런 흉악한 일에 쓰였다니!”

“우리 김씨는 끝까지 추동과 어배동, 창령방에 충성을 맹세한 집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영감! 우리 가문을 이리 아껴 주시는데 우리가 무슨 일인들 협조를 못 하겠습니까?”

이방원이 슬쩍 견태고의 얼굴을 보더니 다섯 사람을 향해 말하였다.

“그렇다면 우리 척오조 지유가 말한 내용을 말씀해주실 수 있는 겁니까? 오현도의 굴혈(窟穴)이 대체 어디쯤에 있는 것이오?”

순간, 다섯명의 입이 동시에 한 곳을 말하였다.

“유암산(由嵓山)입니다!”

“앵계 북쪽의 유암산이오!”

“유암산에 사저를 들여 만든 사찰이 하나 있다고 하였소이다!”

“예전부터 유암산으로 들어와 회합을 논하자 한 적이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그 절입니다!”

이방원의 눈이 슬쩍 감기더니 이가 드러났다.

큰 문제를 해결하였다는 만족감이 사내의 얼굴에 드러났다. 그와 함께 뒤에서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던 척오조원 역시 하나 둘 머리를 맞대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암산이라면 태평관 옆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었다.

“유암산은 불사(佛事)가 창성한 산인데 개중 무슨 절인지는 모른단 말이오?”

하지만 그 이상에 대해서는 네 가문의 사내들이 아는 바는 없는 모양새였다. 이방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견태고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다음은 자네들이 수고를 하는 수 밖에 없겠구먼. 어쩔 수 없지. 이쯤에서 끝내세나.”

그 때 견태고의 입이 열리며 뒤로 돌아서는 이방원을 불러세웠다.

“영감. 저들의 처우는 어찌하실 셈이십니까?”

“다시 보내야지. 어쩌기는?”

견태고의 눈이 슬쩍 가늘어지며 이방원을 쳐다보았다.

“저들이 준 재물과 양식으로 살수들이 준동을 하였습니다. 결국에는 저들의 힘에 의해 삼사우사 영감이 습격을 당하였고 무량원의 아이들이 위해를 당할 뻔하였습니다.”

견태고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박중철과 왕도관이 죽은 이유도 결국은 저들의 협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냥 돌려보내시겠다는 것입니까?”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잣대가 다르시지 않습니까. 무량원의 아이들을 대하실 때는 위험하다 말씀하시고 저렇게 죄과가 뚜렷한 이들에게는 선처를 하심이 가하신 일입니까?”

돌아선 이방원 역시 견태고를 똑바로 바라보며 무덤덤한 목소리로 답하였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로 물을 수 있는 노릇이야. 나는 무량원이 아이들이 위험하다 여기지만 자네는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 하였어. 그리고 이번에는 자네가 저들을 처벌해야 한다 주장하지. 나와 자네, 누가 더 대국을 봤을 때 타당한 생각을 가졌다고 말할텐가? 무엇이 이 나라에 더 낫겠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과 재물과 권세가 있는 세가를 같은 선에서 비교하십니까?”

“어떤 것이 후일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가 중요한 것일세.”

“그게 어찌 군자의···..”

이방원의 눈썹이 슬쩍 위로 올라서는 순간, 갑자기 한 사람이 창고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견태고와 이상겸의 뒤로 들어왔다. 추동의 노복이었다.

견태고 역시 이방과에 대한 말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 추동의 노복은 견태고와 이상겸을 보더니 짧게 말을 전했다.

“일전에 이리로 후송했던 적도가 깨어났습니다. 이행수께서 보고자 하셨던 그 자입니다.”

“누구?”

견태고가 의아하다는 듯 묻자 이상겸이 견태고를 보며 말했다.

“그 놈 있잖습니까. 중대부 서정영 대감의 노복으로 있던 놈 말이오. 그 놈이 객사를 습격했던 일당 중의 하나였지 뭡니까.”

견태고가 눈을 크게 뜨자 이상겸이 이를 악물었다.

“그 놈에게 나머지 위치를 알아봅시다. 한 칼에 죽었을 줄 알았더니 잔명이 길구먼.”

견태고가 이방원을 슬쩍 바라보자 이방원은 가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창고 밖으로 사라지는 견태고를 바라보던 이방원의 눈은 가늘게 좁혀지며 사라지는 사내의 등을 유심히 지켜보는 중이었다.


*----------*

“이거 생각보다 안 좋구먼.”

이상겸에게 베였던 서정영 대감의 노복은 말 그대로 눈만 뜬 것이었다.

가슴팍이 쪼개져 붕대로 칭칭 감아놓은 상체는 이미 시꺼멓게 피가 굳어가고 있었고 사내는 눈을 떴을 뿐 구명은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의식은 돌아왔는지 두 사람이 머리맡에서 웅얼대는 소리를 듣자 사내는 천천히 눈동자를 이상겸과 견태고를 향해 돌렸다. 그를 본 이상겸이 말문을 열었다.


“네놈. 대웅이라고 했으렷다. 중대부 서정영 대감의 하인 아니더냐.”

“그···군관 나리군. 내가 아직 살아있소?”

“네 놈이 서정영 대감와 그 독자 서무열이 움직이는 동선을 난천 왕형재에게 일러주었느냐?”

누워있던 사내는 슬쩍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움직였다.

“···..내가 남대가쪽으로 말머리를 돌렸지. 가증스럽게 선지교를 보면서 웃고 있었어.”

“서정영이?”

이상겸이 묻자 대웅이라 불린 하인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견태고가 옆에서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오현도의 산채가 유암산 어디쯤에 있느냐?”

“아직 오대부는 살아 계시는군.”

“곧 토포(討捕)될 것이다. 산채의 위치를 말하여라. 시간의 문제다.”

대웅이라 불린 하인은 견태고의 말에 피식 미소를 지어보였다.

“사내로 태어나 어찌 대의(大義)를 위해 움직인 사내들을 팔아먹을 수 있으랴.”

“서정영의 녹을 먹고 살았으면서 네가 대의를 논하느냐?”

순간 대웅의 눈동자가 견태고를 향해 돌아갔다. 이제 목숨이 경각에 달한 가노는 눈썹을 뻣뻣이 곤두세우더니 자신을 내려다보는 견태고의 시선을 지지않고 맞받았다.

“이씨가 고려 왕실을 잡아먹으려 하고, 충신 정몽주를 격살하였음을 고려백성 모두가 알고 있다. 참담한 광경을 보며 이가 갈리고 피가 끓는 것은 천하의 뭇 백성의 심정이다! 너같이 칼 한자루에 뜻을 팔아버린 썩은 군관이 무엇을 아느냐!”

이상겸이 눈을 둥그렇게 뜨며 대웅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대웅의 말은 그치지 않았다.

“내가 못 배운 하인이라고 그 정도도 모르겠느냐! 천하와 왕실이 기울어지면 치마두른 여인이라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그 기울어짐을 막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나는 그렇게 배웠다!”

“누가 그리 가르치더냐?”

“하늘과 땅이 그렇게 가르치지 않더냐!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

순간 왈칵 대웅의 입에서 선혈이 솟구치며 사내의 눈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주인을 배신하고살업에 참가했던 가노는 사자후를 토하며 마지막을 마무리지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견태고는 죽어 넘어간 대웅의 얼굴을 보며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이상겸이 죽은 대웅의 눈을 감겨주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극락왕생하거라. 난······모르겠다.”

두 사내는 한참동안 죽은 사내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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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99 포대화상
    작성일
    22.08.11 14:03
    No. 1

    사랑합니다 힘내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7 夢想成眞
    작성일
    22.08.12 00:28
    No. 2

    이항수말이 와닿네요. 각자의 정의가 인생에 따라 다 다르니 정답이 어디에 있으리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1 악지유
    작성일
    22.08.12 11:50
    No. 3

    지유, 견태고가 밴댕이 소인배 이방원이에게 맞서다
    찍혔으니 반드시 후과가 있을듯...
    견지유, 몸 조심하고 하루빨리 어디로든 튀어라!
    그래야 산다.

    찬성: 0 | 반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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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결미(結尾): 조선 태종 십삼년 음력 십일월 스무 엿새 +20 22.08.29 451 31 21쪽
120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열 닷새(6) +2 22.08.29 248 17 19쪽
119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열 닷새(5) +4 22.08.26 250 14 15쪽
118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열 닷새(4) +2 22.08.26 222 11 15쪽
117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열 닷새(3) +5 22.08.25 237 13 16쪽
116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열 닷새(2) +4 22.08.25 228 12 15쪽
115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열 닷새(1) +3 22.08.24 239 17 13쪽
114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열 나흘(4) +2 22.08.24 221 13 14쪽
113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열 나흘(3) +5 22.08.23 240 14 12쪽
112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열 나흘(2) +3 22.08.23 215 12 13쪽
111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열 나흘(1) +4 22.08.22 260 15 15쪽
110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열흘 +1 22.08.22 249 14 16쪽
109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초사흘 +5 22.08.19 288 16 12쪽
108 조선 태조 삼년 사월 초하루 +2 22.08.19 278 12 15쪽
107 음력 칠월 열 엿새(3) +7 22.08.18 279 17 16쪽
106 음력 칠월 열 엿새(2) +2 22.08.18 257 13 14쪽
105 음력 칠월 열 엿새(1) +3 22.08.18 256 11 13쪽
104 음력 칠월 열 이틀 +3 22.08.17 277 14 14쪽
103 음력 칠월 여드레 +4 22.08.17 263 13 14쪽
102 음력 칠월 닷새 +4 22.08.16 263 15 12쪽
101 음력 칠월 나흘 +1 22.08.16 248 13 13쪽
100 음력 유월 스무 나흘(5) +5 22.08.15 279 18 17쪽
99 음력 유월 스무 나흘(4) +3 22.08.15 257 12 13쪽
98 음력 유월 스무 나흘(3) +4 22.08.12 284 18 13쪽
97 음력 유월 스무 나흘(2) +2 22.08.12 255 9 14쪽
96 음력 유월 스무 나흘(1) +1 22.08.11 275 13 13쪽
» 음력 유월 스무 이틀 +3 22.08.11 264 12 18쪽
94 음력 유월 스무 하루 +3 22.08.10 288 1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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