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XXX - 72화 땅울림 (2)
- 72화 땅울림 -
늑대 무리는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이번 일은 늑대 무리에게 있어선 연례 행사와 같았다.
봄이 되면 풀을 뜯기 위해 소떼들이 서쪽으로 이동해 온다. 물론 이미 서쪽의 풀은 뜯어 먹은 후다. 이 소떼들은 수백마리나 되는 엄청난 무리인데 하루만에 근방의 풀들을 모조리 뜯어 먹는다. 때문에 그들은 매일 새로운 풀을 찾아 떠돈다.
그런데 이맘때가 되면 이 소떼들이 바로 늑대 무리의 영역에 들어오는 시기가 된다. 그 말은 곧 사냥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남의 영역으로 넘어가 사냥을 할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영역의 주인과 마찰을 빚게 되는 일이고 십중팔구 영역을 놓고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물론 늑대 무리는 이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별것도 아닌 일에 무리의 힘이 약해진다면 북쪽 산에 사는 갈색의 곰이 슬금슬금 자신들의 영역을 노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시기에 쓸데없이 다른 영역을 침범해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조금만 참아 소떼들이 자신들의 영역으로 넘어오기만 하면 그때 부터는 그들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터였다.
소떼는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이동한다. 그리고는 다시 남쪽으로 이동해 강을 건넌다. 그리곤 남쪽 어딘가에서 겨울을 보내고 다시 서쪽으로 해서 늑대 무리의 영역인 서쪽으로 이동한다. 이것이 소떼의 이동경로였다.
이중 늑대 무리는 자신들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순간부터 남쪽의 강을 건너기 전까지 소떼와 함께 이동한다. 그리고 매일 소떼를 사냥한다.
소떼는 초식동물이지만 쉽게 볼만한 동물이 아니다. 늑대보다 훨씬 큰 덩치에서 나오는 힘과 단단하고 날카로운 뿔은 아무리 늑대라 할지라 하더라도 자칫 들이 받치기라도 하면 구멍이 나고 만다. 게다가 육중한 무게에 눌리기라도 하면 사망이다.
그런데다가 한두 마리씩 다니는 것도 아니고 수백 마리가 함께 다닌다. 소떼도 바보가 아니다. 매년 되풀이되는 일인데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생존을 위해 풀을 찾아 늑대 무리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새끼를 지키고 서로를 지킨다. 바로 똘똘 뭉침으로서 말이다.
그렇게 되면 늑대들도 소떼를 쉽게 볼수 없다. 그럼에도 늑대 무리가 이 기간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냥을 성공하기만 하면 무리를 배불리 먹일수 있는데다가 따로 사냥감을 찾으러 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백여 마리가 넘는 무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냥감을 찾는 것도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약한 사냥감만으론 부족한 사냥감각을 익힐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떼를 사냥하는 일은 일년 중 가장 중요한 일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올해에는 한가지 더 해야할일이 생겼다.
작년 여름, 자신들의 영역에 자리를 잡은 무시무시한 녀석. 그 녀석의 동태를 살피는 일이다.
우두머리 늑대는 절대 겁을 먹어서가 아니라 불필요한 다툼을 피하기 위해 넓은 영역중 발바닥만한 자리를 내줬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언제든 놈이 말썽을 부리거나 혹여 원 주인인 늑대 무리를 쫒아 내고 영역을 집어삼킬 생각을 한다면 언제든 놈의 목줄을 노리고 달려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놈에게 그런 의사가 있는지 확인하는게 우선이었다. 괜히 불필요한 싸움을 걸 필요는 없었다.
이번에도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우두머리 늑대와 젊은 늑대 그리고 늙은 늑대, 세 마리는 놈의 체취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늑대들은 거침 없이 산을 올랐다.
우두머리가 생각하기엔 분명 놈은 후각이 떨어지는게 틀림 없었다. 아마 자신의 몸에서 강력한 악취를 풍기니 그 자신도 살아남기 위해 후각이 퇴화한 것이다. 때문에 안심하고 놈에게 접근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뭔가 이상했다. 분명 비슷한 냄새는 맞는데 냄새가 너무 약해졌다. 지난번에 봤을 때에는 한동안 코가 마비될 정도로 강렬한 냄새를 풍겼는데 이번엔 그때에 비하면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 이유는 알수 없지만 어쨌든 그랬다. 게다가 또 다른 냄새도 맡아졌다.
우두머리 늑대는 조심스럽게 산을 올랐다.
놈의 모습이 보였다. 분명 작년에 보았던 그놈이 분명했다. 그런데 옆에 전에 없던 녀석이 생겼다.
킁킁.
이 미묘한 냄새는 암컷의 냄새다. 아직 다 자란지는 않은것 같지만 분명 암컷이 틀림 없었다.
설마 무리가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또 다른 냄새는 없었다. 저 앞에 있는 둘이 전부였다.
우두머리 늑대는 놈들의 동태를 살폈다.
놈이 웅크리고 있는 자리에는 언제 쓰러트렸는지 벌써 거대한 나무가 부러져 있었다. 게다가 놈은 계속 쓰러진 나무를 긁고 있었다.
부욱, 부욱.
그때마다 톱밥이 한웅큼씩 떨어져 나왔다.
놈은 나무를 아예 토막을 내고 있었다.
우두머리 늑대는 알았다. 놈이 왜 저런 고기도 안나오는 무의미한 짓을 하는 것인지.
저것은 분명 발톱이 가렵기 때문일 것이다. 우두머리 늑대도 경험한 것이다. 새로운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자랄 때에는 너무나 가려워 마구 땅을 파거나 나무를 긁는것이다. 게다가 간지러움이 사라지지 않으니 짜증이 나고 괜히 무리의 다른 녀석들에게도 힘을 쓰는게 거칠어진다.
꿀꺽.
좌우를 살피니 모두 알아차린듯 싶었다.
지금도 저 굵은 나무를 쓰러트릴만큼 강력한놈한테 더 강한 발톱이 나려는 것이다.
끼이이
“으르릉!”
어떤 놈이 약한 소리를! 우두머리 늑대는 젊은 늑대에게 경고했다. 앞으로 자신의 뒤를 이어서 늑대 무리를 이끌 녀석이 상대를 보고 겁을 먹다니. 있을수 없는 일이다. 설사 두렵다 하더라도 우두머리는 그걸 밖으로 내보여선 안됐다.
우두머리 늑대는 단번에 젊은 늑대의 목을 물고는 땅바닥에 눌렀다.
밑에서 젊은 늑대가 버둥거렸지만 감히 빠져나올 생각은 못했다. 우두머리가 훈계를 하는데 그것은 명령에 불복종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암컷은 수컷처럼 강한 힘을 가진건 아닌듯 고작해야 땅을 살살 파거나 폴짝 뛰어 나뭇잎을 따는게 전부였다.
우두머리 늑대는 만족스러웠다. 놈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아직은 적대관계는 아니지만 만약을 대비해 미리 알아두는것은 필요했다.
쿵.
그때 놈이 발톱질을 하던 나무가 다시 토막이 났다.
암컷은 약하지만 확실히 수컷녀석은 조심할 녀석이었다. 저정도 파괴력을 가진 녀석은 북쪽산의 갈색곰과 동쪽 끝을 다스리는 녀석 둘뿐이 없을 것이다.
우두머리 늑대는 몸을 돌렸다.
오늘은 녀석의 동태를 살피러 왔을뿐 아직 적대할 생각은 없었다.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곧 소떼가 영역을 넘어서게 되면 바쁜 사냥의 계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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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갈랑입니다.
앞으로 2010년까지 약 열흘. 남은게 20편 정도니 하루 두어편씩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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