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조회수 :
632,090
추천수 :
14,829
글자수 :
1,880,019

작성
17.09.21 03:09
조회
393
추천
9
글자
10쪽

공감자

DUMMY

“그러면 저는 기수들에게 돌아가 여왕님의 계획을 이야기해 주려 합니다.”

메담은 끝까지 사이가 틀어진 기수들과 나 사이의 중재역을 자청한다. 내가 기수들에게 돌아가 혼자 고안한 전략을 구구절절이 설명을 늘어놓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기수뿐만이 아니다. 오늘 밤은 왕을 위한 처소가 아닌 이곳에서 잠을 청할 생각이었다. 나의 명령에 충격을 받은 병사들이 몰려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를 말리면 모처럼 다시 다짐한 결심이 흔들릴까 두려웠다.

“메담. 혹시 지금이라도 돌아갈 생각은 없어?”

돌아서기 전에 나는 메담에게 한 차례 했었던 제안을 또 다시 던져본다.

“우리 둘 중 하나는 안전했으면 좋겠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말야. 나는 이미 아르만시아의 표적이 되었으니 돌아가는 쪽이 될 수 없잖아.”

메담이 표정이 굳어진다. 굳이 말을 듣지 않아도 그 얼굴만 보아도 충분히 대답을 예상할 수 있었다.

“여왕님은 저와 여왕님 중 누가 바르테인을 이끌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왕님이야말로 왕의 자격이 있는 유일한 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메담은 원래 내가 왕인 걸 은연중 부인하고 친구로서만 대하려 했었다. 그런데 내가 처음으로 희생을 선택한 시점부터 변했다. 그 누구보다 여왕 휘렌델에게 충성하는 인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그 충성심을 한 번 이용해보기로 했다.

“내가 지금 여왕으로서 당장 윈더민에 돌아가라고 명령을 내리면 어떻게 할 거야?”

“거부하겠습니다.”

메담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이제 나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충신이 된 줄 알았는데....

“친구로서 말입니다.”

메담이 뒤늦게 한 마디 덧붙인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완강한 태도를 보니 아무리 설득해도 소용없을 것 같다. 그는 진실을 알고 그림자 매에게 깊은 원한을 품게 되었지만 나의 대의를 위해 개인적인 복수심을 포기했다. 이는 충성을 말하면서도 나의 이상을 따라주지 않는 기수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점이었다. 그 진정한 충심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의 뜻을 따라주어야 할 것 같다. 더구나 내 계획대로만 된다면 그가 아르만시아와 맞붙을 일도, 위험해질 일도 없을 것이니 그를 억지로 돌려보낼 생각은 단념하기로 했다.

메담이 떠난 후 나는 진채에 돌아온 후 잠시 헤어진 알케니아를 찾으러 갔다. 과연 나 혼자서도 오오라를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가능하다면 아르만시아를 결계에 가둘 확률이 조금이라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오래 지나지 않아 나는 알케니아와 켈리트를 찾아냈다. 때마침 그는 마법으로 병사들의 편의를 도와준 후 샤나프린이 있는 쪽으로 오는 길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내일의 계획에 대해 설명해 준 후 내가 오오라를 사용할 수 있는지 물어 보았다.

“불가능합니다.”

안타깝게도 알케니아는 단 한 마디로 나의 기대를 일축시켜 버렸다. 하지만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하루 만에 그 이치를 깨닫는 건 무리겠죠? 샤나프린도 20여일이나 걸렸으니....”

“시간이 문제가 아닙니다. 여왕님은 애초에 마법사가 아닙니다.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재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인데, 여왕님은 그러지 못하셨죠.”

“듣기로는 당신도 처음부터 마법사는 아니었다고 하던데요.”

“제가 다른 이들에 비해 굉장히 늦은 나이에 마법의 이치를 깨달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소통의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단지 찾는 데 오래 걸렸을 뿐이죠.”

칸딘과 공명하던 때가 문득 생각났다. 당시 나는 그와 감정과 감각, 사상을 공유하는 동반자와 같은 관계였다. 하지만 그가 마법을 사용할 때는 아니었다. 마치 그 혼자 나를 두고 앞으로 가버리는 느낌을 받곤 했다. 알케니아의 설명대로라면 그건 나에게 마법의 소질이 없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지금도 내 몸 안에서 거대한 마력이 맥동하는 것이 느껴진다. 바로 이것 때문에 아르만시아의 표적이 되어 버렸는데 정작 칸딘의 도움이 없으면 써먹을 수도 없다니. 문득 억울해진다.

“사실 여왕님도 보통 소질은 아닙니다. 그래도 왕의 마력을 인지하고 어느 정도 통솔까지 하시니까요. 그 어떤 왕도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또한 집단의 감정과 의지를 인지하실 수도 있죠. 그 단계에 도달한 것만 해도 대단한 겁니다. 파크님은 여왕님과 같은 사람들에게 임시로 공감자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습니다.”

“공감자요?”

“네. 설명하기 어려운데.... 마나의 근원과 직접적인 소통은 불가능하지만 공감은 할 수 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대개 의지를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집니다. 마법과 달리 자연의 법칙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말입니다. 그렇지, 그림자 매 역시 공감자입니다. 그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강력한 적들로부터 동족을 지켜려 했고, 그 의지가 그의 육체를 비약적으로 강화시켰습니다. 아마 역사상 가장 강력한 공감자일 겁니다. 그 성과만 놓고 본다면 오히려 저 같은 마법사보다도 마력이 더 강한 셈이죠.”

그래. 그림자 매는 원래 그리 뛰어난 전사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정령왕의 지배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초인적인 정신력을 얻게 되었고, 그 강인한 정신력이 그의 소망을 실현시켜 준 것이다.

“기사단장님은 어떻습니까? 그 역시 뛰어난 공감자 아닙니까?”

그림자 매가 높이 평가되는 것에 살짝 자존심이 상했는지 벨포트가 슬며시 알케니아에게 물어본다.

“메담 경은 공감자가 아닙니다. 그의 능력은 순전히 소질과 노력으로 얻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림자 매보다 더 대단한 거죠.”

알케니아는 재치 있는 대답으로 벨포트의 기분을 풀어 주었다. 이것으로 공감자에 대한 대화를 일단락지은 후 알케니아가 말을 돌린다.

“여왕님의 계획에는 저에게 주어진 역할도 있는 것 같군요. 기꺼이 맡겠습니다. 아르만시아의 움직임을 정확히 계산하고 여왕님을 올바로 안내해서, 샤나프린님이 반드시 아르만시아를 가둘 수 있게 하겠습니다.”

“....죽지 않게 조심해.”

알케니아가 협력을 약속하자 관심 없는 것처럼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던 켈리트가 나직이 한 마디 던진다. 알케니아는 그런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걱정 마, 켈리트. 어차피 나에게는 악마들과 싸울 힘이 없잖아. 나보다는 오히려 네가 더 조심해야....”

“멍청아. 너에게 한 얘기가 아니야.”

그녀의 퉁명스러운 한 마디에 알케니아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비로소 그녀의 눈이 나를 응시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켈리트의 덕담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녀도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깨달은 모양이다.

“너를 지키려다 파크님이 또 한 번 돌아가셨잖아. 아르만시아 그 배신자 놈에게....!! 그러니까 그 목숨 소중히 여기라고.”

그 말을 듣지 않으려고 오늘 밤 병사들을 피하려 했는데, 켈리트에게 듣게 될 줄이야.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왜냐하면 반드시 살아남겠다는 약속은 할 수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파크의 숙원을 이뤄줄게. 반드시 아르만시아를 가둬서 너희 세계의 질서를 어지럽히지 못하게 하겠어.”

이렇게 돌려서 말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파크님이 바라는 건 놈을 가두는 게 아냐. 그 분의 의도대로라면 오히려 아르만시아는 갇혀 있는 게 아니라 사도들과 싸워줘야 해. 그러라고 놈에게 공원의 뿔을 양도하신 거니까.”

켈리트의 말을 들은 나는 곧바로 정정했다.

“알겠어. 파크는 아르만시아가 나의 마력을 얻고 그 힘으로 천사들에게 이기길 원하지 않는 거잖아. 그래서 나를 살리고 죽은 거지? 그런 일은 없도록 할게.”

“아니. 그 분이 널 위해 죽은 건 그런 이유가 아냐.”

켈리트가 또 한 번 고개를 흔든다.

“네 마력 같은 건 아무 상관없어. 그 분이 너를 구하고 죽은 건, 아르만시아를 가두려 하는 건 단지 네가 놈에게 죽는 게 잘못된 일이기 때문이야. 그 분과 너는 비슷한 점이 많아. 그 분 역시 항상 아무도 죽지 않기를 바라셨지.”

순간 가슴 속에 잔잔한 감동이 번져갔다. 파크가 나를 구하고 죽은 건 어떠한 의도와 계산 때문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는데, 순수하게 나를 살리기 위해서였다니. 그리고 내가 파크와 비슷하다고?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정말로 파크와 만난 후로 단 한명도 죽지 않았다.

켈리트는 단지 파크의 신봉자로서, 그의 진의를 설파하려 했을 뿐이다. 뜬금없이 나의 무사를 기원해준 것도 최소한의 희생을 추구하는 나에게서 파크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녀는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결국 내가 끝까지 피하려 했던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다.

“알았어. 죽지 않을게.”

나는 파크와 조금도 비슷하지 않다. 그는 아무도 죽지 않게 했지만 나는 틀림없이 내일 누군가 죽게 만들 테니까. 켈리트에게 거짓말을 한 뒤 흔들리는 마음을 급히 바로잡으며 나는 한 번 더 다짐했다. 만약 나 하나의 목숨으로 모두를 살릴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노라고.




당신의 댓글 하나가 당신이 읽고 있는 글을 바꿀 수 있습니다.


작가의말

루시엘 : 공감자라.... 설명을 들어보니 나도 공감자인 것 같네?  

루이 : 아닙니다. 루시엘을 쓸 당시에는 공감자라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었으니까요. 이 소설 초반부에 작가가 ‘약식 마법사’라는 말을 사용한 걸 보면 뒤늦게 추가된 설정일 겁니다. 우리 같은 과거의 캐릭터는 과거의 설정 안에 머물러야 하는 법이죠.

어스름달 : (뜨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왕녀의 외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17 완결 후기 +13 17.11.24 702 17 12쪽
416 에필로그 : 진정한 지도자 +12 17.11.17 614 15 10쪽
415 불어오는 바람 +6 17.11.13 425 8 8쪽
414 남은 것은.... +4 17.11.09 395 10 10쪽
413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4 17.11.06 368 5 7쪽
412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고백 +6 17.11.03 403 10 8쪽
411 기적 +6 17.11.01 376 9 7쪽
410 뜻 밖의 공명 +6 17.10.29 364 10 8쪽
409 고집과 단념 +6 17.10.25 402 12 8쪽
408 다시 그 때로 +6 17.10.23 401 8 8쪽
407 돌이킬 수 없는 선택 +6 17.10.21 420 8 7쪽
406 유일한 선택지 +6 17.10.18 389 8 12쪽
405 하극상 +4 17.10.16 468 5 6쪽
404 불청객들 +4 17.10.13 416 7 9쪽
403 어그러진 계획 +4 17.09.25 395 8 10쪽
402 깨어진 신뢰 +4 17.09.23 370 11 9쪽
» 공감자 +4 17.09.21 394 9 10쪽
400 최소한의 전투, 최소한의 희생 +8 17.09.19 493 10 9쪽
399 왕의 허가 +4 17.09.17 459 9 9쪽
398 정답 +4 17.09.15 508 9 10쪽
397 허심탄회 +6 17.09.13 392 10 11쪽
396 발뺌 +4 17.09.11 420 8 10쪽
395 격발 장치 +4 17.09.08 394 7 9쪽
394 갈수록 태만 +4 17.09.04 496 11 10쪽
393 형제 간의 사투 +2 17.09.02 371 10 10쪽
392 왕의 의무 +2 17.08.31 424 11 10쪽
391 충신 +4 17.08.29 400 8 10쪽
390 정령왕의 행방 +4 17.08.27 423 9 9쪽
389 복수의 화신 +4 17.08.24 469 12 9쪽
388 권능 +6 17.08.22 471 11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