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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조회수 :
632,076
추천수 :
14,829
글자수 :
1,880,019

작성
17.10.23 02:42
조회
400
추천
8
글자
8쪽

다시 그 때로

DUMMY

나는 검은 마인으로 화한 그림자 매를 하염없이 쳐다보고만 있었다. 지금이라도 그가 마음을 고쳐 사람으로 돌아와 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이는 결코 무리한 기대가 아닐 것이다. 이미 그림자 매는 저런 상태에서 정령왕의 지배를 떨쳐내고 다시 사람으로 돌아간 경험이 있다. 이를 기억해낸 나는 용기를 내어 그를 설득해 본다.

“돌아와. 아직 늦지 않았어. 너라면 할 수 있잖아?”

그림자 매는 고개를 저으며 하늘 위에 있는 아르만시아를 올려 보았다.

“놈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 힘이 필요해.”

“아르만시아가 원하는 건 나야. 그런데 왜 네가 이러는 거야? 더 이상 나 때문에 누군가 죽는 건 정말 싫단 말야!”

목소리에 점차 흐느낌이 섞이다가 마침내 울음이 터져 나왔다. 계획대로 되고 있었는데, 나 하나의 목숨으로 아르만시아를 막아낼 수 있었는데, 어쩌다 일이 이 지경이 되어 버린 걸까? 검게 변해 버린 그림자 매를 보면 볼수록 새삼스레 참담해진다.

“왜냐하면 이것이 내가 원하는 길이니까.”

정령왕의 폭주를 다스리기 위해 일그러져 있던 그림자 매의 표정이 한 순간 평온해졌다. 심지어 그는 미소까지 지었다. 검은색으로 변해버린 끔찍한 얼굴에서 어떻게 저렇게 찬란하고 아름다운 미소가 그려질 수 있는 걸까?

“너 때문에 죽는 게 아냐. 내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어. 가시손톱에게 조종당해 피붙이 같은 동족들을 죽였을 때 말야. 이 미쳐 날뛰는 검을 억누르기 위해, 미네트 숲의 그림자 매들, 하워드의 군대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아오고 있었지만 언제나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지. 어차피 버리고 싶었던 목숨을 대가로 너를 살릴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어.”

“이 나쁜 자식아!”

그림자 매가 오래 전부터 자신의 죽음을 계획하고 있었던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기꺼이 그 죽음을 원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 동안 그와 함께 지내온 나날들이 송두리째 부정당한 것 같아 크나큰 배신감이 느껴졌다.

“죽으려 했던 건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먼저 죽으려 했어. 그런데 왜 네 놈이 가로채?”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본심을 숨기지 않는다. 이 말에 그림자 매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왕이 아니니까. 내 맘대로 할 수 있지.”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림자 매의 대답은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원래 왕이야 말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리 아니었던가?

“우리 부족은 너희가 왕이라 부르는 자들을 그림자 검이라 칭했다. 하지만 너에게는 그림자 검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 저 사람들은 네가 두려워서 너를 따르는 게 아니야. 그들 또한 네가 기존의 그림자 검들과 다르다는 걸 알기에 널 좋아하는 거야. 목숨을 걸면서까지 살리고 싶어 하는 거야.”

“그림자 검이 아닌 왕이라고, 저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살아남을 권리가 있는 거야?”

나는 수호기사들에게 했던 질문을 똑같이 던졌다. 그러나 그림자 매는 그들과 달리 말문이 막히지 않았다.

“권리가 아닌 의무다. 너에게는 그들의 마지막 유지를 지켜 줄 의무가 있다. 그들이 죽음과 맞바꾸어 지키고자 하는 왕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지 마. 왕이기에 죽음을 초월해야 하는 거야. 나처럼 죽고 싶다고 죽어선 안 돼.”

“....”

이번에 말문이 막힌 건 내 쪽이었다. 내 마음 한 구석에는 그의 말이 옳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것이 내가 그 동안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죽음을 망설인 이유라는 걸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여기서 설득당해 버린다는 건 그의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니까.

그림자 매와 논쟁을 지속하는 동안 아르만시아는 하늘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팔을 베인 고통에서는 벗어난 것 같았는데, 자신이 타격을 받았다는 사실에 놀랐는지 섣불리 접근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알케니아가 나의 곁에 다다르는 것을 보자 비로소 마음이 급해진 모양이다. 그대로 급강하해 내려온다.

저걸 보라고. 아르만시아는 나를 향해 내려오고 있잖아. 역시 내가 죽는 게 맞는 거야. 죽이려는 쪽도, 노려지는 쪽도 바라는 일이건만 그림자 매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재빨리 뛰어올라 아르만시아가 나에게 접근하는 걸 원천봉쇄한다.

“....!!”

정령왕을 쳐다보는 아르만시아 눈에 긴장감이 가득하다. 그것이 자신을 파멸시킬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건 처음뿐이었다. 그림자 매와 어울려 몇 합을 겨뤄본 후 아르만시아는 점점 자신감을 되찾고 있었다.

마인이 된 그림자 매의 위용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내가 본 그 어떤 악마보다도 압도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반 악마 중 최강이었던 게차무스가 몇이 와도 간단히 쓰러뜨릴 것 같은 기세였다.

정령왕에게 지배된 사람들은 원래 지니고 있는 역량이 뛰어날수록 더욱 강한 마인이 되었다. 하물며 그림자 매는 사람일 때 이미 악마에 버금가는 신체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만큼 마인이 된 후의 전투력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신의 힘을 지닌 아르만시아에게는 여전히 미치지 못하였다. 아르만시아가 불안함을 떨쳐내고 자신감을 회복할수록 전투는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그림자 매도 이렇게까지 격차가 벌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초조한 목소리로 다급히 나에게 외친다.

“어서 가, 휘렌델!”

알케니아도 복잡한 표정으로 나에게 손을 내민다. 그림자 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반드시 탈출에 성공하자는 얼굴이었다. 웃기지 마.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림자 매가 죽게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중요할 순간에 나는 왜 여전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걸까? 또 다시 가사 상태에 빠진다 해도 상관없다. 저 맹렬히 공격하는 아르만시아의 움직임을 예전처럼 늦출 수 있으면 좋으련만....

-기억해줘.-

나는 눈을 크게 뜨고 허리춤에서 칸딘의 손잡이를 뽑았다. 그리고 여전히 부서져 있는 검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역시 칸딘은 없구나.... 방금 전 그건 잘못 들은 거였나?

-기억해줘.-

이 때 또 다시 칸딘의 목소리가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그가 죽기 전에 수 없이 나에게 되풀이 했던 말이었다. 그의 유언대로 나는 그와 함께 했던 순간들을 떠올려 보았다.

-칸딘....?-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공명을 통해 칸딘을 불러 보고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다. 기억이 너무나도 선명해서 마치 지금 이 순간 칸딘이 내 옆에 있는 것만 같았다.

나의 부름에 화답하는 칸딘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대답 대신 나는 다른 것을 얻었다. 그 시절 칸딘이 보고 느끼고 행하던 경험이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다.

“....!!”

그림자 매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던 아르만시아의 움직임이 갑자기 굼떠지기 시작한다.

“이럴 수가! 어떻게 여왕님이 마법을....?!!”

나를 지켜보고 있던 알케니아가 경악에 찬 탄성을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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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85 부러워해라
    작성일
    17.10.23 03:22
    No. 1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7.10.24 23:58
    No. 2

    감사합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7 Brav
    작성일
    17.10.23 06:06
    No. 3

    기어이 죽고자 몸부림 치는 휘렌델에게 이순신 장군의 법칙이 적용 됐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7.10.24 23:59
    No. 4

    이순신 장군의 법칙이 뭔가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8 메틸아민
    작성일
    17.10.23 09:56
    No. 5

    그림자 매도 설득하는 방법이 잘못 된거 같아요
    휘렌델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같이 살려고 해야지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7.10.25 00:02
    No. 6

    사실 그림자 매와 휘렌델의 대화는 이미 한 번씩 했었던 이야기들입니다.
    휘렌델만큼이나 그림자 매도 고집스럽다는 증거죠.
    하지만 둘 다 살아남는 게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 문제입니다.
    아르만시아는 여러 결점을 안고 있지만 여전히 신이라 할 수 있는 존재니까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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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 공감자 +4 17.09.21 393 9 10쪽
400 최소한의 전투, 최소한의 희생 +8 17.09.19 493 10 9쪽
399 왕의 허가 +4 17.09.17 459 9 9쪽
398 정답 +4 17.09.15 507 9 10쪽
397 허심탄회 +6 17.09.13 391 10 11쪽
396 발뺌 +4 17.09.11 419 8 10쪽
395 격발 장치 +4 17.09.08 393 7 9쪽
394 갈수록 태만 +4 17.09.04 496 11 10쪽
393 형제 간의 사투 +2 17.09.02 370 10 10쪽
392 왕의 의무 +2 17.08.31 423 1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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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 정령왕의 행방 +4 17.08.27 422 9 9쪽
389 복수의 화신 +4 17.08.24 469 12 9쪽
388 권능 +6 17.08.22 470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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