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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조회수 :
632,059
추천수 :
14,829
글자수 :
1,880,019

작성
17.11.03 01:34
조회
402
추천
10
글자
8쪽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고백

DUMMY

모든 것을 파멸시키고자 하는 마나의 근원의 의지가 발현된 불꽃. 이른바 절대 삭제 명령.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파괴의 힘이었다. 투명하게 타오르던 불꽃은 곧 주변의 빛을 빨아들이고 태우면서 색을 띠기 시작했고, 자신의 형체를 드러냈다.

“악마의 불꽃....!!”

알케니아가 경악에 찬 얼굴로 신음성을 흘린다. 악마의 불꽃, 마화는 그의 목소리마저 빨아들여 소멸시켜 버렸다. 엉겨 붙어 처절한 싸움을 벌이고 있던 그림자 매와 아르만시아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는지 이쪽을 돌아보았다.

“아니, 그건....!!”

아르만시아는 곧바로 마화를 알아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마화는 그도 사용할 수 있는 힘이었다. 신의 권능을 손에 넣었으니 말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로만 느껴졌었는데, 뿔이 지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그의 그릇이 갑자기 하찮게 보인다.

“휘렌델....”

그림자 매도 마화의 정체를 어렴풋이 예측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는 반가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슬픈 눈빛을 보였다.

“너는 선을 넘지 말았어야 했는데....”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거야? 내가 선을 넘은 건 바로 너를 구하기 위해서인데.... 조금만 기다려. 아르만시아를 처치하고 널 다시 사람으로 돌려줄 테니까.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마화는 점점 크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통제하기가 어려워졌다. 그 끝없는 탐욕을 만족시킬만한 먹이를 주어야 할 때이다. 주저할 이유가 없다. 나는 마화를 아르만시아에게 던졌다.

“....!!”

아르만시아는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날아오는 마화를 피하지도 못하고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남아있던 마력을 모두 쥐어짜내어 그의 움직임을 봉해버렸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불태우는 불꽃은 그의 심장 부분에 정확히 명중했다!

“크아아악!!”

놈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쏟아진다. 손에 꼽을 횟수이긴 했지만 아르만시아의 고통에 찬 비명을 지금껏 몇 번 들어왔었다. 허나 지금은 그것과 다르다. 이번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 섞여 있어 더욱 처절한 목소리였다.

극한의 회복력과 극한의 파괴력이 맞부딪쳤다. 지금 그의 가슴에서는 마화가 그의 살을 태우면, 환부에서 새 살이 다시 돋아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나는 그 줄다리기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계산한대로, 마침내 투명한 불꽃이 심장을 살라버리고 그에게 죽음을 선사한다.

순간 아르만시아의 가슴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아도 눈꺼풀을 뚫고 들어올만큼 강렬한 빛이었다. 이는 마화가 사라지기 직전, 그 동안 삼켰던 것을 일순간에 토해내는 현상이었다. 나는 마화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신들이 한 시대의 막을 내릴 때 사용하는 권능이었다. 통제할 시점을 놓쳐버리면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한 끝에 이 세상 모든 생명체를 삼켜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아르만시아의 목숨을 가까스로 빼앗을 수 있을 정도로만 위력을 조정했던 것이다.

이윽고 빛이 사그라든 후 나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리고 아르만시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거대한 육체는 땅바닥에 볼품없이 나뒹굴고 있었다. 끔찍한 빛을 뿜어내던 두 눈은 새카맣게 꺼졌으며,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그림자 매가 서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더 이상 악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르만시아만큼이나 거대했던 그의 몸이 원래의 체형으로 돌아왔으며, 피부도 검은 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원래보다 더 희어진 색이었다. 머리칼도 칠흑처럼 검은 것이, 아마도 방금 전까지 악마로 변해 있었던 부작용인가 보다.

“그림자 매!”

그가 사람으로 돌아온 것을 본 나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아르만시아도 쓰러뜨렸고,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나는 헐레벌떡 그림자 매를 향해 뛰어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선 채 다가오는 나를 향해 더 없이 환하고 따뜻한 미소를 보내주고 있었다.

이윽고 나는 그의 앞에 마주 섰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이 기쁨을 그와 어떻게 나누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그의 목을 힘껏 끌어안은 후 천천히 고민해봐야지.

“잠깐 눈 좀 감아봐.”

그림자 매의 말에 나는 겨우 진정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다소곳하게 서서 그의 말대로 살며시 눈을 감았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냐고 물었지? 줄곧 꿈꾸던 것이 있다. 너를 좀 더 만나고 싶다고, 너와 오랫동안, 되도록 영원히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두근거림이 더욱 커져간다. 이 말은 그도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뜻 아닌가? 어렴풋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의 입으로 직접 고백하는 것을 들으니 가슴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벅차오른다.

“사랑한다, 휘렌델.”

드디어 그림자 매의 담담한 목소리가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었다. 이 순간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소녀가 되었다. 마나의 근원에 도달하면서 깨달은 그 어떤 마법보다도 신비로운 기분이 나를 사로잡는다. 심장이 너무 세차게 뛰어 가슴이 저릴 정도다.

“....”

나는 그 고백 후에 그림자 매가 취할 행동을 기다렸다. 그러나 내 입술에 무언가 닿는 감촉은 느껴지지 않았다. 따뜻한 손길이 내 어깨를 감싸 안아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눈을 감은 채로 하염없이 기다렸다. 마법 같은 순간이라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이리라.

....무언가 희미한 감촉이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눈을 떴을 때 그림자 매는 보이지 않았다. 가장 완벽한 순간에 고백을 한 후에 대체 어디로 간 걸까? 꽃이라도 따러 간 걸까? 어리둥절해진 나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림자 매?”

그러나 어디에도 그림자 매는 없었다. 하염없이 그를 찾다가 내가 발견한 것은 오직 침통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는 알케니아 뿐이었다.

“그림자 매!”

나는 그에게 어서 모습을 보이라는 뜻으로 외쳤다. 그러나 그림자 매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마화의 폭발 때문에 불어 닥친 바람만이 내 몸에 부딪칠 뿐이었다.

“그림자 매....”

문득 나는 바람에 흘려 나부끼고 있는 검은 먼지들을 발견했다. 순간 불안한 예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림자 매!”

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한 번 더 그의 이름을 외쳤다. 그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비로소 바람에 흩날리는 저 먼지들이 방금 전까지 그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전 내가 눈부신 빛으로부터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자신의 몸을 마화 속으로 내던졌던 것이다. 나에게 눈을 감으라고 한 건 자신의 몸이 바스러지는 걸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림자 매!!! 솔피리스!!!”

나는 목 놓아 그의 이름을 외쳤다. 그러나 대답 없는 그의 잔해들만이 눈앞에 나부낄 뿐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그 고백을 유언으로 남긴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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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저도 이 장면은 정말 쓰기 싫었습니다.

이 소설을 처음 쓸 때부터 이 장면의 대사와 문장 전부 다 머릿속에 들어 있었는데도 말이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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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기적 +6 17.11.01 375 9 7쪽
410 뜻 밖의 공명 +6 17.10.29 364 10 8쪽
409 고집과 단념 +6 17.10.25 401 12 8쪽
408 다시 그 때로 +6 17.10.23 400 8 8쪽
407 돌이킬 수 없는 선택 +6 17.10.21 420 8 7쪽
406 유일한 선택지 +6 17.10.18 389 8 12쪽
405 하극상 +4 17.10.16 468 5 6쪽
404 불청객들 +4 17.10.13 415 7 9쪽
403 어그러진 계획 +4 17.09.25 394 8 10쪽
402 깨어진 신뢰 +4 17.09.23 369 11 9쪽
401 공감자 +4 17.09.21 393 9 10쪽
400 최소한의 전투, 최소한의 희생 +8 17.09.19 493 10 9쪽
399 왕의 허가 +4 17.09.17 459 9 9쪽
398 정답 +4 17.09.15 507 9 10쪽
397 허심탄회 +6 17.09.13 391 10 11쪽
396 발뺌 +4 17.09.11 419 8 10쪽
395 격발 장치 +4 17.09.08 393 7 9쪽
394 갈수록 태만 +4 17.09.04 495 11 10쪽
393 형제 간의 사투 +2 17.09.02 370 10 10쪽
392 왕의 의무 +2 17.08.31 420 11 10쪽
391 충신 +4 17.08.29 400 8 10쪽
390 정령왕의 행방 +4 17.08.27 422 9 9쪽
389 복수의 화신 +4 17.08.24 466 12 9쪽
388 권능 +6 17.08.22 470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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