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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조회수 :
632,092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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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80,019

작성
17.08.29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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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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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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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충신

DUMMY

나의 폭탄 발언에 모두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한참 후 내 눈빛을 보고 내가 진심이라는 걸 깨달은 메담이 다급히 나를 말린다.

“여왕님은 악마들에게 맞서 싸울 힘을 갖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슨 수로 그들을 막으시려는 겁니까?”

“싸울 필요가 없어. 페가수스를 타고 놈들 주변을 날아다닐 테니까.”

케이온지드와 그림자 매가 지금까지 후방에 남아 악마들과 끊임없는 싸워온 건 그들이 연합군을 추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악마들은 나의 위치를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작은 도발 몇 번만으로도 그들의 전진 방향을 교란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악마들을 내가 유인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놈들은 연합군이 아닌 바로 눈앞에 있는 목표물을 쫓을 테니 아예 국지전을 벌여야 할 이유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너무 위험합니다, 여왕님. 이들이 더 이상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것이 이유라면 차라리 제가 대신 맡겠습니다.”

“안 돼, 메담. 악마들은 밤낮없이 움직이는데 너는 그럴 수 없잖아.”

“그건 여왕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저번에도 한 번 악마들을 유인해 보았었지. 그 때 알게 된 사실인데, 페가수스는 악마들보다도 빨라. 낮 동안 놈들과의 거리를 최대한 벌려두면 밤에 잘 시간을 벌어둘 수 있어.”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메담은 포기하지 않았다. 나를 도저히 사지로 보낼 수가 없는 모양이다.

“기수들이 이 결정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제가 간다고 했을 때도 그렇게 반대했던 그들입니다.”

“가서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전해줘. 이것이 그들의 반대를 충분히 고려한 끝에 내린 나의 최종결정이라고.”

“....”

메담은 끝내 입을 다물었다.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왕의 발언으로 공식화하자 신하된 자로서 그것을 돌이킬 수가 없는 것이다.

“네가 뭘 걱정하는지 알고 있어, 메담.”

지금까지와 사뭇 다른, 지극히 사적인 목소리로 나는 여전히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를 위로했다.

“저번과 상황이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달라. 이번에는 죽으러 가는 게 아니잖아.”

순간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나는 정말로 죽을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일까? 나 자신도 그 진위를 알 수 없는 이 말이, 다행히도 메담에게는 진실처럼 들렸나 보다. 어두웠던 표정이 조금이나마 밝아진다.

“도대체 너는 어떻게 지치지 않고 싸울 수 있는 거냐?”

하지만 아쉬운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나 보다.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그림자 매에게 넌지시 물어본다.

“미네트 숲의 그림자 매들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우리 부족을 공격했다. 그런데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지.”

메담에게 대답해준 뒤 그림자 매는 들고 있던 정령왕의 검을 샤나프린에게 건네주었다. 나 자신의 진위도 알지 못해 혼란스러워 하던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일말의 확신을 얻는다. 그림자 매가 더 이상 스스로를 혹사시키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이 달성된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뿐,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너도 메담처럼 나를 말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이네.”

“네 결심이 이렇게 굳건한 이상 설득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현재 우리의 상황에서는 네가 찾아낸 방법이 가장 합리적인 것 같군.”

그렇다. 나는 단지 순간의 충동으로 악마들을 유인하겠다고 나선 것이 아니었다. 케이온지드와 그림자 매가 더 이상 교란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된 지금 최선의 수를 찾아낸 것이다. 그 의도가 마침내 인정받는 것 같아 뿌듯해졌다.

그 한 마디를 마친 후 그림자 매는 등을 돌려 자신의 부족원들 속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나는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여전히 나를 피하고 있는 것 같은 그의 모습에 서운함마저 느낀다.

“저도 여왕님과 함께 후방에 남겠습니다. 만약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악마들로부터 여왕님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이 때 문득 메담이 나에게 말한다. 일단 내가 후방에 남는 것으로 결정되자, 그 안에서 나를 좀 더 안전하게 지킬 방법을 고민해본 것이다.

“아니야, 메담. 너는 본대에 복귀해야 해.”

나는 여전히 메담이 나와 같은 위험을 떠안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바르테인의 왕이 되어야 할 사람이니까. 그리고 메담이 본대에 복귀해야만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나는 발리언트를 물러나게 한 후 단 둘만 남은 자리에서 메담에게 그 이유를 말해 주었다.

“거짓 증언을 하게 해서 미안해, 메담. 하워드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어.”

“네?”

메담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차마 그를 마주 볼 수 없는 나는 고개를 돌린 후 말을 이었다.

“정말로 미안해.... 나도 최근에 안 사실이야. 그림자 매가 그를 죽였어.”

메담은 나에게는 조금도 화 내지 않았다. 다만 이 말을 듣자마자 그림자 매가 있는 쪽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볼 뿐이었다.

“어쩐지 여왕님과 그의 사이가 어색해진 것 같았는데, 그런 이유 때문이었군요.”

“....화 많이 났어?”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메담의 표정이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 역시 나처럼 하워드와는 말 한 마디 나눈 적이 없는, 남남이나 마찬가지인 사이였다. 그러나 메담은 자신과 관계된 인물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강했다. 실제로 그는 그림자 매의 결백을 마지막까지 의심했는데, 그것 또한 자신이 가져보지 못한 가족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었으리라.

“그렇지만 여기서 그와 싸우지는 않을 겁니다.”

여전히 분노로 떨리는 목소리로 메담이 말한다.

“그가 여왕님을 위해 어떤 위험을 감수했는지 직접 보았으니까요. 아르만시아로부터 여왕님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의 힘도 필요하니까요. 이 모든 일이 끝난 후 그에게 결투를 신청하겠습니다.”

“고마워, 메담.”

메담과 그림자 매가 서로 싸우는 걸 상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일단 메담의 배포에 감사를 전한 후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어보았다.

“만약에 내가 그 결투를 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거야?”

“....!”

“물론 아무리 왕이라 해도 그 결투를 막을 자격은 없어. 만약 네 의사가 확고하다면 나도 존중해줄 거야.”

메담을 설득하고 싶지만, 나와의 친분에 금이 갈까 두려워 그의 판단력이 흐려지는 건 바라지 않았다. 나는 우선 그것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차근차근 그를 설득....

“....여왕님께서 원하신다면 악마들과의 싸움이 끝난 후에도 그와 싸우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그 말만 들었을 뿐인데도 메담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자신의 뜻을 철회했다. 마치 거짓말 같다. 아직도 그림자 매가 있는 쪽을 노려보고 있는 걸 보면 그 분노는 틀림없는 진심인데....

“고마워, 메담! 넌 역시 내 최고의 친구야.”

“아닙니다, 여왕님.”

메담이 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를 향하며 말을 이었다.

“저는 여왕님의 친구만이 아닌, 최고의 충신도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여왕님께서 저희를 지키기 위해 그 목숨을 버리시기로 결정하셨을 때 말입니다. 만약 제가 여왕님의 친구로만 남아 있었다면 저는 결코 그와의 결투를 단념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쨌든 고마워.”

나는 메담의 씀씀이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내심 기뻤지만, 아직도 화를 삭이지 못하는 메담에게는 그 감정을 더욱 철저히 감추었다.

“아직 여왕님은 제가 본대로 복귀해야 하는 이유를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메담 역시 일단 참기로 했지만 그 얘기를 계속하는 건 거북한지 서둘러 화제를 돌리려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의 바람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나는 악마들과의 전쟁이 바르테인 군과 붉은 바위족이 화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어. 그것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지. 하지만 그림자 매는, 그 스스로 고백했듯이 바르테인과 붉은 바위족의 불화의 씨앗이야. 그가 하워드를 죽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양쪽의 관계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

“저는 소문이 퍼지지 않게 막아야 하는 겁니까? 그래서 본대로 돌아가야 하는 겁니까?”

“아니야. 어떻게 너에게 그런 일을 맡길 수가 있어?”

황당한 얼굴로 묻는 메담에게 나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형제를 죽인 원수의 범행을 은폐하라니, 그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진상은 밝혀질 거야. 나에게 그 사실을 고백했다는 건, 그림자 매가 더 이상 진실을 숨기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기수들의 집요한 추궁에 결국 입을 열겠지. 그래서 네가 본대로 돌아가야 하는 거야. 최후의 결전을 벌이기도 전에 두 세력이 서로 충돌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되니까. 내가 없는 이상 바르테인 군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그렇군요.”

메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본론을 꺼내기 앞서 그림자 매가 하워드를 죽인 사실을 밝힌 이유를 비로소 이해한 것 같다.

“그러면 저는 성난 바르테인 군으로부터 원수를 보호해야 하는 겁니까?”

메담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듣고 보니 결국 그런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여왕님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 본대로 돌아가 바르테인 군과 붉은 바위족 사이의 평화를 지키겠습니다.”

“고마워, 메담.”

이번에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너무나도 힘든 결정을 내려준 메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숙연한 감정만이 내가 느끼는 전부였다. 나는 말이 아닌, 그의 손을 지긋이 잡으며 고개를 숙여 그에게 내가 얼마나 고마워하는 지 표현하고자 했다.

“아닙니다, 메리.”

메담도 심적 동요가 무척 큰 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나를 메리라고 불렀다. 이 말을 할 때의 그는 나의 친구였을까? 아니면 충신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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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메담 : 원래는 여기서 싸우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림자 매 : 네가 더 비참해 보일까봐 뺀 모양이군.

휘렌델 : 지는 건 너라는 설정인데? 앙상한 널 상대로 이기는 모습이 좀 그래서 뺀 거래.

그림자 매 : 헉!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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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99 매일웃고삶
    작성일
    17.08.29 09:00
    No. 1

    충신보다는 친구죠. 근데 친구기만 할까욤? ㅎㅎㅎ
    저는 그림자매가 젤 멋짐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7.08.30 23:58
    No. 2

    왕녀의 외출이 구상단계에 있을 때는,
    휘렌델에게 반말을 하던 메담이 그녀를 왕으로 인정하고 존댓말을 쓰는 것이 굉장히 의미심장한 장면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글로 구현하다보니 예상과 조금 엇나갔네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8 메틸아민
    작성일
    17.08.30 19:10
    No. 3

    본인 인증 넘 힘드네요ㅠㅠ
    갈수록 맘에 안드는 문피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7.08.30 23:59
    No. 4

    본인 인증요? 저는 그런 거 없었는데;;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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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 깨어진 신뢰 +4 17.09.23 370 11 9쪽
401 공감자 +4 17.09.21 394 9 10쪽
400 최소한의 전투, 최소한의 희생 +8 17.09.19 494 10 9쪽
399 왕의 허가 +4 17.09.17 459 9 9쪽
398 정답 +4 17.09.15 508 9 10쪽
397 허심탄회 +6 17.09.13 392 10 11쪽
396 발뺌 +4 17.09.11 420 8 10쪽
395 격발 장치 +4 17.09.08 394 7 9쪽
394 갈수록 태만 +4 17.09.04 496 11 10쪽
393 형제 간의 사투 +2 17.09.02 371 10 10쪽
392 왕의 의무 +2 17.08.31 424 11 10쪽
» 충신 +4 17.08.29 401 8 10쪽
390 정령왕의 행방 +4 17.08.27 423 9 9쪽
389 복수의 화신 +4 17.08.24 469 12 9쪽
388 권능 +6 17.08.22 471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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