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발 장치
우리는 보통 아침부터 악마들과 추격전을 벌이다, 해가 저물 무렵이 되면 전속력으로 거리를 벌린 후 밤 동안에는 휴식을 취했다. 샤나프린이 마침내 오오라를 완성했다는 희소식을 알게 된 것도 저녁을 먹을 때의 일이었다.
“켈리트, 이쪽에 와 보십시오.”
샤나프린의 말을 들은 켈리트는 지체 없이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지정된 위치에 서자 샤나프린은 갑자기 품속에서 얇은 나뭇가지를 꺼내 그녀의 앞쪽에 던졌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땅에 꽂힌 나뭇가지가 삽시간에 1미터 정도 높이까지 쑥쑥 자라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윽고 가지 끝에서 처음 보는 화사한 꽃이 피었는데, 꽃이 피는 순간 하얀 막이 생겨났다. 그 막은 반구형태였는데, 거의 집채만 한 크기였다.
“저게 뭐....?”
반사적으로 질문을 던지려던 나는 샤나프린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저 막이 샤나프린이 그 동안 연구해왔던, 아르만시아를 가두기 위한 감옥 이라는 걸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눈에 보이도록 선명한 하얀색 오오라 때문에 켈리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나왔어야 할 신경질적인 고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샤나프린은 집중한 표정으로 자신이 만든 감옥 안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저렇게 선명한 오오라라면 틀림없이 물리적 실체를 갖추어야 했다. 그가 사용하는 검처럼 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오오라의 벽은 아무 저항도 없이 샤나프린을 통과시켜주었다.
잠시 후 막 안에서 샤나프린의 손만 불쑥 나오더니, 오오라의 벽 속에서 자라난 그 이름 모를 작은 꽃나무를 뽑다. 그러자 마침내 하얀 벽이 사라지고, 그 안에서 씩씩대고 있는 켈리트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성공입니다. 오직 악마만을 차단하는 오오라 결계를 완성했습니다.”
켈리트와 대조적으로, 샤나프린은 환한 웃음을 함박 짓는다.
“그걸로 아르만시아를 가둘 수 있는 거야?”
나는 조심스럽게 샤나프린에게 물었다. 결계가 켈리트를 완벽히 가두는 것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지만 그것이 아르만시아에게도 통할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입니다. 비록 신의 권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걸 담은 그릇은 아르만시아 본인, 즉 악마의 육체입니다. 결계의 필터링은 벗어날 수 없습니다.”
“파크님께서 설계하셨잖아. 틀림없이 그 배신자 놈에게도 먹힐 거야.”
켈리트 또한 실험에 강제로 동원되어 언짢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 말에는 맞장구 쳐주었다.
“정말이지 완벽한 거부였어. 대사도급의 오오라에도 부딪쳐 봤지만 이렇게까지 절망적이지는 않았는데....”
오오라에 가려 보이지 않는 동안 그녀는 결계를 벗어나기 위해 별 수를 다 써보았던 것 같다. 대사도급의 오오라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평소 과장 같은 건 하지 않는 성격의 그녀가 이렇게까지 보증하는 것을 보니 한 가닥 남은 의구심도 사라진다.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발리언트가 대화에 끼어드는 건 드문 일이었다. 우리의 대화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어린데다 원래부터 말수가 적었던 그는 평소 조용히 듣기만 하는 쪽이었다.
“아르만시아는 굉장히 빨라요. 그 놈을 가두기에는 너무 좁지 않나요?”
“방금 전의 결계는 단지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작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아르만시아를 위한 결계는 거의 작은 마을 정도의 규모가 될 겁니다.”
발리언트는 샤나프린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샤나프린이 여기서 밝히지는 않았는데, 아르만시아를 결계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파크가 준비한 것이 한 가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였다. 그는 나에게 아르만시아를 유인하는 역할을 부탁했고,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보살핌만 받는 것이 싫었던 나는 선뜻 그 제안에 응했다.
“그 나무는 뭐야?”
나는 샤나프린이 들고 있는 가느다란 꽃나무를 가리키며 물었다.
“무궁화나무입니다. 하이아온과 파크가 원래 머물고 있던 지방에서는 흔한 식물인데, 마나를 머금는 효능이 있죠.”
“그래서 그렇게 빨리 자라는 거야?”
“원래는 이렇지 않습니다. 급속도로 성장하는 건 파크가 특별히 궁극의 진화를 주입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알케니아가 샤나프린의 말을 이어받아 마저 설명한다.
“결계는 아르만시아를 완벽하게 차단합니다. 때문에 너무 일찍 완성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아르만시아가 결계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게 되어 버리니까요. 뿐만 아니라 놈이 완성된 결계를 봐버리면 우리의 계획을 눈치 채고 경계할 겁니다. 그렇다고 아르만시아와 조우한 후에 만들기 시작하면 너무 늦습니다. 그래서 파크님이 일종의 격발장치를 준비해 주신 겁니다.”
둘의 이어지는 설명을 들은 나는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즉 샤나프린이 벽돌 하나만 남기고 결계를 완성하면 무궁화 나무가 그것을 발동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거구나.
“그런데 그 나무가 죽어 버리면 아르만시아가 풀려나는 것 아닌가요?”
발리언트가 또 다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방금 전의 결계도 샤나프린이 무궁화를 뽑는 순간 사라져 버렸었다.
“이 나무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오라를 담고 있으니까요. 오오라의 기본 성질은 수호와 보존입니다. 그 형질을 간직하고 있는 무궁화나무는 영원히 아르만시아를 가둘 수 있죠.”
파크는 정말로 치밀한 계획을 세워두었구나. 샤나프린과 알케니아에게 질문을 할 때마다 위협요소가 하나씩 사라져 간다. 마침내 아르만시아를 제압할 수 있다는 희망에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자, 이제 여왕님의 군대와 합류할 시간입니다.”
그러나 샤나프린의 마지막 말이 좋았던 기분에 찬물을 끼얹었다.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연합군과 합류하면 악마들이 나를 따라 바르테인 군과 붉은 바위족도 추격할 것이다. 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우리끼리 잘 해왔잖아. 아르만시아도 지금 이 인원으로 가둘 수 있지 않을까? 샤나프린 너는 미리 정한 장소에 결계를 만들어줘. 완성한 후에 신호를 보내주면 아르만시아를 데리고 그쪽으로 갈게.”
“안됩니다, 여왕님!”
발리언트가 펄쩍 뛰며 내 의견에 반대한다.
“하늘을 나는 말과 아르만시아 중 누가 더 빠른지 모릅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 전에 여왕님이 잡혀 버릴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생명을 지킬 수 있다면 그 정도 모험은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지만 역시 수호기사의 관점은 나와 달랐다.
“여왕님 말씀처럼 지금까지 아무런 피해도 없었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악마들을 유인하는 게 녹록한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하물며 아르만시아까지 쫓아온다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도주할 수 없을 겁니다.”
알케니아도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의 말처럼 때때로 위험한 순간도 있었고, 그럴 때마다 샤나프린과 켈리트가 악마들을 상대해야 했다. 심지어 발리언트까지 잠시 그들을 거들어 줄 때도 있었다. 그가 지적한 대로 약속 장소로 제대로 유인할 수 있을 지도 미지수였다. 악마들의 움직임은 변칙적이었고, 그래서 우리의 전진 방향도 시시각각 바뀌어 왔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는 단 한 번뿐입니다. 따라서 나는 아르만시아를 우선적으로 노려 결계를 발동시킬 겁니다. 그러면 미처 가두지 못하는 악마들이 상당수 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무궁화나무는 결계 밖에 위치하고 있어, 아르만시아의 손이 닿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계 밖의 악마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즉 아르만시아를 결계에 가두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나머지 악마들도 제압해야 한다는 거구나. 그렇지 않으면 힘들게 가둔 아르만시아가 다시 풀려날 테니 말이다.
“....알았어요.”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정말로 이러기 싫은데, 연합군은 악마들과 싸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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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한 : 명아주 지팡이에 이어 내가 가져온 무궁화 나무도 큰 역할을 하는 군!
수지 : 왕자님이 아닌 파크가 가져왔다고 나오잖아요. 설정이 변경되었죠.
한 : 으잉? 그게 무슨 소리야?
수지 : 여태 모르셨어요? 우리 짤렸어요 ㅠㅠ
한 : 안 돼! 내가 휘렌델에게 해주는 충고는 어떻게 되는 건데? 루시엘에서도 언급되었잖아? 휘렌델이 동방의 현자에게 들은 말이라고~
수지 : 설정 오류가 되는 거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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