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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조회수 :
632,070
추천수 :
14,829
글자수 :
1,880,019

작성
17.10.25 01:55
조회
401
추천
12
글자
8쪽

고집과 단념

DUMMY

어떻게 칸딘의 기억이, 특히 공명을 할 때조차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던 마법을 구현하는 지식이 나에게 전해졌는지는 모르겠다. 그만큼 위급한 상황인지라 금단의 문을 열 수 있는 저력이 발휘되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어쨌거나 아르만시아의 움직임을 다시 묶을 수 있게 된 덕분에 그림자 매가 비교적 대등한 싸움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힘내, 그림자 매!”

밖으로는 아르만시아와 싸우고, 안으로는 정령왕과 싸우고 있을 그림자 매에게 나는 필사적인 응원을 보냈다.

“나와 힘을 합쳐 아르만시아를 쓰러뜨리는 거야! 그 다음에 그 빌어먹을 검을 던져 버리자!”

나는 비로소 절망 속에 감춰져 있던 희망을 보기 시작했다. 신의 힘을 지닌 아르만시아도 더 이상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결계에 가두는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이제는 그림자 매가 제압할 수도 있는 상대로 전락해 버렸다. 그림자 매와 나 둘 다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림자 매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이러지 마, 휘렌델. 나를 도울 생각하지 말고, 빨리 떠나!”

“왜 자꾸 그런 소리 하는 거야? 이제 잘하면 이길 수도 있는데....”

아르만시아와의 싸움이 한결 수월해졌다고는 하나 그림자 매가 유리한 건 아직 아니었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뿐이지 솔직히 아르만시아를 이길 수 있을 지는 미지수였다.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라도 그림자 매로부터 응원의 말을 듣고 싶었는데 저렇게 나오니 솔직히 투지가 한풀 꺾이려 한다.

“그림자 매의 말이 맞습니다, 여왕님. 아르만시아를 쓰러뜨린다는 생각은 너무 무모합니다!”

이 와중에 제 3자라 할 수 있는 알케니아마저 그림자 매의 의견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궁극의 진화 때문에 그는 무한에 가까운 재생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그를 죽이는 게 그처럼 쉬운 일이었다면 지난 번 파크가 궁극의 진화를 개방했을 때 그를 해치웠을 겁니다.”

“....!!”

간신히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했다 생각했는데.... 알케니아의 말은 또 다시 나를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머리로는 아르만시아를 쓰러뜨리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림자 매를 아르만시아 앞에 남겨 두고 떠난다는 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빨리 가!”

그림자 매가 또 다시 나를 다그친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돕지 않으면 네가 당해버리잖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야. 이게 유일한 희망인데, 이것도 하지 말라고?”

“네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자책하지 마.”

나의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나의 병사들이 싸우고 죽어가는 동안 나는 그것을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악마들과의 싸움이 시작된 이래로 나를 괴롭히던 사실이었다. 아니 어쩌면 원정군을 이끌고 윈더민을 떠날 때부터 나는 그 고민에 사로잡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여자 왕은 전란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고, 나 역시 그런 열등감에 짓눌려 있었다.

“굳이 네 자신이 영웅이 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미 다른 사람들을 영웅으로 만들었으니까. 그 누구보다도 대단한 업적을 벌써 이루어 냈지. 넌 전사가 아니고 이 전장에서 너의 역할이 없는 건 당연한 거야. 이 전쟁이 끝난 후 비로소 네 일이 시작되는 거야.

중요한 건 지금이 아니라 미래야. 넌 싸움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가 목숨을 걸고 너를 살리려 하는 거야. 넌 전사도 아니고, 그림자 검도 아니야. 오히려 그래서 장차 이 전쟁에서 희생된 수 이상의 목숨을 지켜줄 왕이 될 수 있다!”

그림자 매의 말은 그 동안 자책만 하고 있던 나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또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내 목숨을 희생하려 했던 나의 선택에 대해서도 재고하게끔 만들었다. 이 전쟁이 끝난 후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새로운 사명감이 샘솟는다. 그러나 그의 말을 따를 정도로까지 설득된 건 아니었다.

“그 전에 난 너의 목숨부터 지켜주고 싶어.” 왜냐하면 그림자 매의 말을 따를 경우 그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네 약혼자를, 사촌동생을 죽인 나에게 이렇게까지 연연할 줄은 몰랐어.”

마지막에 고집을 꺾지 못한 나에게 절망한 듯 그림자 매가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소용없어. 난 이미 늦었으니까.”

“아니, 늦지 않았어. 바늘 같은 가능성이라지만 아르만시아를 여기서 쓰러뜨릴 수도 있잖아? 그런 다음 그 검을 버리고 사람으로 돌아오는 거야! 이미 한 번 해봤잖아!”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림자 매는 손에 들고 있던 정령왕을 한 쪽으로 던져 버렸다. 이를 본 나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에게 검을 버리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순서가 반대였다. 아직 아르만시아는 건재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것을 본 아르만시아는 한층 더 과감한 공격을 날렸다. 사실 지금까지는 정령왕을 경계하느라 아르만시아도 조심스럽게 싸움에 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림자 매가 스스로 정령왕을 버려준 까닭에 더 이상 위축되어 있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를 본 나는 마력을 끌어올려 아르만시아를 한층 더 압박하려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순간 갑자기 머릿속에 펼쳐지고 있던 칸딘의 기억이 사라져 버렸다. 이 때문에 끌어올린 마력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고 아르만시아를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림자 매!!”

나는 다급히 그림자 매에게 경고했다. 내가 아르만시아를 둔화시키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나에게 구속당하지도 않고, 두려워하던 정령왕도 없어져 그야말로 온 힘을 내는 아르만시아의 일격을, 그림자 매는 두 팔을 올려 가볍게 막아 내었다.

“너에게 계속 떠나라고 말한 건, 아무 제약 없이 이 힘을 해방하기 위해서였어, 휘렌델. 허나 네가 단념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구나.”

그 상태에서 그림자 매의 몸이 또 다시 변화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그림자 매는 피부색만 검게 변했을 뿐, 사람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 정령왕의 검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몸도 아르만시아와 똑같은 모습으로 꿈틀거리며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그림자 매는 정령왕과 완전 공명을 이루었군요!”

그림자 매도, 알케니아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분위기로 보아 깨달았다. 이제 그림자 매가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는 걸 말이다.

“샤나프린은 내가 가시손톱의 힘을 전부 끌어내려 한다는 걸 눈치 챘으면서도 놈을 나에게 넘겼어. 그건 나의 목적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이 결계는 아르만시아를 위한 것만이 아니야.”

그림자 매는 담담히 말하며 꿈틀거리는 오른 팔로 뜻밖의 상황에 놀라고 있는 아르만시아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 일격에 맞고 날아간 아르만시아는 정령왕에 베였을 때처럼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나를 단념할 수 있겠지, 휘렌델? 어서 빨리 떠나. 내 정신이 언제까지 온전히 남아 있을지 나도 알 수 없어.” 이 말을 할 때의 그림자 매는 더 이상 마인이 아닌, 아르만시아와 거의 똑같은 모습의 거대한 악마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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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기적 +6 17.11.01 375 9 7쪽
410 뜻 밖의 공명 +6 17.10.29 364 10 8쪽
» 고집과 단념 +6 17.10.25 402 12 8쪽
408 다시 그 때로 +6 17.10.23 400 8 8쪽
407 돌이킬 수 없는 선택 +6 17.10.21 420 8 7쪽
406 유일한 선택지 +6 17.10.18 389 8 12쪽
405 하극상 +4 17.10.16 468 5 6쪽
404 불청객들 +4 17.10.13 416 7 9쪽
403 어그러진 계획 +4 17.09.25 394 8 10쪽
402 깨어진 신뢰 +4 17.09.23 369 11 9쪽
401 공감자 +4 17.09.21 393 9 10쪽
400 최소한의 전투, 최소한의 희생 +8 17.09.19 493 10 9쪽
399 왕의 허가 +4 17.09.17 459 9 9쪽
398 정답 +4 17.09.15 507 9 10쪽
397 허심탄회 +6 17.09.13 391 10 11쪽
396 발뺌 +4 17.09.11 419 8 10쪽
395 격발 장치 +4 17.09.08 393 7 9쪽
394 갈수록 태만 +4 17.09.04 495 11 10쪽
393 형제 간의 사투 +2 17.09.02 370 10 10쪽
392 왕의 의무 +2 17.08.31 423 11 10쪽
391 충신 +4 17.08.29 400 8 10쪽
390 정령왕의 행방 +4 17.08.27 422 9 9쪽
389 복수의 화신 +4 17.08.24 468 12 9쪽
388 권능 +6 17.08.22 470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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