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전투, 최소한의 희생
나는 이해를 돕기 위해 샤나프린에게 그가 만들고 있는 결계의 범위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그는 곧바로 마법을 사용해주었고, 그러자 거대한 반구 모양의 구조물이 노란 빛을 뿜어낸다. 그가 공언한 대로 거의 작은 마을 하나 정도의 규모였다. 나는 결계의 중앙 부분까지 걸어간 후 기사들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내일 나 혼자 여기에서 악마들을 맞이할 거예요.”
“여왕님 혼자서요?”
그들이 일제히 아연실색한 얼굴로 되묻는다. 물론 악마의 대군을 나 혼자서 상대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랬다간 틀림없이 사로잡혀 아르만시아에게 끌려갈 테니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기에서요.”
나는 손가락을 높이 들어 머리 위 하늘을 가리킨 후 말을 이었다.
“악마들을 유인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그들 중 일정 높이 이상을 공격할 수 있는 녀석은 없어요. 이건 람켄 경도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람켄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의견에 동조해준다. 악마들 중 하늘을 날 수 있는 놈도 없었다. 신체 부위 중 날개가 진화한 켈리트는 사실 굉장히 특별한 경우였던 것이다.
“만약에 내가 페가수스를 타고 저 하늘 위에 가만히 떠 있으면 악마들은 어떻게 할까요?”
“....현재 악마들의 1차 목표는 여왕님의 위치를 파악한 후 아르만시아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따라서 밑에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겁니다. 시야에서 놓치지 않도록 여왕님을 계속 주시하면서 말입니다.”
메담의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두 팔을 휘저어 샤나프린이 표시해준 결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요. 내가 하늘 위에 있으면 악마들은 목표와의 최단 거리인 바로 이 위치에 옹기종기 모여 있겠죠. 바로 결계의 정 중앙 부분에 말이에요. 샤니가 무궁화나무를 심는 순간 그들 대부분은 이 안에 갇히게 될 거예요. 즉 악마들과 굳이 싸울 필요가 없는 거죠. 내가 병사들의 탈영을 독려한 건 바로 이 때문이었어요. 아니, 보다 많은 악마들을 결계의 유효 범위 안에 몰아넣으려면 오히려 그들을 방해하는 병력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안 돼요.”
여기까지 설명을 해주자 비로소 기사들의 표정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충분한 고도만 유지한다면 악마들은 나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아요. 하지만 아르만시아가 도착하면 얘기가 달라지죠. 그는 얼마나 높이 있건 나를 추격할 수 있으니 나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그를 막아줄 병력이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벨포트의 말에 나는 굳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르만시아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어요. 다들 보셨잖아요? 아무리 많은 병사들이 덤벼든다 해도 그를 아주 약간 늦추는 정도에 그칠 뿐이에요. 희생에 비해 너무나도 적은 성과죠.”
“그래도 병사들이 있어야 케이온지드가 좀 더 수월하게 그를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에는 메담이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케이온지드와 우리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내일 그가 참전하리라 예상하는 것이다.
“케이온지드는 내일 오지 않을 거야. 그 동안 그가 우리와 함께 싸워준 건 하이아온의 복수를 위해서였어. 하지만 이제 그는 아르만시아와의 싸움을 포기했어. 더 이상 이 전쟁에 참여할 이유가 없는 거지.”
냉정하게 얘기해서 케이온지드가 내일의 결전에 참전할 지는 미지수였다. 붉은 바위 동굴에서 악마들을 상대로 우리가 고전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 목표인 아르만시아가 도착한 후에야 나타난 것을 보면, 인간에 대한 뿌리 깊은 분노와 증오심을 보면 우리를 도와주기를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샤나프린에게 일임한, 아르만시아를 결계에 가두는 과정을 돕기 위해서 등장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마들과의 싸움에 병사들을 내몰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아예 그가 참전하지 않는 것으로 못을 박아둔 것이다.
기사들의 얼굴이 또 다시 침울해진다. 몸집에서나 역량에서나, 또한 쉽게 죽지 않는 그 생명력에서도 케이온지드는 아르만시아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 얘기를 꺼낸 메담은 그와 함께 아르만시아를 막을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더욱 충격 받은 얼굴이었다. 그들의 반응을 본 나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케이온지드는 없지만 알케니아가 있어요. 그는 아르만시아가 강림하는 것을, 그리고 놈의 위치를 시시각각 파악할 수 있어요. 나는 내일 그의 도움을 받을 거예요. 아르만시아는 도착하자마자 나부터 노릴 거예요. 몇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도 번번이 놓쳤으니까요. 그 때 나는 알케니아의 지시에 따라 놈을 결계 범위 안으로 유도하겠어요.”
“여왕님께 그런 위험을 감수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병사들이 있건 없건, 아르만시아가 등장한 시점에서 내가 위험에 빠지는 건 정해진 수순이잖아요. 어차피 위험한 건 마찬가지에요.”
나의 대답을 들은 발리언트가 무거운 신음을 내뱉는다. 케이온지드가 참전하지 않는 이상 병사들이 큰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얘기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샤니, 나머지는 너에게 달렸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놈을 가둬줘.”
“알겠습니다.”
샤나프린은 믿음직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악마들로부터 완벽히 은신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덕분에 확신을 갖고 이 계획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가두지 못한 악마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악마들 전부가 결계 중앙에서 하늘만 쳐다보지는 않을 겁니다. 여왕님이 탈출할 경우를 대비하여 발이 빠른 자들을 사방팔방에 배치시켜 두겠죠. 또한 아르만시아를 유인하는 과정에서도 일부 악마들이 결계 범위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결계 외부의 공격에는 무궁화나무가 파괴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르만시아도, 악마들도 풀려날 겁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악마들을 유인하는 인원만으로 아르만시아를 가둘 시도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 상황에 대한 대비도 미리 생각해 두었다.
“방금 전에 내가 한 말을 듣고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그 때가서는 그들의 힘을 빌려볼까 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솔직히 단 한 명도 남김없이 떠났으면 싶지만 모두가 그러지는 않으리라는 걸 나는 안다.
“탈영하지 않고 남은 병력으로 악마의 잔당을 소탕할 생각이십니까?”
메담의 물음을 들은 나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멀리 떨어져 있다가 결계가 발동되는 것을 신호로 무궁화나무를 지키러 오는 거야. 결계가 발동되고 아르만시아와 핵심 병력들이 갇혀 버리면 남은 악마들은 혼란에 빠질 거야. 놈들은 이곳 물정에 어두우니 무궁화나무가 결계를 깨뜨릴 약점이라는 걸 단번에 파악하지는 못할 테지. 거기서 내가 페가수스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정신 사납게 하면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을 벌 수 있어. 최소한의 전투, 최소한의 희생으로 승리를 거두는 유일한 방법이지.”
이로써 나는 내 계획의 전모를 모두 설명했다. 세 기사는 진지한 얼굴로, 이따금씩 서로 토론도 하면서 실현 가능성을 검토해본다. 이윽고 그들은 의견의 일치를 이뤄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전혀 터무니없는 계획만은 아니군요. 제법 괜찮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들이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내가 중요한 사항 하나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상황에 따라 결계의 가장 중심부분으로 날아갈 각오도 하고 있었다. 밖에서 아르만시아를 유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만약 내일 남는 병사들이 너무 적거나, 결계를 벗어난 악마들이 너무 많으면 무궁화나무를 지킬 수 없을 것이다. 혹은 아르만시아가 너무 빨라 결계가 발동되기 전에 범위를 벗어날 수도 없다. 그럴 경우 나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로 방향을 돌릴 것이다. 그러면 악마들도, 아르만시아도 일제히 나를 따라 더욱 깊숙이 결계 안으로 들어오겠지. 그들이 나를 붙잡고 죽이는 시간동안 샤나프린은 충분히 결계를 발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죽인 후에도 여전히 아르만시아를 가둘 수 있는 지 샤나프린에게 미리 물어봐둔 건 이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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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알케니아 : ?? 나는 도와주기로 한 적 없는데?
휘렌델 : 어제 갑자기 아저씨가 이 자리에 없는 걸로 설정이 변경되는 바람에....-_-;; 그래도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도와줄 게 뻔하잖아?알케니아 : 남자의 마음은 갈대라구 ^ㅡ^휘렌델 : 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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