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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조회수 :
632,081
추천수 :
14,829
글자수 :
1,880,019

작성
17.11.09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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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
추천
10
글자
10쪽

남은 것은....

DUMMY

나는 그림자 매가 죽은 그 장소에 계속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르만시아의 시체를 뒤로 하고 알케니아와 함께 도망치듯 결계를 빠져나왔다. 그림자 매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에 대한 커다란 의문을 가슴 속에 남겨둔 채 말이다.

결계 밖에서는 연합군과 악마들이 한창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아르만시아를 해치움으로써 모든 게 끝난 것처럼 느껴졌었는데.... 이 광경을 보면서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걸 비로소 깨닫는다.

“아니, 여왕님이 왜 저기에 계시지?”

연합군은 곧 알케니아의 손을 잡고 하늘을 날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뒤늦게 그들이 보고 있었던 왕은 환영이었고, 실제의 내가 몸소 미끼가 되어 유인했기에 아르만시아를 수월하게 결계에 가둘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를 깨달은 순간 그들의 표정은 비참해졌다. 목숨을 걸고 악마와 싸우며 왕을 지키려 했는데, 결국 내가 위험을 감수했다는 사실에 실망한 것이다. 이러한 반응을 보면서 나는 큰 죄책감을 느꼈다.

내 목숨은 더 이상 나의 것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항상 내가 바르테인의 혈통을 타고났기에, 어쩔 수 없이 왕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남은 자들에게 나는 그저 순번에 따라 왕관을 쓰고 있는 왕이 아니었다. 이 시대가 원하는 왕은 내가 아닌 메담이라는 믿음 때문에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다. 이 사람들이 이로록 원하는 왕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은 죽음과 맞바꾸어서까지 나를 선택했고, 나에게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줄 의무가 있다.

“여러분들을 믿지 못해서 미안해요. 왕인 내가 이런 위험을 감수해서는 안 되었는데....”

여기까지 말한 후 나는 치밀어 오르는 슬픔을 한 번 삼킨다. 만약에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림자 매는 죽지 않고 살아있을까?

“하지만 아르만시아를 가두는데 성공했다고 해서 아직 우리가 이긴 건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며 병사들이 마주하고 있는 악마들을 가리켰다. 이른 시점에 병력을 철수시킨 까닭에 악마들의 전력은 고스란히 결계 밖에 남아 있었다.

“악마들이 그들의 군주를 해방시키기 전에 쳐부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힘이 필요해요!”

자괴감에 빠져 있던 병사들은 내가 새로운 목적을 제시해주자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지르며 다시금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나는 연합군에게 아르만시아가 이미 죽었으며, 그를 죽인 것이 다름 아닌 나라는 사실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이 자리의 주역이 내가 되어선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림자 매가 말한 것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병사들 모두가 영웅이었다. 이 전쟁은 그들이 악마들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왕을 지켜낸 싸움이 되어야 했다.

또한 케이온지드에게 인간이 아르만시아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을 알고 나면 그는 더욱 인간을 경계하고 미워할 테니 말이다. 이전까지 기회가 될 때마다 적극적으로 인간을 죽여 왔던 케이온지드는 실제로 이 전쟁이 끝난 후로 거짓말처럼 살인을 멈추게 된다.

새로운 동기를 부여받은 병사들은 더욱 용감하게 악마들에게 맞섰고, 그만큼 더 많이 죽어나갔다. 그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건 여전히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켜보기만 했다. 아르만시아를 죽이는데 모든 마력을 쏟아 부은 탓에 그들을 지원할 힘이 나에게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이 때 깨달은 능력을 내가 두 번 다시 사용하는 일은 없었다. 내가 선을 넘지 않기를 바랐던 그림자 매의 뜻을 지켜주기 위한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 그의 목숨을 빼앗은 그 힘이 선뜻 내키지 않았다.

연합군이 악마들과 싸우는 동안 나는 알케니아에게 결계의 입구, 무궁화나무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곳이야말로 연합군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가 되기에 적합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나는 오오라로 된 커다란 대검을 휘두르며 적극적으로 악마들에게 맞서고 있는 샤나프린을 발견했다.

“미안합니다, 여왕님.”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대뜸 사과부터 건넸다.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의 의지가 워낙 확고하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림자 매에게 정령왕을 돌려준 것에 대해 사과하고 있는 것이었다.

“네 잘못이 아냐. 내가 결계 안으로 뛰어든 그 시점에 그림자 매의 선택은 정해져 있었어.”

나는 찬찬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네가 그 검을 주지 않았으면 그는 돌을 깎아 만든 검을 대신 들고 뛰어들었을 거야.”

이 전쟁이 끝난 후 샤나프린은 나와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정령왕을 그의 손에서 놓지 않기로 말이다. 정령왕이 마나의 근원에 도달하는 법을 나에게 알려준 의도는 분명치 않다. 어쨌든 그림자 매는 결국 죽음을 맞이했고,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놈의 교활한 간계였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것이 아니어도 놈이 사람과 접촉하는 일은 위험하니 철저히 예방되어야 했다.

사기가 최고조로 달한 연합군이 분전을 펼치고 있지만 여전히 전투는 불리하게 흘러갔다. 이는 붉은 바위족과의 연대를 꺼리는 기수들 때문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들을 분노에 찬 시선으로 싸늘하게 흘겨보았다. 그림자 매가 죽음을 택한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이 그들 때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를 만나기 훨씬 전에 이미 그림자 매는 죽음을 선택한 상태였고, 그것은 바로 이들의 증오의 대상인 자신이 있는 이상 붉은 바위족과 바르테인의 진정한 화해는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림자 매의 죽음에 분노하게 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워드의 죽음에 분노하고 집착하는 그들의 동기에 공감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그림자 매가 남긴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중요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자신에게 분노할 권리가 있다는 말도 간과할 수 없었다. 그러자 내 눈에는 잘못된 선택으로 보이지만, 그들의 답에도 나름의 정의가 있다는 걸 차츰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메담도 결국 그들과 뜻을 같이 한 것 아니겠는가. 결국 나를 지키려는 마음은 그들이나 그림자 매나 마찬가지였다는 걸 생각하니 더욱 그들의 정의를 존중하게 되었다.

만약 그림자 매가 그들 때문에 죽음을 선택했다면 오히려 그들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여기서 그들과 마찰을 일으키면 그림자 매의 죽음은 무의미한 희생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니 말이다.

“기사 여러분께 전할 말이 있어요.”

일단 그들을 존중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그 동안 그들과 내가 어긋나게 된 이유를 깨닫는다. 그들이 나를 왕으로 대우하지 않은 건, 그들이 원하는 바를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택한 답만을 옳다고 여기는 동안 그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선왕 하워드를 죽인 범인은 그림자 매였어요. 그가 자신의 입으로 고백했습니다.”

나는 비로소 그들에게 가장 원하던 것을 선물한다. 이는 그림자 매를 위한 선물이기도 했다. 그는 거짓말로 갈등을 봉합하는 걸 원치 않았다. 양쪽이 진정으로 화해를 하려면 자신의 죄를 밝히고 신뢰 위에서 관계를 쌓아나가야 한다고 믿었다. 이것이 붉은 바위족다운 사고방식이었다.

“역시....그랬군요!!”

나의 말을 들은 순간 기수들은 그 동안 참아왔던 분노를 일순간에 터뜨렸다. 그리고 희번뜩거리는 눈으로 붉은 바위족 쪽을 훑어보며 그림자 매를 찾기 시작한다. 그를 발견하면 당장이라도 달려갈 태세였다.

“그는 지금 여기에 없어요.”

나의 말을 들은 기수들은 그의 소재를 찾기 위해 나를 쳐다보았다가, 내 시선이 향하는 쪽으로 눈길을 돌리다가 결계를 발견한다. 이윽고 그들은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고 경악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요. 그는 아르만시아로부터 나를 구하고, 장렬히 전사했어요. 그래서 내가 죽지 않고 저 사지를 벗어날 수 있었던 거예요.”

“....!!”

“경들이 그를 증오하는 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어요. 주군의 목숨을 앗아갔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그에 대한 속죄로 왕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그 행동에 대한 경들의 대답은 무엇이죠?”

기수들은 혼란스러운 표정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문득 옌닐이 상기된 얼굴로 대답한다.

“기사도에서는 이미 죗값을 치른 자에게는 책임을 묻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뒤이어 그는 이끌어달라는 얼굴로 자신을 보는 기수들을 향해 소리쳤다.

“하워드 선왕을 시해한 그 빌어먹을 자식이 우리의 여왕님을 구해냈소! 환영에 속을 정도로 우리의 눈이 멀어버린 사이에 말이오! 이제 더 이상 과거에 집착할 때가 아니오! 그 재수 없는 놈에게 한 발 뒤쳐진 셈이니, 이제 무슨 수를 써서든 만회해야 하지 않겠소?”

그리고 그는 제멋대로 붉은 바위족과 공조하고 있는 자신의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보다 효율적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도록 말이다. 상관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준다는 걸 알게 된 병사들은 시나브로 그를 신뢰하고 지휘를 따르기 시작했다. 이를 본 기수들도 휘하의 병사들을 제대로 통솔하기 시작했다.

“여왕님을 지켜라!”

“두 번 다시 여왕님을 위험에 빠뜨리지 마라!”

진정으로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치게 된 연합군은 마침내 전세를 역전시켜 악마들을 철저히 쳐부쉈다. 역사가들이 훗날 대악마전쟁이라고 부를 이 싸움은 인간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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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 다시 그 때로 +6 17.10.23 401 8 8쪽
407 돌이킬 수 없는 선택 +6 17.10.21 420 8 7쪽
406 유일한 선택지 +6 17.10.18 389 8 12쪽
405 하극상 +4 17.10.16 468 5 6쪽
404 불청객들 +4 17.10.13 416 7 9쪽
403 어그러진 계획 +4 17.09.25 394 8 10쪽
402 깨어진 신뢰 +4 17.09.23 369 11 9쪽
401 공감자 +4 17.09.21 393 9 10쪽
400 최소한의 전투, 최소한의 희생 +8 17.09.19 493 10 9쪽
399 왕의 허가 +4 17.09.17 459 9 9쪽
398 정답 +4 17.09.15 507 9 10쪽
397 허심탄회 +6 17.09.13 392 10 11쪽
396 발뺌 +4 17.09.11 419 8 10쪽
395 격발 장치 +4 17.09.08 393 7 9쪽
394 갈수록 태만 +4 17.09.04 496 11 10쪽
393 형제 간의 사투 +2 17.09.02 370 10 10쪽
392 왕의 의무 +2 17.08.31 424 11 10쪽
391 충신 +4 17.08.29 400 8 10쪽
390 정령왕의 행방 +4 17.08.27 423 9 9쪽
389 복수의 화신 +4 17.08.24 469 12 9쪽
388 권능 +6 17.08.22 470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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