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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조회수 :
632,057
추천수 :
14,829
글자수 :
1,880,019

작성
17.10.21 02:33
조회
419
추천
8
글자
7쪽

돌이킬 수 없는 선택

DUMMY

그림자 매의 품에 안겨 추락하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처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내 목을 움켜쥐고 있던 아르만시아의 팔을 또 다시 그림자 매가 베어버린 후, 땅으로 추락하는 날 받아낸 것이다. 머리 위에서 아르만시아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들린다.

어떻게 아르만시아의 팔을 벨 수 있지? 그는 신이다. 놈의 육체는 궁극의 진화에 의해 보호 받고 있을 텐데? 그림자 매의 오른쪽 팔로 시선을 옮긴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금 그림자 매가 지니고 있는 건 붉은 바위족의 기본 장비인 흑요석 검이 아닌, 이미 한 차례 아르만시아를 벤 전적이 있는 정령왕이었다. 붉은 피를 머금은 놈의 검신은 아르만시아가 육체를 변형시킬 때처럼 기괴하게 뒤틀리면서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와하하! 궁극의 진화를 깨뜨렸다! 신도 별 것 아니구나!”

정령왕은 의기양양하게 광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저번에는 팔을 베인 후에도 별 타격이 없었던 아르만시아가 이번에는 어느 정도 타격을 받았나 보다. 지금까지 우리를 추격해오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이 순간 나는 파크마저도 정령왕을 두려워하고 경계하여 자신의 수중에 두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마나의 근원과 닮은꼴인 기적의 존재. 어쩌면 그 잠재력은 신의 권능도 초월할지도 모른다. 정령왕이 궁극의 진화를 점점 더 비슷하게 재현해내는 모습에,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신의 육체에 손상을 입혔다는 사실에 나는 문득 두려움을 느꼈다. 그 검이 그림자 매의 몸을 상하게 만든다는 점 또한 혐오스럽고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이 곳에 오기 직전 샤나프린을 만나 돌려받았다.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더군.”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와중에 예기치 못했던 일을 겪은 데다, 짧은 순간 여러 정보를 접한 까닭에 나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위에 언급한 것들은 모두 두서없이 떠오른 생각들일 뿐, 이 시점에서는 머릿속으로 인지되지도 않았었다. 이런 상황에서 입을 열고 뭔가 말을 꺼낸다는 건 도저히 무리였고, 그래서 샤나프린에게 양도했던 정령왕이 어쩌다 다시 그의 손에 돌아왔는지 물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림자 매가 먼저 대답한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도 아직 정신을 완전히 차리지 못했다. 엘프인 샤나프린 또한 환영에 속지 않고 내가 결계로 날아가는 걸 보고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스쳐갈 뿐이었다.

착지할 순간이 임박해 오자 땅 밑의 악마들과 점점 더 가까워진다. 세 악마는 우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완벽한 포위 대형을 구축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그림자 매는 나를 안고 있지 않은 오른손을 허공에 몇 차례 휘둘렀다. 아니, 휘두른 것 같았다. 전후 사정을 보아 준비운동 삼아 팔을 휘둘렀을 게 분명한데, 그 팔이 움직이는 것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반원 형태의 잔상만이 내가 본 전부였다.

칸딘의 시각을 공유했다면 볼 수 있었을까?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림자 매가 빠르다는 말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초인적이라고 말할 단계를 넘어서 있었다. 오히려 칸딘과 공명해도 지금의 움직임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는 정령왕 때문에 쇠약해진 상태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떻게 오히려 더 빨라질 수 있지?

“멈추세요!”

뒤에서 알케니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뒤처지는가 싶었는데, 이제야 도착한 모양이다. 그림자 매에게 한 말 같았는데, 그는 듣지 않았다. 땅에 착지하는가 싶더니 눈앞이 휙휙 돈다. 너무 빠른 속도로 움직인 까닭에 어지럽고 멀미가 났다.

잠시 후 그림자 매가 멈춘 후 나는 비로소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가 착지하는 순간 동시에 덮치려 했던 세 악마의 심장 부분에 정확히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말이다. 이 광경은 나를 더 큰 혼란에 빠뜨렸다. 설마 나를 안은 채 악마 셋을 ‘즉사’ 시킨 건가? 그것도 눈 깜짝할 사이에 한꺼번에 말이다.

원래 악마들은 사람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신체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불세출의 경지에 다다른 메담이나 그림자 매는 그들에 준하는 기량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그들은 적지 않은 수의 악마들을 정면승부에서 쓰러뜨린 바 있다. 그러나 그 승리들도 놈들이 전투에 다시 참여할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주는데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악마들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두 곳의 급소, 심장이나 머리에 공격을 명중시키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었다. 그런 만큼 방금 전 그림자 매가 거둔 성과는 놀라운 걸 넘어 믿어지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림자 매는 어떻게 나를 구할 수 있었을까? 아르만시아는 나를 붙잡은 채 수직으로 상승하여 결계의 천장 부분에 위치해 있었다. 이는 악마들이 뛰어오를 수 있는 수준의 몇 배나 되는 높이였다. 쇠약해지기 전의 그림자 매라 해도 절대로 도달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당장 그 검을 버리세요! 그렇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알케니아의 애타는 목소리가 아까보다 한층 더 크게 들린다. 그 위험한 검을 버리라는 의견에는 동감이었다. 그러나 검이 땅에 떨어지는 쇳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그의 왼팔에 매달려 있던 나의 몸이 천천히 내려오는가 싶더니 마침내 두 발에 땅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 뒤 그림자 매는 나를 알케니아가 날아오는 방향으로 부드럽게 밀어주었다. 등에 닿는 그의 손을 느끼는 순간 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본 순간 비로소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림자 매....!!”

아니, 그곳에는 이미 그림자 매가 없었다.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옐러가 그랬던 것처럼 온 몸의 피부가 새까맣게 변해버린 마인이 서 있었다.

“정신을 집중하세요! 더 이상 그 검과 공명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당신 또한 이 결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미 늦었소.”

마지막으로 간절히 외치는 알케니아에게 그림자 매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저 높은 곳을 올려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아르만시아를 막아내는 동안 휘렌델을 데리고 탈출하시오. 나는 어차피 이 결계를 떠날 수 없게 되어버렸으니 말이오.”

알케니아에게 뒷일을 부탁한 그림자 매는 다음으로 경악하고 있는 나를 향해 쓸쓸한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어서 가, 휘렌델. 내가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에 말야. 넌 반드시 살아남아야 해.”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았다. 혼자만의 힘으로 아르만시아를 당해낼 수 없었던 그림자 매는 마침내 정령왕에게 저항하기를 포기하고 악마로 변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여러 사건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나의 머릿속은 온통 슬픔으로 가득 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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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에필로그 : 진정한 지도자 +12 17.11.17 613 1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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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고백 +6 17.11.03 402 10 8쪽
411 기적 +6 17.11.01 375 9 7쪽
410 뜻 밖의 공명 +6 17.10.29 364 10 8쪽
409 고집과 단념 +6 17.10.25 401 12 8쪽
408 다시 그 때로 +6 17.10.23 400 8 8쪽
» 돌이킬 수 없는 선택 +6 17.10.21 420 8 7쪽
406 유일한 선택지 +6 17.10.18 388 8 12쪽
405 하극상 +4 17.10.16 468 5 6쪽
404 불청객들 +4 17.10.13 415 7 9쪽
403 어그러진 계획 +4 17.09.25 394 8 10쪽
402 깨어진 신뢰 +4 17.09.23 369 11 9쪽
401 공감자 +4 17.09.21 393 9 10쪽
400 최소한의 전투, 최소한의 희생 +8 17.09.19 493 10 9쪽
399 왕의 허가 +4 17.09.17 459 9 9쪽
398 정답 +4 17.09.15 507 9 10쪽
397 허심탄회 +6 17.09.13 391 10 11쪽
396 발뺌 +4 17.09.11 419 8 10쪽
395 격발 장치 +4 17.09.08 393 7 9쪽
394 갈수록 태만 +4 17.09.04 495 11 10쪽
393 형제 간의 사투 +2 17.09.02 370 10 10쪽
392 왕의 의무 +2 17.08.31 420 11 10쪽
391 충신 +4 17.08.29 400 8 10쪽
390 정령왕의 행방 +4 17.08.27 422 9 9쪽
389 복수의 화신 +4 17.08.24 466 12 9쪽
388 권능 +6 17.08.22 470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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