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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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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조회수 :
632,088
추천수 :
14,829
글자수 :
1,880,019

작성
17.09.11 01:39
조회
419
추천
8
글자
10쪽

발뺌

DUMMY

다음날 아침 샤나프린은 먼저 동쪽으로 출발했다. 메담에게 상황을 알려 연합군으로 하여금 악마들과의 결전을 준비하게 하는 한편, 그 자신은 아르만시아를 가둘 결계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남은 우리들은 그날 마지막으로 악마들과 추격전을 벌이다가, 해가 저문 후 연합군에 합류했다.

연합군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은 강철거인의 정원과 동쪽 투슬 사이에 드넓게 펼쳐진 황무지의 한가운데였다. 페가수스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데 저 멀리 수만의 군사들이 쳐둔 거대한 진채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자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가슴이 훈훈해졌다. 내일 치열한 전투를 치러야 할 연합군의 진채는 비장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이면에서 그들이 그 동안 누렸던 평화와 소소한 행복의 잔재들을 발견했다. 지난 3주 동안 악마들을 유인하고 다닌 보람이 느껴진다.

“여왕님이 돌아오셨다!!”

이윽고 나를 발견한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성대한 환영에 환한 웃음으로 보답해 줄 수 없었다. 또 다시 그들을 악마들과의 무모한 싸움에 몰아넣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이윽고 바르테인 군 틈에서 붉은 바위족을 찾아내자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붉은 바위족 사람들 역시 환한 얼굴로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그러나 군기를 느낄 수 있는 나는 그들 집단이 품고 있는 감정을 어렴풋이 감지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두려움과 초조함이었다. 그들을 긴장시키는 상대는 악마가 아니라 다름 아닌 바르테인 군이었다.

붉은 바위족은 연합군 진채의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주위를 바르테인 군의 부대가 촘촘히 둘러싸고 있다. 마치 포위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붉은 바위족의 배치를 살펴보면, 전사들이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내부에 모여 있는 비전투 민간인들을 보호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미안함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으로 좀 더 날아가다 보니 회의장으로 보이는 커다란 막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는 기수들이 단정한 자세로 도열해 있었다. 나는 페가수스를 천천히 하강시킨 후 착지했다. 그리고 그들의 인사를 건성으로 받으며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보란 듯이 발을 크게 구르는 걸음으로 말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기수들이 자리를 잡고 앉기 무섭게 나는 매서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모두들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지켜본다. 그 표정이 마치 시치미 떼는 것 같아 나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바르테인은 붉은 바위족과 공식적으로 동맹을 결성했어요. 우리의 적은 악마들이지, 그들이 아니에요. 그런데 왜 아군이 포위하고 있는 거죠?”

비로소 내가 무엇을 지적하고 있는 지 깨달은 기수들은 앞 다투어 입을 열었다.

“포위가 아닙니다. 우연히 자리가 그렇게 배정되었을 뿐입니다.”

“여왕님께서 화를 내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단언컨대 저희는 그들을 적대한 적이 없습니다. 동맹에 대한 예우에 어긋나는 행위는 현재까지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비겁한 변명들이다. 하지만 분하게도 그 말이 거짓이라는 걸 입증할 수가 없다. 겉으로 보기에 바르테인과 붉은 바위족이 공존하고 있다는 건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니까. 하물며 막 진채에 돌아온 내가 그들의 말을 반박할 사례를 제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때마침 회의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쌓이는 먼지와 나비의 춤이 보인다. 왜 그림자 매가 아니라 나비의 춤이지? 붉은 바위족의 전사 대표자는 그림자 매 아니었나? 비록 정령왕은 샤나프린에게 반납했지만 그의 초인적인 신체능력은 건재하고 여전히 부족 내 최고의 전사일 텐데. 설마 내가 오기 전에 그림자 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그, 그림자 매는 어, 어, 어떻게... 된 거죠?”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말까지 더듬으며 기수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옌닐이 격노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아직까지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정황상 그가 하워드 선왕을 죽인 것이 틀림없는데 말입니다.”

그의 반응을 보니 일단 그림자 매가 죽지는 않은 것 같다. 다행이다. 자신의 계획을 보류하겠다는 약속을 지켰구나. 그렇다면.... 굳이 자신이 아닌 나비의 춤을 보낸 건 나를 피하고 싶어서일까? 가슴이 먹먹해진다. 하지만 지금은 그에게 서운해 할 때가 아니다. 드디어 기수들의 뻔뻔스러운 변명에 반박할 증거가 생겼다.

“그렇다면 붉은 바위족의 대표자들이 왜 이제야 나타난 거죠? 동맹 상대로서 응당 이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여왕님은 영물의 힘으로 몹시 빨리 이동하셨습니다. 그래서 시종이 시간 내에 소식을 전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붉은 바위족보다 더 먼 곳에 주둔한 부대의 기수들은 어떻게 먼저 와 있었단 거야? 뻔히 속셈이 보이는데 꼬투리를 잡을 수 없으니 더욱 분하다.

“그러면 내가 착각하고 있었던 모양이군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넘겨짚었나 봐요.”

“그렇습니다, 여왕님. 여왕님께서 도착하시자마자 이렇게 화내시는 이유를 저희로서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다들 잠깐 나가 계세요.”

내 말을 들은 기수들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의외의 명령에 너무 놀랐는지 교활한 변명과 핑계를 술술 늘어놓던 그들의 입도 굳게 닫혀 있다.

“당사자인 붉은 바위족의 대표자들에게 직접 들을게요. 경들이 동맹에게 어떤 친절을 베풀었는지 말이에요. 내 착각을 바로잡기 위해서예요. 사적인 얘기가 나올 수 있으니 가급적 듣는 사람은 적은 게 좋겠죠?”

“하지만 여왕님, 그들은 믿을....”

잔뜩 흥분한 얼굴로 소리치던 기수가 문득 도중에 사색이 되며 입을 다문다. 여기서 붉은 바위족을 믿을 수 없는 족속들이라고 말해버리면 그 동안 발뺌했던 혐의를 시인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20여 일 동안이나 수호기사로서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던 벨포트까지 내 옆에 있는 터라 혹시 모를 위험을 방지한다는 핑계도 댈 수 없었다.

결국 기수들은 달갑지 않은 태도로나마 회의장에서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떠난 후 나는 쌓이는 먼지에게 그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들었다.

“기수들은 분노했다. 네가 제대로 된 합의에 이르기 전에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떠나버렸다는 사실에 말이다.”

그 때 내 행동이 조금 과하긴 했다.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결심을 실행에 옮길 기회를 놓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그들을 화나게 만든 건 고작 우리 부족을 위해 여왕인 네가 목숨을 걸었다는 사실이다. 응징은 즉각적이었다. 우리를 대하는 바르테인 군의 태도가 강철만큼이나 차갑게 변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지. 너는 돌아오지 않고 우리 부족 민간인들만 합류하자 압박은 더욱 거세어졌다.”

“병사들은 우리와 계속 어울리려 했다. 하지만 결국 지휘관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고, 점차 교류가 끊겼지.”

나비의 춤도 한 마디 거들었다. 역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구나. 물리적 폭력은 가하지 않았지만 심리적으로 괴롭히고 있었어!

“메담은 그 동안 뭐했어? 그걸 보고만 있었어?”

바로 이런 문제가 생길까봐 먼저 보낸 건데. 혹시 메담도 붉은 바위족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던 건가? 그에게 그림자 매가 하워드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려준 건 배다른 형제로서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후회가 되려 한다.

“그렇지 않아. 그도 할 수 있는 건 다해 주었어.”

쌓이는 먼지가 메담이 그들에게 준 도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연합군은 황무지를 전전하고 있었고, 때문에 식량을 조달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때때로 물과 먹을 것을 조달할 수 있는 물가를 발견하면 수가 많은 바르테인군이 좋은 자리를 선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비전투 민간인까지 합류하는 바람에 먹일 입이 늘어난 붉은 바위족은 더욱 곤경에 처했는데, 메담의 명령 때문에 기수들이 어쩔 수 없이 식량을 나눠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도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은 막아 줄 수 없었다.”

메담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을지 충분히 공감이 간다. 나 역시 방금 전에 기수들의 능구렁이 같은 태도 때문에 진땀을 빼지 않았던가. 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쌓이는 먼지가 조심스럽게 부탁한다.

“작은 새. 나는 네가 그들에게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들의 분노는 정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너의 영웅적인 행동에 다시 한 번 무한히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뻐하는 것만큼 기수들은 화가 날 것이다. 그들이 목숨까지 걸면서 지키려 하는 네가, 우리 때문에 죽을 뻔 했으니까.”

“지금까지 당해왔으면서도 그런 말이 나와?”

“우리는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네가 먼저 우리 부족을 이해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도 이렇게 부아가 치미는데 당사자들이 이렇게 나오다니.... 그의 부탁대로 기수들을 이해하기는커녕 이렇게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힌 그들에 대한 원망만 더욱 커졌다. 이제 당장 내일이면 악마들과, 아르만시아와 운명을 건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벌써부터 내부분열이라니....

“잘 들어, 쌓이는 먼지. 현시간부로 붉은 바위족과 바르테인의 동맹은 파기야.”

나는 한숨을 쉬며 붉은 바위족의 대표자들에게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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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메담 : 왜 덮어놓고 내 탓을 해? ㅠㅠ

휘렌델 : 미안. 그건 진짜로 착각이었네-_-;;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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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18 메틸아민
    작성일
    17.09.11 11:31
    No. 1

    휘렌델이 없으니 이런 일이 생기네요ㅠ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7.09.12 22:29
    No. 2

    바로 그겁니다 ^^;
    메담도 나름 노력하지만 한계가 있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7 Brav
    작성일
    17.09.11 13:07
    No. 3

    "물론 우리는 너의 '영중'적인 행동에..." 쌓이는 먼지의 대사 중에 오타인 듯 한데요. 동맹이란 굴레를 부숨으로서 붉은 바위족의 생존을 확보하려는 여왕님이신가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7.09.12 22:31
    No. 4

    감사합니다. 덕분에 오타를 수정할 수 있었습니다. ^^;
    정확한 지적입니다.
    이 시점에서 동맹을 파기하는 목적은 그것 뿐이겠죠.... ㅠ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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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 최소한의 전투, 최소한의 희생 +8 17.09.19 493 10 9쪽
399 왕의 허가 +4 17.09.17 459 9 9쪽
398 정답 +4 17.09.15 508 9 10쪽
397 허심탄회 +6 17.09.13 392 10 11쪽
» 발뺌 +4 17.09.11 420 8 10쪽
395 격발 장치 +4 17.09.08 394 7 9쪽
394 갈수록 태만 +4 17.09.04 496 11 10쪽
393 형제 간의 사투 +2 17.09.02 371 10 10쪽
392 왕의 의무 +2 17.08.31 424 11 10쪽
391 충신 +4 17.08.29 400 8 10쪽
390 정령왕의 행방 +4 17.08.27 423 9 9쪽
389 복수의 화신 +4 17.08.24 469 12 9쪽
388 권능 +6 17.08.22 471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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