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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조회수 :
632,075
추천수 :
14,829
글자수 :
1,880,019

작성
17.08.24 02:30
조회
468
추천
12
글자
9쪽

복수의 화신

DUMMY

죽음을 대가로 모든 역량을 끌어올린 덕분일까? 파크는 아르만시아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그와 싸우면서도 착실하게 악마들을 정리하며 탈출할 길을 뚫어주었다. 우리는 조용히 숨죽이며 적당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을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케이온지드가 파크에게로 날아갔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파크와 싸우고 있는 아르만시아에게로 돌진했다. 뜻밖의 난입에 당황한 파크가 그를 향해 다급히 외쳤다.

-물러서게, 케이온지드!-

그러나 붉은 드래곤은 신의 말조차 듣지 않았다. 대꾸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날아가 다짜고짜 아르만시아를 발톱으로 내리쳤다. 쾅! 묵직한 소리와 함께 아르만시아가 서 있던 일대의 땅이 무너진다. 그러나 막상 그 엄청난 공격을 맞은 아르만시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귀찮은 녀석!”

아르만시아는 나직하게 한 마디 내뱉으며 곡검처럼 변한 오른손을 휘둘러 케이온지드에게 반격한다. 붉은 드래곤은 그 공격을 피하려 했다. 최소한 가벼운 상처만 허용하며 다음 공격을 준비하려 했다. 그러나 아르만시아의 움직임은 예전에 그가 싸웠을 때와 같지 않았다. 미처 물러나기도 전에 케이온지드의 어깨를 깊숙이 베며 지나간다.

“크아앙!”

케이온지드의 비명에는 당황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는 하이아온과 달리 악마들의 빠른 움직임에 대응하는 법을 완벽히 숙지하고 있었고, 지난번에 싸웠을 때 이 정도로 깊은 상처는 허용하지 않았었다.

아르만시아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양 어깨에서 촉수가 튀어나와 각각 톱날과 거대한 송곳으로 변해간다. 자신의 주먹보다도 작은 파크에게 연신 당하느라 쌓인 분노를 케이온지드에게 퍼부으려는 것 같았다. 이를 본 케이온지드는 고통을 참으며 날아오르려 했지만 그보다 아르만시아의 접근이 더 빨랐다.

눈을 질끈 감으며 다가올 고통을 대비하는 드래곤 앞으로 작은 형체가 날아온다. 그리고 케이온지드에게 쏟아지는 아르만시아의 끔찍한 맹공을 모조리 받아내었다.

-어서 자리를 피하게. 아르만시아는 자네가 당해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간신히 눈을 뜬 케이온지드 앞에서 아르만시아를 주먹으로 쳐 날려버린 파크가 한 번 더 권고한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금의 아르만시아는 나에게 구속당하지 않고 자신의 역량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 동안 파크에게 볼품없이 당하는 모습만 보여 와서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이 기회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증명한 것이다.

-그럴 수는 없소.-

자신이 더 이상 아르만시아를 맞상대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는데도 고집불통 케이온지드는 물러서지 않는다.

-아무리 조율자로서의 지식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하나 지금의 당신도 결국 인간일 뿐이오. 목숨을 대가로 모든 잠재력을 쥐어짜내 폭발시켰다지만 그 능력은 인간으로서 가능한 범주 안에 있지. 인간은 상대할 수 있는 적을 이 몸이, 드래곤이 당해낼 수 없다는 건 인정할 수 없소!-

이렇게 외친 케이온지드는 왼쪽 어깨에 치명상을 입어 제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는데도 아르만시아와 맞서려 한다. 그야말로 자존심의 화신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케이온지드가 앞에서 아르만시아의 주의를 분산해주는 덕분에 파크에게 길을 뚫어줄 기회가 더 많이 생긴 것만은 사실이었다. 이윽고 붉은 바위족 주민들이 지나갈 수 있을 만한 공간이 확보되었고, 이때만 기다리고 있던 우리는 서둘려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인간의 왕이 달아난다! 놓치지 마라!”

이 광경을 지켜본 아르만시아가 즉시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자신과 동급의 힘을 지닌 상대가 있으니 지난번과 같은 여유를 부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아르만시아의 명령을 받은 악마들이 다급히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일부러 행렬의 맨 뒤에 남아 있었다. 악마들은 나를 최우선적으로 노리고 있었고, 따라서 내가 뒤에 남으면 선두는 비교적 안전하게 전장을 이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파크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날아다니며 악마들이 우리에게 접근하는 걸 최대한 막아 주었다. 일부 그가 놓친 악마들은 내 곁을 든든히 지키고 있는 메담과 그림자 매, 켈리트와 샤나프린이 처리해 주었다.

파크가 아르만시아를 상대하는 것보다 퇴로 확보를 우선하게 되면서 자연히 케이온지드가 아르만시아에게 노출되는 일이 잦아졌다. 이에 따라 케이온지드는 점점 더 무거운 상처를 입어가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탈출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이제 그만 나오게! 자네는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야!-

완전히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케이온지드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파크가 한 번 더 외쳤다.

-애초에 인간이 궁극의 진화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하네. 나처럼 미리 알고 있지 않는 이상 이 나이에 그 이치를 깨우칠 리가 없으니 말일세. 나를 비교대상으로 삼아서 자존심 상할 이유가 없네!-

-포기할 수 없소! 지금이 놈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란 말이오!-

케이온지드는 여전히 파크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온 몸이 망신창이가 되었는데도, 고통에 신음하며 경련을 일으키면서도 그의 눈에서는 투지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놈은 하이아온을 죽였소! 지금이 아니면, 당신이 함께 싸워주지 않으면 언제 복수할 수 있단 말이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케이온지드에게 버럭 소리 질렀다.

“야 이 멍청한 자식아!!”

파크와 대화할 때는 쳐다보지도 않던 케이온지드가 나에게는 눈길은 돌려준다. 그만큼 인간에게 욕설을 듣는 게 어이없었던 걸까? 그러자 나는 그에게 속사포처럼 쏘아붙였다.

“하이아온이 그런 걸 바랄 것 같아? 네가 아르만시아를 죽여 자신의 복수를 해주길 바랄 것 같아? 그러다 네가 죽는 걸 바랄 것 같아? 넌 하이아온을 그렇게도 몰라?”

케이온지드에게 하는 말인데, 이상하게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으면서 내 가슴이 울리고 있다. 왜일까?

“하이아온은 나 때문에 하나 뿐인 목숨을 희생했어! 하지만 널 위해서는 기꺼이 열 번도 넘게 죽으려 했을 거야! 그 귀한 목숨을 버릴 참이야?”

케이온지드는 이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그의 눈에서 불꽃같은 투지가 사라지며 점차 아르만시아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이때는 우리도 포위망을 이미 돌파해 버린 뒤였다. 악마들은 우리의 뒤, 한 방향에서만 쫓아오고 있었고 파크도 더 이상 동분서주할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그는 케이온지드가 떠난 후에도 여유롭게 아르만시아까지 상대할 수 있었다.

“어딜 가?”

아르만시아와의 싸움에서 몸을 뺀 케이온지드는 풀이 죽은 얼굴로 어디론가 날아가려 하고 있었다. 나는 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나의 바로 앞에 있는 사람들, 가장 느려서 행렬의 뒤에 남은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로 와서 이 사람들 좀 태워가.”

-뭐라고?-

케이온지드는 부릅뜬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 공포스러운 광경에도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하이아온이었다면 그렇게 했을 거야.”

이 말을 들은 케이온지드는 잠시 고민한 후 날개를 접으며 내려왔다. 그리고 군말 없이 노인과 환자 등 속도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등에 태워 운반해 주었다. 덕분에 한결 속도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악마들의 추격을 뿌리치게 되는 순간, 몰려오는 악마들과 아르만시아를 막으며 파크가 우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부디 무사하게. 다음에 태어났을 때 나에게 어떻게 승리했는지 이야기 해주어야 하네.-

“알겠습니다, 파크. 다음 만남을 기약하겠습니다.”

“그 동안 함께 해서 영광이었습니다, 파크님.”

샤나프린과 알케니아가 차례로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림자 매와 메담, 주위에 붉은 바위족까지 그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켈리트는 슬픈 표정만 지을 뿐 차마 그에게 작별을 고하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인사하지 않았다. 다만 단 한 명의 희생도 없이 탈출한다는 그의 계획을 실현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악마들도 파크도 보이지 않게 되었고 목표는 달성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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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모레는 일이 있어 글을 올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ㅠㅠ

다음 편은 토요일을 기다려 주세요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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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18 메틸아민
    작성일
    17.08.24 09:17
    No. 1

    말 죽어라 안 듣는 파충류도 꿇게 만드는 여왕님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7.08.27 00:24
    No. 2

    케이온지드를 설득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의 행동동기를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일 겁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7 Brav
    작성일
    17.08.24 20:22
    No. 3

    이그, 저 아르만시아는 끝내 죽이지 못 하나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7.08.27 00:26
    No. 4

    궁극의 진화는 극강의 방어력과 재생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르만시아를 상대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데도 파크가 다른 일행을 탈출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까닭은 제한 시간 내에 그를 죽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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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 최소한의 전투, 최소한의 희생 +8 17.09.19 493 10 9쪽
399 왕의 허가 +4 17.09.17 459 9 9쪽
398 정답 +4 17.09.15 507 9 10쪽
397 허심탄회 +6 17.09.13 391 10 11쪽
396 발뺌 +4 17.09.11 419 8 10쪽
395 격발 장치 +4 17.09.08 393 7 9쪽
394 갈수록 태만 +4 17.09.04 496 11 10쪽
393 형제 간의 사투 +2 17.09.02 370 10 10쪽
392 왕의 의무 +2 17.08.31 423 11 10쪽
391 충신 +4 17.08.29 400 8 10쪽
390 정령왕의 행방 +4 17.08.27 422 9 9쪽
» 복수의 화신 +4 17.08.24 469 12 9쪽
388 권능 +6 17.08.22 470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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