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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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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8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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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02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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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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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형제 간의 사투

DUMMY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로 그림자 매와의 대담을 마무리 지은 나는 다시 사람들 곁으로 돌아왔다. 붉은 바위족 주민들은 하나 같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또 한 번 느낀다. 비록 출생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지만 그들은 남이 아니다. 부족 대통합 전쟁 당시 붉은 바위족은 강철거인의 후예들에게 복종하는 것을 거부했고, 그 대가로 수 백년 동안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왔다. 우리의 선조들이 강자로서의 관용을 베풀지 않았던 게 원망스럽다. 창이 아닌 손을 내밀었다면 충분히 그들과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었을 텐데....

위험을 무릅쓰고 악마들을 유인하려는 나에게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할지는 충분히 예상이 되었다. 부디 몸조심하라고, 반드시 살아남으라고 말할 것이다. 뻔하디 뻔한 말이지만 그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을 듣는 게 무서웠다. 사람들과 멀찍이 떨어져서 쉬고 있는 케이온지드쪽으로 발길을 돌린 건 그 때문이었다.

“미안해.”

드래곤의 청력으로 내 말을 못 들었을 리가 없다. 그러나 케이온지드는 시큰둥한 얼굴로 먼 곳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내 말에 대답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급한 상황이었다지만 거친 말을 했어. 넌 인간을 싫어하지? 그런데 나에게 그런 말을 들었으니 얼마나 기분이 나빴을까?”

케이온지드는 여전히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 말은 하지 않지만 얼른 내가 꺼져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드래곤도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고 했지? 내가 왕이 아니었다면 벌써 나를....”

-그렇지 않다.-

드디어 침묵을 깨고 케이온지드가 나의 말에 반응을 보인다.

-인간인 네가 나에게 욕을 한 건 물론 견딜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네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어쨌거나 너의 지적 덕분에 나는 보다 이성적으로 현 사태를 분석할 수 있었고, 위기에서 벗어났다. 내가 너에게 분노하지 않는 건 그 이유 때문이다.-

케이온지드는 왕이라는 이유 때문에 나를 죽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게 불쾌했던 모양이다. 그 때문에 당초의 결심을 깨고 입을 연 것이다. 그도 처음에 생각했던 만큼 편협하고 옹졸한 녀석은 아닌 것 같다. 한 때 죽이려 했던 그림자 매를 지금에 와서는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래서 하이아온이 그를 그토록 아꼈던 걸까?

“결과적으로 네가 아르만시아를 상대해 준 덕분에, 뒤처지는 사람들을 태워준 덕분에 수월하게, 탈출할 수 있었어. 그래서 너에게 욕했던 게 더 미안해지더라.”

-....고맙다는 말보다는 차라리 미안하다는 말이 더 낫구나.-

케이온지드는 그것으로 나와의 대화를 끝내고 싶어했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의 몸 여기저기에 깊이 패인 상처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만약 칸딘이 살아 있었다면 마법으로 당장에 치료해 줄 텐데, 그래서 더 안타깝다.

“좀 꿰매어 줄까?”

마법이 안 된다면 의술로라도 그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싶었다. 순수한 호의로 건넨 말인데, 케이온지드는 굉장히 당황했다. 긴장하며 나를 경계하는 것이 느껴진다.

-필요 없다.-

주변에 떨어진 나뭇가지와 긴 풀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케이온지드가 마법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것들을 바늘과 실 삼아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꿰매기 시작했다.

-이 정도 상처는 나에게 있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바마렛사와 싸웠을 때는 더 심했었지. 그 경험 덕분에 나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케이온지드는 사실 우리가 모두 떠난 후에야 이 응급처치를 쓸 생각이었다. 인간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이 그에게는 그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였나 보다.

아울러 바마렛사가 아르만시아보다 더 힘겨운 상대였다는 말은 드래곤으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우기 위한 말이기도 했다. 그 말을 통해 나는 간접적으로 케이온지드가 바마렛사와 싸울 때 상당히 고전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지금보다 그 때 더 심각한 상처를 입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바마렛사와 칠일 낮 칠일 밤 동안 쉬지 않고 싸운 결과였다.

“바마렛사와는 왜 싸웠던 거야?”

드래곤의 언어를 통해 내가 알아낼 수 있었던 사실은 거기까지였다. 그러자 스스로 드래곤임을 이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케이온지드가 다른 드래곤을 죽여야 했던 이유가 궁금해졌다. 심지어 바마렛사는 그와 마찬가지로 하이아온에게서 태어난 형제였다. 물론 드래곤들에게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없지만, 하이아온와 케이온지드의 유대감을 본다면 이 셋은 예외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어느 날 하이아온이 먼 동방으로 떠나 버렸다. 인간으로 현생해본 후에 말이다. 오래전부터 그를 존경하고 있던 바마렛사와 나는 그가 떠난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우리 둘은 그가 그랬던 것처럼 인간으로 현생해 보기로 했지.-

드래곤의 언어는 케이온지드가 뒤늦게 알게 된 사실도 나에게 가르쳐 준다. 하이아온이 인간으로 현생해 보았던 건 자신이 그 동안 수 없이 죽여 온 인간의 입장이 되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 동방으로 떠난 것은 이미 자신이 인간을 미워하는 드래곤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이아온은 인간과 다른 종류의 관계를 쌓아 보고 싶었지만 기존에 그가 고수했던 접근법 때문에 이 땅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자신의 악명이 퍼지지 않은 머나먼 땅에 터를 잡은 것이다.

-현생이란 드래곤들이 매우 기피하는 방법이다. 자신의 영혼의 조각을 분리해서 완전히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니까. 자신이 드래곤이라는 자각도 없다. 평범하고 하찮은 삶을 살게 될 수도 있지. 더욱 큰 문제는 그 영혼의 조각이 돌아올 때 드래곤은 필연적으로 현생한 생명체로서의 삶의 마지막, 즉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너희들은 경험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이지.-

말을 하면서 케이온지드는 이렇게까지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자기 자신에게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를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현생이 끝난 후 나는 인간일 때의 기억을 지워버렸다. 현생을 마치고 돌아온 영혼의 조각이 나와 하나가 되기 전에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지. 즉 그 현생이 내게 남긴 것은 오직 죽음의 고통뿐이었다.-

“인간으로서의 네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아?”

-조금도 궁금하지 않아. 바마렛사를 보면 차라리 그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바마렛사는 현생이 끝난 후 완전히 변해 버렸다. 드래곤은 완벽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인간처럼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며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면서 무분별하게 알을 낳기 시작했다. 거기서 태어난 존재들은 차마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하등한 생명체들뿐이었지.-

그 생명체들에 대해서는 나 역시 충분히 많은 경험을 겪어 잘 알고 있다. 겉모습은 드래곤과 비슷하지만 본능대로만 움직이는 야만적인 짐승들이었다. 이를 보면 케이온지드가 바마렛사를 죽여준 게 고맙기까지 하다. 만약 바마렛사가 살아 있었다면 강철거인의 정원이 온통 드레이크와 와이번으로 넘쳐났을 지도 모른다.

-난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 힘닿는 데까지 죽이고 또 죽였다. 하지만 내가 죽이는 것보다 불어나는 속도가 더 빠르더군. 결국 난 바마렛사를 찾아가 중단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나의 요청을 거부했지.-

케이온지드는 자신이 굳이 하고 싶지 않은 말을 내게 해주고 있는 이유를 어렵사리 찾아냈다. 하이아온이 목숨을 바쳐 지켜낸 소녀, 자신 대신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울어준 소녀에게서 하이아온의 잔영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지은 것이다.

“그래서 싸운 거야?”

-그렇다.-

참으로 얄궂은 운명이다. 바마렛사가 부정하려 했던 완벽에 집착하는 드래곤의 표본이 바로 케이온지드였으니 말이다. 다른 드래곤들은 바마렛사의 행태에 분노하면서도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드래곤은 자신의 목숨을 다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종족이었기 때문이다. 목숨보다 드래곤의 자부심을 더 소중하게 생각했던 건 오직 케이온지드라는 별종뿐이었다.

“혹시 바마렛사를 죽인 걸 후회하고 있어?”

-그게 무슨 소리냐?-

케이온지드는 또 다시 크게 동요한다. 방금 전에 내가 물은 말은 하이아온이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질문이었다. 이제 그는 지금까지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 이유를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지금 이 순간 바마렛사가 살아 있다면, 그가 예전의 행동을 그대로 한다면 나는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와 싸우고 죽일 것이다.-

이 말은 틀림없는 케이온지드의 진심이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서 다른 인간들을 데리고 빨리 떠나라. 거추장스럽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그가 처음의 결심을 깨고 나와 대화를 시작한 걸 후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방금 한 말 역시 그의 진심이었다. 그는 여전히 인간이라는 종족을 증오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이아온과 바마렛사가 변한 것이 인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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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사실 그림자 매와의 대화를 끝으로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는 것이 왕녀의 외출만 생각하면 훨씬 더 매끄러운 전개였을 겁니다.

하지만 이 소설 또한 연대기에 속해 있고, 케이온지드가 이 소설에서나 연대기에서나 나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에 그에게도 분량을 할애해 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제 결말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벌써부터 휘렌델과의 작별이 아쉬워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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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 유일한 선택지 +6 17.10.18 389 8 12쪽
405 하극상 +4 17.10.16 468 5 6쪽
404 불청객들 +4 17.10.13 416 7 9쪽
403 어그러진 계획 +4 17.09.25 395 8 10쪽
402 깨어진 신뢰 +4 17.09.23 369 11 9쪽
401 공감자 +4 17.09.21 393 9 10쪽
400 최소한의 전투, 최소한의 희생 +8 17.09.19 493 10 9쪽
399 왕의 허가 +4 17.09.17 459 9 9쪽
398 정답 +4 17.09.15 508 9 10쪽
397 허심탄회 +6 17.09.13 392 10 11쪽
396 발뺌 +4 17.09.11 419 8 10쪽
395 격발 장치 +4 17.09.08 394 7 9쪽
394 갈수록 태만 +4 17.09.04 496 11 10쪽
» 형제 간의 사투 +2 17.09.02 371 10 10쪽
392 왕의 의무 +2 17.08.31 424 11 10쪽
391 충신 +4 17.08.29 400 8 10쪽
390 정령왕의 행방 +4 17.08.27 423 9 9쪽
389 복수의 화신 +4 17.08.24 469 12 9쪽
388 권능 +6 17.08.22 471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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