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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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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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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80,019

작성
17.08.27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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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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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9쪽

정령왕의 행방

DUMMY

필사의 탈출에 성공한 후에도 우리는 계속 동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다 보니 저 앞에 거대한 케이온지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가 태워 나른 사람들과 합류한 후 우리는 잠시 앉아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주변에 악마가 없어진 덕분에 이제는 꿈안개도 연합군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메담은 그 때까지 전진을 계속 하고 있던 그들에게 나의 무사함을 알린 뒤, 우리가 합류할 때까지 그 자리에 대기시켰다.

-샤나프린.-

다들 턱밑까지 차올랐던 숨을 돌리느라 정신이 없을 때 케이온지드가 조용히 샤니를 불렀다.

-파크가 자네와 함께 계획하던 일은 어떻게 되었나? 그 놈을 가둘 방법은 배웠나?-

-원리는 모두 전수 받았습니다. 남은 건 제가 완성하는 일뿐이죠.-

샤니는 우리와 대화할 때는 육성으로 말했지만 케이온지드에게는 엘프의 언어로 답했고, 따라서 그 짤막한 말 속에는 여러 가지 정보가 내포되어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파크가 있던 없던 샤니의 성취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가 오오라라는 능력을 깨우치는데 대략 20일 정도가 소요되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반드시 완성하게. 그리고 꼭 놈을 가둬 주게.-

간곡한 애원과 단호한 협박이 모두 포함된 당부를 케이온지드가 샤니에게 전한다.

-그렇게 해주면 언젠가 반드시 놈을 내가 죽여 버릴 테니까.-

-알겠습니다, 케이온지드.-

케이온지드는 굉장히 자존심이 강한 드래곤이었다. 하지만 패배를 인정하지 못해 목숨을 버릴 정도의 멍청이는 아니었다. 그가 지금 훗날을 기약하는 건 파크가 부활하면 그와 함께 도전하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파크가 인간의 힘만으로 아르만시아를 능가한 것과 같은 경지에 자신도 언젠가는 도달할 것이며, 그 때 혼자서 복수를 달성할 생각이었다.

“미안하다, 케이온지드.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그림자 매가 불쑥 케이온지드에게 사과한다. 약속이라고? 둘 사이에 대체 무슨 약속이 오갔던 걸까?

-사과할 필요 없다, 그림자 매. 너는 휘렌델을 지키는 걸 우선으로 하겠다고 했고, 나는 아르만시아를 우선으로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각각 서로의 말을 지킨 것이다.-

드래곤의 언어가 그 약속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 아르만시아와 처음에 조우했을 때, 케이온지드는 바르테인 군과 붉은 바위족이 후퇴한 후에도 계속 싸울 생각이었다. 당시 아르만시아는 칸딘이 목숨과 맞바꾸어 완성한 마법에 의해 밀려나고 있었고, 케이온지드는 그것을 절호의 기회로 생각했다.

“그만둬! 네 공격이 놈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건 이미 겪어서 알고 있잖아!”

그림자 매의 경고를 들은 후에야 케이온지드는 비로소 아르만시아의 목숨을 빼앗을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으며, 실패할 경우 거꾸로 자신이 죽게 된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무방비 상태의 원수를 눈앞에 두고 포기하는 건 쉽지 않았고, 그는 마지막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였다.

“놈에게 원한이 있나? 그렇다면 다음에 내가 네 복수를 도와주겠다. 너와 함께 놈을 죽이겠다.”

이것이 둘 사이의 약속이었다. 그 고집불통 케이온지드를 그림자 매가 설득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자신의 공격에는 끄덕도 안하던 아르만시아의 팔을 정령왕이 깨끗이 베어버린 것을 본 케이온지드는 놈을 쓰러뜨리기 위해 그림자 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일단 그 자리에서 피하라’는 계약 조건을 받아들인 것이다.

-보아하니 앞으로도 그 약속은 지키기 힘들겠구나.-

케이온지드가 몰라보게 야위어 버린 그림자 매의 몸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다. 그 동안 함께 교란작전을 수행하면서도 그에게 일어나고 있던 변화는 눈치 채지 못했었던 모양이다. 그가 지금 이 순간 복수를 장기적인 계획으로 수정한 결정적인 이유도 그림자 매가 기대했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케이온지드의 이 말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당장 아르만시아에게 복수할 수 없는 건 안타깝지만 그림자 매가 약해졌다는 사실에는 안도하고 있다. 만약 그림자 매가 약속을 지켜 아르만시아를 죽이는데 성공했다면 그는 곧바로 그림자 매와 사생결단을 냈을 것이다. 나아가 그림자 매와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있는 인간의 잠재력을 더욱 경계하고 미워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그 검은 포기해라. 원래부터 조율자들을 초월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던 존재였다. 그런데 아르만시아를 베고 궁극의 진화가 담긴 피까지 맛보았지. 파크의 금제가 언제까지 먹힐 지도 알 수 없어.-

케이온지드도 그림자 매가 약해진 이유를 정령왕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뜻밖에도 이 말에는 그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는 여전히 인간을 미워하고 그림자 매의 잠재력에 극도의 거부감을 갖고 있지만, 자신과 함께 악마와 싸워온 그를 전우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말이 맞습니다. 저희가 경고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케이온지드의 말을 받아 샤니도 그림자 매에게 말한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파크가 그림자 매를 불러서 정령왕에 돌려달라고 했었지. 파크는 정령왕이 통제를 벗어날 시에 생길 일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제 그만 나에게 넘겨주시죠. 그러면 두 번 다시 그 검이 인간의 손에 넘어가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겁니다.”

파크와 하이아온은 정령왕을 보관할 방법을 고민한 끝에 바마렛사의 영역에 꽂아 두었다. 드레이크와 와이번이 우글거리는 땅에 감히 인간이 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정령왕은 십 년도 되지 않아 붉은 바위족에게 발굴되고 말았다.

당시에도 샤니를 알고 있었다면 그들은 결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샤니는 정령왕을 보관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검을 들기에는 너무 거대한 하이아온과 달리 언제나 정령왕을 소지할 수 있었고, 엘프인 까닭에 파크처럼 정령왕에게 휘둘릴 걱정도 없었다.

“그 때 합의를 보지 않았나? 아직 아르만시아의 위협은 끝나지 않았다. 모든 일이 마무리 될 때까지는 검을 돌려줄 수 없어.”

그림자 매가 무겁게 고개를 저으며 거부의사를 밝힌다. 그러자 샤니가 한 번 더 그에게 간곡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몸이 그 지경이 되었는데도 그렇게 말씀하실 겁니까? 그 검은 힘을 주는 대가로 당신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언제 당신의 통제를 벗어날지 모릅니다.”

엘프는 흥분해서 언성을 높이는데 인간인 그림자 매는 오히려 침착하게 그의 말에 응대한다.

“붉은 바위 동굴에 도착해 있었다고 했지? 그러면 지켜보았을 것이다. 나는 아직 싸울 수 있다는 걸, 이놈을 다스릴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나는 이 녀석에게 결코 지지 않을 것이다. 이 녀석에게 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미 겪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조용히 듣고 있던 알케니아가 입을 열었다.

“저도 그림자 매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는 파크님에게 아르만시아의 위협이 끝날 때까지의 시간을 약속받았습니다. 물론 정령왕이 그의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약속된 시간과는 별개의 사항이죠.”

알케니아는 목을 가다듬고 난 후 말을 이었다.

“그의 말대로입니다. 우리는 그의 힘겨운 전투를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물론 파크님이 힘을 비축할 시간을 좀 더 확보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보다 더 큰 이유는 그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정령왕이 통제에서 벗어날 경우 여왕님은 우리가 구할 틈도 없이 목숨을 잃으셨을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악마들에게 쓰러지지 않을 거라는 걸, 정령왕에게 지배당하지 않을 거라는 걸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파크님도 나서지 않았던 겁니다.”

알케니아의 목소리는 한껏 격앙되어 있었고 눈에는 눈물까지 맺혀 있었다. 그 역시 그림자 매가 한계에 계속 도전하는 광경을 보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나 보다. 이렇게 감정적인 걸 보면 그가 마법사라는 사실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지만....”

알케니아의 말을 받아 이번에는 켈리트가 입을 열었다.

“파크님이 여기 계셨다면 틀림없이 그가 검을 쓰게 하셨을 거야. 인간의 잠재력이 어디까지 인지 확인하시려고 말야.”

파크와 만나 보았던 이들은 그녀의 말을 듣자 하나 같이 침묵과 표정으로 긍정했다. 연이은 지원에 힘을 얻은 그림자 매가 다시금 입을 연다.

“나에게는 이 검이 필요해. 이번 전투로 케이온지드는 큰 부상을 입었다. 앞으로는 추격하는 악마들을 나 혼자 교란시켜야 하는데, 이 검이 없으면....”

“닥치고 그 빌어먹을 검을 샤니에게 넘겨.”

그림자 매가 승리의 깃발을 꽂기 직전, 나는 그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선언했다.

“악마들을 교란하는 임무는 앞으로 내가 맡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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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니제클 : 루시엘에 정령왕이 나오게 된 경위가 어렴풋이 보이네. O_O

샤나프린 : 그 경위에 대해서는 별로 알고 싶지 않네요 ㅠ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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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18 메틸아민
    작성일
    17.08.27 12:05
    No. 1

    그림자 매와 휘렌델의 설득 방식이 정반대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7.08.28 23:12
    No. 2

    그림자 매는 케이온지드의 복수를 약속해 주었지만 휘렌델은 반대로 단념해야 할 이유를 상기시켜 주었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7 Brav
    작성일
    17.08.27 15:08
    No. 3

    여왕님이 극한까지 몰리니 가식은 다 치워놓고 왕위에 오르기 전 성격이 그대로 분출되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7.08.28 23:33
    No. 4

    많이 쌓였었나 봅니다.
    1부에서는 메리로 활동하면서 그나마 자유를 만끽했었는데.... ^^;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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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 깨어진 신뢰 +4 17.09.23 369 11 9쪽
401 공감자 +4 17.09.21 393 9 10쪽
400 최소한의 전투, 최소한의 희생 +8 17.09.19 493 10 9쪽
399 왕의 허가 +4 17.09.17 459 9 9쪽
398 정답 +4 17.09.15 507 9 10쪽
397 허심탄회 +6 17.09.13 391 10 11쪽
396 발뺌 +4 17.09.11 419 8 10쪽
395 격발 장치 +4 17.09.08 393 7 9쪽
394 갈수록 태만 +4 17.09.04 496 11 10쪽
393 형제 간의 사투 +2 17.09.02 370 10 10쪽
392 왕의 의무 +2 17.08.31 423 11 10쪽
391 충신 +4 17.08.29 400 8 10쪽
» 정령왕의 행방 +4 17.08.27 423 9 9쪽
389 복수의 화신 +4 17.08.24 469 12 9쪽
388 권능 +6 17.08.22 470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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