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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조회수 :
632,096
추천수 :
14,829
글자수 :
1,880,019

작성
17.11.06 02:35
조회
368
추천
5
글자
7쪽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DUMMY

“그렇게 그는 내 곁을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하필이면 아르만시아라는 거대한 절망을 이겨내고 무지갯빛 앞날을 꿈꾸게 된 바로 그 때 말이에요. ....그의 가슴팍을 두들기며 원망할 수도,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그의 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질 수도 없었죠. 이 세상에 그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요....”

이야기를 하면서 여왕은 그 사건이 벌어진 그 때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았다. 눈가에는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순수한 소녀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눈빛은 여전히 슬픔과 아픔에 물들어 있었다. 이미 수십 년 전의 일인데.... 그만큼 그림자 매가 여왕에게 각별한 인물이었다는 뜻일 것이다.

“토마스 경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나는 굉장히 다양한 사건들을 겪어왔어요. 그 어떤 왕도 나처럼 죽을 뻔한 경험이 많지 않을 거예요. 그 숱한 위기 속에서도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건 그 때가 처음이었어요. 나를 위협했던 적도 있었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악인도 있었는데.... 처음으로 내 손으로 직접 죽인 사람은 바로 그림자 매였어요. 나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은인이자 내가 사랑한 남자.... 동시에 그는 내가 죽인 마지막 사람이 되었죠.”

여왕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건너편에 앉아 있던 토마스는 황급히 펜을 놓고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 주어야 했다. 여왕은 차를 한 잔 마신 후에야 겨우 격앙되었던 감정을 진정시켰고, 토마스는 다시 기록을 재개할 수 있었다.

“여왕님의 말씀대로라면 그림자 매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겁니까? 그는 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한 걸까요?”

이 질문이 또 다시 여왕을 슬픔에 빠뜨리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해하면서도 토마스는 학자로서의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다행히 돌아오는 여왕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경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는 왜 목숨을 버려야 했을까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나와 함께 하는 것이라 말했으면서?”

대신 토마스에게 고민거리를 한 아름 안겨주었다. 토마스는 머릿속에 떠오른 여러 가지 가설을 하나하나 신중히 검토해 본 후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것을 골랐다.

“여왕님께서 아르만시아를 처치한 그 마법.... 아니 기적. 마화라고 했던가요? 그것이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고 판단해서 자신의 몸을 희생한 걸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어쩌면 내가 잘못 계산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제대로 계산했는데 그가 잘못 판단했을 수도 있을 거예요.”

이미 여왕도 그런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침착한 반응이었다. 토마스는 곧 자신이 좀 더 많은 가설을 제시해주기를 여왕이 바라고 있다는 걸 눈치 챘다.

“그 때는 이미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였던 걸까요? 자신이 이성을 잃고 여왕님을 공격할까봐 두려웠나 봅니다.”

“맞아요. 그럴 수도 있을 거예요.”

여전히 고요한 여왕의 태도를 보면서 토마스는 비로소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짐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게 되었다. 분명 여왕은 수십 년 동안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해보았을 것이다. 따라서 그녀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여왕이 토마스에게 반드시 답을 내놓으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었다. 단지 혹시나 하는 희망정도만 품고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 약간의 기대에도 부응하고 싶은 것이 토마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혹은 그 자신의 존재가 여왕님의 정치적 입지에 걸림돌이 된다고 여겼을 지도 모르겠어요. 어쨌거나 그는 여왕님의 약혼자를 죽인 야만족의 일원이었으니까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에요. 그에 대한 연장선이지만.... 어쩌면 붉은 바위족과 바르테인의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 자신이 사라져야 한다고 믿었을 지도 몰라요. 그는 항상 자신이 불화의 씨앗이라고 말하곤 했으니까요.”

초조해진 토마스는 잠시 찻잔을 입에 가져가 타들어가는 목을 축였다. 여왕의 상상력에는 빈틈이 없었다. 바르테인 최고의 역사학자가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에 미안해졌는지 여왕이 짐짓 밝은 목소리로 농을 던진다.

“당시 나는 나를 지키려다 누군가 죽는 게 정말 싫다고 말했죠. 어쩌면 그는 그래서, 나를 지킬 필요가 없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죽은 걸지도 몰라요.”

그러나 그녀의 우스갯소리에 아무도 웃지 않았다. 아직도 그녀의 눈에는 깊은 슬픔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 그녀의 뒤를 이어 바르테인의 8대 왕으로 즉위할 어린 브라이언의 눈에서는 눈물마저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왕은 짧은 한숨을 쉰 후 그의 눈물을 자상하게 닦아주었다.

“이제 그 답을 찾는 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토마스 경과 내가 나눈 이야기들.... 그 중 하나가 답일 수도 있고, 그 모든 것들이 전부 모여야 그의 선택을 설명해 줄 이유가 완성될 수도 있겠죠.”

브라이언을 배려하여 서둘러 매듭을 지으려 했지만, 그 말과 달리 여왕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아마 그녀가 죽는 날까지 고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런 여왕의 모습을 보자, 답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여왕의 말을 듣자 한 가지 생각이 토마스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여왕님 말씀처럼 답은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건 그 답을 찾기 위한 과정, 즉 여왕님께서 고민하는 것 자체가 그림자 매의 의도였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남긴 겁니다.”

여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곧 토마스의 말뜻을 이해하고 벅찬 감동에 휩싸였다.

“이 후에 여왕님의 행적을 돌이켜 보십시오. 혹시 그림자 매는 자신이 남긴 수수께끼가 여왕님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예측한 게 아닐까요?”

“그는 항상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었죠.”  

여왕은 비로소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까지 나를 믿고 있었구나, 그림자 매.”

그리고 이제 세상에 없는 그녀의 연인을 향해 감격에 젖은 한 마디를 건넸다.

토마스는 다시 펜을 잡았다. 여왕의 증언을 통해 밝혀지는 대악마 전쟁의 진실을 마저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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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옛날옛날에 한 왕이 무도회를 열었어.

나라안의 미녀들이 다 모였는데 보초를 서던 한 병사가 지나가는 공주를 봤지.

공주는 가장 아름다웠어. 병사는 사랑에 빠졌지.

그러나 병사는 공주를 어찌할 수가 없었지.

그러던 어느날 기어이 병사는 공주에게 말을 걸었단다.

그리곤 말했어. 공주없인 살 수 없다고....

공주는 그의 깊은 생각에 놀랐고 병사에게 말했어.


100일 밤낮을 발코니 밑에서 기다려 준다면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겠다고.


병사는 발코니 밑으로 내려갔다. 하루. 이틀. 열흘....

공주는 매일 밤 몰래 그를 내려다 보았고, 병사는 앉은 채 기다렸지.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불어도 기다렸고

새가 머리위에 둥지를 틀고 벌이 쏘아도 꼼짝하지 않았어.

그리고 90일이 지났지.

어느새 겨울이 와 병사는 하얗게 눈으로 덮여갔어.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지.

그러나 눈물을 닦을 힘도 없었어.

공주는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00일이 되는 날 병사는 자리에서 일어났어.

그리고는 어디론가 가 버렸어.“

“마지막 날에요?”

“그래 마지막 날에....”

“아니.... 왜죠?”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구나. 후에 네가 이유를 알게 되면 내게도 이야기해주렴.”



시네마 천국에 나오는 공주와 병사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이야기죠.

왜냐하면 답이 정해져 있지 않거든요.

각자가 생각하는 것이 모두 답이 될 수도 있는....

휘렌델과 그림자 매의 이야기도 여기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47 Brav
    작성일
    17.11.06 04:18
    No. 1

    남의 이야기의 비밀을 예상하는 시간낭비에는 취미가 없어서 그냥 답을 물어보고 끝냅니다. 이제 완결이군요. 수고하셨습니다. 또한 즐거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7.11.09 00:12
    No. 2

    이번 에피에 여러 가지 가설들이 소개 됩니다.
    그 외에 다른 이유를 찾지 못하기겠다면, 그 중에 가장 그럴싸하고 생각하시는 게 답이 되겠죠.
    혹은 휘렌델의 말처럼 전부 다 이유가 될 수도 있고,
    토마스의 말처럼 휘렌델에게 고민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죠.
    그 동안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8 메틸아민
    작성일
    17.11.06 09:42
    No. 3

    전 이렇게 열린 결말 좋아요.
    그래도 아쉬움이 남네요.
    휘렌델이랑 행복하게 살 생각도 좀 해보지ㅠ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7.11.09 00:15
    No. 4

    그림자 매의 선택이 반드시 옳았다고만 볼 수는 없겠죠.
    그도 사람이고 실수를 할 수 있는 법이니까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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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 완결 후기 +13 17.11.24 702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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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 남은 것은.... +4 17.11.09 395 10 10쪽
»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4 17.11.06 369 5 7쪽
412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고백 +6 17.11.03 403 10 8쪽
411 기적 +6 17.11.01 376 9 7쪽
410 뜻 밖의 공명 +6 17.10.29 364 10 8쪽
409 고집과 단념 +6 17.10.25 402 12 8쪽
408 다시 그 때로 +6 17.10.23 401 8 8쪽
407 돌이킬 수 없는 선택 +6 17.10.21 421 8 7쪽
406 유일한 선택지 +6 17.10.18 390 8 12쪽
405 하극상 +4 17.10.16 468 5 6쪽
404 불청객들 +4 17.10.13 416 7 9쪽
403 어그러진 계획 +4 17.09.25 395 8 10쪽
402 깨어진 신뢰 +4 17.09.23 370 11 9쪽
401 공감자 +4 17.09.21 394 9 10쪽
400 최소한의 전투, 최소한의 희생 +8 17.09.19 494 10 9쪽
399 왕의 허가 +4 17.09.17 459 9 9쪽
398 정답 +4 17.09.15 508 9 10쪽
397 허심탄회 +6 17.09.13 393 10 11쪽
396 발뺌 +4 17.09.11 420 8 10쪽
395 격발 장치 +4 17.09.08 394 7 9쪽
394 갈수록 태만 +4 17.09.04 496 11 10쪽
393 형제 간의 사투 +2 17.09.02 371 10 10쪽
392 왕의 의무 +2 17.08.31 424 11 10쪽
391 충신 +4 17.08.29 401 8 10쪽
390 정령왕의 행방 +4 17.08.27 423 9 9쪽
389 복수의 화신 +4 17.08.24 469 12 9쪽
388 권능 +6 17.08.22 471 1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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