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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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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26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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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글자
20쪽

09화 - 4

DUMMY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그게……”


어째 꽤나 친해진 것 같은 분위기다. 축구 얘기는 안 되고, 게임 얘기도 안 되고. 그나마 공통적으로 겹칠 수 있는 요소라면 책이나 드라마 정도일 것 같아 얘기를 꺼냈는데 예상이 적중한 것 같다. 의외로 내가 보던 꽤 좋아하는 외국 드라마를 희세가 열렬한 애청자였던 것이다. 해서 그 주제로 얘기를 하니 굉장히 좋아하며 계속해서 말을 건다.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니 꽤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뭐야, 너 생각보다 재미있는 애구나. 하긴, 그 드라마 볼 정도면 어느 정도 교양은 갖춘 셈이지.”

“뭐, 교양 씩이야…”


희세의 나에 대한 평이 순식간에 ‘교양인’ 으로 올라갔다. 허허, 단순히 자기가 좋아하는 드라마 하나 보는 것 가지고 이렇게나 천지차이로 평이 달라지다니. 힐끗 희세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금방 원래대로 됐네.”

“응? 뭐?”

“따돌림 당하던 거 말이야.”


희세는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먹다 눈을 치뜨곤 말한다. 오, 귀여워. 입을 살짝 닦고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흥, 너도 복귀하는데 이 내가 못할 것 같애? 그런 것들, 솔직히 100만 명이 있어도 하나도 안 무서워.”

“응. 대단하네. 근데 혼자 있을 때, 너 되게 쓸쓸한 표정이었는데.”

“내, 내가 언제!”


희세는 내 대답에 눈에 띄게 당황하며 대답한다. 얼마나 당황하는지 막 집으려던 젓가락마저 떨어뜨렸다. ‘이크’ 하면서 젓가락을 줍는 희세. 난 슬쩍 희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책 읽고 있을 때. 굉장히 쓸쓸해 보였어.”

“그, 그건 네가 너 왕따 당할 때 감정 대입하고 봐서 그런 거지! 난, 난 사색하고 있었다고!”

“아, 그래. 잘못 봤나보네.”

“…….”


희세의 억지 주장은 누가 봐도 자존심 때문에 박박 우기는 걸로 보인다. 그 증거로 지금 표정이 영 밝지가 않다. 뭔가 껄끄러운 표정. 그리고 내 눈은 비교적 정확한 편이다. 눈은 사람 감정의 창이라고 하잖아. 혼자 책 읽고 있을 때 희세의 표정은, 차라리 한없는 채념에 가까운 슬픈 표정이었으니까. 희세는 머뭇머뭇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문다. 그러더니 짜증나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파워풀하게 밥을 씹어 먹는다. 삐쳤다는 걸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건가. 나는 훈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잘 돼서 다행이야. 희세 너는 애들 중심에 있는 게 어울리니까.”

“흐, 흐흥! 당연하지! 나 아니면 누가 그럴 수 있는데! 정희? 하, 걔 깜냥 가지곤 어림 반 푼 어치도 안 되지!”

“으응. 맞아.”


나의 치켜 세워주는 말에 희세는 단번에 의기양양한 표정이 되어 당당하게 말한다. 어라, 얘도 어째 단순한 느낌인데? 희세가 귀여움성애자라면, 얘는 칭찬성애자? 아니면 부추기기성애자? 모르겠다. 어쨌든 좀 더 두고 봐야할 일인데.


“……그래도, 혼자 있는 거 너무 싫었어.”

“…….”


희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기분 좋게 웃다 한 순간 쓸쓸한 표정이 됐다. 그러더니 힐끔 나를 보고 말한다. 그 갑작스런 기분전환에 도리어 내가 살짝 놀랄 지경이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희세를 쳐다봤다. 희세는 말한다.


“너도 당해봐서 알 거 아냐. 혼자 그러고 있을 때, 어떤 기분인지.”

“……아아, 알지. 그 전까진 전혀 그런 적 없어서 더 충격이었지.”

“나도나도! 중학교 때엔 전혀 안 그랬는데!!”


희세의 쓸쓸한 고백에 나 역시 그 때를 회상하며 씁쓸한 표정이 됐다. 둘 다 얼마 안 됐지, 따돌림 겪은 지. 그 사건 겪으면서 확실히 느꼈던 건, 애들이 따돌리는 건 딱히 당하는 애가 모자라거나, 성격이 이상하다거나 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 나야 남자애라는 특수성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희세의 경우엔. 그렇게나 완벽하고 그렇게나 뛰어난데도 따돌림 당해버렸잖아. 뭐, 그건 또 그것대로 특수한 사정이 있긴 했지만.

희세는 내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박수까지 친다. 그러더니 다시금 쓸쓸한 표정이 된다. 기분 전환이 굉장히 빠른 여자애구나!


“솔직히 너무, 너무 힘들었어. 굉장히 예민했고. 그래서 네가 도와주려고 한 것도, 결코 도와주는 걸로 보이지 않고 날 비웃는다고만 생각했지.”

“아아. 그건 나도 할 말 없습니다─ 네 기분 생각 안 하고 내 멋대로 행동한 거니까. 거기다 두 사람 싸움 붙인 것처럼 됐잖아. 결론은 잘 됐지만.”

“응…….”


나는 부끄러워져서 희세의 말에 이어 말했다. 그건 뭔가 흑역사로 남을 것 같은 후회스런 행동이다. 뭐, 결과적으로 희세와 정희의 설전을 유도해서 희세가 반 모든 애들을 쌈 싸먹어(?)버리는 위업을 달성하게 만들긴 했지만. 희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어쨌든 그건 참 고맙게 생각해. 난 괜한 자존심 때문에 너한테 욕만 하고, 심한 말만 했는데.”

“……이거, 갑자기 그렇게 말하니까 되게 위화감 생긴다. 나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그럴 리가 없잖아! 좋게 말해줘도! 진짜, 멍청이가! 죽어!”

“그래, 그래야 너답지.”


희세는 잔잔한 미소를 띠며 나에게 말한다. 나는 순간 움찔 했다.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는 희세가, 너무너무 예뻐 보인다. 그래, 얘는 이렇게 미소녀인 게 맞다니까! ‘고맙다’ 라는 칭찬까지 들으니 더욱 어색함이 배가된다. 나는 순간 공기가 얼어 붙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숨을 토해내며 농담을 내뱉었다. 이에 희세는 잠시 눈을 감더니 이내 짜증스런 표정이 돼서 그 특유의 하이톤희 짜증스런 목소리로 나에게 신경질을 낸다. 그래, 이래야 희세답지. 빨리 더욱 거센 욕설로 나를 매도해줘! 더욱 욕을 해달라고! 거기에 로프로 나를 묶… 아, 저번부터 계속 이런 드립을 치지만 사실 이거, 컨셉(?)이다. 진짜로 희세가 나한테 이런 걸 해달라고 바라는 건 아니야. 말장난, 말장난.


뭔가 급격히 훈훈한 분위기가 됐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고맙다고 하는 희세 덕분에. 나 역시 꽤나 깊은 공감을 느꼈다. 동질감이 없는 게 아니구나, 서로 당했던 게 같으니까. 그건 좋네.


“아. 궁금한 거 하나 있는데.”

“응?”


둘 사이에 말이 없어져 조금 어색해지려는 찰나, 희세가 무언가 생각난 듯 눈이 맑아지며 나에게 말한다. 나는 고기를 입에 넣으며 대답했다.


“리유 말이야. 뭐 문제 있어?”

“으으응?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 사고부터 정상이 아니니까. 지나치게 의존적인데다 귀여움 받고 싶어서 안달 난 귀여운 여자애야.”

“아니, 그런 문제 말고!”


희세의 질문에 나는 실실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희세는 짜증을 부리며 나를 이상한 놈처럼 쳐다본다.


“중요한 거야.”

“응. 뭔데?”

“애들한테 리유 얘기 하면, 애들이 좀 무시한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야.”

“……아아.”


희세의 말에 나는 분주히 움직이던 숟가락을 멈칫 했다. 아, 그 일이 있었구나. 희세는 내 반응에 눈치를 살피며 말한다.


“뭐 아는 거 있어?”

“……애들이 뭐 어쩌는데?”

“그냥, 없는 사람 취급? 리유라는 애 알게 됐는데 굉장히 귀여워! 이런 식으로 말했는데, 듣는 시늉도 안 하고 최대한 다른 주제로 말을 넘기려고 하더라고.”

“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묵묵히 생각한다. 그럴 만도 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

희세랑 리유랑 친구가 됐지만 아직 ‘그것’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구나. 하긴, 절대 먼저 얘기할만한 애가 아니지, 리유는.


“뭔데, 좀 알려달라니까? 뭐 있는 거 맞지? 이상한 거?”

“음… 그게, 그러니까.”


나는 잠시 뜸을 들이며 희세를 쳐다본다. 희세에게 말해도 되겠지? 리유 허락 없이 마음대로 말하기가 조금 그렇다. 성빈이가 나한테 말해주는 것도 꽤나 망설이다 리유의 허락을 받고 겨우 말해준건데. 내 임의대로 말해도 될까.

희세라면 될 것 같다, 아무래도. 같은 따돌림을 겪어 봤는데다, 리유가 먼저 친구가 되고 싶다고 들이댄 상대니까. 거기에, 리유를 따돌리는 보이지 않는 벽에 대한 건 전혀 모르는 것 같으니까. 희세는 ‘거 엄청 재네. 그냥 말해 달라니까!’ 하고 재촉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시작했다.


“나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중학교 때부터 모종의 원인이 있어서 리유를 왕따시키고 있데. 그게 1년 넘게 지나서 이 지경이 됐고. 성빈이가 같은 중학교라 아는데, 주동자도 누군지 모르고, 지금은 그냥 불문율처럼 돼 버렸다.”

“……뭐가 불문율이야?”

“리유를 보고도 못 본 척, 리유 얘기도 안 하는 것, 리유한테 일절 반응 안 하는 거.”

“……그런 건, 너무하잖아.”


실제로 그런 불문율을 애들끼리 제정해서 지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암묵적 불문율이겠지, 내가 볼 때엔 그렇다. 그리고 더해서 더 안 좋은 건 악순환이 반복되는 시스템이지. 몇 안 되는 고등학교 때 처음 본 여자애도, 다른 애들이 리유 대하는 것 보고 똑같이 대하게 돼서 결국 처음 만나는 애들조차도 리유를 따돌리게 되는, 어떻게 보면 소름 돋을 정도의 시스템. 희세는 아까 따돌림 당한 얘기 할 때의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렇지. 너무하지. 근데 그거 알아? 걔는 자기 왕따보다 네 왕따를 먼저 해결하자고 한 애야. 그런 애야. 그러니까 정상이 아니지.”

“……그건 무슨 소리야?”

“아, 말 안 했나?”


내 말에 희세는 잠시 표정이 멈칫 하더니 다시금 나에게 묻는다.


“처음에 나한테 너에 대한 말을 해 준 게 리유야. 그 전까진 사실, 아무 관심도 없었는데.”

“……무슨 말인지 잘 이해 안 가. 좀 자세히 말해줘.”


희세는 진지하게 돼서 말한다. 아, 그러고 보니까 희세는 이 중간 과정을 전혀 모르겠구나. 너무 내 위주로만 생각하고 있었나. 친절하게 다 설명해줘야겠다.


“리유가 어느 날에, ‘희세가 따돌림 당해!’ 하고 말해서 보니까 정말 그렇더라고. 그래서 리유가 ‘희세를 구해줘!’ 하고 부탁해서 하기 싫은데 억지로 네 조사 한 거지. 그러다 네가 나 불러다 잔뜩 뭐라고 하고, 그 때부터 오기 생겨서 내 맘대로 행동한 거. 따지고 보면 모든 일의 원흉이 리유였지.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한 게 없지만.”

“……리유는 어째서?”


희세는 더욱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다. 빚지는 걸 싫어하는, 자존심이 강한 희세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리유까지도 은인이 되니까. 나는 별 거 아니라는 말투로 이어 말했다.


“그냥, 친구가 되고 싶다나. 진짜 그 이유야. 그래서 사건 다 끝나고 너한테 그렇게 들이댄 거고. 근데 그걸 또 나한테 부탁하고. 나 참, 내가 무슨 리유 대변인도 아니고.”

“……그런 거야.”

“어어, 그런 거지.”


희세는 내 말에 어째 맥이 빠진 표정이다. 허탈한 표정으로, 조금 기운 없게 ‘하핳…’ 하고 웃는 희세. 힘 없는 목소리로 한 마디 한다.


“리유한테도 고맙다고 해야겠네.”

“꼭 그럴 것까지야. 걘 그냥 변덕으로 한 마디 한 거니까.”

“…….”


희세는 내 말에 별다른 대답이 없다. 조금 충격인걸까. 리유가 왕따인게? 아니면 리유가 도와준 사실이? 뭐, 어느 쪽이어도 조금 충격이긴 하겠지.


“근데 앞엣말은 또 뭐야? 자기 왕따보다 내 왕따를 먼저 해결하다니.”

“아, 그것 또 말 안 해줬구나.”


난 그렇게 말하곤 또 말해도 되나 어쩌나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건 나랑 리유, 성빈이 셋만의 문제니까, 다른 애한테 떠벌리고 다니거나 그런 적이 전혀 없는 일인데. 성빈이도 중간에 도와준다고 낀거고. 말하기 조금 껄끄러운데. 모두의 허락 없이 내가 마음대로 말해도 될까─ 싶지만, 또 희세가 ‘남자새끼가 겁나 짜증나네’ 이런 식의 말을 할까 두려워 얼른 입을 열었다.


“리유랑 약속했거든. 나 제정신 아닌 날에, 이상한 말 한 날 있잖아. 그 때 리유랑 약속했어. 내가 리유 왕따를 해결해주겠다고.”

“……어떻게?”

“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난 기억은 안 나지만 내 일도 해결했고.”

“헤에.”


희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흥미롭다는 듯 물을 마시며 나를 힐끔 본다.


“그럼, 나도 그거 도와줄래.”

“응?”


희세는 야무진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살짝 놀라 대답했다.


“리유 왕따 당하는 거. 그런 거, 솔직히 나도 보기 싫고. 리유 귀여운데, 왜 왕따 당하는 거지? 리유가 나 따돌림 당하는 것 해결하는데 도와줬으니까, 나도 도와주는 걸로 할래. 상관없지?”

“뭐…… 상관없겠지?”

“남자애가 그렇게 애매하게 말하지 마세요. 되요, 안 되요?”

“네네, 됩니다. 나는 권한이 없어서 그래요.”


희세는 나의 흐지부지한 태도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놀리듯 말한다. 그게 내 마음대로 하고 안 하고가 결정되는 게 아니니까 그러지! ‘남자애’ 어쩌고 놀리는 건 남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에 그 말만은 듣고 싶지 않아 덥썩 알았다고 해 버렸다. 아, 리유하고 성빈이한테 뭐라고 말하지.


밥을 다 먹고 여유롭게 길을 걷고 있다. 아까 이 가게로 올 때와는 딴판으로 꽤나 가깝게 붙어 얘기하며 걷고 있다. 처음엔 참 얘기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나름대로 괜찮은 것 같다. 이번엔 가수 얘기를 하며 재잘재잘 떠드는 희세다.


“어우, 그거 완전 싫지 않아?”

“아무래도 그렇지.”

“그치그치? 아우, 개밥맛. 걔네는…… 엇.”


희세는 재잘재잘 떠들고, 나는 맞장구치며 걷고 있다. 사실 가수에 관한 내용은 잘 모른다. 거기다 희세가 떠드는 남자 아이돌 가수는, 내가 어찌 알겠는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적당히 얘기하는 거지. 잘 들어주니 신이 나서 떠들던 희세는 흠칫 놀라며 잠깐 걷던 걸 멈춘다. 그리곤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간다. 뭘 보고선 저러지? 하고 희세의 시선이 머문 반대편 길을 보니. 아아.

반대편 길에는 정희를 포함한 그 무리의 여자애들이 멀리서 보기에도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학교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활기차게 떠드는 정희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대위기?!! 잠깐, 잠깐, 잠깐만?!! 지금 이 상황, 엄청 위기인거지?!

잠시 눈을 감고 상상해봤다. 지금, 녀석들과 마주하게 된다면. 상황이 묘하잖아, 나랑 희세랑 둘이서만 걸어가고 있으면. 성빈이와 리유라도 같이 있으면 변명의 여지라도 있을 텐데, 아니 애초에 리유가 있으니 말을 안 걸으려나. 하지만 지금은, 영락없이 둘이 밥 먹고 다정하게 돌아오는 것 같잖아!!

다시금 돌이켜서 아까 여자애들이 놀리던 상황을 떠올리자면, 그 애들 입장에서 보면 애초에 나를 그렇게 놀려댄 건 희세와 둘이 밥을 먹으러 간다고 생각해서 그럴 것이다. 리유나 성빈이가 끼는 줄은 몰랐겠지. 어쨌든, 단순히 밥 같이 먹으러 가자는 제안만으로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좋아라 떠들어 대던 여자애들이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서 들키면 그 파급효과는…


“…….”

“……!”


나는 고개를 홱 돌려 희세를 쳐다봤다. 희세도 고개를 내 쪽으로 봐서 동시에 눈이 맞았다. 말 조금 튼 지 한 시간도 안 돼 눈빛교환으로 서로의 생각을 읽고 있다. 나는 ‘숨자!’ 라는 의미로 눈을 연신 굴렸고, 희세 역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얼른 주위를 살핀다. 하지만 딱히 몸을 숨길만한 곳이 없는 곧게 뻗은 길이다. 나는 허둥지둥 소리 없이 숨을 곳을 찾고, 희세 역시 바쁘게 몸을 숨길만한 곳을 찾는다.


“어─?!”

“크윽……!”


가로수 뒤? 아냐, 가로수가 너무 얇아. 쓰레기통 뒤? 이것도 너무 작은데. 잠시동안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하다 여자애들이 얼마나 갔나 보려 반대편 길을 봤다. 그 힐끔 잠시 쳐다보는 순간에, 때 좋게 정희와 눈이 마주쳤다. 정희는 반가운 눈이 됐다가 이내 옆으로 살짝 시선이 돌아가더니 화악 웃는 표정이 된다. 아아, 세상엔 신도 부처님도 없는 건가. 어찌 이리 무자비하실까. 왜 꼭 안 좋은 예상은 그 예상대로 되는 걸까.


“야야야, 저거 봐 저거!”

“뭐뭐? 에에에에──!!”

“우와, 대박대박!!”


나는 ‘제발…’ 하는 마음으로 애처로운 눈빛이 되어 정희를 쳐다봤지만 정희는 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건지 무자비하게 바로 여자애들에게 큰 소리로 떠벌린다. 여자애들은 순식간에 이 쪽을 보곤 자기들끼리 막 좋아하며 소리지른다. 희세도 낭패인 표정이 됐다. 아아, 어떡하냐.


“뭐야, 진짜 같이 점심 먹고 오는 길이야!”

“다정해 다정해─ 이제 사귀기만 하면 되는 거?”

“서로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됐어? 사이는 좀 진전됐구?”

“시, 시끄러!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야, 다들!! 닥쳐, 닥치라구!!!”


여자애들은 아예 이 쪽으로 건너와 희세를 둘러싸고 말한다. 망상이 좀 더 더해지면 상견례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다들 출중한 망상력이다. 희세는 부끄러워하며 잔뜩 화를 낸다. 짜증부리는 모습이 일품이다. 여자애들은 다 희세에게만 붙어서 재잘재잘 떠들어대고 있지만 유일하게 정희만은 나에게 와서 말한다.


“너 확실한 변태 씨가 맞구나. 자기를 학대하려 했던 여자에게 성적 흥분을 느끼다니.”

“왜 뜬금없이 성적 흥분까지 가는 건데!! 내가 언제!! 그러면 진짜 변태지!!!”

“희세 성적 보면 흥분되지 않아? 얼굴도 예쁜데 성적도 저렇게 높고… 난 흥분되던데. 경쟁심 생기고.”

“이건 또 무슨 개드립이야!!”


정희는 실실 웃으며 나를 놀리는 말투로 말한다. 나는 잔뜩 짜증을 내며 외쳤다. 의미조차 알 수 없는 성적 드립을 치며, 정희는 실실 웃어댄다. 다른 여자애들에게 시달리는 희세도 난감하고 불쌍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여자애들에게 떠밀리다시피 걷고 있는 희세. 계속해서 질문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희세는 계속 ‘닥쳐’를 연발하며 아무 대답도 안 해주고 있지만. 나 역시 정희가 계속 이상한 질문을 해서 그거 대답해주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언제부터 좋아하게 된 거야?’ 라든가, ‘언제 고백할거야?’ 라든가. 대체 왜 그쪽으로 모는 건데. 이 선동꾼들!


“…….”

“…….”


힐끔 희세와 눈이 마주친다. 희세는 짜증스런 표정이었다가 내 눈을 보자 순간 표정을 풀고 살짝 웃어 보인다. 그 눈은 꼭, ‘고마워’ 라고 말하는 듯하다. 약간 치켜 올라가 드세 보이는 희세의 눈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떤 소녀의 눈보다도 부드러워서, 엄청 예뻐 보인다. 순간 심장이 쿵쾅 뛸 정도로. 그러더니 다시금 고개를 여자애들로 돌려 짜증스런 표정으로 ‘아니야, 아니라니까!’ 하며 짜증을 낸다. 오오… 뭔가 좋은 예감인데.

이렇게 한 명 추가인가. 우리 패밀리에. 우리 해처리에. 라바 3마리 넘어가면 터지지 않나? 여왕 한 마리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아아, 게임을 끊든가 해야지.

나름대로 괜찮은 기분이다. 파티원이 한 명 늘면 좋은 거잖아? 뭐, 희세가 리유나 성빈이처럼 붙박이로 나랑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리유 왕따 해결 건에 합류하기로 했으니까, 자주 볼 일이 있겠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저만큼 예쁘고 괜찮은 애랑 친해지면 나쁠 거 하나 없잖아? 나중에 고향 가서 남고 간 친구들한테 자랑해야지, 얘 나랑 엄청 친해! 하면서, 크하하하! 사나이 정웅도, 청춘이구나! 으하하하!


……현실은 변태 노예새끼…….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슬슬 2권(?)도 끝이 나 가네요. 

질은 어디 전당포에 맡겨놓고 오로지 양으로만 달리고 있는데 괜찮으신지요?

그냥그냥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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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05화. 크아아아 흑화한다 +12 14.01.17 4,654 124 21쪽
16 04화 - 4 +10 14.01.16 3,771 80 19쪽
15 04화 - 3 +18 14.01.16 3,286 79 18쪽
14 04화 - 2 +16 14.01.15 3,312 73 25쪽
13 04화. 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11 14.01.15 3,736 92 20쪽
12 03화 - 4 +9 14.01.14 3,537 85 20쪽
11 03화 - 3 +7 14.01.14 4,216 127 18쪽
10 03화 - 2 +7 14.01.13 3,881 9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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