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2,930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1.23 02:40
조회
3,150
추천
57
글자
19쪽

08화. 격전!! - 1

DUMMY

평상시의 학교. 다들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이지만 재미나게 보내고 있다. 까르르 웃으며 수다 떠는 애들, 자고 있는 애, 책 보는 애. 언제나와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난 그런 모습들 하나 하나 매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주동자를 찾기 위함이다.

어제 성빈이와 밤늦도록 얘기해서 꽤나 졸리지만, 그 졸린 눈을 비비며 애들을 보고 있다. 희세는 여전히 책을 보고 있다. 참… 쓸쓸해 보인다.


“……크흠.”


괜히 헛기침을 하고, 두 손을 곱게 모아 턱을 괴고 애들을 쳐다본다. 내가 유심히 보고 있는 여자애는 희세 뒷자리의 키 큰 여자애. 그러니까 이름이… 아마 ‘최정희’ 였지?


최정희.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에 키도 엄청 큰 애. 키가 170 초반 정도로 굉장히 커서, 나랑 비교해도 그리 작지 않을 정도로 크다. 내가 178인데. 어쨌든 키가 굉장히 큰 게 큰 특징점이다. 얼굴도 눈이 작은 편이지만 나름대로 조화되게 예쁜 편이다. 키가 너무 커서 귀여운 맛이 없는 게 흠이지만. 하지만 키가 큰 덕에, 늘씬한 팔다리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특히 가뜩이나 키도 큰데 치마도 짧게 줄여 아찔하게 보이는 허벅지와 다리의 라인은 참, 누구에게 견주어도 어디서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다만 가슴이 크거나 힙 라인이 예쁘거나 한 건 아니어서 그건 또 흠. 그래도, 리유처럼 아예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고 보통 정도의 굴곡은 존재하기에 몸매도 괜찮은 편이다. 슬랜더한 표준 몸무게랄까. 키에 비례해서 본다면 솔직히 저 정도 가슴도 우리나라에선 큰 편이지. …근데 어째서 여자애를 쳐다만 보면 가슴 얘기만 집중적으로 하게 된 걸까, 나는. 아니, 이건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스캔이니까! 그냥, 정말 본능적으로 나도 모르게 들어가는 조사니까! 이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외모도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개성이 뚜렷한 키가 있다. 거기에 여자애 치곤 힘도 센 편이라, 곧잘 무거운 거 들 때 나랑 보조를 잘 맞춘다. 나 혼자 들기 어려운 교탁 같은 건 둘이 들면 힘도 여자애 치곤 센데다가 키가 맞으니까 들기 훨씬 편할 정도. 성격도 굉장히 쿨한 편이라 잘 삐치지도 않고, 애들하고 장난도 잘 친다. 키가 큰 만큼 먹성도 좋아 잘 보면 남자인 나보다 더 많이 먹는 것 같다. 그래도 살은 전혀 찌질 않아서 여자애들에게 장난 어린 질시의 눈길을 받기도 하지만. 공부도 나름대로 하는 편이고, 운동도 잘해서 거의 희세랑 동급일 정도. 여러모로 초기에 희세와 비교되던 여자애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희세에게 한 두수 정도 떨어지는 정희였다. 사람을 게임에 비교하긴 그렇지만, 희세가 A+급 장수였다면 정희는 마이너 카피처럼 B+나 A급 정도의 장수. 물론 그것도 매우 뛰어난 정도고, 키가 크고 성격이 쿨하다는 뚜렷한 개성도 있지만 절대적인 능력치 면에서는 희세에게 꽤나 떨어지는 편이었다. 무엇보다 애들 장악력에서. 희세는 거의 반 모든 애들과 잘 놀며 호감을 쌓을 정도였지만, 정희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모든 애들하고 잘 지낼 정도는 됐지만.

뭐, 정희는 희세하고 그리 큰 충돌 없이 오히려 제일 친하게 지냈던 애다. 희세를 따르던 무리에서 가장 희세랑 죽이 잘 맞고 잘 놀던 여자애니까. 그리고 그 패거리에서 희세만큼 잘났던 애였다. 지금은…

지금은 희세가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호랑이가 없으면 여우가 왕이라던가. 마치 그 유지를 그대로 이어 받기라도 하듯, 희세가 이룬 패거리의 주요 인물 자리를 그대로 꿰찬 정희다. 아니,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설마 그런 하찮은 것 하려고 희세를 왕따 시킬 리는 없으니까. 어디까지나 이해하기 쉽게 구도를 만들면 그렇다는 거다. 이 반이 삼국지처럼 중원 대륙이고,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여자애들의 치혈한 암투가 오가는 건 아니니까. 친구 관계라는 건 어디까지나 상호관계이고, 조금이라도 기분 나쁘게 하거나 이상한 짓을 하면 곧장 도태되는 게 바로 이 바닥의 실정이다. 능력이 어쨌네, 장악력이 어쨌네 하는 건 사실 다 신선놀음이다. 그럼 그 능력 좋고 자기 능력도 학기 초에 맘껏 펼쳤던 희세는 뭔데. 지금 은근히 따돌림 당하고 있지 않은가.


어쨌든 이렇게 길게 말하는 건 그 정희가 바로 주동자일 것 같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난 은근히 추리력이 뛰어나서, 아니면 그냥 눈치가 빠른건지. 저번부터 내가 추리하는 건 족족 들어맞았다. 성빈이가 나를 아는 척 안 했을 때 ‘저건 강요 받은 거야’ 하고 예상한 것도, 희세가 주동자일 것 같다는 예측도 모두 맞았다. 아니, 딱 봐도, 희세가 떨어져 나가서 가장 이득 본 건 정희잖아? 희세가 애써 일궈놓은 친구라인을 그대로 흡수하고, 지금은 거진 반에서 예전 희세 정도의 위치에 오를 정도다. 물론 그 정도 역량이 안 돼 일부 애들하고 충돌이 있긴 하지만. 그건 희세가 너무 엄청난 애라 그런 거 아닐까. 희세는 고압적이고 제멋대로일 것 같은 인상과는 다르게 남들 비위를 엄청 잘 맞춰줬으니까. 사람이 의식하고 해도 그러기 힘든데.


“있잖아, 내 생각엔…”

“응? 응? 뭐?”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옆의 성빈이에게 말했다. 뜬금 없이 아무 예고도 없이 맥락도 없이 얘기하니 성빈이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당황하며 나를 본다. 이런 걸 의도한 건 아닌데. 성빈이에게 정희에 대한 걸 말했다. 그에 성빈이는 고개를 갸웃 하며 그리 썩 좋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글세, 그건 좀… 비약이지 않을까?”

“왜?”

“정희는 진짜 그럴만한 애가 아니거든. 소문 같은 것도 잘 안 믿고, 자기가 본 것 아니면 안 믿는 주의라고 직접 그랬거든. 그 때, 네 사건 있을 때도 희세 패거리 애들중엔 정희가 제일 너한테 우호적이었어.”

“그래?”

“‘내가 직접 걔가 리유 강간하는 거 본 적 없으니까 난 신경 안 쓸래’ 라고 했거든.”

“아아… 표현 되게 격하네.”

“…정희가 원래 좀 그래.”


성빈이의 말에 나는 처음에는 반짝 기분이 좋아져 대답했다. 그랬던 와중에 나를 우호적으로 봐 주다니! 내 예상과는 다르게 역시 착한 애인 걸까! 하지만 이어지는 성빈이의 말에 나는 썩 기분이 좋지 않게 됐다. ‘강간’ 이라니!! 이건 더 심하잖아! 게다가 저 반응은 심드렁하다 못해 그냥 나에 대해 아무 관심도 생각도 없던 거잖아! 크흑. 성빈이도 옮겨 말한 것이지만 그래도 ‘강간’ 이라는 격한 표현을 써서 그런가 조금 부끄러워하는 눈치이다. 어쨌든 조금은 정희란 애에 대해 조사해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지금은 쉬는 시간이 끝나가니 안 되고, 기회는 다음 쉬는 시간이다.


“정희야.”

“오, 변태 씨. 왜?”

“아이… 그 변태 씨라는 말은…”

“그럼 씹변태라고 해줄까?”

“꺄하하하하─”

“…그냥 변태 씨라고 부탁드립니다. 제발.”


정희는 책상에 걸터 앉아 애들과 수다를 떨고 있다. 나는 당당하게 정희 앞으로 가 이름을 불렀다. 그리 친하진 않은 사이인지라 ‘야 최정희’ 하고 부르려 했지만 그건 또, 성까지 붙여서 말하면 너무 매정해 보이기에 어색함을 누르고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이어지는 정희의 무지막지한 말에 나는 쩔쩔맬 수밖에 없다. 여자애가 저런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리다니! 워낙 거침없는 입담에 옆에 있던 여자애들이 까르르 웃는다.


“할 말이 있어서.”

“에에? 무슨 할 말. 혹시 고백이라도? 너 내 타입 아닌데.”

“꺄하하하하하─”

“그런 게 아니라, 좀! 말 좀 들어 줘.”

“네네, 알겠습니다. 제발 강간하지만 말아주세요, 변태 씨. 무서우니까. 이래뵈도 가녀린 소녀랍니다?”

“아 쫌! 안 그래요!!”

“하하하하하하.”


정희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선 한 손으로 가슴을 가리며 가냘프게 말한다. 말하는 건 연약한 소녀처럼 말하지만 숫제 장난하는 말투다. 주위 여자애들이 기절할 듯 웃는다. 아아, 정말. 좋은 놀림거리가 됐구만. 놀림 당하는 거야, 이 학교 와서 사감 선생님한테 당할 때부터 팔자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동급생들 앞에서 당하니까 다른 의미로 훨씬 창피하다. 얼굴이 빨개져서 거의 소리치듯 말하자 정희는 그제야 따라 나온다.


“그래서, 할 말이 뭔데 변태씨?”

“그…”


정희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한다. 키가 얼추 맞기에 성빈이나 리유처럼 나를 올려다보지 않고 쳐다볼 수 있는 유일한 여자애. 단정한 숏컷에 반짝이는 눈빛이 더욱 정희를 빛나게 보이게 한다. 얘도 가까이서 보니까 꽤나 예쁘구나. 아니, 이게 아니지!


“희세, 불쌍하지 않아?”

“……무슨 말이야?”

“아, 미안. 너무 뜬금없었지. 그러니까… 어디보자.”


나는 머릿속에서 생각이 잘 정리 되지 않아 나도 모르게 본심이 팍 나와버렸다. 이런 병신이! 처음부터 본심을 들켜 버리면 어떡해! 처음엔 조금씩 간(?)을 봐야 하는데!! 낭패다. 나는 당황해서 얼굴이 또 빨개져서 말했다. 내가 허둥대는 모습을 보자 정희는 깔깔 웃으며 ‘바보 같아’ 하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건, 희세의 말을 듣고 이러는 거다. 「치사하게 여자애 뒤에 숨어서 그러지 말고 할 거면 네가 직접 하라」는 희세의 말에. 솔직히, 자존심 상했다구. 특히 ‘여자애 치맛자락 뒤에 숨어서’ 라는 적나라한 표현은. 꼭 내가 성빈이 뒤에서 뀨잉뀨잉 하면서 숨어서 비겁하게 그런 것 같잖아. 결과적으로 보면 그래 보이겠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내가 정보를 얻기에 불리해서 성빈이한테 부탁한 건데. 아니, 뭐, 그건 궤변이고, 어쨌든 그래서 이렇게 직접 정희를 대면하고 물어보러 온 거다. 그런데 첫 질문부터 불발이 났으니…


“희세랑 친하지 않았어?”

“……그랬는데. 왜?”

“음… 아니, 요즘 희세 다른 애들하고 잘 안 노는 것 같아서. 네가 제일 많이 어울리던 애니까. 혹시나 뭐 다른 거 있나 해서.”

“……다른 거라면, 뭐?”

“나는 모르지.”


정희는 내 말에 갑자기 표정이 싹 굳는다. 돌을 넘어서서 단단함과 차가움을 동시에 가진 얼음처럼. 오오, 이거 의외로 예상 적중?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늘 빙글빙글 웃는 얼굴인 정희가 정색하고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으니까 되게 무섭다.


“아니면 뭐, 다른 애들이 희세 욕한다거나 그런 건 못 들었어?”

“……딱히.”

“그래.”


내 질문에 정희는 여전히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말이나 행동에 나를 경계하는 태도가 조금 묻어나오는 게 눈에 보인다. 역시, 주동자까진 아니어도 그 쪽 패거리가 수상하다 했는데 확실히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안 그래도 희세가 나를 핍박할 때 옆에서 비수를 던지던 애들이 누구였나. 그 쪽 패거리 애들이지. 한 번 해본 애들이 두 번 안 하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이상하네, 너도.”

“응? 뭐가?”

“희세가 너 왕따시켰었잖아. 근데 그렇게 희세에 대해 궁금해?”


정희는 살짝 무서운 느낌이 나는 웃음을 배시시 피우며 말한다. 뭔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싸늘한 웃음이다. 평소 장난기 많은 사람 좋아 보이는 정희의 얼굴이 아니다. 몰라 뭐야 얘 무서워… 정희의 말에 나는 일순 멈칫 했다가 말을 이었다.


“왕따 시킨 건 시킨 거고. 이상하다고 느껴서.”

“……이상한 건 뭐가 이상한데?”

“어… 그러니까.”


정희는 내 말에 다시금 웃음을 싹 지우고 노려보듯 내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나는 어째 변명하는 것처럼 돼선 정희의 되물음에 꼭 복종하듯 말을 시작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희세가 반의 중심이었거든. 애들하고도 잘 놀고, 잘 얘기하고, 반 일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애들 태도가 싹 변해선. 마치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희세를 무시하고 겉돌게 만드는 것 같아서. 뭔가, 애들이 따돌리는 게 아닌가 싶어서.”

“……걔 잘못이라곤 생각하지 않아?”

“어?”


정희는 내 말을 묵묵히 듣다 말이 끝나자 작은 소리로 말한다. 나는 살짝 놀라 대답했다. 그 말, 굉장히 거슬리게 들리는데. 정희는 계속 말한다.


“걔가 당할만한 짓을 하니까 그럴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해?”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게까지 잘 지내던 애가 어느 순간 갑자기 따돌림을 당하는데. 누가 의도하고 그러지 않는 한은…”

“네가 무슨 상관인데.”


정희의 말에 나는 정연하게 반박의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말은 중간에 싸늘한 정희의 말로 끊겼다. 정희의 표정은 싸늘하고 얼음 같다. 나 역시 조금 진지해져서 복도에 서 있는 나와 정희는 꼭 싸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분위기가 아주 엄하다. 이럴 줄은 몰랐지만 일단 리유와 자주 떠드는 구석 쪽 복도이기에, 이 광경을 보는 애들은 없다.


“희세가 왕따를 당하던 말던,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잖아? 아니, 오히려 꼴 좋은 거 아니야? 너 왕따 하려던 애니까. 인과응보라고 하지 않나, 이런 걸?”

“…그건 그냥 악이 반복되는 거잖아. 진짜 왕따 당하고 있는 거야, 희세?”

“……낸들 알겠냐.”


정희는 조금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하지만 뒤이어 이어지는 나의 말에 살짝 입술을 깨물며 말한다. 내 눈을 피하며 대답하는 것으로 봐서 거짓말인 게 분명하다. 나는 조금 더 말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말했다.


“내가 당한 거랑 그거랑은 별개야. 내가 당해봐서 알지만, 분명히 오해가 있어서 그런 거야. 알잖아, 희세 착하고 좋은 애인 거. 반 모두에게 인기 있었잖아? 다들 말로 하면 오해가 풀릴 거야, 그러니까…”

“시끄러! 너랑은 상관없다고 말 했잖아!”


정희는 기어이 큰 소리로 말한다. 듣기 싫다는 듯, 내 말을 중간에서 끊으면서. 방금 전까지는 그저 싸늘하고 진지한 정도였지만, 지금 왈칵 화를 낼 때의 정희의 눈은 분노가 가득하다. 하지만 그 분노는 빠르게 정리돼 사라지고 다시금 싸늘하고 냉정한 눈이 되는 정희. 나를 보고 말한다.


“늘 그런 식이지.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착하고. 그래, 누군들 안 그러고 싶어? 다들 질투하는 거야. 그게 전부야. 나도 알아, 누구보다 희세가 뛰어나다는 거. 제일 옆에서 가장 면밀하게 본 게 누군데. 누구보다 착하고 누구보다 좋은 애란 거, 내가 제일 잘 알아.”

“……근데 왜. 잘 안다며. 근데 왜!”


냉정하게 말하지만 그 말에는 흥분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니, 열등감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완벽한 존재에 대항하는 일반인의 한없는 열등감. 채념이나 자기 비하 같은 감정들이 섞인 좋지 못한 감정이 느껴진다. 나는 그런 정희에게 화가 나 크게 다그쳤다. 그렇다고 소리 지른 정도는 아니고, 그냥 힘 있게 말한 수준이다. 정희는 기분 나쁠 정도로, 소름 끼칠 정도로 사악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가장 옆에서 지켜봤다고 했잖아? 소문내서 자기가 싫어하는 애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짓. 누가 먼저 한 것 같애?”

“야, 최정희!!”

“너도 정신 차려. 어디서 멍청하게 자기 까려던 애 일에 신경 쓰고 있어. 네 앞가림이나 잘 해. 혹시 몰라? 희세한테 반해서? 하하, 남자들이란. 그저 가슴만 크면 좋아서.”

“…….”


정희의 비꼬는 듯한 말에 나는 소리쳤다. 하지만 정희는 여전히 비꼬는 말투로 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제는 완연히 본색을 드러낸 것처럼, 처음의 활기찼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뚜벅 뚜벅 앞으로 세 걸음 정도 걷던 정희는 슥 하고 뒤돌아 나를 본다. 싸늘하다. 얼음 같은 눈빛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힌다. 내 눈을 3초동안 쳐다보고, 시선을 분산 시켜서 뒤 쪽을 다시 보고. 그리곤 다시 나를 본다.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 들 정도로 긴장되는 상황.


“너 조심해. 끼어들 걸 끼어들어. 난 경고 했어.”

“너가 주동자였구나. 너였어.”

“……그건 너무 심하네, 누가 보면 꼭 내가 범인이라도 되는 줄 알잖아?”

“…….”


정희의 위협적인 말에도 난 겁먹지 않고 한 마디 했다. 이에 정희는 표정을 일그리고 말한다.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애 질시하고 싫어하는 게, 내 독단 하나만으로 될 것 같아? 다 똑같은 마음 가지고 있으니까 되는 거야. 난 단지 그 마음을 더 북돋아 준 것 뿐이고. 그게 잘못이라면, 우리 반 애들 전체가 잘못한 거지.”

“…….”

“그리고 알아? 30명 중에 28명이 나쁜 놈이고 2명이 착한 놈이라면, 외부에서 봤을 때 누가 이상한 놈들일 것 같아? 28명? 2명? 후후…”

“…….”


나는 정희의 말에 입을 더욱 꾸욱 다물었다. 나도 모르게 주먹이 꽉 쥐어진다. 하지만 내가 어찌할 도리는 없다. 정희는 내 반응을 보고 더욱 즐거이 비웃으며 한 마디 한다.


“너도 조심해. 네 일은 다 끝난 것 같지? 다 좋게 보는 것 같지? 애들 마음 바꾸는 거 아무것도 아니야. 여자애들 일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가던 길 가세요, 알았지? 난 경고 했다─”

“…….”


정희는 그렇게 말하고 홱 하고 돌아서서 교실 쪽으로 걸어간다. 나를 등지고 사라지는 정희를 보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쉬는 시간은 다 끝나가고, 하는 수 없이 교실로 돌아왔다.


─젠장! 왜 그렇게 멍청하게 서 있기만 했는데! 조금이라도 항변을 했어야 할 거 아니야!! 으아아,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얘기하다 보니까, 정희가 확실히 주동자가 맞는 것 같다. 말하다 보니 스스로 실토한 셈이나 다름 없게 됐으니. 정말,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더니. 저 밝고 활기차고 쿨한 정희가 이런 애일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성빈이도 결코 아니라고, 내가 지목하자마자 아닐 거라고 했는데. 하긴, 이건 일종의 기습이다. 성빈이는 ‘정희라면 절대 소문 내지 않을 거다’ 라고 말했고, 실제 내가 본 정희도 그런 타입은 아니었다. 소문내고 뒷얘기 할 것 같은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정희 말을 들어보면… 그런 ‘수법’은 아마 희세 옆에서 보고 배운 거라는 소리겠지. …나를 대상으로 하던, 희세의 수법을. 아아, 무서운 아이…!

게다가 정희는 선을 명확히 했기 때문에, 내가 끼어들 명분도 없다. 희세VS정희의 싸움에서, 내가 끼어들 명분은 어디에도 없다. 정희의 엄포도 좀 무섭기도 하고. ‘너는 괜찮은 줄 알아’ 라니. 꼭 그 말은 정희의 생각 여부에 따라 금세라도 여자애들이 태도를 바꿔 다시 나를 왕따처럼 대할 수도 있다는 것 같잖아… 그건 싫은데. 여러모로 난감한 상황이다. 이걸 누구한테 말할 수도 없고. 아아, 이러니까 진짜 여자애들 권력싸움(?)에 끼어든 것 같은 기분이잖아.


“무슨 일 있어?”

“아, 아니. 속이 좀 안 좋아서.”


성빈이는 내 심각한 표정에 수업 중임에도 작게 물어본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이런 와중에도 성빈이는 내 걱정을 해 주네. 고맙다. 음… 하지만 이 일은 역시, 성빈이한테 말하지 않는 게 좋겠네. 그냥 혼자 끌고 나가야겠다. 시름은 더욱 깊어져만 간다.


작가의말

우와아아아앙 춥네영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9 10화. 나는 정말 나는 정말 나는 정말 그럴 의도가 - 1 +16 14.01.28 2,572 72 18쪽
38 09.5화 - 2 +13 14.01.27 4,211 129 20쪽
37 09.5화. 잉여잉여 - 1 +13 14.01.27 3,204 56 19쪽
36 09화 - 4 +10 14.01.26 2,899 66 20쪽
35 09화 - 3 +7 14.01.26 2,986 67 17쪽
34 09화 - 2 +12 14.01.25 3,155 60 18쪽
33 09화. 친구가 돼 주세요!! - 1 +21 14.01.25 3,652 69 19쪽
32 08화 - 4 +12 14.01.24 3,410 110 18쪽
31 08화 - 3 +20 14.01.24 3,070 71 18쪽
30 08화 - 2 +16 14.01.23 4,800 165 17쪽
» 08화. 격전!! - 1 +13 14.01.23 3,151 57 19쪽
28 07화 - 4 +14 14.01.22 3,474 58 19쪽
27 07화 - 3 +11 14.01.22 3,084 63 21쪽
26 07화 - 2 +4 14.01.21 3,105 62 21쪽
25 07화. 다시 시작된 그것 - 1 +9 14.01.21 3,517 61 20쪽
24 06화 - 4 +10 14.01.20 3,666 97 20쪽
23 06화 - 3 +13 14.01.20 3,796 63 20쪽
22 06화 - 2 +11 14.01.19 4,079 65 20쪽
21 06화. 자연스럽게! - 1 +7 14.01.19 4,313 72 18쪽
20 05화 - 4 +17 14.01.18 4,516 139 19쪽
19 05화 - 3 +24 14.01.18 3,923 72 19쪽
18 05화 - 2 +24 14.01.17 3,474 100 17쪽
17 05화. 크아아아 흑화한다 +12 14.01.17 4,654 124 21쪽
16 04화 - 4 +10 14.01.16 3,771 80 19쪽
15 04화 - 3 +18 14.01.16 3,287 79 18쪽
14 04화 - 2 +16 14.01.15 3,312 73 25쪽
13 04화. 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11 14.01.15 3,736 92 20쪽
12 03화 - 4 +9 14.01.14 3,537 85 20쪽
11 03화 - 3 +7 14.01.14 4,217 127 18쪽
10 03화 - 2 +7 14.01.13 3,881 93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