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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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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작성
14.01.18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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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글자
19쪽

05화 - 3

DUMMY

교실은 순식간에 정적이 됐다. 모든 아이들이 단 한 치의 움직임도 없는 완벽한 정적. 정말 너무 조용해서 한 명 한 명의 숨소리까지 다 들릴 정도로 조용한 정적. 여자애들은 경악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어떤 애는 여자애라는 채통도 잊고 입을 쩍 벌리고 쳐다보는 애도 있다. 머리가 무겁고 핑핑 도는데도 그런 애들의 표정 하나하나는 도리어 잘 인식된다.

‘시X년들아’라는 말의 충격이 그렇게나 컸을까. 하지만 그건 참고 참고 쌓이고 쌓인 내 분노에 비하면 오히려 애교에 가까울 정도로 교양 있는(?) 표현이다. 맘 같아선 정말 있는 욕 없는 욕 다 하고 싶지만 머리가 잘 돌아가질 않는다. 입도 내 의지대로 잘 말이 안 나온다.

“늬들은 내가 그렇게 싫냐. 이딴 식으로 더럽고 추잡하게 우유 같은 거나 뿌릴 정도로 싫냐!! 어?!!”

“…….”

나는 여자애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말했다. 몇몇 여자애들은 나를 쳐다보지도 못한다. 그렇게 무서운 얼굴 하고 있나, 나. 확실히 이렇게 큰 소리 치니까 뭔가 마음속에서 미움 같은 게 잔뜩 들끓어 오르는 것 같은 기분인데. 하지만 이렇게 계속 욕만 하면 결국엔 울부짖는 개새끼와 다를 게 없다. 논리 정연하게, 주동자를 제거해야 해. 나는 희세를 쳐다봤다. 최대한 젠틀하게, 젠틀하게.

“야, 나희세.”

“어?!”

“너 말하는 거야, 너. 이러고 싶냐?”

“시, 실수였다고! 말 했잖…”

“그게 놀리는 거지 실수라고 말하는 거야!! 그게 실수야!!”

“…….”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희세는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잘라먹고 계속해서 큰 소리로 말했다. 희세는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이 빨개진다. 아, 이거 너무 쓰레기 같은데. 여자애한테 큰 소리 쳐서 말도 못 하게 하다니. 여기서 희세가 울어버린다면 아마 난 그대로 멈춰버릴 것이다. 하지만 이 이상한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자신감이 아니라 약간 허세나 객기 같기도 하지만 일단은 전혀 멈춰지지가 않는다. 계속해서 난 애들을 보며 말했다.

“니들이 나 따시키는거, 왜 그러는 지 물어나 보자. 왜, 내가 너네 강간할까봐?! 폭력적으로?! 그게 말이 되냐, X팔?! 내가 뭐 강간범이야! 이 세상 모든 남자 고등학생들이 그딴 쓰레기냐고!”

“…….”

내 분노의 일갈에 여자애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아니면 대답할 가치를 못 느껴서 대답하지 않는 건지. 난 얼굴이 빨개져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희세에게 시선을 돌렸다.

“더 웃긴 건 뭔지 알아? 지들이 직접 당한 것도 아니면서 지들이 더 호들갑이야. 본인은 정작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게 더 치사하고 비겁한 거 아니야? 어?!”

“……뭐가!”

“야, 희세야.”

“…….”

내가 희세를 가만히 보고 말하자 희세는 신경질적으로 답한다. 내가 한 말은 불특정 다수에게 한 것인데, 희세를 빤히 쳐다보고 하니까 자신한테 하는 말인줄 알고 그런 거겠지. 나는 나지막이 희세의 이름을 부르며 퀭한 눈으로 희세를 쳐다본다. 희세는 흠칫 놀라선 내 눈을 피한다. 아아, 눈을 피할 만큼 흉한 모습인가, 지금의 나. 하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지금은 그런 자신감이 생긴다.

“내가 너한테 뭐 해꼬지 했냐.”

“…….”

“내가 뭐 너한테 야한 농담을 했냐,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를 봤냐. 아니면 내가 가슴을 만졌어, 엉덩이를 건드렸어.”

“어, 엉덩이는! 어제 건드렸잖아…”

“그건 X팔 네가 와서 갖다 댄 거고! 그딴 식으로 하면 누군들 성범죄자 못 돼?! 나중에 커서 지하철 타서도 그 X랄로 할 꺼여?!”

“…….”

희세의 궁색한 변명에 나는 다시금 분노의 일갈을 내뱉었다. 어제 그 사건을 떠올리니 화가 쑤욱 하고 올라온다. 진정시켰던 마음이 다시 불길을 만난 듯 활활 타오르는 기분이다. 어제, 다수의 여자애들에게 마치 조리돌림이라도 당한 듯 비수를 맞아야 했던 나. 나약하고 초라하고 자그마한 소년이었던 나. 너무도 억울하고, 너무도 비참해서, 나보다 더 연약하고 작은 리유의 품에 기댈 정도로 약해졌던 나. 다 집어 치워. 나 사나이다. 더 이상 나를 막을 건 아무것도 없다.

“내가 듣기로는 내가 리유를 덮쳐서 변태라고 소문이 났다고 들었다. 정말 그거 때문에 다들 나를 이렇게 따 시키는 거냐??”

“…….”

“…사람이 말을 하면 대답을 해야지,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선생님이 시켜도 그 X랄 할 꺼지?! 네 년들 다 싸가지 존나게도 없는 년들이니까!”

“……말이 심하네! 그래, 그렇게 들었다 어쩔래 이 변태새꺄. 싸가지는 네가 없지! 여자애한테 욕질이나 하고, 어디서……”

훈계하듯 여자애들을 둘러보며 매우 큰 소리로 말하자 여자애들의 표정이 좋지가 않다. 당연히 자기들 욕하는데, 그것도 남자애가 여자애를 비하하는 식으로 말하는 데 기분 좋을 리가 없겠지. 희세 옆에 있던 키 큰 여자애가 한 마디 한다. 희세랑 잘 놀고 희세를 잘 따르는, 어제 나한테 비수를 던진 여자애들 중 한 명이다. 나는 피식 웃곤 그 여자애를 쳐다본다.

“누가 그러디.”

“…….”

“누가 그러냐고. 네가 소문 퍼뜨렸냐? 소문 퍼뜨린 새끼 누군데. 너야? 너지.”

“아, 아니야! 난……”

“아, 아니었어? 미안. X팔!”

“웅, 웅도야 왜 그래……”

분노가 극에 달하자 나는 정신 분열증 환자처럼 무섭게 말하다가 친절하게 말하다가 다시 욕을 하다가 한다. 나를 상대하던 키 큰 여자애는 당황한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옆에서 성빈이가 걱정스런 눈으로 다가와 말한다. 하지만 난 그런 성빈이의 도움을 뿌리치고 몸을 휘청거렸다. 그리고 다시 희세를 쳐다본다.

“내가 했어.”

“…….”

“내가 소문 퍼뜨렸어. 기숙사 애들한테 듣고, 내가 퍼뜨렸어.”

“……너 맞구나. 너 맞어.”

희세는 당당하게 말한다. 아니꼬운 표정으로, 아까의 당황한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다시 무시하듯 깔보는 표정이다. 나는 그 표정에 굉장한 불쾌감을 느꼈다. 저 지지배가 뭔데 나를 저런 표정으로 보지. 지가 뭐라고. 생각해라, 생각해라. 저 여자애의 저 표정을 무너뜨릴만한 말을 생각해라. 하지만 머리는 점점 더 어지럽고 제대로 된 생각이 되질 않는다. 이성적인 판단보단 감성적인 감정들이 머리를 장악하고 있다. 혼돈의 카오스를 겪고 있는 나에게, 희세의 목소리가 들린다.

“난 너 같은 변태들 정말정말 싫어하거든.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기나 하고, 이상한 상상 하고. 기어이 나중엔 자기 똥 오줌 못 가리고 죄 없는 여자애한테 달려들어서 그 여자애 상처줄 거 아니야. 아무 죄도 없는 여자애한테. 그래놓고 적반하장 격으로 여자애한테 뒤집어씌우기까지 하잖아? 여자애가 야한 게 잘못이라고.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은 하면 안 돼.”

“…….”

희세의 말에 여자애들은 심히 공감하는 표정이다. 그게 여자애들 전부의 뜻이렸다.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다. 뉴스에서 나오는 안면몰수의 파렴치한 성범죄자를 말하는 거겠지. 그런 사람들 보면 나도 혈압이 오른다고. 그런데, 그런데 왜! 그런데 왜!!

“그딴 놈을 왜 나에 대입시켜서 보는 건데!!!!!!”

“!!”

나는 굉장히 크게 소리쳤다. 까딱 잘못하면 옆 반까지 들릴 정도로. 정말 화가 나서, 속으로 생각하던 걸 그대로 말해버렸다. 그 정도로 화가 났다. 지금 이 일련의 사태들이 일어나게 된 모든 것, 바로 그 오해. 나는 단순히 리유를 구해준 것일 뿐인데. 내 작고 소중한 리유가, 책장에 깔릴 뻔해서 그것 구해준 것 가지고 왜 그런 파렴치한 성 범죄자를 나한테 대입시켜서 엉뚱한 정보로 생사람을 잡고 있는 건데. 생각을 정리하자, 방금 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생각한 것 그대로 말해버리면 죽도 밥도 안 되니까.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 천천히 돌리기 시작한다.

“리유는, 리유는 말야. 그 방에서 책장이 무너지고 있었어. 정확히 리유한테. 그래서 내가 밀쳐내서 구해준 건데. 구해줘서 다리도 다쳤는데. 그 결과가, 이거냐?”

“……!”

내 말에 희세는 흠칫 놀란다. 희세 옆의 여자애 두 명 정도는 더욱 놀라는 기색이 역력하다. 가만히 보니 그 여자애들, 내가 리유를 덮쳤을 때 기숙사에서 내려오던 삼인방 같다. 나는 계속해서 적개심 가득한 눈으로 희세를 보며 이어 말한다.

“눈앞에서 여자애가 곤경에 처하면 도와줘라, 난 그렇게 배웠어. 무슨 칭찬을 받으려고 그렇게 한 것도 아니야. 그냥 단순하게, 지금 내가 리유를 밀치지 않으면 리유가 다치니까. 그래서 그런 건데…!”

“…….”

괜히 말하다 보니까 감정이 격해진다. 나는 사실 눈물이 많은 편이다. 짐짓 남자답게 허세를 부리고 있지만 사실은 쓸데없이 눈물이 많은 스타일이라, 애들하고 싸울 때나 혹은 슬픈 영화나 드라마 볼 때나, 감정이 과잉되면 어김없이 눈물이 나온다. 여자애들 보는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 정말 창피하니까, 애써 감정을 억누르곤 계속 이어 말했다. 희세는 잠자코 내 말을 듣고 있다.

“여자애를 구해준 남자애가 왜…… 변태취급을 당하고 왕따를 당해야 하는데. 나중에 바닷가 놀러 와서 심폐소생술 해준 구조요원한테도 가슴 만졌다고 싸대기 때리고 고소하게? 성추행으로?”

“…….”

답변을 요구하는 내 눈에 희세는 그저 내 눈을 피할 뿐이다. 그건 내가 너무 감정을 담아서 애처롭게 말하고 있기 때문일까. 이어 말하려 하는데 가만히 깽판 치고 있는 나를 보고 있던 리유가 달려와 작은 손을 뻗어 내 입을 막아 버린다. 그리고 말한다.

“웅이가 나 구해준 거 맞아. 난 진짜 너무너무 고마웠고. 성추행 같은 거, 정말 하나도 없었어! 진짜로! 가슴, 만지긴 했지만! 그건 구해주느라 어쩔 수 없이 닿았던 거구…… 하나도 안 불쾌했어! 도리어 너무 놀라서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는걸! 그러니까, 웅이는 잘못 없어!”

“마, 맞아! 나도 봤어! 그 때 웅도 다리 얼마나 많이 다쳤었는데! 게다가 그런 짓을 할 만한 애도 아니고! 단순히 리유 구하느라 그런 거니까!”

“…….”

리유가 내 입을 막고 길게 길게 말하자, 옆에 있던 성빈이도 용기를 내서 한 마디 거든다. 두 사람의 말에 여자애들은 조금 술렁이는 분위기다. 변태라 불리는 당사자가 오해임을 밝히고, 당했다는 피해자 본인이 자기는 피해자가 아니라 도리어 도움 받았다고 주장하고, 목격자라는 애가 와서 그걸 증언하니 예전 주장의 입지가 흔들릴 수밖에. 아침에 내가 주장했던 3요소가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주동자를 앞에 세우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리유와 성빈이의 증언을 그대로 듣게 할 것. 물론 의도한 건 아니고, 뭔가 방법이 과격한 것 같기도 하지만 뭐 상관없으려나. 여자애들의 술렁이는 반응만으로 이미 충분하겠지. 나는 내 입을 막고 있는 리유의 작은 손을 뿌리치고 다시금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리고 X발 인간적으로! 여자애들이, 여자애들이 남자애를 그렇게 벌레보듯이 경멸하는 눈으로 쳐다보면…… X팔 난 어떡해야 하는데! 내가…… 내가 그래 잘못했냐!! 대답 좀 해 봐! 나희세!”

“…….”

“희, 희세야!”

그 말을 하니까 금세 눈에 눈물이 고인다. 아이 젠장할. 이미 고인 눈물을 들어가게 할 순 없고, 여자애들 안 보이는 틈에 눈물을 닦아야 하는데 여자애들은 다 나와 희세를 주목하고 있다. 처음 한 말은 여자애들 전체에게 한 말이고 나중 말은 희세에게 한 말이다. 희세는 입을 앙 다물고, 얼굴이 빨개져선 독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눈을 부르르 떨고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빠른 걸음으로 뒷문 쪽으로 나간다. 희세의 측근들이 깜짝 놀라며 따라 나서지만 희세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대로 나가버리는 희세. 반은 폭풍이 휩쓸고 나간 것 같은 분위기다. 이건, 작은 승리?

“후우…… 후우…….”

“웅도야, 됐어, 됐어. 그만 진정해.”

“괜찮아? 웅?”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눈물 닦아야 하는데, 그것만 신경 쓰고 있는데 기어이 눈물이 두 줄기 또르르 흐른다. 그걸 보고 성빈이가 눈물을 닦아준다. 아, 창피해!! 난 애써 태연한 척 숨을 헐떡였다. 왜 숨이 찬 거지.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내가 좀 흥분해서…… 말을 막 해버렸네…… 그, 그…… 악감정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니까……”

“…….”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목소리는 이미 눈물 때문에 잠긴 목소리다. 아, 이런 추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여자애들 몇몇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물론 몇몇 애들은 아직까지 날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지만.

“……는 개뿔 시X년들아! 니들이 더 개X같은 년들이지!”

“……!!!”

나는 다시금 속에서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억눌렀던 감정이 다시금 올라오는 모양이다. 나는 여자애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니들의 그 침묵하고 있는 게 더 무서운 거야. 알아?! 주동하는 몇몇 놈들보다, 묵인하고 인정하고 자기 생각도 소신도 없이 그대로 인정하는 너희들의 그 더러운 생각이 제일 무서운 거라고. 애초에! 내가 이런 애를 성추행할 리가 없잖아! 고기를 먹으려고 해도 먹을 게 있어야 먹지!”

“어디서 성추행이야!”

‘퍽!’

“앜!!”

나는 리유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얼굴에 약간 미소까지 지어진다. 리유는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져서 주먹으로 내 얼굴을 퍽 때려버렸다. 작고 귀여운 리유의 손에, 힘이 하나도 없는 리유지만 그래도 얼굴을 정면으로 때리니 적지 않은 타격이다. 나는 그대로 뒤로 밀려나 책상을 붙들고 겨우 섰다. 여자애들은 몇몇 애들은 실소를 지으며 그런 나를 쳐다본다. 으아, 이제 머리가 핑핑 도는 게 정상 수준을 넘어선 것 같다.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다. 눈도 다 못 뜨겠다.

“어, 괘, 괜찮아 웅도야?”

“에엣…… 그렇게 세게 안 때렸는데…… 웅! 정신 차려!”

나는 이제 균형을 잡지 못하고 휘청휘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수업시간 때부터 내 이상을 감지했던 성빈이는 더욱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리유는 자기가 때려서 내가 이 지경이 된 줄 알고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한다. 이제는 시야마저 줄어든 것 같다. 성빈이하고 리유만 보인다.

“으음…… 끅!”

“……!!! 꺄아아아아악!!”

나는 결국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쓰러지면서 문득 성빈이 얼굴이 보인다. 그대로 폭 쓰러지는데 뭔가 압도적인 물렁거림이 느껴진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손에 잡히는 걸 붙들었는데 그 붙잡은 게 지나칠 정도로 말랑말랑 거려 기분이 좋다. 거기에 무겁고 어질어질한 머리까지 푹 박았다. 얼굴에 느껴지는 말캉말캉한 촉감. 묘한 달달한 냄새까지 나는 것 같다. 아, 기분 좋아. 따듯하고 말랑말랑하고. 이대로 잠들고 싶다…… 하지만 나의 작은 소원은 성빈이의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눈을 뜨고 보니 내 눈 앞에 있는 건 성빈이 가슴.

“뭐가 변태 아니야, 완전 변태구만!!”

“성빈아, 괜찮아?!”

“으으…… 이 변태가!”

‘찰싹!’

‘와장창.’

“…….”

하지만 내 머리는 이미 정상적인 판단을 하기에는 늦었다. 도리어 ‘왜 저렇게 좋은 느낌을 느끼는 것을 방해하는 건데. 나의 자유를 방해하는 성빈이가 나쁜 거야. 가슴 만지게 해 주세요~’ 하는 느낌으로 더욱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다행이 그 생각은 입 밖으로 나오지도, 행동으로 취하지도 않았다. 사실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나 잘 보이지도 않는다.

성미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날카롭게 말하고, 곧이어 성빈이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리고 별이 번쩍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얼굴에. ‘찰싹’ 하는 찰진 소리를 들으면 아마 따귀를 때린 거겠지. 하지만 아픈 느낌이 전혀 들질 않는다. 뒤이어 와장창 소리가 나고 내 몸은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그래도 전혀 아픈 느낌이 들질 않는다. 그러면서 바닥에 쓰러진 내 의식은 그대로 깊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아아, 더욱 어지럽고 더욱 머리가 무겁다. 그대로 의식이 없어지는 느낌이다.

“…웅? 웅! 왜 그래, 정신 차려봐! 에엣!”

“……뭐야.”

“……죽었어?!”

“그, 그럴 리가 없잖아!!”

여자애들은 수군대며 웅도를 쳐다본다. 사실 아직까진 경계심이 가득한 여자애들이다. 웅도의 진심어린 말 한 마디에 조금 불쌍하단 느낌이 들었지만 방금 전 누가 봐도 고의인 것 같은, 성빈이 가슴을 손으로 왈칵 잡고 얼굴을 파묻는 행동으로 봐선 확실한 변태가 맞는 것 같다. 성빈이는 얼굴이 완전히 빨개져서 가슴을 가리고 쓰러진 웅도를 보고 있다. 오직 리유만이 쪼그리고 앉아서 웅도에게 말을 걸고 뺨을 때려본다. 하지만 웅도는 죽은 듯 아무 반응도 없다. 리유는 어떻게 해서든 웅도를 일으켜 보려 하지만 힘이 약한 리유로써는 꽤 키 크고 덩치 있는 남자애인 웅도를 들 수는 없다.

“도, 도와줘 성빈아.”

“에, 엣……”

“넌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방금 전에 저 변태가 성빈이 만졌는데!”

“에에…… 미안.”

리유는 힘이 부쳐 성빈이에게 말했다. 이에 성빈이를 위로해주고 있던 한 여자애가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리유는 순식간에 기가 죽어 다시 웅도에게 시선을 돌린다. 어떻게든 들어 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성빈이는 그런 웅도를 쳐다본다. 확실히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얼굴은 완전히 새빨개져서, 옷은 우유 투성이에 방금 전 쓰러지며 바닥을 뒹굴어서 흰 셔츠가 먼지로 완전히 더럽혀졌다. 성빈이는 웅도에게 다가갔다. 여자애들이 말렸지만 성빈이는 괜찮다고 하고 다가갔다. 이마에 손을 대 보니 열이 불덩이 같다. 성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웅도 팔을 들었다.

“가자, 리유야.”

“……응!”

성빈이의 말에 리유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둘이서 겨우 웅도를 들었지만 사실 둘이 들기에도 웅도의 키와 덩치는 큰 편이다. 무엇보다 리유가 거의 힘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성빈이는 사실 죽을만큼 창피하지만─반 애들이 다 보는데서, 그것도 막 방금 누명 벗겨주려고 애썼던 자신에게 그런 짓을!─ 그래도 웅도를 부축해서 양호실까지 데려가려 한다. 수업시간 때부터 웅도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기에,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그랬을 거라 생각이 드는 성빈이다. 그래도 창피하고 당황스러운 건 여전하다. 여자애들은 자기들끼리 ‘성빈이 가슴에 얼굴 파묻히곤 쓰러졌어’, ‘세상에, 그렇게나 변태야?!’, ‘응응, 쓰러질 때 황홀해 하는 표정 봤어. 진짜루!’ 하는 말들을 한다.

성빈이는 고개를 내저으며 혀를 쭉 내밀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웅도에게 퍼졌던 헛소문은 어떻게 해결한 것 같지만 더더욱 이상한 큰 소문이 퍼질 것 같다. 그것도, 반 대부분의 애들 앞에서 일어난 일이니. 성빈이는 아직도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웅도를 부축한다. 웅도는 아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작가의말

으아아아 시공간이 오그라든다!

큰일났어! 지나치게 양을 늘린 나머지 퀄리티가 시망이 되고 있어! 이대로 가다간!

난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어! 앙대잖아?! 어 정 정지가 앙대 으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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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06화 - 2 +11 14.01.19 4,079 65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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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5화 - 3 +24 14.01.18 3,923 7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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