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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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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1.22 02:34
조회
3,083
추천
63
글자
21쪽

07화 - 3

DUMMY

─두둥.


분식집 앞에 가만히 서 있는 세 사람. 놀란 표정의 나와, 살짝 놀란 표정의 성빈이, 멍한 표정의 리유. 그 앞으로, 팔짱을 끼고 아니꼬운 표정으로 이 쪽을 쳐다보는 여자애, 희세. 왜인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긴장된 분위기가 감돈다. 마치 서부극에서 권총놀음을 하는 두 무법자가 대치하고 있는 상황 같다고 해야 하나. 난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런 와중에도 들어오는 건 희세의 성숙한 몸매. 팔짱을 끼고 있어 가슴은 더욱 강조되고 가슴 때문에 그런 건지 잘록한 허리 역시 더욱 도드라지게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그 밑으로 이어지는 골반의 라인에…잠깐! 이럴 때가 아니잖아?!! 지금 상황 심각하다고!


“잠깐 나 좀 보지.”

“……누구, 나?”

“그럼 너 말고 누굴 보겠어.”

“…….”


희세는 굉장히 무서운 기세로 말한다. 낮고 거친 목소리로, 아무리 들어도 화난 것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평소 반에서 희세가 말하는 톤을 들어봤기에 알 수 있다. 평소엔 굉장히 아가씨 같으면서 고운 목소리로, 정말 예쁜 목소리로 말하는데. 청아하면서도 맑은 목소리라 특히 웃음소리나 놀라는 톤은 놀랄만큼 귀여워서, 아니 예뻐서. ‘쟤는 다 만능인데 목소리까지 예쁘네’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그 반대다. 어떻게 같은 사람에게 저렇게 다른 목소리가 나나 싶을 정도로. 성우인가, 쟤? 나는 당황해서 내 옆의 성빈이와 리유를 쳐다봤다. 성빈이 역시 당황해서 나와 희세를 번갈아 쳐다보고, 리유는 불안한 분위기에 살짝 겁을 먹은 표정이다. 나는 잠시 동안만 당황하고 다시금 당당한 척 ‘알았어.’ 하고 짧게 대답하고 희세를 따랐다. 희세는 빠른 걸음으로 딱 봐도 화난 것처럼 앞서 걷는다. 뒤를 힐끔 보니 성빈이와 리유가 불안한 표정으로 멈춰 서서 나를 보고 있다. 으아아, 나도 솔직히 무섭다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앞서 걷는 희세의 뒷모습에선 보이지 않는 오오라 같은 게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

“…….”


희세는 나를 강당 뒤편으로 데려갔다. 인적이 드문데다 학교에서 외따로 떨어진 곳. 그래, 저번에 애들과 사감 선생님과 열심히 짐을 옮겼던 그 강당 뒤편이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짐을 다 쑤셔 박은 낡은 체육창고가 보인다. 희세는 강당 뒤편에 와서야 몸을 싹 돌려 나를 쳐다본다. 여전히 분노한 듯한, 화가 잔뜩 난 앙칼지게 뜬 눈. 약간 치켜 올라간 예쁜 눈이지만 그런 눈도 매섭게 뜨고 노려보니 무섭다. 나는 뭔가 모르게 죄라도 지은 것처럼 의기소침해져서 가만히 희세를 쳐다만 봤다.


“내 뒷조사를 왜 하고 다녀?”

“……어?”


나는 살짝 긴장해서 삑사리를 내며 갈라진 소리를 냈다. 희세는 여전히 낮고 거친 목소리다. 내가 잘 못 알아듣자 다시금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더욱 나를 노려보며 말한다.


“애들한테 나에 대해 캐묻고 있잖아. 내가 모를 것 같아?”

“어…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은데. 난 그런 적이 없는데.”

“……하.”


나는 마음이 뜨끔뜨끔 하는 느낌이 들면서도 일단은 변명해보기로 했다. 물론 내가 부탁한 것이긴 하다. 내가 생각해낸 방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걸 실행한 건 엄연히 성빈이잖아! ……엄청 변명하는 것 같아서, 여자애한테 책임 떠넘기는 쓰레기 같은 남자애가 되는 기분이지만 실제가 그렇잖아! 나는 여자애들한테 희세에 대해 물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걸! 하지만 희세는 그리 호락호락한 애가 아니다.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나를 쳐다본다. 그리곤 훈계하는 투로 다그치듯 말한다.


“성빈이가 착하다고, 부탁하면 다 들어준다고 그런 걸 시켜? 남자새끼가 치사한 것도 정도가 있지, 알고 싶으면 직접 알아봐. 재수 없게 여자애 치맛자락에 숨어서 하지 말고.”

“…….”


희세는 아주 적나라한 말투로 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근데 나는 정말 뒤이어 대답할 말이 없다. 어떻게 알았는지, 성빈이가 희세에 대해 물어보고 다니는 것, 또 그 배후가 나라는 걸. 희세의 말 중 뒤엣부분은 내 남자의 자존심을 슬쩍슬쩍 건드린다. 하지만 잘못한 건 내 쪽인지라 뭐라 대답할 길이 없다. 희세는 더욱 목소리 톤을 높이며 말한다.


“다른 앤 모르겠는데, 성빈이는 건드리지 마. 성빈이가 착하다고, 너랑 놀아준다고 착각하나본데, 너랑 어울릴만한 애 아니거든? 솔직히 그러고 같이 다니는 것도 꼴보기 싫은데. 어떻게 내 뒷조사까지 시킬 수가 있냐. 그러고도 남자새끼 맞냐, 네가? 그렇게 비겁하고 치졸한 게?”

“자, 잠깐만, 여기엔 사정이…”

“닥쳐. 너보고 말하라고 한 적 없어.”


희세는 흥분해서 말한다. 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계속 희세가 자존심을 긁어대니 나대로 부아가 치밀어 견딜 수 없다. 그래서 변명이라도 하려 입을 놀려 보지만 분노한 희세는 격한 말투로 내 입을 틀어 막아 버린다.


“왜, 애들 앞에서 나 망신 주고 이기니까 세상 다 가진 것 같아? 역으로 내가 왕따 당하니까 속이 다 시원하지? 그리고 가만히 보니까 당하는 내가 불쌍해서 연민? 동정? 필요 없어. 나가 뒈져버려. 그딴 거 필요 없으니까! 네 고까운 동정, 난 필요 없으니까! 개수작 부리지 마.”

“…….”


희세의 분노에 찬 사자후는 나의 마음속에 콱콱 박히는 듯하다. 그 말 하나 하나 옳지 않은 말이 없어 나로서는 정말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 처음에 생각할 때, 좀 꺼림칙하다고 느낀 부분 전부가 사실대로 들어맞고 있다.

희세는 자존심이 강한 아이다. 난 겪어보진 못했고 그냥 보는 것만으로 자존심이 세고 자존감이 강해 보인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지금 말하는 것을 보니 그게 확실한 것 같다. 이런 류의 애들은 웬만해선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남의 호의나 도움도 애써 뿌리친다. 스스로 해결하려 하는 부류. 그러니까, 깨끗하고 올곧은 아이다. 그런 애에게 멋도 모르고 내가 나댔으니. 그것도, 내가 아닌 성빈이를 통해서.

얼마나 불쾌하고, 얼마나 기분이 안 좋았을까. 처음엔 너무 신랄하게 비판하는 희세의 말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뒤이은 말에, 특히 그 부분에서 ‘동정’이란 말을 들으니까 비로소 내가 좀 큰 잘못을 했다는 걸 느꼈다. 당장이라도 사과하고 싶지만─빠른 사과는 내 장점 중 하나다─분위기 상 그렇게 하기도 더 애매하다. 그렇게 했다간 더욱 많은 화를 돋워낼 것 같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서 있기만 하는 나다.

희세는 아주 큰 소리로 말하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숨을 씩씩댄다. 창문 같은 게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아주 크고 고음인 소리로 나에게 외쳤지만 강당 뒤편인지라 들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게 차라리 다행이지.


“됐어. 됐으니까, 다시는 나한테 말 걸지 마. 내 뒷조사 하는 짓도 하지 말고. 다음에 걸리면 진짜, 어떻게든 해 줄 테니까.”

“…어, 저… 미안!”

“…….”


희세는 이제는 분노가 아닌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고 마찬가지로 싸늘한 태도로 얼음공주처럼 싹 태도를 바꿔 걸어간다. 걸어가며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정말 얼음처럼 변할 것만 같다. 나는 어떻게든 안 나오는 말을 억지로 나오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덥썩 해 버렸다.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은 정말로 희세의 화를 돋울 수 있지만, 그래도 해야 하는 건 해야겠다. 물론 희세가 무시하고 그냥 쌩 지나가 버리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하지만 희세는 움찔 하고 멈춰 선다. 오오, 바로 지금이야.


“그… 기분 나빴다면 미안. 나… 주제넘게 괜한 짓 벌여서… 음. 절대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고… 음…”

“……하, 참 남자새끼가 말 질질 끌기도 오래도 끄네. 그냥 미안하다고 하면 되는 거 아냐?!”

“아… 미안.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됐어, 엄청 싫어.”


희세는 뒤돌아 듣다가 내가 더듬더듬 말하는 걸 듣고는 홱 몸을 돌려 새침하게 쏘아 붙인다.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물론 분노나 냉랭함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지만, 확실히 방금 전 말은 훨씬 분위기가 풀렸다. 희세는 그대로 다시 몸을 홱 돌려 갈 줄 알았는데 잠시 아니꼬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본다.


“……그!”

“응?”

“그 때, 네 소문 안 좋게 퍼뜨린 건 사과할게. 너한테 변태 같은 이미지 덧씌우고 색안경 쓰고 본 것도, 그렇게 판단한 것도 미안해. …그건 네가 말한 뒤로 줄곧 신경 쓰였으니까. 이제 됐어. 난 사과 했어.”

“어, 어어… 나도 미안해.”

“……흥!”


상상치도 못한 의외의 사과에 나는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 맞은 것 같다. 이거, 나한테 뭐라고 하려고 부른 거야, 사과 하려고 부른 거야? 게다가 자존심이 세기에 그 일을 사과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희세는 내 멍한 반응을 떨떠름하게 보다 돌아볼 때와 마찬가지로 몸을 홱 돌리고 ‘흥!’ 하곤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뚜벅뚜벅 걸어간다. 리유가 새침하게 ‘흥’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새침하다. 리유는 그냥 귀여운 수준일 정도. 저건 새침 정도가 아니라 정말 화나서 ‘흥’ 하는 것 같은데. 아, 진짜 화나서 하는 게 맞구나.

…뭔가 멍하다. 내가 한 사과를 받아준 건지, 그리고 갑작스런 희세의 사과는 또 뭔지. 그냥 멍한 느낌밖에 안 난다. 방금 전까진 희세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는데. 뭐야, 이거. 굉장히 흐지부지 해졌잖아.


“우에에에에─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희세 무서워!!”

“엇. 뭐야.”

“괜찮아? 희세가 소리 엄청 지르던데.”


멍하니 걸어서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희세를 쳐다본다. 아직도 얼떨덜 하다. 희세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옆에서 소리가 난다. 힐끔 돌아보니 리유와 성빈이다. 리유는 울상이 돼서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성빈이는 희세가 없어진 쪽을 쳐다보며 말한다. 나는 두 여자애를 보니 왠지 마음이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긴장이 탁 풀린다. 안도감? 안심? 나도 모르게 절로 웃는 표정이 된다.


“뭐야, 숨어 있었어?”

“후후, 재미있을 것 같잖아! 드라마 같구! 무, 무섭긴 했지만. 싸대기라도 때릴 줄 알았어. 희세 무서워.”

“어. 나도 솔직히 뺨따구 정도는 맞을 생각 하고 있었는데.”


내 질문에 리유는 의기양양한 기세로 말한다. 방금 전 엄청난 기세의 희세를 떠올리는지 조금 무서워하는 표정이 돼서. 나 역시 농담을 하며 씨익 웃었다. 그리곤 성빈이를 힐끔 쳐다본다. 성빈이 역시 나를 마주본다.


“무슨 말 했어?”

“별 건 아니고. 뒷조사 같은 거 하지 말고, 자기랑 상종하지 말아달래.”

“엣… 어, 어떻게 알았지? 전혀 모르게 했는데…”

“글세. 방법이 다 있었겠지. 어휴,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야.”

“미안…”

“아이, 네가 왜 미안해, 내가 미안해야지. 부탁한 게 난데.”

“그래두…”


성빈이는 희세에 대한 얘기를 꺼내가 깜짝 놀란 표정이 된다. 곧 미안한 얼굴로 바뀌어선 나에게 사과를 한다. 나 역시 같은 미안한 표정이 돼서 사과를 한다. 잠시동안 미안해하는 서로를 쳐다본다.


“기분 나빴나보네, 희세.”

“응. 너 건드리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더라.”

“나… 건드려?”

“어. 자기 뒷조사 할 거면 당당하게 하라고. 가슴에 팍 찔리데, 그 말 들으니까.”

“…….”


내 말에 성빈이는 잠시 입을 꾹 다물고 대답이 없다. 나는 나대로 또, 가만 생각해보니까 나와 희세 둘의 싸움이었는데 이런 걸 여자애들한테 꼬치꼬치 다 말해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든다. 혹시 또 경솔하게 말해버린 게 아닐까 싶은데. 뭐, 성빈이랑 리유가 다른 애들한테 떠벌리고 다닐 만큼 입이 헤픈 여자애들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아니, 이건 내 잘못이 아니지! 애초에 리유랑 성빈이가 몰래 훔쳐보고 있던 그 시점부터 잘못인 거잖아! 거기서 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고! ……변명도 참 잘 하네, 남자새끼가. 휴우.


“함부로는 못하겠네.”

“응.”

“흐음.”


성빈이는 오래도록 말이 없다 겨우 입을 땠다. 어떻게든 생각을 해 봤지만 날 수 있는 결론은 결국 그것뿐이겠지. 성빈이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본인이 와서 하지 말라고 소리까지 쳤는데 뭘 어떻게 해. 리유는 ‘이제 그만 가자~’ 하고 옆에서 생떼를 부린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저녁시간이 다 끝나가고 있다. 리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가자.’ 하고 강당 구석에서 나와 걷는다.


“그래서, 어떻게 하게? 그만 둘 거지?”

“……아니.”

“어?”


성빈이는 내 대답에 살짝 놀란다. 나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더 할 거야. 아까는 미안했는데, 지금은 갑자기 오기가 생기네.”

“그, 그러다 또 희세랑 충돌하면!”


내가 씨익 웃으며 말하자 성빈이는 나의 건방진 반응에 놀라서 대답한다. 확실히, 충돌하게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또 곤란해지겠지. 하지만 난, 하기로 마음 먹었다. 원래 귀찮아서 안 하려고 했는데, 그렇게까지 혼자 자존심 부리는 꼴, 잘 못 보겠거든.

그런 거 있잖아, 남자애들한테는. 객기라고 해야 할까, 괜한 자존심 부리는 거. 안 되는 거 뻔히 알면서, 잘못 됐다는 거 뻔히 알면서도 해야 할 때 해야 하는 남자들의 쓸데없는 그 자존심. 그것 때문에 질 걸 뻔히 알면서도 천진반이 마인부우전에서 나왔다 안 나왔다에 10만원을 걸고, 집 한 채가 왔다갔다 하면서도 노름판에 모든 것을 걸어버리는 그 알량한 자존심.

여자애인데도, 희세에게서 그런 걸 느꼈다. 아까 그 대화에서. 무엇보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앙칼지게 노려보는 그 눈빛 안에는 뭔지 모를 슬픔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더 가만히 둘 수가 없다. …이러니까 꼭 내가 눈빛으로 사람 마음 읽는 사기꾼 같은데. 그냥 보면 알 수 있다. 자존심도 세고 자존감도 강한 지라 결코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그런 애니까. 나도 잠깐은 그랬지, 어떻게든 혼자 해보려고. 하지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이런 식의 집단 따돌림에서 견디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그 괴로움이라면, 뼈에 사무치게 알고 있지. 생각을 마치고, 나는 내 대답을 기다리는 성빈이에게 한 마디 했다.


“부딪히면, 그 땐 말하면 되지. 도와주고 싶어서 도와준 거라고.”

“……싫어하지 않을까.”

“싫어하라고 해, 난 어찌됐든 내 맘대로 도와줄 테니까.”

“……그래.”

“에에. 희세한테 맞으면 어떡해? 희세가 너 때리면?”

“그건 좀 무서운데. 진짜 때릴 것 같아.”


성빈이는 내 막무가내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리유는 옆에서 걱정스럽게 말하고, 나는 그 말을 장난스레 받는다. 얘기하며 야자를 위해 학교로 들어간다.


교실에 도착하여 자리에 앉았다. 아직 야자 시작까지는 5, 10분 정도 여유가 있다. 힐끔 하고 희세를 쳐다봤다. 앞자리에 앉은 희세는 여전히 책을 읽고 있다.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보이는 뒷모습. 그 모습을 보니 더욱 전의가 불타오른다. 네 년이 나를 무시해? 두고 봐, 이 굴욕은 이자까지 쳐서 내 톡톡히… 아니, 이게 아니라!

네가 뭐라고 해도, 난 내 마음대로 도와줄 거니까! 동정? 아니! 내가 동정이긴 하지만! 동정 같은 게 아니야. 불쌍해서 도와주는 것도 아니야. 네가 싸가지 없게 말하니까, 그게 짜증나서 도와주는 거야. 알겠어?!


라고 마음속으로만 말하고 실제로는 못 말하는 비겁한 나다. …솔직히 저런 격한 말을 어떻게 면전에 대고 말해. 애초에 희세가 나한테 뭐라 할 때엔 이런 생각도 안 들었다. 그저 미안할 따름이었지. 어쨌든 희세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며, 더욱 다짐했다. 도와주기로.



숨 막히는 야자. 숨 막히는 뒷태의 희세. 숨 막히게 그걸 쳐다보는 나. 야자는 ‘숨 막히는’ 이라는 어휘로 모두 떼울 만큼 단순한 시간이었다. 기억 나는 거라곤 야자 중간 쉬는 시간에 희세가 제자리에서 일어나 쭈욱 기지개 켜는 걸 뒷자리에 있던 내가 음심을 품고 쳐다본 것. 아니, 음심을 품으려고 품은 건 아니고! 그냥, 뒷태가 너무 좋아서… 그 곡선…그 라인이… 그래, 내가 그랬소, 형사양반. 응?!


야자가 끝이 났다. 하루 일과 중 하나니 매일매일 끝을 보는 야자이지만 정말 끝날 때마다 기분이 좋은 게 또 야자다. 그만큼 싫다는 거겠지. 아이들은 모두 기뻐하며 하교를 준비한다.


“우우… 나만 헤어지는 것 같잖아!”

“그럼 어떡해, 너가 기숙사에 안 사는 걸.”

“우아아아앙! 나도 기숙사 들어갈래!”

“에에이, 리유야, 기숙사 엄청 안 좋아. 집이 최고야.”

“우우웅! 비찡이랑 같은 침대 쓸래!”


리유는 헤어지기 싫다고 아이처럼 징징댄다. 성빈이는 차근차근 리유에게 기숙사의 안 좋은 점을 설명해준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말하는 리유다. 흠, 리유와 성빈이가 한 침대에서… 음… 좋군…(?). 뭐, 별 수 없는 생떼라는 건 리유 본인도 알기에 적당히 하고선 ‘내일 봐~’ 하고 생기발랄하게 뛰어 간다. 아침 8시부터 학교에 와서 10시에 끝나는데, 보통 피곤한 티를 낼 텐데 리유는 피곤하지도 않은 지 활기찬 모습 그대로다. 참, 볼 때마다 대단하다고 느끼는 게, 저렇게 활달한 애가 따돌림 당하고 있다니. 누가 상상이나 할까, 저렇게 귀엽고 활달한 애가 사실은 반에서 따돌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런 게 있든 없든 이 반은 잘 돌아가고 여자애들은 저들끼리 끼룩끼룩 깔깔 까르르 웃으며 학교 생활을 잘 한다는 게 더 소름 끼치지만.


“리유랑 같이 다니면서, 애들이 뭐라 하는 거 없어?”

“…너 그 말 리유한테 실례다? 리유가 무슨 괴물도 아니고.”

“아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 현실이 그러니까, 좀.”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성빈이와 함께 가고 있다. 방금 전 헤어진 리유의 밝은 표정과 그것과 상반되는 어두운 사정이 머릿속에서 대조되며 떠올라 성빈이에게 물었다. 성빈이는 나를 흘겨보며 장난스런 말투로 말한다. 장난인 걸 알기에 정색하지 않고 마주 받아 치며 말했다. 성빈이는 마찬가지로 웃으며 말한다.


“뭐, 워낙 애들 사이에서 언급하면 안 되는 게 됐으니까. 그거 알아? 은따가 무서운 건, 무슨 볼드모트도 아니고, 이름까지 언급하면 안 되는 존재가 돼 버려.”

“우와, 그건 진짜 무서운데. 리유 그 정도로 심각하게 당하고 있는 거야?”

“때리거나, 삥을 뜯거나, 심하게 가혹하게 하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철저한 무시와 무관심이라고나 할까.”

“그게 더 가혹하다야. 귀여움 받는 걸 좋아하는 리유한테는.”

“……그렇지.”


성빈이의 말에 나는 몸서리를 쳤다. 확실히, 애들이 리유를 대하는 걸 보면… 리유 쪽으로 겉다리만 살짝 걸친 말만 나와도 표정이 싹 바뀌어서 돌 같은 표정이 되니까. 내가 간혹 여자애들이랑 얘기하다 리유가 다가오거나, 혹은 리유 얘기가 나오거나 하면 바로 다른 일을 하거나 못 들은 것처럼 원래 하던 얘기를 계속 하거나 하는 여자애들이다. 이런 면에선 남자애들보다 철저해서 더욱 무서운 여자애들이다.

리유 본인의 요청에 의해 희세 일을 먼저 해결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사실 내 입장에서 시급한 건 리유 일이다. 톡 터놓고 말하자면 희세는 지금 나랑 별 관계도 없는데다 나 엄청 싫어하고, 욕이나 한 바가지 하고 자존심이나 박박 긁어 놓는 기 센 여자애에 불과하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겠는가. 아니, 도와준다고 해도 엄청 싫어할 게 뻔한 앤데. 결국엔 ‘오기로 도와준다’ 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거리까지 만들어야 하잖아. 사실은 그냥 도와주고 싶은 거지만.

반면에 리유는, 엄청 귀엽잖아! 나한테 애교도 앙탈도 많이 부리고, 보면 나도 모르게 호구가 돼서 막 뭐 사주고 싶고, 뭐든 해주고 싶고, 그런 존재다. 말 잘 듣는 사촌 동생. 아, 말은 잘 듣는데 가끔 엉뚱하고 이상한 짓을 해서 난감한, 그런 애. 아, 또 추가하자면 눈치도 좀 없는 편. 그래도 어떠랴, 귀여우면 그만이지. 외모도 하는 짓도 너무너무 귀여우니까, 다른 애들하고도 친하게 지내면, 다른 애들에게도 귀여움 받아서 더욱 행복해하는 리유의 모습을 보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나까지 서글퍼지잖아. 리유가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생각이 거기까지 가니 리유의 넓은 오지랖에 한숨과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건 정말, 마음이 동해바다처럼 넓은건지, 아니면 정말 생각이 없는건지. 자기 은따 당하는 건 고려도 하지 않고 바로 다른 애 왕따 당하는 걸 먼저 구제해 달라니. 참견도 유분수지, 자기 일부터 해결하고 해야 하는 게 보통 사람의 개념 아니야?! 아, 하긴. 리유에게 보통사람의 개념을 촉구하긴 좀 그렇다.


작가의말

요즘은 비교라는 덧에 빠졌습니다.


다른 분들의 라노벨에 비하면 내 소설은 어떤 걸까?

출판된 작품들과 내 작품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왜 저 사람 글은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선호작이 1000명이나 되는거지?


이런 생각들이 제살깎아먹듯 제 마음을 좀먹고 있는 기분이네요. 잠시동안만 이런 거라면 어느 정도의 좋은 자극이 되겠지만, 장시간 이러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다른 분의 라노베와 제 것을 비교해보니 확실히, 다른 분들도 2분이나 지적해주신 부분인데 너무 쓸데없이 묘사가 긴 것 같습니다. 좀 더 쓰면 라이트 노벨이 아니라 헤비 노벨이 될 것 같아요. 여기서 말하는 건 분위기 말고 묘사하는 거 말입니다. 분위기는 어떻게 봐도 뿌리부터 라노베...


최대한 가볍게 써 보도록, 대화 위주로 글이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P.S 그래봤자 바뀐 느낌이 드는 건 9화 정도부터일겁니다. 비축분은 이미 싸질러 놓은 것이기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1

  • 작성자
    Lv.80 똑딱똑딱
    작성일
    14.01.22 02:48
    No. 1

    비슷한 문장이 중복되서 사용되는 경우가 가끔씩 보이네요. 활발한 애가 ~~상상이나할까. 이게 살짝변형되서 한번 또 쓰이네요. 그런 부분들이 묘사를 길게 하는게 아닐까요? 그리고 주인공 독백이 많던데 비슷한 직품을 읽어보는건 어떨까요? '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 됐다' 이 작품이 주인공 독백도 많고 라노벨이면서 의외로 무겁습니다. 사회 풍자와 비판을 주인공이 자주 하거든요. 작가님 화이팅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22 02:49
    No. 2

    오옷. 감사합니다. 돌이켜 보면 같은 표현이 중복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그것도 별로 바꾸지도 않고서! 양을 늘리기 위해 그런 짓을 일삼는 저라 죄송합니다 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1 못찾겠다
    작성일
    14.01.22 15:10
    No. 3

    주인공은 정말 보살이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22 18:15
    No. 4

    아무래도 그렇지요… 허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1 후르뎅
    작성일
    14.01.24 13:45
    No. 5

    주인공이 되려면 오지랖이 넓어야 하나 보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24 18:08
    No. 6

    아무래도 그...렇지요, 헣헣ㅎ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4.08.23 17:54
    No. 7

    가랑이가 쭉~(오지랇이넓으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6 진주곰탱이
    작성일
    14.09.06 17:13
    No. 8

    에에에에에...왜 이렇게 재밌는거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8 무빙스타
    작성일
    15.10.24 23:41
    No. 9

    이쯤돼면 특별한 사건이 발생!!! (주인공 버퍼가 부족해요 지금은 그냥호구같음.ㅋ)
    주인공 홈즈가 출동~~바랍니다.. ~~>>그리고 훈훈하게 해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7 n4969_sm..
    작성일
    17.03.15 16:15
    No. 10

    저..저녀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0 기스모
    작성일
    17.04.26 19:14
    No. 11

    남자새끼자 찌질하게... 진짜 찌질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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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05화. 크아아아 흑화한다 +12 14.01.17 4,654 124 21쪽
16 04화 - 4 +10 14.01.16 3,771 80 19쪽
15 04화 - 3 +18 14.01.16 3,286 7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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