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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2,918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1.24 20:56
조회
3,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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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글자
18쪽

08화 - 4

DUMMY

다음날, 학교.


“좀 어색할 것 같은데.”

“괜찮을 거야.”


성빈이와 함께 학교에 가고 있다. 예전까진 혼자 학교에 일찍 가서 먼저 씻고 잉여롭게 교실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신고식을 치르고 난 뒤로는 좀 더 일찍 일어나 위에 올라가서 씻고 점호도 받고 성빈이와 함께 학교를 오게 됐다. 점호 때 충격과 공포의 여자애들 맨얼굴을 보게 되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고. 뭐, 이제는 여자애들도 만성이 돼서 대부분은 웬만하면 내 앞이라고 행색을 갖추거나 하진 않는다. 하긴, 자기들도 귀찮겠지.

학교로 걸어가면서 나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아무리 흐지부지하게 끝났다고 하지만 그래도 어색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성빈이는 괜찮을 거라고 안정적인 표정으로 말하지만 나는 기분이 썩 좋지가 않다. 특히 정희 얼굴을 어떻게 볼지. 그렇게나 펑펑 울다니, 그건 나에게도 조금 책임이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안 좋다. 아이처럼 펑펑 울던 정희를 떠올리면 나마저 부끄러워져 얼굴이 화끈해지는 기분이다. 걱정하며 학교로 갔다.


“오오…”

“응응, 그래서 그래서?”

“어, 그래서 내가─”


학교에 가서 내 자리에 앉는다. 앉자마자 보이는 건, 정답게 얘기하고 있는 희세와 아이들. 다시금 예전 위치로 돌아온 희세다. 예전 그대로 당당하면서도 아이들에게 살가운 태도 그대로이다. 거기다 조금은 놀라운 건 그 옆에 정희까지 아주 재미있게 놀고 있다는 점.

다들 잘 떠들고 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흥미롭게 희세 쪽 애들을 쳐다봤다.


“오, 변태 씨다!”

“변태 씨~ 일루 와~”

“어우 야~~ 왜 불러~~”


한 여자애가 힐끔 나와 눈이 마주치니 호들갑을 떨며 나를 부른다. 정희는 굉장히 창피해하며 책상 위에 걸터 앉아 있던 자세를 고치곤 내 눈을 피한다. 나는 뒷머리를 긁으며 일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아이, 이거. 이렇게까지 귀한 사람 아닌데. 여자애들이 저리 나를 찾아대니 안갈 수가 있나. 혹시, 이러다 나 인기남 되는 거 아닌가?! 하하하하, 상남자의 길로 접어든 것이로구나!


“잘들 노네?”

“어제 그렇게 한바탕 했는데~ 무서워서라도 같이 잘 지내야지~”

“꺄하하하하하─”


나한테 비수를 던졌던 여자애들 중 하나인 주영이가 한 마디 한다. 여자애들은 그 말에 깔깔 까르르 저들끼리 웃는다. 짓궂은 농담에 나도 살짝 웃었다. 정작 그 싸운 당사자들인 희세와 정희는 표정이 썩 좋지는 않지만.


“이제 괜찮아?”

“아아~ 됐어, 말하지 마~!!”

“에엑.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왔는데.”

“됐어, 됐으니까! 꺼내지도 마.”


정희를 보며 말하자 정희는 내 눈을 피하며 몹시 창피해한다. 어제 일 사과하려 하는데, 여전히 부끄러워하며 아예 날 쳐다도 안 본다. 정말 부끄러워서 얼굴이 살짝 발그레 해졌다. 괜히 장난기가 돈 나는 한 마디 했다.


“미안, 정희야.”

“아, 하지 말라니까!”

“어제 나 때문에 울어 버려서… 정말 미안해.”

“하지 마!!!!!!!!!”

“꺄하하하하하하!!!”


최대한 감정을 담아, 불쌍하고 슬픈 감정이 들어가게 말하니 정희는 더욱 창피해한다. 급기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친다. 정말 창피했는지 얼굴이 완전히 새빨개졌었다. ‘울어 버려서’를 언급하니 더욱 그런 것 같다. 주위 여자애들은 그런 반응이 재미있어 박장대소를 한다. 정희는 ‘너네도 웃지 마!! 쪽팔리다니까!’ 하면서 계속 소리 지른다. 그렇게 해도 여자애들은 더욱 재미있게 웃는다.

어쨌든 잘 됐네, 완연하게 예전 모습 그대로 돌아온 것 같아서. 싸우면 어색해져서 죽도 밥도 안 되게 될 줄 알았는데, 정희의 쿨한 사과와 인정, 그리고 눈물로 인해서 어찌저찌 넘어간 것 같다. 성격상 그렇게 과거 일에 연연할 성격도 아니고, 정희. 희세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앞에서 티 낼 정도로 뒷끝이 있는 막힌 성격도 아니고. 괜찮겠지. 모두 한 데 친하게 지내니 얼마나 좋아. 내가 눈물이 나는 사람이 아닌데 눈물이 나려고 하네? 에이, 내가 무슨 아빠도 아니고.


“…….”

“?”


그렇게 깔깔대며 정희를 놀리고, 정희는 정희대로 창피해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된 가운데 희세는 다른 애들과 마찬가지로 곱게 웃다 문득 나를 쳐다본다. 희세는 나를 볼 때 결코 곱게 보지 않는다. 한 번도 그런 눈으로 날 봐 준 적이 없다. 항상 두 가지 정도. 노려보는 거, 아니면 아니꼬운 눈. 아니 왜?!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심지어 처음 입학식 때 만났을 때에도, 아니꼬운 눈이었다. 그거야─ 입학식 때 워낙 내가 지랄 같이 여자애들 시선 다 빼앗아 버려서, 그거 질투? 호홋, 희세가 질투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삐익!’

“잠깐 나 좀 봐.”

“……나?”

“어, 너.”


희세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갑자기 혼자 급진지해지더니 삐익 하고 의자 끄는 소리가 나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더니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나를 보고 말한다. 나는 당황해서 주위를 쳐다보며 ‘나?’ 하고 말했다. 이에 희세는 ‘멍청한 표정 좀 그만 지어’ 라고 말하는 듯한, 한심한 물건(?)을 보는 것 같은 눈으로 짧게 말하고 쌩 하니 바깥으로 나간다. 여자애들이 작게 ‘희세 왜 그래?’

‘아직 화 안 풀렸어?’ ‘쟤 또 지랄한다 지랄해.’ 하며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다시 친해지긴 했지만 어제 사건의 여파로 예전처럼 무조건적인 찬양이 아니라 적당한 욕설까지 함께 붙는 관계가 됐구나. 뭐, 좋지. 아니, 안 좋아! 왜 나를!! 겁나 무섭잖아, 저러면!! 여자애들이 다 나를 쳐다본다. 나는 괜히 또 창피해져서 얼른 희세를 따라 나갔다.


“저… 어디 가는 거…”

“……!”

“어디 가시는 지 혹시 알 수 있겠습니까. 아씨.”

“아씨는 무슨 아씨야!”

“죄, 죄송합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나리…!”

“아 쫌! 닥쳐! 그냥 조용히 하고 따라와!”

“넵.”


복도를 뚜벅뚜벅 걷는 희세. 엉덩이 실룩실룩 잘도 걷는다. …왜 난 이런 것만 보는 걸까. 아니, 보이잖아! 눈이 달려 있어서 저 쪽에 달려 있는 엉덩이를 본 건데, 그것마저 범죄냐! 가만히 희세를 따라가며 개드립을 몇 마디 내뱉으니 희세는 내 쪽은 쳐다도 안 보고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분위기를 재미있게 만들어 보기 위한 조금의 노력이었는데 재미있기는커녕 더욱 심각해졌다. 결국 난 복종하고 그녀의 명령대로 입을 다물었다. 난 결국 노예인걸까. 크으… 사나이 정웅도! 이럴 순 없지!


“나를 어디로 왜 데려가는 것이냐!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이 내 몸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

“닥쳐, 변태 왕따 노예 새끼야.”

“어허! 계집 주제에 말이 심하도다! 감히 어찌! 그럴 ㅅ…”

“지금 뭐라고 했어. 계집? 주제에? 한 번 더 말해봐. 뭐라구?”

“아, 아니, 아니!! 컨셉이잖아, 옛날 시대!”

“한 번만 더 그래봐. 그 땐 진짜 죽여 버려.”

“……말장난도 못 하나.”


나는 일부러 장난하는 식으로 고어체 같은 말투로 말했다. 짐짓 무시하는 투로 말하자 희세는 움찔 하며 멈칫 하더니 그대로 뒤돌아 엄청나게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거의 멱살을 잡을 기세로 나에게 가까이 오더니 분노가 이글이글 꿈틀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러더니 다시금 쌩 돌아 앞으로 간다. 나는 조금 어이가 없어 가만히 희세를 쳐다봤다. 자기는 ‘변태’, ‘왕따’, ‘노예’ 라고 폭언을 일삼아 놓고선! 저거 하나 하나 떼놓고 보면 자라나는 남자 고등학생에게 얼마나 큰 정신적 충격을 주는 단어들인데! …우씨. 남자애가 이런 거 저런 거 따지면 쪼잔하지. 그냥 따라 간다.




희세가 데리고 간 곳은 강당 뒤편. 멀리 낡은 체육창고가 보이는, 저번에 희세가 나를 크게 훈계했던 그 곳이다. 이슥하여 사람이 없는 곳. 아침인지라 더욱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인 곳. 희세는 슥 뒤돌아 팔짱을 끼고 나를 아니꼬운 표정으로 본다. 나 역시 그리 좋지는 않은 감정으로 희세를 쳐다본다. 방금 오면서 잠시 분탕질을 했기에 그렇다. 그래, 나 속 좁은 남자다. 근데 기분 나쁜 건 기분 나쁜거잖아. 겨우 ‘계집’ 한 마디 했다고 그렇게 이 잡 듯 털어버릴 건 아니잖아. 남자애 자존심도 있는데. 희세는 한동안 나를 노려본다. 나 역시 별다른 말 없이 희세를 마주본다.


“미안.”

“……?”

“미안하다는 말 하려고 불렀어.”

“……이렇게 뜬금없이?”


희세는 나지막이 말한다. 나는 조금 얼이 빠진 표정이 돼서 희세를 보며 말했다. 희세는 그리 밝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 입을 뗀다.


“그… 남자애니까, 남자애니까! 말하는 거야.”

“뭐를.”

“들어! 잠자코 들어.”


희세는 약간 부끄러운 모양인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한다. 딱 한 마디, ‘뭐를’ 하고 말했는데 신경질적으로 소리지르며 말한다. 아아, 네네. 그러지요. 전 그냥 닥치고 듣기나 해야지요. 천한 노예인데.

“……맨날 소리치고 짜증내서 미안해.”

“……어.”

“대답 하지 마! 그냥 듣기만 해!”

“…….”


희세는 살짝 수줍은 느낌이 나는 소녀 같은 말투로 말한다. 처음 보는 희세의 수줍은 모습이기에, 약간 당황스러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다시 날카로운 희세의 목소리. 뭐야, 방금 소리치고 짜증나서 미안하다며?!! 이 말과 행동이 다른 언행불일치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희세 양?! 게다가 이건 무슨 신종 가혹행위인가. 대답 안 하면 듣고 있는 지 어쩐 지 모를 거 아니야. 에라, 모르겠다. 그러라는데 그래야지. 아마 내가 대답하면 창피한가보다.


“저번 왕따 시킨 것도 미안하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


희세는 내 쪽을 보며 말한다. 하지만 나를 쳐다보는 건 아니고, 어째 내 밑의 땅 쪽을 쳐다보며 말하는 것 같다. 내 눈을 피하네. 나는 잠자코 듣기만 했다. 희세는 ‘나는!’ 하는 대목에서 고개를 쳐들고 나를 본다. 크고 맑은, 약간 치켜 올라간 예쁜 눈. 거기에, 흰 피부는 약간 발그레하게 붉어져서 꼭 볼화장을 한 것처럼 예쁘다. 우와, 진짜 예쁘긴 엄청 예쁘구나, 희세. 어쨌든 그런 희세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시작한다.


“남자애들만 보면, 짜증나서!”

“…에엥?”

“그러니까, 경쟁심이라고 해야 할까, 절대 지고 싶지 않아서!”

“……응.”


희세는 약간 우기는 것처럼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살짝 어이가 없어 ‘에엥’ 하고 이상한 소리를 냈다. 뭐야, ‘경쟁심’을 느낀다고, 나한테? 내가 희세보다 공부도 운동도 다 못 하는데?!

“난… 사실대로 말하면 남자애들한테 선입견 있는 거 맞아. 중학교 때, 늘 버스 탈 때마다… 남자애들이 자꾸 가슴 쳐다보고, 엉덩이 쳐다보고, 다 들리게 자기들끼리 음담폐설 하고… 그런 눈으로 쳐다본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싫었어.”

“…….”


크흠. 그건 부정하지 못하겠다. 나 역시 여자애들을 가슴으로 평가하지 않는가.(?)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음… 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는 사실이지. 남자 애들이 잘못 했네! 중학교 때면 한참 어린 소녀 감수성인데, 지금도 그렇지만. 그런 여자애한테 그런 몹쓸 짓을… ……그럼 희세는 중학교 때부터 저 정도의 가슴이었다는 건가. 그건 그것대로 기대되는데. 아아악! 이 변태자식! 희세는 그 말을 하는 게 부끄러웠는지 얼굴이 더욱 빨개져서 말을 잇는다.


“그래서! 남자애들은 다 짓밟아 주겠다고, 다 변태 쓰레기 같은 놈들이니까! 근데, 나도 모르게 그런 내 선입견을 너한테 대입했던 것 같아. 그래서, 미안해…”

“……응.”


아니아니, 그 선입견 대입해서 봐도 딱히 자네가 틀린 생각한 건 아니네, 희세 양. 나 역시 음란한 눈빛으로 자네를 봤으니까… 으아아! 남자가 변태인 게 뭐가 나빠! 내가 음란한 눈을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희들이 귀엽고 예쁘고 야한 게 나빠!

그러나 저러나, 희세가 이렇게 부끄러워하며 수줍게 말하는 건 처음 봐서 굉장히 신선하다. 늘 나한테는 고압적이고 짜증 부리거나 화내는 모습만 보여 왔던 희세이기에 더욱 묘한 기분이다. 왜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거지. 헉, 설마…! 에이에이, 아니지.


“솔직히, 네가 도와줄 줄은 몰랐는데. 내가 왕따하려고 했었잖아!”

“뭐… 그건 그렇지.”


희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째 이제는 대답을 해도 신경질적으로 짜증부리지 않는다. 도리어 내 말을 잘 들어주려는 느낌? 게다가 고압적인 태도도 없어지고 묘하게 부끄러워하는 모양이라 좀 어색하다. 희세는 더욱 수줍게 말한다.


“근데 어째서… 어째서 도와준 거야?”

“아니, 도와줬다기보다는 더 망친 게 큰 것 같아서 내가 더 미안한ㄷ…”

“변명하지 말고! 왜 도와 준거냐고 묻잖아!”


희세의 말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은 중간에 희세가 끊어 버린다. 아아, 대체 난 희세 앞에서 어떤 말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걸까. 가만히 보니까 지금까지 희세 앞에서 제대로 완성되게 한 문장으로 말을 이은 적이 없는 것 같아. 지금은 할 수 있겠지. 음, 근데 막상 말하라니까… ‘오기로 도와줬다’ 라고 해봤자 돌아오는 건 짜증뿐이겠지. 그렇다면, 그리스의 소피스트도 울고 갈 궤변 솜씨를 지닌 내 장점을 십분 살려서, 멋드러진 말로 꾸며 말한다면!


“좋아하니까, 좋은 애라는 거 알고 있었으니까.”

“에, 에엣…!”


희세는 내 말에 세 발자국 정도 뒤로 떨어지며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어이어이, 방금 전 내 말에는 어떤 성희롱도 담겨 있지 않았다구. 이젠 평상문에서도 그 반응이 나오는 거야? 좀 더 지나면 그냥 ‘하아’ 하고 숨만 쉬어도 그 반응 나오겠구만. 그러려니 하고 나는 이어 말했다.


“리유도, 너랑 어울리고 싶어 하고. 같이 놀면 좋겠다 싶어서. 그러니까, 친구가 되고 싶어.”

“…….”


희세는 내 말에 말이 없이 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어째 얼굴이 완전히 빨갛게 됐다. 뭐야, 내가 그렇게 수치스러운 말을 했나. 그런 건 없는 것 같은데. 희세는 한동안 말없이 나를 올려다보더니 작게 한 마디 속삭인다.


“…그거, 고백하는 거야?”

“…응? 고백?”

“좋, 좋아한다고, 했잖아.”

“아아, 아아! 아아, 아니! 오해야 오해! 그런 말이 아니라!”


희세는 굉장히 수줍어하며 말한다. 그제야 나는 그 드세고 당찬 희세가 왜 이렇게 부끄러워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까지 갑자기 창피해지려고 한다. 그 ‘좋아한다’ 는 말이 아니라! 아니, 오해할 법도 하구나! 그러니까, 내가 희세를 좋아하니까 도와준 거라고 오해하고 있어! 하긴, 그건 납득할만한 이유니까. 거기다 희세, 충분히 좋아할만한 외모니까! 오해하고 있어! 젠장, 그런 게 아닌데! 내가 말한 좋아한다는 건, 그러니까… 박애? 같은 거? ……참 열렬한 프랑스 나셨다. 어쨌든 리유하고 연관 지어서 말한 건데 심각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나까지 괜히 얼굴이 빨개져서 팔을 휘저으며 당황하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그게 좋아한다는 게 내가 아니라, 리유 말하는 건데. 치, 친구가 되고 싶다는 건 사실이고!”

“……뭐야. 거짓말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아니!! 이것도 아니고! 아후, 뭐랄까… 어쨌든 고백은 아니야!”

“…….”


나는 당황하면 말을 잘 못한다. 평소에도 말을 잘 하는 편은 아닌데, 당황하면 횡설수설 생각이 막 나오는데다 정리까지 안 돼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가 된다. 나의 현란한 어휘력과 환상적인 호흡 조절의 말을 들은 희세는 입을 꾹 다물고 나를 쳐다본다. 여전히 얼굴은 빨갛게 돼 있다. 말없이 갑자기 내게 다가온다. 히익, 뭘 하려고?! 나,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는데…!


‘퍽!’

“크헉…!”

“…바보새끼.”

“쿠흐윽… 크학!”


희세는 나에게 다가와서 그대로 내 명치를 있는 힘껏 가격한다. 이건 평범한 타격이 아니다. 여자애의 주먹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강한 공격력이다. 이건 정말 뼛속까지 아프다. 너무 아파 제대로 말이 안 나오고 마른 기침이 나오고 있을 정도니. 희세는 작게 뭐라고 속삭이고 앞으로 간다. 나는 거의 쓰러질 지경이 돼서 더듬더듬 말한다.


“그, 그러니까 오해라니까…”

“여자애 마음 가지고 장난친 새끼가 말이 많아! 가만히 그냥 고통을 느껴!”

“으아… 그건 너무 심하잖아…”


희세는 앙칼지게 쏘아 붙이고 나를 강당 뒤 공터에 내버려두고 그냥 쌀쌀맞게 걸어간다. 으아아, 너무 잔인하잖아! 방금 전 수줍은 소녀 같은 희세는 어디 갔어! 엄청 귀여웠는데…!


“…도와줘서, 고마워.”

“어?”

“…됐어, 두 번은 안 말해!”


희세는 뒤돌아서 나에게 꽤나 큰 소리로 말한다. 못 들은 건 아니고, 저렇게 살갑게 말하는 건 처음 들어봐서 되물은 거다. 방긋 웃으면서, ‘고맙다’고 하니까 그렇게 예쁠 수가 없는 희세다. 순간적으로 반짝반짝 거리면서 꽃가루 같은 효과가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희세는 쏘아 붙이듯 말하곤 정말 나를 두고 뛰어간다. 뛰어가며 펄럭이는 희세의 치마. 치마가 짧아 언뜻언뜻 팬티가 보일 듯 말 듯 해 더욱 보는 이의 애간장을 태운다. …이런 고통이 있는 와중에도 난 기어이! 하하, 그래도 저렇게 다정하게 말하는 희세도 참 좋네. 처음으로, 나한테 정답게 얘기해준 것 같아. 음─ 청춘이구나! 하하하! 희세하고도 친하게 지내면 좋겠네. 고통에 찬 몸을 추스르고 나도 교실로 향한다. 햇살이 찬란한 게 기분까지 좋다.


작가의말

따돌림은 이제 싫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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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07화 - 3 +11 14.01.22 3,084 63 21쪽
26 07화 - 2 +4 14.01.21 3,104 62 21쪽
25 07화. 다시 시작된 그것 - 1 +9 14.01.21 3,517 61 20쪽
24 06화 - 4 +10 14.01.20 3,666 97 20쪽
23 06화 - 3 +13 14.01.20 3,796 63 20쪽
22 06화 - 2 +11 14.01.19 4,079 65 20쪽
21 06화. 자연스럽게! - 1 +7 14.01.19 4,313 72 18쪽
20 05화 - 4 +17 14.01.18 4,516 139 19쪽
19 05화 - 3 +24 14.01.18 3,922 7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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