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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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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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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20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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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글자
20쪽

06화 - 4

DUMMY

“좀 복잡하지만, 특별 규율이 적용될 거야. 내일부터.”

“옛?”


한동안 정적이 유지되는 가운데, 선생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방을 가른다. 책을 읽고 있던 나는 예고도 없는 선생님의 말에 높은 톤으로 대답했다. 선생님은 홱 하고 의자를 내 쪽으로 돌리며 나를 쳐다본다.


“첫 번째. 내 허락 없이는, 내가 따라가지 않는 한은 2층 이상으로 절대 올라가지 못한다.”

“……네.”


무슨 말씀 했는지도 제대로 못 들었는데 선생님은 그냥 진행해 버린다. 아마 특별규율 어쩌고 알려준다는 얘기겠지. 첫 번째 규율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그럴듯하고 그럴만하다고 여겨졌기에. 선생님은 손가락을 두 개 펴곤 이어 말한다.


“두 번째, 샤워장 이용은 반드시 나를 데리고 가서, 내가 감시하는 하에 할 것. 시간도 여자애들이 이용하는 시간대는 피할 것.”

“……전 그럼 언제 씻어야…”

“다 듣고 질문해.”

“넵.”


선생님의 말에 난 조금 어이가 없어서 퉁명스럽게 물었다. 애들이 이용하는 시간대를 피하면 난 대체 언제 샤워를 하라고. 아니, 그렇다고 여자애들이 씻는 시간대에 당당하게 들어가서 ‘내가 상남자 정웅도다! 나의 소우주를 보거라! 으하하하!’ 하는 변태도 아니고, 내가! 그 말이 아니라, 그럼 나는 언제 씻냐 그런 말이다. 10시부터 11시까지 점호 전에 주로 여자애들이 씻을테고, 11시에 점호 하고 바로 소등 후 자는데. 그렇다고 새벽에 일어나서 할 수는 없고. 애초에 선생님이 늘 밤에 잠들기 전에 방송으로 ‘밤에 돌아다니다 걸리면 죽는다’ 하고 방송하시는데. 하지만 그 궁금증은 선생님의 낮고 무서운 목소리에 바로 깨갱 들어가 버렸다. 선생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어찌됐든 여자 방에는 무조건 들어가지 않을 것.”

“……그야 당연하죠, 제가 왜 들어가겠어요.”

“지금 들어와 있는데? 여자방.”

“……이건 선생님이! 어휴.”

“후후후. 귀여워.”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다 말하고 내 퉁명스런 반응에 또 꼬투리를 잡아 나를 놀리신다. 늘 당하는 거지만, 대체 내가 어디가 어떻게 귀엽다는 거지. 절대 귀여운 상은 아닌데. 내가 나를 봐도, 키는 180에 가깝고 덩치도 좀 되는데다 얼굴은 결코 미소년이나 꽃미남 상이 아닌데. 섹드립에 당황하는 모습이 귀엽다는 건가. 애초에 여자애들이 귀엽다는 기준은 원래 남자애들 기준으론 좀 호환이 안 되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귀엽다는 건 난생 처음 들어본다. 그렇다고 기분 좋거나 기쁘거나 한 건 전혀 아니지만.


“뭐, 요약하자면 간단해. 위로 올라가는 건 샤워장·세면장 이용 외엔 절대 불가. 올라갈 때엔 반드시 날 동행하거나 내 허락을 맡을 것.”

“네, 그건 뭐 인정해요. 여자애들만 사는 거니까. 근데 저는 언제 씻어야…”

“특별히, 넌 점호 후나 새벽에나 언제든 씻어도 되. 특별혜택이랄까.”

“오오… 정말요?”


웬일인지 선생님이 나에게 특혜를 주신다. 나는 선생님의 배려에 뭔가 모르게 감동을 받을 것 같다. 그 정도로 나를 생각해주고 있었다니. 하지만 곧 선생님은 퉁명스럽게 대답하신다.


“그럼 어떡하겠어. 그렇게라도 애들 없을 때 씻어야지. 안 씻고 살 순 없잖아? 아, 너 지금 며칠 째 샤워 안 했지?”

“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죠!”

“어쨌든 안 한 게 확실하구나. 아─ 너랑 하면 안 되겠다. 더러운 건 싫어하는 편이라.”

“…!! 하, 하다뇨, 뭘요!!”

“면담. 어머, 무슨 생각 했어? 후후후…”

“아아아아악!!”


최악이다. 정말 최악이야. 선생님은 은근한 말투로 날 놀리신다. 나는 소리치며 발악했지만 선생님은 아무 타격도 없이 오히려 그런 나를 즐거운 듯 쳐다보신다. 괜히 더 부끄러워 졌잖아. 이게 다 음란마귀가 씌인 내 불순한 마음 때문이야. 절간에 들어가야 하나. 교회를 다녀야 하나. 선생님은 후훗 웃으며 책상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책상에 어지러이 놓인 책들과 시험지들을 가지런히 정리하신다. 그러더니 나를 보고 말씀하신다.


“그럼 어디보자. 신고식, 해야겠지?”

“아… 진짜 하는 거에요?”

“그럼. 없는 말 지어내겠어, 내가.”


선생님은 싱긋 웃으며 말한다. 방금 전 웃음은 그리 악의가 들어가 있지 않은 것 같아 평범하게 예쁜 웃음이었다. 선생님은 그 미소인체로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 책장 위에 놓여 있는 마이크 가까이 가신다. 마이크 전원을 켜고 ‘아 아’ 하시곤 말씀하신다.


“아, 점호 한다! 다들 제자리에 위치. 떠들지 말고 조용히 있어. 오늘은 이 기숙사 유일한 남학생, 꼬꼬마… 아니, 정웅도 씨 신고식 있을 거니까. 다들 기대하고 앉아 있도록.”

‘툭.’

“무, 무슨 소리에요!! 아아아아악!!”


선생님의 말에 나는 잔뜩 부끄러워져 얼굴이 화악 달아오르는 걸 느끼곤 외쳤다. 괜히 위층에서 여자애들이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선생님은 능청스런 표정으로 ‘왜, 신고식 한댔잖아.’ 하고 말씀하신다. 나는 더욱 부끄러워 ‘그렇다고 그렇게 광고할 건 아니잖아요!!’ 하면서 발악을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건 어쩔 수 없다. 선생님 말마따나 안할 순 없는 노릇이고, 하기 싫다고 생떼를 부리기엔 이 기숙사에서 왕은 선생님인지라. 독재자! 폭군! 으아악! 하지만 난 운명에 순응하기로 했다. 악법도 법이다, 뭐 그런 말도 있잖아.

그나마 순순히 따르기로 한 이유는 신고식 방식 때문. 내가 아까 상상했던 군대식 신고 방식은 아니고, 그냥 선생님이 점호 하러 방 돌아다니는 거 쫄쫄 쫓아다니면서 방마다 모든 여자애들에게 자기소개를 하라는 것이다. 말이 좋아 신고식이지, 그냥 여자애들한테 인사하라는 말.

그건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여자애들의 삶의 터전인 기숙사이니 학교에서보다 더욱 나를 경계할 확률이 높다. 어색하게 지내는 것보단 선생님이 정식으로 나를 소개하고, 나도 어색하지만 인사를 하는 게 서로에게 훨씬 부담이 덜 될 것이다. 거기에 선생님이 적당히 나를 놀리면서 코믹하고 우스운 이미지를 심는다면 이미지 개선에도 훨씬 도움이 될 테고.


‘뚜벅뚜벅.’

‘꿀꺽.’

“후후, 기대 되? 침까지 삼킬 정도로?”

“아, 아니에요!! 그런 게!! 긴장돼서 그런 거에요!!”


선생님은 내가 침 꿀꺽 삼키는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놀리는 데 써먹으신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한 뒤 입을 꾹 다물었다. 드디어, 그 곳으로 간다. 여고, 여고 기숙사!!

기본적으로 우리 기숙사는 바닥이 대리석으로 돼 있다. 복도 역시 매끈매끈한 대리석에, 깔끔한 분위기다. 복도는 계단에서 왼쪽으로 조금, 오른쪽으로 길게 있고 왼쪽으로 조금 있는 부분은 다 방들이고 오른쪽은 시작하는 지점부터 화장실, 세면장, 샤워장이 이어져 있고 그 다음부터 방이다. 그러니까, 계단 바로 옆 오른쪽 부분이 편의시설이 밀집돼 있는 곳. 다행이군, 계단 바로 옆이라면 여자애들 눈치 볼 것 없이 바로바로 쓸 수 있으니. 복도에는 다닥다닥 옷을 말리기 위한 건조대들이 진을 치듯 널려 있다. 이것도 하나의 진풍경인데. 헛, 소, 속옷…! 안 돼! 보면 안 돼! 우앗! 검은 브라라니! 게다가 팬티랑 세트?! 고등학생이 저런 속옷 입어도 돼?! 요즘 애들은 빠르구나… 라니, 무슨 소리야!! 뭘 유심히 관찰하는 거야!! 기분 나빠, 여자애들이 보면 틀림없이 변태라고 할 거라고!!

왼쪽 방이 몇 개 없는 쪽부터 가시는 선생님. 뒤따라 쪼르르 걷는다. 여자애들이 힐끔힐끔 보는 게 느껴진다. 아아. 괜히 부끄러운데.


“아아. 아픈사람. 없고. 어디 이상한 사람? 없고. 뭐 말 하고 싶은 거?”

“…….”

“뭐, 없지. 그럼 간다.”

“잠깐만요!!”


선생님은 몹시 냉정하고 빠른 말투로, 정말 별로 관심 없는 것처럼 말한다. 거기다 애들이 대답도 안 했는데 쾌속선처럼 그냥 다 지나가버린다. 그리고는 다시 바람과 같이 옆방으로 이동하려 한다. 나는 어이가 없어 얼른 선생님을 붙잡았다.


“이게 점호 끝이에요?!”

“뭘 더 해.”

“아, 아니! 좀 더 섬세하게 물어본다거나! 정리 상태를 본다거나!”

“어머, 선생님한테 훈계질 하려고 하네. 아무리 얘네가 정리 못해도 너보단 잘 할 걸. 기본 여자애들이잖아.”

“그래도! 저희 누나는 엄청 더럽다고요! 좀 자세히 본다거나!”

“후훗, 여자애 방 보고 싶다고 말을 하면 될 것을.”

“아니에요!! 아, 진짜!!”


나는 선생님의 성의 없는 점호를 지적했고, 선생님은 공격 모드가 돼서 냉소적인 목소리로 잔뜩 나를 공격하신다. 나는 어떻게든 내 말을 변호하려 했지만 그새 선생님의 주제는 나를 놀리는 쪽으로 전환돼서, 그 말을 들은 여자애들이 깔깔깔 웃는다. 아, 창피하게!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려는 걸 억지로 누르고 선생님에게 말했다.


“애초에, 신고식인가 한댔잖아요! 그건 없어요?!”

“우후후, 기대하고 있었나보네, 역시.”

“아니 그게 아니라!! 한다고 했으면 해야죠!”

“우훗. 그건 남자답네. 좋아, 간단히 해봐.”

“읏…”


선생님은 나를 놀리시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기회를 주신다. 나는 머뭇거리며 방 중앙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시키니까 말문이 턱 막히는데.


방은 그리 크지 않은 구조다. 좌우로 2층 침대가 하나씩 있어서 4명이 자는 구조에,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정면에 큰 창문이 하나 있다. 벽면에는 책장과 옷장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여자애들의 생필품들로 가득하다. 여자애들은 자기 침대에 나란히 앉아서, 2층 침대에 있는 애들은 나보다 한참 높은 데에서 내려다보며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음, 1학년들밖에 없는 것 같군. 우리 반 애들은 아니어도 어디서 다들 마주치긴 한 애들이야. 헛기침을 조금 하고, 십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정웅도입니다. 그… 「변태 씨」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렇게까지 변태는 아닙니다! 그냥, 여자애가 좋은 건 사실이니까! 평범한 남자 고등학생 수준이니까, 그렇게 무서워하거나 피하거나 하지 말아주세요! 이래뵈도 섬세한 남자니까, 부탁드립니다!”

“푸하하하하하.”

“근데 변태는 맞지 않아? 소문 쫙 퍼졌는데.”

“성빈이 가슴 만졌다며.”

“아니 그건 깊은 사정이!”


여자애들은 내 자기 소개에 깔깔 까르르 웃으며 저들끼리 웃고 떠든다. 나는 멋쩍어서 얼른 「변태 씨」 사건에 대한 변명을 지껄였고, 왁자한 분위기는 선생님이 제재해서 겨우 멈췄다. 그래도 반응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괜찮은 것 같은데? 여자애들은 웃는 낯으로 나를 쳐다본다. 선생님도 그런 내가 우스운 지 쳐다보며 씨익 웃는다.


“나름대로 할 때는 하는 남자네?”

“…뭐, 그냥 자기소개 하는 건데요.”

“후후, 나는 또 벌벌 떨면서 한 마디 말도 못 하는 걸 상상했는데. 조금은 패기 있어?”

“…제 이름값이 있지, 그렇게는 못 하죠.”


3층으로 올라가며 선생님이 한 마디 하신다. 나 역시 멋지게 답변했다. 선생님은 그 말에 귀여워 죽겠다는 듯 내 볼을 살짝 꼬집는다. 정말, 큰 누나 같은 느낌이다. 친누나도 날 폭행하는 걸 즐겼는데. 어쩌면 나는 연상인 여자들한테 호구처럼 보이는 모양인가보다. 2,3학년 누나들 중 일부는 나에게 말장난을 걸어 난감하게 한다. 선생님의 농염한 섹드립 보다야 훨씬 수위도 정도도 약하지만 초면에 그렇게 장난을 걸면 참 당황스럽다. 나는 2층은 1학년, 3층은 2,3학년 이렇게 쓰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닌 가보다. 어떤 방은 2학년 방, 어떤 방은 3학년 방 이렇게 랜덤하게 있다. 다만 1학년 방이 월등히 많은 걸 보니 층별 구분까진 있는 것 같다. 사람은 들어오는데 1학년 층이 비면 그냥 넣어서 그런가보다. 아마 3층은 2,3학년 누나들이 훨씬 많겠지.


“일 생기면 도와줘! 1학년 애들이 너 엄청 쓸만한 머슴이라고 소문이 자자해!”

“제 이미지가 그런 거였어요?! 변태 노예?!!”

“하하하하하.”

“응, 정확히 맞아!”

“어째서!”

“자, 가자 가자. 꼬꼬마야.”


어떤 누나의 충격적인 고백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넙죽넙죽 여자애들이 시키는 힘 쓰는 일 다 했는데, 좋은 이미지 쌓으려고 한 일의 결과가 이런 거라니. 변태 노예라니!! 그 말에 누나들은 빵 터져서 까르르 웃는다. 선생님은 그런 여자애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지 저기압이 돼선 나를 끌고 나간다. 나는 별다른 저항은 하지 않고 방을 나왔다.


뭐, 그런 식으로 어느 정도는 순조롭게 신고식을 마친 것 같다. 방을 다 도니 11시 20분이 넘었다.


“너가 쓸데없는 말 하고 다녀서 30분 다 돼 가잖아. 5분이면 족한데.”

“확실히 그렇게 성의 없이 하면 다 돌아도 5분이면 족하겠네요.”

“…지금 비꼬는 거?”

“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경솔했습니다.”

“흥.”


점호를 마치고 기숙사 입구에서 선생님과 얘기하고 있다. 얼른 방에 가고 싶은데. 선생님은 비웃듯 웃음을 머금으시더니 방으로 들어가 열쇠를 가지고 오신다. 나는 먹을 걸 주는 주인 옆에서 기대하는 눈치로 쳐다보는 한 마리 강아지가 되어 선생님 옆에 섰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빤히 보더니 한 마디 하신다.


“뭐, 별 건 아니고. 다 주워 온 거니까.”

“…네?”

“방에. 아, 그래. 열쇠 여기.”

“네…? 열쇠 주시는 거에요?”

“그래, 신고식도 했겠다 이제 진짜 우리 기숙사 식구가 된 거니까. 어차피 네 방 열쇠니까, 네가 갖고 있는 게 맞겠지?”

“네…”


선생님은 앞에서 이상한 말을 하다 생각난 듯 열쇠를 내 손에 쥐어준다. ‘같은 기숙사 식구’ 라고 하니까 뭔가 마음이 짠하다. 그래, 나도 이제 정식으로 여기서 살게 된 거구나. 이제 가구 같은 것만 있으면 완벽할 것 같은데. 철컥 하고 문을 열었다.


“엇…!”


나는 깜짝 놀랐다. 방 안의 구조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침대. 침대에 내 원래 깔개 이불과 이불이 덮여 있다. 그 옆으로 4칸 짜리 중간 크기의 책장도 있고, 나무로 된 옷장도 들어섰다. 침대 옆으론 작은 책상과 의자도 하나 있다. 여러 가구들 덕분에 방 자체는 조금 좁아진 느낌이지만 대신 얼추 예전 내 방이나 다를 바가 없게 됐다. 거의 작은 개인의 자취방처럼 된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선생님을 봤다.


“저, 저거…”

“오다 주워 왔다고 했잖아. 쓰레기장에 놓여 있어서, 주워 온 거야. 차에 실어서.”

“…….”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한다. 특유의 냉랭한 표정과 태도는 그대로다. 하지만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저걸, 어디서 저렇게 쓸만한 걸 주워왔을까. 그것도, 일개 학생인 나를 위해서. 성빈이가 괜히 선생님이 나를 이뻐한다고 말한 게 아니구나. 이 정도 관심이면 아무리 말장난으로 날 괴롭게 하고 부끄럽게 해도, 신경 써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잖아! 너무 고맙고 미안하잖아!

생각해 봐, 아무리 차로 가져왔다 치더라도 저 침대랑 장 같은 걸 여자 혼자서 어떻게 들어다 차에 옮겼겠어. 거기다, 가지고 와서 또 날랐을 거 아니야. 나한테 말 안 해주려고 일부러 문도 잠궈 놓으시고. 어째 귀여운 면도 있으신 것 같다. 내가 감명받은 표정으로 말없이 선생님을 쳐다보자 선생님은 약간 볼을 붉히며 말합니다.


“왜, 감동 받았어 꼬꼬마?”

“아, 네. 정말 고마워요. 꼭 큰 선물 받은 것 같네요.”

“세상에 너처럼 기숙사에서 자취방처럼 개인 방 쓰는 애는 없을거다. 그것도 여고 기숙사로.”

“헤헤, 그렇네요. 아, 잠깐만요.”


나는 얘기하다 무언가 생각이 나 얼른 선생님 방으로 들어가 구석에 놓여진 가방을 들고 왔다. 그리고 가방에서 무언가 꺼내 선생님께 건냈다.


“이러니까 꼭 저것들 예상하고 사온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여기요.”

“응? 뭐야.”


나는 선생님께 드리기가 겸연쩍어 말을 돌리며 물건을 드렸다. 선생님은 의외라는 눈빛으로 내가 주는 걸 받는다. 선생님께 드린 건 아까 점심 때 서점에서 산 책. 분홍빛 깔끔한 포장지로 선물 포장까지 했다. 할 말도 없이 어색해진 나는 살짝 부끄럽기까지 해서 한 마디 했다.


“지, 지금 까 보셔도 되요.”

“어, 그래.”


선생님은 어째 멍한 표정이다. 저렇게 맹한 상태의 선생님, 처음 보는데. 내 말에 선생님은 말 잘 듣는 어린애처럼 곧장 포장을 뜯어 보신다. 두꺼운 장편소설. 그것도 2권


“서, 선생님 보고 계신 거 봤거든요. 그래서 사다 드렸는데. 이, 있으세요? 2권?”

“……아니, 마침 다 읽었는데. 잘 됐네.”


선생님은 멍하니 책을 보다 푸근한 미소를 짓는다. 오오, 저런 표정 짓는 선생님은 처음 봐! 늘 얼음같이 차가운 표정이나, 나를 놀릴 때의 썩소나, 혹은 근엄한 표정 등 대게 무겁고 위압적인 표정만 지으시는 선생님인데 저렇게 평범하게 여자애가 기뻐하는 것처럼 웃으니까 훨씬 예쁘고 부드러워 보인다. 나이까지 한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착시를 일으킬 정도다. 정말 기뻐하는 표정이다. 그러더니 나를 힐끔 보신다.


“정말 고마워♡ 진짜루.”

“우와아아앗, 자, 잠깐만요!”


선생님은 선생님답지 않게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 나를 꼬옥 끌어 안으신다. 나는 깜짝 놀라 팔을 허공에 바둥바둥 거리며 말했다. 게다가 귓전에 말하는 선생님 목소리는 지나치게 여성적이어서, 꼭 선생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뒤의 ♡도 평소의 요염한 모양새가 아니라 리유처럼 애교 섞인 그런 것이다. 깜짝 놀라 등골이 오싹해진다. 무엇보다 놀란 건, 와락 껴안아서 내 가슴팍과 명치 쪽에 느껴지는 절대적인 물컹거림. 선생님은 키가 큰 편이지만, 그래도 내가 더 크기에 그 정도 부분에 선생님 가슴이 숨이 막힐 정도로 밀착이 된다. 으아아…!


“선물… 거의 몇 년 만에 받아 보는 것 같아서. 게다가 남자한테는… 정말 고마워. 잘 읽을게.”

“네… 그렇게까지 좋아해주시니까 저도 좋네요. 아뇨, 저도 이만큼 받았는걸요, 침대에, 가구에.”

“그건 주워온 건데 뭘. 아. 어쨌든 정말 고마워. 조금… 괜찮구나, 너.”

“에… 헤헤, 제가 좀 그렇죠.”


선생님은 정말 고마운 표정으로, 원원히 부드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한다. 그런 표정은 수줍어하는 소녀의 그것과 다를 게 없어 선생님이 어째 굉장히 귀여워 보인다. 아아, 이게 무슨 말이야!? 말이야 망아지야 뭐여! 선생님은 나보다 12살이 많다고! 이 무슨… 플래그를 세우고 있어!! 선생님은 선생님! 그냥, 남자가 고프시니까! 선생님한테 난 남자가 아니라 애기니까! 아이, 모르겠다. 어쨌든 선생님은 굉장히 다정한 상태가 돼서 ‘그럼, 잘 자. 책 잘 읽을게!’ 하곤 방으로 들어가신다. 나도 괜히 훈훈한 마음과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이 가시질 않아 잠시 문이 닫힌 사감실을 보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명치 쪽에 느껴졌던 가슴의 촉감이 잊혀지질 않는다. 아, 이래서 껴안는구나. ……겁내 변태 같아!!!


침대에 누워서, 잠이 든다. 주워온 것 치곤 엄청 좋은데? 매트리스도 주워 오신건가? 후후… 이제 좀, 살 맛 나네. 정식으로 기숙사도 들어왔고. 선생님하곤 더할 나위 없이 친해졌고. 어색했던 리유와 성빈이의 사이도 해결했고. 어느 정도 기반이 닦인 것 같다. 이제 날개를 펼 차례인가? 후후후. 성빈여고여, 기다리라! 사나이 정웅도, 이제 날개를 펼칠 때가 도래했으니!

…는 개뿔, 난 그냥 짐이나 나르는 변태 노예일 뿐이지. 흑.


작가의말

나이 차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남자가 노안이고 여자가 초동안이면 됩니다.

하지만 둘 다 아니잖아? 아마 안 될거야...
되는데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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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06화. 자연스럽게! - 1 +7 14.01.19 4,313 72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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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05화 - 2 +24 14.01.17 3,474 100 17쪽
17 05화. 크아아아 흑화한다 +12 14.01.17 4,655 124 21쪽
16 04화 - 4 +10 14.01.16 3,771 80 19쪽
15 04화 - 3 +18 14.01.16 3,287 79 18쪽
14 04화 - 2 +16 14.01.15 3,312 73 25쪽
13 04화. 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11 14.01.15 3,736 92 20쪽
12 03화 - 4 +9 14.01.14 3,538 85 20쪽
11 03화 - 3 +7 14.01.14 4,217 127 18쪽
10 03화 - 2 +7 14.01.13 3,881 9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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