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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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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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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20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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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글자
20쪽

06화 - 3

DUMMY

“후우…….”


야자가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나는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게 두렵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짐승의 느낌이 이런 것일까. 아니, 뭐 죽으러 가는 건 아니니까 비슷하진 않겠지만… 그 정도로 싫다. 「신고식」이라니.


발단은 오늘 아침. 기숙사에 들어온 지도 며칠이 지났지만 나는 그럭저럭 평화로우면서 불편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당연하게 1층 위로는 출입 금지, 그에 따라 화장실은 물론이요 세면장과 샤워실도 이용하지 못 하고 며칠 째 씻지도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물론! 머리하고 세수 정도는 학교에 등교해서 어떻게든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샤워를 못하는 게 큰 걸림돌이다. 어째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도 같고. 학기 초에는 찜질방에서 살아서 내 인생 어떤 때보다도 몸이 깨끗했는데, 지금은 며칠을 샤워를 못 해 꽤나 더럽다. 몸이 가려울 정도니까. 거기다 더 문제인 건, 빨래도 못 한다는 것. 세탁기는 세면장 입구 쪽에 4대가 있고 공용으로 쓰는 건데, 나는 애초에 올라갈 수가 없으니 세탁의 권한이 전혀 없다 할 수 있다.

근데 그걸 야속하다거나 불합리하다고 뭐라 할 수가 없는 게 여기, 원래대로면 여자 기숙사다. 외부 인사들이 보면 틀림없이 한 마디 나올 법한 상황이다, 지금 이 상황은. 아무리 격리해서 산다고 해도 어른들이 볼 때엔 뭔가 굉장히 불합리하고 불순해 보이겠지. 이 음탕한 어른들! 무슨 상상을 하는 건데?! 내가 설마 2층, 3층 올라가서 여자애들이랑 주지육림을 펼칠 것 같아?! 나도 그러고 싶어! 그러기엔 정력이 모자ㄹ… 가 아니라!! 높으신 분들, 당신들의 그 역겨운 상상력 덕분에 우리나라 성인 컨텐츠가 죽어가고 있다구요! 「우리가 만든 것 우리가 쓰자」인데 우리가 만든 게 없어! 내 외장하드에도 전부 서양영미의 것이나 왜나라의 것밖에 없다고! 아니아니 이게 무슨 소리래. 어찌됐든! 좀 그렇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고 올라가서 씻거나 할 순 없잖아. 서로 민망한 일일 텐데. 애초에 남녀가 한 울타리 안에서 같이 살면서 같은 샤워 시설, 같은 화장실 쓰는 게 보통 일이겠어. 게다가 우리나라 특유의 그릇된 성 평등 의식으로 ‘남자애’ 인 나는 그야말로 ‘남자새끼’ 니까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겠지만 (나도 정신체입니다, 정신체!) ‘민감한’ ‘여고생님’들에게야 나의 존재는 그들의 ‘소녀적 감수성’에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기에, 감히 올라가서 편의 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 …내가 무슨 흉기도 아니고. 맹수 같은 건가, 나.


이런 와중에, 선생님이 무언가 기준을 정해주면 좋겠는데. 사감 선생님은 요 며칠 그것에 대한 문제는 얘기를 하시지 않으신다. 등교할 때나 하교 했을 때에 가끔 한 마디씩 섹드립을 치거나 말장난을 걸거나, 아니면 그냥 힘 없는 목소리로 ‘꼬꼬마 왔어.’ 하고 책을 읽으시거나. 자기 주관이 뚜렷하신 분이라 기분 좋을 때랑 기분 안 좋을 때의 구분이 확실해서 그건 좋다. 아니, 그래도 남학생 혼자 전전긍긍 하고 있는데 사감된 도리로써 기준 정도는 정해줄 수도 있을텐데. 뭐, 새벽에는 올라가서 씻어도 된다! 라든지. 헉! 그럼 새벽에 올라가서! 앜!! 뭐래 병신이!! ……그런 거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한 방에 4명씩이나 있는데. 엌!! 5... 5P!! 뭐, 뭐라는 거야?!!


그런 상황의 나였다. 혼자 생각하는 게 주저리주저리 많았지만, 사실 복잡한 심경이다. 기숙사에 방이 생겼을 때엔 마냥 좋았지, 하지만 지금은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마냥 머물 곳이 생긴 것은 좋지만, 그 외의 모든 편의가 한도 끝도 없이 불편하니까. 단순하게 말해서, 주말에 기숙사에 있다가 오줌 마려우면 달려가서 강당 가서 싸야 한다. 강당 문이 잠겨 있으면? 그럼 학교까지 뛰어 가야지! 여고이고 여자애들 사는 곳인지라 노상방뇨 할 생각은 엄두도 못 낸다. 오줌 정도야 어떻게 되겠는데 혹 똥이라면… 어휴,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거기다 못 씻는 것도 엄청 크고! 그리고 또, 사소한 불만이라면 방 자체도… 좀 그렇다.

지금 내 방에 있는 거라곤 이불 한 채와 까는 이불 하나. 그게 끝이다! 책상도 침대도 아무것도 없다! 그냥 휑하니 방만 있는 거다. 기숙사 안에서 공부할 일은 없지만 하다 못해 책장 같은 거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그런 건 역시 없다. 이건 엄마 탓도 크다. 엄마가 집에서 뭘 보내주든지 해야 하는데 건망증이 있는 엄마는 말을 해도 잘 까먹는데다 별로 신경을 안 쓴다. 아들이 나간 걸 기억은 하고 계실는지. 사복도 없어서 늘 기숙사에선 체육복을 입고 있다. …뭐, 사복이 있다 해도 체육복만 입을 것 같지만. 여자애들도 그 핑크색 학교 체육복 입은 애들이 반 넘더라고, 휴일에 보니까.


“오늘, 신고식 할 거야.”

“……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나는 꾀죄죄한 꼴로 교복만 입고 가방만 챙기고 학교로 가고 있다. 기숙사에 살게 된 뒤론 일상이 이렇다.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일어나자마자 학교부터 가서 씻는, 그런 일상. 선생님에게 듣기로는 분명 아침 점호라는 것도 있다는데, 워낙 내가 불우하고 불편할 삶을 살고 있으니 점호 없이 바로 학교에 가는 것을 사감 선생님이 묵인해 주시는 것 같다. 과연, 성빈이가 말한 대로 어느 정도 나에게 편의를 주시는 것 같긴 하다. 편의고 자시고 이런 꾀죄죄한 꼴로 여자애들 앞에 어떻게 서! 저번에 성빈이한테 이 모습 보인 것도 얼마나 창피했는데!! 그래서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가는데 입구에 딱, 사감 선생님이 방에서 나오시며 말씀하신다. 절로 의문이 드는 나. 「신고식」 이라니?


『이병 정! 웅! 도! 는!! 2013년 3월 13일부로 성빈고등학교 기숙사 1층 창고방으로 전입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사감선생님께 대하여, 경례!! 충!! 성!!』


뭐 이런 거─? 일리가 없잖아! 여기 무슨 미국에 있다는 군대식으로 돌아간다는 사립 고등학교 같은 거야?!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평범한 대한민국 여자 고등학교가! 게다가, 그런 데면 나 등교 거부할 거야! 안 그래도 한 3,4년 뒤에 가게 될 텐데! 군대! 너무 어이가 없어 벙찐 표정으로 선생님을 쳐다보자 선생님은 씨익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바깥으로 나가더니 계단 쪽 난간에 엉덩이를 기대고 앉아 멍하니 선생님을 바라보는 나를 보고 말한다.


“지금까지 꽤나 봐 줬잖아? 아침 점호도 안 나오고, 저녁 점호도 대충 보고.”

“아, 아뇨! 시, 신고식이면 대체 무슨 짓을…”

“어머, 얘도. ‘짓’ 이라니, 누가 보면 내가 너 잡아 먹는 줄 알겠다야.”

“…그리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후후… 먹히고 싶은 거구나, 실은?”

“아니에요!! 그런 말 좀 그만 해요!!”


선생님은 배시시 웃으며 짓궂은 말로 나를 또 놀린다. 늘 휘둘리고 늘 당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설령 패턴을 예상한다 해도 나로서는 어떻게 대응할 방법이 없는걸. 선생님은 마찬가지로 입을 가리고 안경을 살짝 올리며 짙은 웃음을 띠며 말씀한다.


“그냥, 그렇다고. 이따 저녁에 할 예정이니까, 기대 하고 있어. 후훗♡”

“뒤에 하트는 빼면 안 될까요?”

“어멋♡ 이러는 편이 네가 더 좋아하지 않아♡ 야·하·니·까♡”

“그만 하세요 제발! 서, 선생님은 선생님이고, 전 학생이잖아요!”

“어머, 그럼 학생 아니면 뭐 하려고 했어♡”

“아니에요!! 으아아아! 더 얘기 안 할래요!!”


어휴, 말만 하면 결론이 다 이 방향으로 흘러가니. 이러다 내가 정말 정색하고 ‘그럼 하게(?) 해 주실 거에요!’ 하면 정말 불륜이라도 나는 걸까. 아니, 선생님이 딱히 유부녀는 아니고! 나이도 30 다 돼 가지만 충분히 젊고 예쁘시고! 무엇보다 다른 여고생들에겐 없는 성인 여성의 농염한 매력이 있긴 하지만! …뭐라는 거야, 지금!! 넌 너무 많은 걸 알았어. 이제 그만 편해질 때가 된 것 같군. 미안하네. 탕! 이런거야?! 고개를 내저으며 선생님을 무시하고 당당하게 학교로 걸어간다. 선생님 특유의 ‘후후’ 하는 웃음소리가 뒤로 들린다.


─이랬던 오늘 아침.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저녁이다. 선생님은 아무 것도 말해주시지 않았기에, 나는 대체 어떻게 신고식을 할지 감도 안 잡힌다. 날 놀려먹는 걸 좋아하는 선생님이니 굉장히 기상천외한 방법을 생각하셨을지도. 아! 그러고 보니, 성빈이도 기숙사 살잖아?! 그럼, 내 창피한 신고식인지 뭔지를 성빈이도 본다는 거야! 으아아아! 창피해! 더 창피해! 상상하는 것만으로 얼굴이 빨개질 것 같아!!


“왜 그래?”

“아, 아니. 신고식 하기 쪽팔려서.”

“헤헤. 창피하긴 하겠다.”


그렇게 창피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 있는 게 성빈이다. 같은 반에, 같은 기숙사로 향하니 당연히 같이 가고 있다. 성빈이는 굳이 나 말고 반에 다른 기숙사 같이 사는 애들도 있지만, 내가 불쌍하다고 같이 가 준다. 여자애들의 나에 대한 경계심은 어느 정도 해소됐지만 그렇다고 아주 친해진 건 아니니까. 그나마 같이 있을 만한 건 역시 성빈이 뿐이다. 이러니까 꼭 같이 하교하는 것 같네. 일단 하교는 맞지만. 아니, 학교 안에 있잖아! 하교가 아니야!

기숙사 앞에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사감 선생님이 난간에 기대고 몽둥이를 들고서 지그시 애들을 쳐다보고 계신다. 밤이라 어두워 살짝 보이지 않는 선생님의 얼굴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다. 입구 쪽 불 좀 켜지. 나와 성빈이가 가까이 다가오자 선생님은 피식 웃는다. 재미있어 하는 얼굴.


“왔어 Boy♂”

“Boy는 뭐에요, 그게.”

“후후… 성빈여고 기숙사에 온 걸 환영해.”

“온 지 며칠은 됐거든요.”

“오늘 신고식인 거 알지?”

“네네, 알아요… 휴우.”


선생님은 날 보자마자 또 야한 농담을 하려 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최대한 선생님의 말에 단답형으로 대답하고 황급히 방으로 들어갔다. 점호는 11시까지니까 아직 1시간 조금 안 되는 시간이 남았다. 들어가서 아까 사 온 책이랑 저녁 시간에 빌려온 만화책이나 봐야지.


‘철컥.’

“어?”

‘철컥철컥.’

“……?”


문이 잠겨있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멀뚱히 문을 쳐다본다.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애초에 난 이 방 열쇠가 없다. 안에서 누가 잠궜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범인은 한 명.


“선생님.”

“으응~? 왜에?”

“문 왜 잠그셨어요. 열어주세요.”

“후훗…”


선생님은 내 부름에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난간에서 일어나서 이 쪽으로 걸어오신다. …어째 걸어오는 폼도 좀 요염하다. 골반을 튕기면서 걷는다고 해야 하나. 남고에 계셨으면 정말 인기 폭발이었을 텐데. 성인 여성의 요염한 걸음을 보이며 나에게 다가오는 선생님. 나는 그런 선생님을 보고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평정심, 평정심.


“문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잠궜어. 이따 점호 끝나고 열어줄게. 그 때까진 선생님 방에 있어.”

“에엣?!”


선생님은 의외로 차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차분한 목소리라기보단, 특유의 콧소리나 요염한 목소리가 아닌 일반적인 무미건조한 말투란 뜻이다. 얼마나 나를 보면 늘 야한 말투로 말씀하셨는지, 이젠 평범한 말투가 어색하게 들릴 정도다. 그보다 나는 선생님의 말에 깜짝 놀라 소리쳤다. 꽤나 큰 소리를 질러 지나가던 여자애들이 힐끔 쳐다볼 정도.

그게, 아무리 그래도 선생님 방이라니! 감히 어떻게 들어갈 수가 있을 리가…! 아니, 그러니까 그건 성인 여성에 대한 묘한 두려움 같은… 두려움이라니! 사나이 정웅도가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여자 따위! 그, 그치만…

그러니까 굳이 핑계를 대자면, 이건 친누나의 영향이 크다. 나랑 6살이나 차이가 나는 누님.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자기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기에, 아니 어릴 때엔 같이 놀았는데 누나가 사춘기인 중학교 정도부턴 절대 들어오지 못하게 했기에, 난 ‘아 여자애 방은 들어가면 안 되는 거구나’ 하는 개념이 어릴 때부터 잡혀 있었다. 게다가 선생님은 우리 친누나보다도 더욱 나이가 많고, 훨씬 야하고(?), 무엇보다 좀… 그렇다. 생판 남인데. 어쨌든 좀 그래! 선생님은 방긋 웃으며 말씀하신다.


“왜, 부끄러워서~? 후후, 역시 우리 꼬꼬마는 이런 게 귀엽다니까♡”

“아이, 놔요! 부끄럽긴 뭐가 부끄러워요! 그냥, 이유도 없이 그러니까 그래요!!”


선생님은 마치 귀여운 남동생을 대하듯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아이, 이 선생님이 진짜! 여자애들도 잔뜩 지나가면서 보고 있는데. 안 그래도 옆에서 멍하니 나와 선생님이 얘기하는 걸 보던 성빈이도 웃고 있다. 으아, 진짜 창피해! 이럴 때엔 남자답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나는 신경질 내듯 말하고 선생님의 손을 뿌리치고 당당하게 방문을 열었다. 뒤에서 여자애들이 작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면서 여자애들의 ‘뭐에요 선생님, 남자애를 방에!’ ‘선생님 쟤랑 사귀어요?’ 하는 개소리가 들린다. 선생님은 ‘글세… 후훗♡’ 하는 애매한 반응을 보여서 내 부아를 더욱 건드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들리지 않아! 난 상남자니까, 한 번 마음먹은 건 그대로 시행할 거야! 당당하게 방으로 들어갔다.


선생님 방은 의외로 평범하다. 여자애 방이라면 무작정 핑크색으로 밝은 분위기일 거라 막연하게 상상하던 평범한 남고생인 나로서는 그저 그런 방의 인테리어에 조금 충격이긴 하다. 뭐,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분이고, 설령 어리다고 하셔도 그렇게 꾸밀 것 같이 안 생기신 분위기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납득은 간다. 흐흠. 흠… 내, 냄새는… 으악! 이거 엄청 변태 같잖아!! 여자 방 들어오자마자 냄새를 맡다니! 무슨 페로몬 냄새라도 바란 거냐!! 그, 그치만! 일단 들어온 거니까, 누릴 건(?) 누려야지. 확실히 남자애들 사는 방의 퀴퀴하고 좋지 못한 먼지 같은 냄새나 땀 냄새 같은 그런 건 전혀 없다. 오히려 묘하게 향긋하고, 좀 달달한 것 같으면서도 상쾌한 냄새가 난다. 우와, 저질. 내 자신에게 경멸감을 느끼며, 신발을 벗고 방으로 더욱 들어갔다. 침대 하나에 책장 하나, 가구 한 채에 책상 하나. 그걸로 끝이다. 참 별 것 없네. 책장에는 이것저것 많은 책들이 있다. 선생님 전공분야인 영어 책부터 해서, 오, 영어 원서도 있고. 그냥 소설책부터 교양서적 같은 것까지. 많은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 안경을 쓰고 날카로운 이미지의 선생님, 책을 읽는다면 딱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다.

책상에는 스탠드가 켜 있고, 시험지 더미가 잔뜩 놓여 있다. 아, 저게 그 유명한 지옥의 쪽지시험인가. 일주일에 한 번씩 테스트 해서 미달자는 손바닥이나 허벅지를 때린다는, 2학년 누나들 사이에선 지옥 같은 일로 소문이 파다하다는 쪽지시험. 그리고 그 책상 오른편에 켜 있는 노트북에는 한글이 켜 있고 시험 문제로 보이는 파일이 띄워져 있다. 오, 역시. 뭔가 어수룩해 보이고 솔직히 수업도 잘 못 하시고 덜렁대시는 우리 담임선생님과는 정반대로 든든하고 엄청 능력 있어 보이는 이미지 그대로, 엄청 능력자처럼 보이는 선생님의 방이다. 개인적인 쉼터인 방에서조차 이렇게 일거리를 벌려 놓고 계시구나. 고생이 많으시네. 그런 생각을 하며, 적당한 구석에 가방을 놓고 그 옆에 주저앉았다. 만화책은 아무리 그래도 선생님 앞이니 조금 신경 쓰이니 소설책을 꺼냈다. 그나마도 라이트노벨이지만. 표지 역시 오해를 살 수 있기에 조심스럽게 벗겼다.


“뭐야, 구석에서 왜 그러고 있어?”

“아… 그냥요.”

“침대 같은 데 앉아. 남자애가 소심하게 왜 그러고 있어.”

“아, 네.”


선생님은 힐끔 방문에서 고개만 빼꼼 내미셔서 말씀하시더니 피식 웃으며 말합니다. 아마 구석자리에서 초라하게 책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이 웃기셔서 웃은 거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침대에 앉았다.


우훗, 여자애 침대… 라니! 여자애라니! 선생님 29라고! 스물 아홉!! 나랑 12살 차이!! 내가 4살 돼서 기어 다닐 때 선생님은 생리 터져서 생리대 사러 갔겠네! 와,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터무니없이 많은 차이구나. 선생님한테 그렇게 말하면 엄청 싫어하시겠지. 담임선생님의 악의 없는 놀림에도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시니.

선생님을 의식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남고생의 흔한 망상으로, 그냥 자꾸만 야릇한 상상이 드는 것이다. 본능이라구!! 그러니까, 「안경교사가_남자학생하고_개막장_선생엄청이쁨.avi」나 「영계남고생따먹는_새끈한_여교사의_죽이는_테크닉.mp4」 같은 걸 상상하는 건 아니다. 아니, 사실 상상했어!


─후후… 꼬꼬마, 긴장했나보네?

─서, 선생님, 이러는 거…

─왜, 무서워?

─아, 아뇨, 무서운 게 아니라… 조금, 긴장돼서…

─긴장할 거 없어… 후후♡ 기분 좋은 거 하는 건데 왜…?


라던가─! 으아아아아! 이 음란마귀야! 사탄아 물러가라! 무슨 야동도 아니고! 아예 처제하고 처형까지 셋이서 자매덮밥을 해 먹지 그래!! 으아아, 그건 정말 수위가 막장이잖아!! 아아아아~~ 머릿속이 혼돈의 카오스다. 그런 아찔한 생각에 몸을 침대에 파묻고 뒹굴뒹굴 거린다. 꼭 내 방에서 그러던 것처럼. 선생님이 본다면 엄청 창피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뭔지 모를 야릿한 이 느낌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또 은근하게 침대에 코를 박고 조금 냄새를 맡아 보는 나. 진짜 변태새끼 같잖아!! 「변태 씨」라고 불려도 솔직히 그리 틀리지 않은 것 같잖아!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정웅도! …냄새 좋다… 뭔가 포근해지는 것 같아. 허락된다면 여기서 그대로 잠들고 싶…


“거기서 잘래? 그럼 선생님이랑 같이♡”

“아뇨!!! 절대!!!!”

“후후훗.”


선생님은 방으로 들어오시며 선생님 침대에 누워 부비부비하는 나를 보고 살짝 놀란 표정으로 2초 정도 나랑 눈이 마주쳤다. 그러다 금세 샐쭉한 눈이 돼선 나를 놀리는 데 여념이 없다. 나 역시 벌떡 일어나서 침대에서 나왔고. 아, 이렇게 될 거 뻔히 알면서 왜 그랬을까.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잠깐 있어. 선생님 일 좀 끝낼게. 신경 쓰지 말고 있어.”

“네.”


선생님은 기분 좋게 웃는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곧장 책상에 앉으시며 말씀하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금 시선을 책으로 돌린다. 일부러 선생님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서다. 둘이서 서로의 일만 묵묵히 하니 뭔가 방 안 분위기는 기묘하게 정적이 흐른다. 힐끔 선생님을 쳐다봤다. 스탠드 등불이 역광이 되어 어두워 보이는 선생님의 뒷모습.


─서, 선생님!

─어멋… 뭐 하는 거야.

─저, 선생님이…!


랄까나!! 그럴 리가 없잖아!! 듬직하게 일하고 있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니 조금 멋져 보인다. 지금 드릴까. 아니, 아니다. 이따가, 조금 이따가 드리자.


작가의말

어이구... 깜빡 잠들었네요. 원래 3시 즈음에 올려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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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화 - 3 +13 14.01.20 3,797 63 20쪽
22 06화 - 2 +11 14.01.19 4,079 65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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