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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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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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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1.16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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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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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글자
18쪽

04화 - 3

DUMMY

리유와 함께 저녁을 먹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여자애들의 매서운 눈빛은 그대로지만 리유에게 한 번 털어 내고 난 다음이라 그런지 아까만큼 엄청 답답하거나 그런 건 없다. 뭐, 그렇다고 아예 훌훌 털어낸 건 아닌지라 애매한 갑갑함을 느끼며 야자를 임했다. 집중이 전혀 안 되는 것은 오늘 하루종일과 같다. 결국엔 시간만 보내며 야자를 끝냈다.

“내일 봐.”

“응.”

리유는 나에게 서글프게 인사한다. 아마 조금은 내가 걱정돼서 그런 반응인 것 같다. 아무렴, 아까 내가 껴안았던 걸 장난스럽게 넘겼던 리유지만 실은 왜 걱정이 안 되겠는가. 남자애가 여자애 앞에서 그렇게까지 괴로워하는 걸 티내면 어떤 여자애라도 신경 쓰이리라. 아, 난 정말 창피하고 쓸데없는 짓을 해버리고 만 거구나. 내 걱정을 리유에게까지 전가시켜버렸으니. 이런 민폐가 또 어디 있겠어. 리유는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보고 학교를 나섰다. 나는 잠시 그런 리유의 뒷모습을 보다 발걸음을 돌렸다. 기숙사로.

그렇다. 원래대로라면 오늘이 기숙사 정식 데뷔일(?)이다. 사실 일요일에는 나름대로 기대하고 있긴 했다. 일요일 날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선생님의 이불까지 한 채 받아서 정리하고 나갈 때, 선생님이 ‘내일이면 데뷔네. 한 번 신고식 좀 거하게 해볼까?’ 하고 말했기에. 기대 반, 걱정 반이었지. 적어도 일요일 저녁까지는. 오늘 학교에 와서부터 그런 건 어떻게 되든 상관없게 되었지만. 도리어 기숙사에 가기가 두렵다. 이 여자애들, 설마 방에까지 뭐 이상하게 해 놓은 건 아니겠지? 방이 잠겨있거나 그러지 않은데. 기숙사를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어어이. 꼬꼬마.”

“……네.”

사감 선생님은 몽둥이(!)를 들고 기숙사 계단 앞 난간에 기대어 앉아 있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을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시비라도 걸 듯 나를 부른다. 나는 진이 다 빠져 힘없이 대답했다. 어차피 이 거리에서 이 정도 목소리로 말하면 들리지 않을 텐데.

선생님은 그런 내가 아니꼬운 건지 아니면 그냥 넘어간 건지 모르겠지만 갑작스럽게 ‘빨리빨리 안 오냐!’ 하고 큰 소리를 지르신다. 어찌나 큰 지 목소리가 학교 전체로 쩌렁쩌렁 울리는 것 같다. 생긴 것과는 다른 엄청난 목소리 크기에 나는 깜짝 놀라 어깨를 들썩였다.

효과는 굉장해서, 천천히 자기들끼리 수다 떨던 여자애들이 종종걸음으로 빨리 오기 시작한다. ‘아오 저 지지배 또 히스테리네’ 하는 여자애들의 험담이 들리는 건 보너스다. 그래도 나는 천천히 걸었다. 물론 거의 기어오는 속도로 힘 빠져서 걸어오던 아까보단 조금 빠른 속도지만.

“뭐야, 미쳤어. 왜 이렇게 천천히 걸어오는데. 빨리 오라는 말 안 들려?”

“……죄송합니다. 하아.”

선생님은 몽둥이를 휘휘 흔들며 말한다. 어이어이, 여고에서 그런 몽둥이라니, 너무 어색하잖아. 폭력을 쓰는 건 그만하지. 라고 말해도 그건 마음의 외침이지 선생님에게 들리진 않지. 나는 어째 기숙사 앞에 도착하니 절인 배추처럼 풀이 팍 죽어서 고개도 푹 숙이고 의기소침해 있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힐끔 본다.

“정상은 아닌 것 같은데.”

“……아픈 건 아니에요, 그냥……”

“그냥, 처음으로 한 지붕 아래 여자애들이랑 같이 잘 생각에 두근두근 거려서?”

“……하아. 아니요.”

선생님은 놀라서 펄쩍 뛰는 내 반응을 기대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다. 그럴 기운도 없다. 나는 한숨을 쉬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몽둥이를 휘휘 휘두르며 그런 나를 쳐다본다. 나는 별다른 말이 없으면 들어가려고, 선생님에게 꾸벅 인사하고 기숙사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잠깐, 나 좀 볼까.”

“…네?”

“잠깐.”

선생님은 느긋하게 말합니다. 멈칫 하는 나. 선생님은 기대고 있던 난간에서 일어나 잠깐 나를 멈춰 세운 뒤 사감실로 들어간다. 곧 ‘쿵 쿵’ 하는 소리가 나더니, 우렁찬 선생님 목소리로 ‘오늘 점호는 선생님의 개인 사정으로 40분 늦게 시작한다! 다시 한 번! 오늘 점호는 선생님 개인 사정으로 40분 늦게 시작! 알아서 잘 정리하고 적당히 떠들고 있을 것!’ 하는 방송 소리가 들린다.

아, 방송 시설도 있구나. 근데 방송 내용이 저게 뭐야. 자기 개인 사정으로 점호를 40분 늦게 시작한다고, 당당하게 방송하다니. 게다가 뒤이어서 ‘적당히’ 떠들고 있는 건 또 뭐야. 역시, 기숙사에선 내가 왕이야 하던 선생님 말이 사실인건가. 생각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손짓하신다. 나는 힘없이 선생님을 따라 갔다.


기숙사에서 운동장으로 내려가는 곳은 아주 큰 계단으로 돼 있다. 계단이라고 해야 할까, 뭐라고 칭해야 할지를 모르겠는데. 계단이라면 4칸 정도밖에 안 된다. 운동회 같은 거 할 때, 다들 걸터앉는 그 큰 계단 있잖아. 선생님은 두 칸 정도 내려가서 앉으신 뒤 옆에 앉으라고 한다. 나는 묵묵히 선생님이 시키신 대로 선생님 옆에 앉았다. 기숙사는 환히 불이 밝아 주위는 환하지만 운동장 쪽은 어둡다. 아무렴, 10시인데 환하겠는가. 덕분에 선생님과 나는 어둠 속에 앉아 있게 됐다. 서로 얼굴이 안 보일 정도로 어두운 건 아니지만.

“여자애들, 네 욕 장난 아니던데.”

“……들으셨어요.”

“기숙사 들어가면서 한 마디씩 하는 거 들리잖아. 2,3학년은 모르겠는데 1학년 애들이 대부분 그러던데.”

“……대부분…… 하아…….”

자리에 앉자마자, 선생님은 넌지시 말씀하신다. 아아, 역시 선생님도 알고 계셨구나. 그보다, 그렇게까지 다 소문이 난 거야. 기숙사는 우리 반 여자애들만 있는 게 아닌데. ‘대부분’ 이라는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 그게 맞는 것 같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깊은 한숨을 쉬자 선생님은 잠시 말하지 않고 나를 쳐다본다.

“듣다보니까, 「변태」라고 엄청 얘기하던데. 벌써부터 저지른 거야?”

“……그런 농담이 지금…… 하아, 모르겠어요. 오늘 아침부터 갑자기.”

선생님의 농담 섞인 물음에 나는 착찹한 마음으로 말했다. 이건 꼭 상담하는 것 같네. 아니, 그게 맞는 것 같다. 여자애들이 하는 말 보고, 또 풀이 잔뜩 죽어서 오는 나를 보고 선생님이 상담을 해주시는 거겠지. 역시나, 안 챙겨주는 척 하면서 은근히 챙겨주는 선생님답다.

답답한 마음을 한 타래 한 타래 실타래 풀 듯 말했다. 선생님은 내 말을 듣다가 중간에 끊고서 말한다.

“그러니까 모종의 오해 때문에 네가 전교에 변태로 소문난 것 같다 그 얘기잖아. 그것 때문에 엄청 왕따 당하고 있고.”

“……네, 그게 맞네요. 그게 맞는데 괜히 돌려 말하고 있었어요.”

“남자애의 묘한 자존심 때문이지. 꼴에 남자애라고.”

“……네, 그렇네요. 네…….”

사감 선생님 특유의 냉소적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그게 맞지. 내가 잘못이야, 모두 다 내 잘못이지. 갑자기 슬퍼지는데. 밤하늘의 별이 오늘따라 서정적으로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네가 변태인 건 맞는데. 굳이 그걸 놀리고 싶을까?”

“……좀 위로해 주시면 안 돼요?! 지금 힘들어 죽겠는데!”

“후후후.”

선생님의 비꼼 및 놀림에 나는 듣다듣다 발끈 해서 말했다. 아니, 제자가 풀죽어서 힘들어 하고 있는데 이렇게 놀리고 싶을까! 지금은 장난칠 기분이 아니잖아! 선생님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후후 하고 농염하게 웃으며 나를 내려다본다. 그러더니 한 마디 하신다.

“내가 말했지, 세상 쉬운 일 하나 없다고. 이 정도로 힘들어? 정말 따돌림 안 당해 봤어?”

“……네.”

“후후, 여리구나. 약해. 진짜는 지금부터 시작인데.”

선생님은 약간 무서울 정도로 진지하게 말씀하신다. 그 기세에 나는 약간 위축돼서 작게 대답했다. 선생님은 나를 자애롭게 내려다보시며 이어 말한다.

“이대로 계속 가면 너, 진짜 찐따 된다. 아무것도 못하는 병신이 된다고. 사람이란 게 얼마나 알량한 존재인 줄 알아? 잘 한다 잘 한다, 그럼 정말 잘 하게 되는 존재가 사람이야. 근데 보통 사람은 긍정적인 말보다 부정적인 말에 더 영향을 잘 받거든. 그럼 못 한다 못 한다 하면? 거기에 자기 자신의 자괴감까지 더해져서 더욱 심하게 병신이 되는 거지.”

“…….”

선생님의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묵묵히 듣기만 했다. 뭐라 답변할 말이 없다. 그 말이 맞다는 걸 알고 있기에. 중학교 시절에도, 한 번 병신은 영원한 병신이었다. 그 애가 외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다던가, 아니면 성적이 엄청 올라 다른 애가 된다던가 하는 극적인 변화가 있지 않는 한은. 무슨 해병대도 아니고, 정말 한 번 병신은 영원한 병신이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그 기로에 서 있다.

“그래도 확실히. 심하긴 하네. 별다른 증거도 없이 이런 식으로 왕따를 하다니.”

“…….”

“꼬꼬마, 왕따 당해서 기분 안 좋아?”

“……휴우. 네. 맞아요.”

“후후, 솔직해서 좋네.”

선생님은 진지하게 말하다가도 아까 전 내가 한 ‘좀 위로해 주시면 안 돼요!’ 라는 말이 신경 쓰였는지 조금은 따듯한 말을 한다. 그 작은 위로에, 나는 다시금 울적한 마음이 생겨난다. 무엇을 부정하랴, 그냥 사실대로 밝히는 게 낫지. 그래, 나 왕따다. 그래서 보태준 것 있냐. 세상아, 내가 왕따인데, 뭐 도와준 거 있냐! 선생님은 내 대답에 살짝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해결해 나가야지. 이 정도도 해결 못하면 사회 나가서 아무것도 못 한단다─ 게다가 넌 군대도 가야할 거 아니야. 남자애니까.”

“……지금 굉장히 우울한데 꽤나 먼 미래의 고민까지 얹혀 주시진 마세요.”

“후후, 「굉장히 먼 미래」라. 나도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

선생님은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실까. 방금 전 그 말은 왠지 모르게 쓸쓸하게 들려서, 무심코 올려다본 선생님의 운동장을 보는 공허한 시선은 굉장히 서글프게 보인다. 시련 얘기나 왕따 얘기나, 선생님은 어떤 인생역정을 겪으셨기에 이런 일들을 보고 ‘이 정도에 굴복하면 안 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난 솔직히 20대에 있는 분들은 나랑 나이만 조금 차이나지 그렇게 어른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선생님을 보니 뭔가 훨씬 다르다. 깊이 있다고 해야 할까. 특히 저 눈빛은. 무언가 힘든 역정을 많이 겪어본 것 같은, 그런 느낌. 조금은 나보다 연륜이 많이 쌓인 것 같은, 그런 느낌. ……선생님은 20대가 아니라 30살이지만. 나보다 13살이나 많지만.

“─그리고, 나 30살 아니야. 29살이야.”

“……아, 네. 그건 왜 갑자기.”

“갑자기 생각나서. 정자 걔가 말한 건, 내가 빠른년생인 거 까먹고 말한 거니까. 스물 아홉이다, 나.”

“네, 네.”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 우와, 진짜 깜짝 놀랐다. 선생님, 진짜 생각 읽을 수 있는 거 아니야?! 우연이라고 하기엔 그 말 꺼내는 타이밍이 너무 정확하잖아. 어쨌든 갑작스런 나이 얘기로 무겁던 분위기가 조금은 나아졌다. 그렇구나, 스물아홉 살. 선생님은 특별히 스물아홉 살에 강조하며 말하신다. 아무래도 신경 쓰고 계셨구나, 서른이라는 그 말.

“가장 중요한 건 핵심을 보는 거야. 어떤 일이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선생님은 멀리 하늘을 보며 말한다. 무슨 현자가 하는 말일까, 그 말은. 어리석은 나로서는 잘 이해하기 힘들다. 다시금 질문하자 선생님은 시선을 내려 나를 보며 말한다.

“넌 지금 적진 한 복판에 있잖아. 적장을 잡으면, 나머지는 다 와해되겠지. 그 얘기야.”

“적장…….”

선생님의 나지막한 목소리는 내 마음 한 복판에 꽂히는 듯하다. 적장이라. 말은 쉽지, 그게. 지금 난 숲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외부에서 보면 잘 보이겠지만, 안에 있는 나로선 잘 파악이 되질 않는다. 확실한 해결책이지만 동시에 더욱 머릿속이 혼돈스러워졌다.

“잘 해쳐 나가봐. 예부터 위기는 기회라고 하잖아. 힘들면 선생님한테 상담 해도 되고.”

“네, 고맙습니다.”

선생님은 이만 얘기하시려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며 말한다. 나도 천천히 일어나 선생님에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굳이 상담해달라고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내 기분에 맞춰 이렇게 상담을 해 주시니 참 고맙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만 들어가자. 늦었다.’ 하시지만 사실은 나를 생각해주시고 계시잖아. 츤데레의 전형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기엔 나이가 너무 많으시지만. 움찔. 어째 선생님이 뒤돌아서 날 보는데 째려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 선생님 앞에서는 속으로 생각하는 것도 하지 말아야겠다, 괜히 찔려.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아무 가구도 없이 텅 빈 방은 정말 아무것도 없이 공허하다. 하다못해 옷을 넣는 옷장이나 책상 따위도 없어 작을 것 같은 방은 생각보다 넓어 보인다. 그나마 바닥과 벽지는 도배를 새로 해서 그렇게 사람이 못 살 것 같아 보이진 않지만. 까는 이불과 덮는 이불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베게조차 없는 열약한 환경. 하아, 한숨 쉬고 가방을 내려놓고 털썩 주저앉았다. 피곤하다.

기숙사라서 점호 같은 걸 한다는데, 내가 생각하는 군대에서의 점호 같은 건 아니고, 그냥 적절한 시간 되면 다들 방에 들어가서 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다고 한다. 그러면 선생님이 한 방 한 방 손수 돌아다니며 아픈 애나 특별히 이상이 있나 확인하고 다 끝나면 방송으로 자라고 하는, 그런 의식(?)이라고 한다.

마침 방송으로 ‘아, 아! 시끄러! 지금부터 점호 하니까, 조용히 하고 앉아 있어.’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계단 쪽으로 터벅터벅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내 방은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앞이기에 소리가 다 들린다. 그리고 사감 선생님 방과는 몹시도 가깝고.

음… 나는 점호 열외인가? 후훗, 소소하게 이런 점은 좋구먼. 입을 옷이 없어 교복을 벗고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다. 집이었다면 그냥 팬티하고 반팔 티만 입고 있었을 텐데. 집이 아니니까, 혹시라도 또 무슨 소리 들을 수도 있으니까. 불을 끄고 바닥에 누웠다.


오늘은 참, 충격적인 하루였다. 생에 처음 당해본 왕따. 단 하루뿐이지만 그건 너무도 싫어서, 정말 자살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TV에서 나오는 학생 자살 같은 거 보면 늘, 같은 학생인데도 ‘저런 애들은 근성이 없어서 자살하는 거야, 병신 같은 놈들’ 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이런 꼴이 되니 충분히 공감한다. 단 하루만으로 이 지경으로 너덜너덜해졌는데 이걸 한 달이고 두 달이고, 한 학기고 1년이고 당한다면. 그런 걸 당하면서도 멀쩡히 학교를 다니는 사람이 정말 강철 멘탈인 거지. 그 소외감, 그 위축되는 느낌은 정말……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이다. 하지만 내일이면 또, 후유…….

이렇게까지 학교에 가기 싫었던 적이 있었나. 뭐, 중학교 때나 초등학교 때라고 학교를 가고 싶어서 간 건 아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애들하고 뭐 하고 놀까’, ‘오늘은 뭐 사먹을까’ 하는 시시콜콜한 생각을 하면서도 학교 가는 건 참 재미있었다. 내 친구들이 있으니까. 내 얘기를 들어주는 애들이 있으니까, 내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애들이 있으니까. 지금은…… 후우.

‘덜컹. 끼이익.’

“누가 허락도 없이 자랬어. 기숙사 첫 날이라고 막 나가는거야?”

“네, 네! 아아, 네.”

불을 끄고 누워서 혼자 궁상맞게 생각하고 있는데 문이 덜컥 열리며 사감 선생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내 방 불은 꺼 있는데 바깥쪽 불에 비쳐 몽둥이를 들고 있는 선생님 모습이 그림자가 져서 몹시 무섭고 괴기스럽다. 허공에 몸을 휘적거리며 얼른 일어났다. 아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섰다. 선생님은 불을 탁 켜며 말한다.

“뭐, 건강에는 이상 없고.”

“네.”

“정신 건강에는 이상 있고.”

“……그, 그거는 장난처럼 말할 게 아닌데.”

“잘 해결해 봐. 한 가지 말할 건. 너무 심하다 싶으면 선생님한테 꼭 말해라. 요즘 애들은 적당한 정도를 모를 정도로 세게 하니까. 여자애들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괜한 자존심 부리지 말고. 여자애들이 더 집요하고 끈질긴 거, 알지?”

“……네.”

“그럼 잘 자라. 혹시라도 무서워서 잠 안오면 선생님 방으로 와도 돼.”

“안 그래요! 무슨 초등학생도 아니고!”

“후훗, 잘 자.”

‘탁. 끼이익, 쾅.’

선생님의 난입에 괜히 깜짝 놀란 나는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를 취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아서. 왜 오셨나 했더니 나에 대한 당부 때문에 오신 것 같다. 사실 점호는 어떻게 돼도 상관없지만, 점호는 핑계고 나에게 따듯한 말 한 마디 해주려 오신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뭔가 마음이 따듯해진다. 이렇게 당하고 있어도 리유도, 선생님도,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은 아직 있구나. 선생님은 불을 끄고 문을 닫아주신다. 훈훈한 마음을 간직한 채 자리에 다시 누웠다. 왕따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다시금 머릿속에 움트려 하지만 얼른 몸을 뒤척거리며 생각을 지우려 노력했다. 내일을 기대하자. 오늘은 이만 자자.


작가의말

졸리네요... 글은 잘 안 써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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