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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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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작성
14.01.21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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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글자
20쪽

07화. 다시 시작된 그것 - 1

DUMMY

“부탁할 게 있어!”

“엉?”


우리의 일상은 변함이 없다. 학교 등교하고, 밥 먹고, 수업 듣고, 보충수업 하고, 밥 먹고, 야자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런 늘 뻔한 패턴의 지루한 삶. 특히 평일이라면 어떻게 이 굴레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다. 그나마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라면 하루 중 기껏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 뿐이겠지. 그런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점심시간, 오늘도 난 리유와 성빈이와 함께 밥을 먹고 있다. 오늘은 좀 특별하게 배달 도시락을 시켜서 풀숲에서 먹고 있다. 리유와 처음 만났던 그 풀숲 말이다. 날도 꽤나 풀렸고, 매일 가는 김밥지옥이나 학교 앞 분식집은 질려버렸기에 이런 선택을 했다. 나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풀숲이라 운치도 있고, 시골 같은 풍경도 구경할 수 있고. 사람도 전혀 없는 편이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그냥 땅바닥에 앉아야 한다는 점. 털털한 나나 별 자각이 없는 리유에겐 별다른 단점이 아니겠지만 성빈이는 조금 난감해하면서 도시락을 가져온 봉투를 바닥에 깔고 앉았다. 자리를 잡고 밥을 먹는데 문득, 리유가 한 마디 한다.


“무슨 부탁?”

“좀 어려운 거야! 들어줄 수 있겠어?”

“헤에. 뭔데 그래.”


옆에서 조용히 먹던 성빈이도 흥미가 가는지 리유를 보고 말한다. 물어본 건 나한테 물어본 건데. 리유는 눈을 반짝이며 큰 소리로 말한다. 오늘도 기운찬 리유다. 조금 엉뚱한 면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활기찬 건 리유의 장점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리유는 소시지 볶음에서 피망을 발라내며 말한다.


“희세를 구해줬으면 좋겠어!”

“…어??”

“희세를 구해줬으면 좋겠어!”

“아니, 말 자체를 못 알아들은 건 아니니까. 두 번 말할 필요는 없지. 나는 그… 말 뜻을 잘 이해를 못해서 그래.”


리유의 뜬금없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희세라면, 그 애 아닌가. 1장 1막에서 나를 곤경에 몰았던 그 최종보스. 본인의 능력도 강하지만 무엇보다도 매력과 통솔이 100에 근접하여 주위 사람들을 전부 자기 세력으로 만들어 대항하는 나를 몹시 힘들게 만든, 최강·최흉 보스. 물론 나는 그 대치 상황에서 ‘얘를 어떻게 상대하지. 아니 그보다 희세가 주동자가 맞긴 맞아?’ 하는 심정으로 수업에 들어간 뒤 전혀 기억은 안 나지만. 리유와 성빈이의 말에 따르면 그 뒤로 엄청 욕하고 말싸움을 해서 희세를 물러나게 했다는데. 과연, 진실은 저 너머에 있겠지. 어쨌든 그 패장(?) 희세를 말하는 건가. 희세를 구해달라니, 무슨 뜻이지? 조금 난감한 표정이 돼서 말하는 나를 보고, 리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밥을 꿀꺽 삼키고 이어 말한다.


“희세가, 왕따 당해.”

“뭣?!”

“…….”


리유는 아무렇지도 않게 충격적인 말을 한다. 나는 깜짝 놀라 밥을 뿜을 뻔 했다. 희세가 왕따를 당하다니? 그 희세가?! 나는 놀란 반응인데 성빈이는 그다지 놀라지 않는 반응이다. 당황한 나는 얼른 물어봤다.


“그게 무슨 소린데. 희세가… 응?”

“응. 봤어.”


리유는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애들이 희세랑 말도 안 하고, 희세는 혼자 다녀. 근데 다들 무시해. 꼭 나 무시하는 것처럼.”

“야, 비유를 해도 꼭…”


리유는 희세의 사정을 자기 사정에 빗대서 설명한다. 저번 리유의 반응 때문에 민감한 나는 표정이 변해서 리유에게 말했다. 하지만 정작 리유 본인은 별로 게의치 않는 것 같다. 리유는 좀 더 이어 말하는데, 내용인 즉 이렇다. 리유가 가만히 보니까 희세가 왕따 당하는 것 같더라, 그래서 그걸 구제해달라 그런 말이다.


“그러니까, 네가 도와줘!”

“…근데 도와달라고 해도, 내가 뭘.”

“네가 잘 해결했잖아! 너 왕따 당했던 것도! 그리고 나도 도와준다고 했구!”

“그거야…”


리유는 약간 절박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거야, 내 앞가림이니까 어떻게든 한 거겠고… 무엇보다 누누이 말하지만 난 기억이 안 난다니까. 술 취한 상태에서 주정 부리듯 어떻게 지껄인 것으로 넘어간 건데 그걸 그렇게 영웅취급하면 참 난감하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변태 씨」라는 불명예스런 호칭도 얻었는걸. 뭐, 어떻게든 해결된 건 다행인 일이지만.

리유 도와주기로 한 거야, 그건 리유가 귀여우니까. 아니, 이 이유는 농담이고, 그거지, 사실은. 내가 멋대로 리유에게 기댔었는데 리유는 그걸 받아줬고, 또 기대지 않으려는 리유를 내가 기대게 해 주니까 그대로 기대서 울어버렸으니까. 그 모습을 봤는데, 어떻게 안 도와줄 수가 있겠어. 사람도 아니지, 그러면.


“응?! 왕따 해결사가 되기로 했잖아! 그 때 양호실에서, 둘만 있을 때! 그 약속은 거짓말이야?! 그렇게까지 해 버리고!”

“아, 아니! 내가 언제 그랬다고…”

“에, 에, 에엣!? 두, 둘만 있을 때, 뭘 그렇게까지…!”

“에, 넌 또 무슨 엄한 오해 하는 건데!”


리유는 「왕따 해결사」라는 새로운 호칭까지 만들어가며 나를 설득하려 한다. 초롱초롱한 눈은 애처롭게 빛나고 있어 그 부탁을 안 들어주고는 못 배길 것 같다. 하지만 이거,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어야지. 아니, 애초에 나랑 관계도 없는 앤데. 리유야, 귀엽고, 나랑 연관이 없다고 하긴 그렇잖아. 처음 사귄 친구인데. 하지만 희세는. 지금은 악감정이 없지만 왕따 사건 때는 나를 가장 핍박하던 애들 중에 한 명이었고, 나랑 별다른 접점도 없고, 그렇잖아. 왜 내가 아무 관계도 없는 애를 위해 관계돼야 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희세 본인이 뭐라 할 수도 있잖아?

성빈이는 또 성빈이대로 엄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나보다. 가운데 말은 쏙 빼놓고, ‘둘이서 양호실에서 한’, ‘그렇게까지 해 버리고’ 라는 자극적인 문구만을 듣곤 얼굴이 빨개져서 나에게서 1m 정도 떨어진다. 음, 좋지. 양호실. 거기서 여학생, 남학생 둘이서… 할 리가 없잖아! 리유라고, 리유!! 아니, 다른 여자애, 성빈이나 희세면 한다는 게 아니라!! 아니, 하긴 뭘 해!! 뭐?! 사감 선생님! 그, 그건…좀 고려해 봐야 할지도… 아니아니, 고려 하지 마!!


“애초에 그게 핵심이잖아. 지금 네 코가 석자에요, 리유야.”

“…나 코 그렇게 안 큰데.”

“아니이~ 차암. 네 사정이 더 급하잖아.”

“…나 여자앤데 사정을 어떻게 해.”

“너만큼은 그런 말 하지 마!! 너만큼은 내 작고 귀여운 리유로 남아 줘, 제발!!”

“헤헤헷.”


리유는 내 말을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지 건성으로 들으며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거기에 믿었던 순수한 리유마저 성적인 농담을 해 버린다. 나는 정색하고 화를 내며 말했다. 물론 장난이다. 리유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까르르 웃는다. 성빈이는 그런 리유를 보면서 말한다.


“그치만 정말, 냉정하게 생각해야 되. 나도 도와주기로 했지만은, 정말 너보다 희세를 생각하는 거야? 네 일을 먼저 끝내고 희세 도와줘도 되잖아.”

“안 돼! 희세는, 희세는!”

“……?”



성빈이의 진지한 말에 리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큰 소리로 말하려 한다. 뭐, 희세 얘기를 하는 이유라도?


“희세는 나랑 놀면 잘 귀여워 해 줄 것 같단 말야!”

“그 이유야! 진짜로?!!”

“응!! 희세랑 친구 되고 싶으니까!”


너무 어이없는 이유에 나는 소리를 쳤다. 리유는 도리어 당당하게 말한다. 참, 속도 좋은 리유다. 단순히 자기를 귀여워해줄 것 같다는 이유로 귀찮은 일에 참견하자니. 아니, 네가 그렇게 말해도 끼어들게 되는 건 나라구요. 지금 나한테 부탁하고 있는 거잖아. 내가 그렇게 귀여움을 주는데도, 성빈이랑 친해지고는 성빈이랑도 계속 손잡고 다니고 팔짱 끼고 다니고 껴안고 볼 부비부비 하고 온갖 만행(?)은 다 저지르면서 그렇게도 또 귀여움을 받고 싶을까. 아암,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듯, 가끔 피자도 먹고, 국수도 먹고 싶겠지. 성빈이의 따스함은 천사 같지만, 가끔은 희세 같이 서양 느낌(?) 물씬 나는 글래머러스한 애의 품에 안겨보기도 하고… 뭐야 그게!! 왜 희세에게 안기는 장면에 나를 대입하는 건데?!!


“정말, 그런 단순한 이유로 되겠어?”

“웅!!

“그럼 뭐, 어쩔 수 없네. 어떻게 할래, 웅도야?”

“엉?”


성빈이는 어린애를 바라보는 유치원 선생님 같은 얼굴로 리유를 보며 다시금 물어본다. 리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귀엽게 대답한다. 성빈이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고 묻는다. 나야 뭐, 대답은 하나밖에 없지 않나. 여기서 매몰차게 ‘싫어, 귀찮아.’ 하고 거절하기도 그렇고.


“알았어, 해 보자.”

“우와아아앙! 고마워! 헤헤헷.”


리유는 반짝 웃으며 좋아하며 말한다. 아마 상대가 내가 아니라 성빈이었다면 가식 없이 바로 껴안고 볼 부비부비하고 난리도 아니었겠지. 나니까 그나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리유다. 사실 날 껴안으려고 움찔 한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자기도 여자애라고 잠시 멈칫 하고 그냥 좋아만 한다. …나는 딱히 상관 없는데, 껴안아도. 아니! 리유한테 무슨 감정 있는 게 아니라! 그, 그냥 안는 거 정도야 친한 사이니까 할 수 있다, 그런 말이지.


“일단은, 조사를 해 봐야 겠지.”

“헤헤, 이러니까 꼭 탐정 같애!”

“…뭐, 비슷하긴 하네.”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말한다. 리유는 마냥 좋아하며 까르르 웃으며 말한다. 정말, 부탁만 해놓고 천진난만하구나. 리유에게 무언가를 기대할 순 없고, 이럴 때엔 도와주기로 약속한 성빈이랑 상의하는 게 낫겠지. 리유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성빈이를 쳐다보며 말을 꺼냈다.


“희세에 대해 좀 아는 거 있어? 최신 정보라던가.”

“…글세.”


성빈이는 나에게 없는 귀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으니까, 여자애니까! 리유는 여자애긴 하지만 정상적이지 못한 교우관계로 나보다도 더 정보를 기대할 수 없고, 설령 정보가 있다 해도 그리 정상적인 방법으로 알려주진 않을 것 같고. 나야 지금은 어느 정도 여자애들하고 친분을 쌓았다고 나름대로 자부하고 있지만 사실 여자애들 사이의 알력이나 민감한 문제를 파악할 능력도 지위도 아직 되지 않는다. 설령 내가 여자애들하고 엄청 친해져서 섹드립을 부담 없이 주고받는 사이가 되도, 그런 건 잘 알려주지 않을 거다. 애초에 종이 다르잖아, 여자애, 남자애라는 한계. 그런 걸 쉽게 알려줄 리가 없지, 여자애들이. 아니, 이건 남녀 차별적인 발언이 아니라,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거라는 말이야. 차별이 아니라 차이.

하지만 성빈이는 다르다. 성빈이라면 훌륭한 정보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반에서 이미지도 좋고, 무엇보다 이미지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엄청 착하고, 애들한테도 살갑게 잘 대할뿐더러 일도 잘 도와준다. 나한테만 천사 같은 성빈이가 아니라, 모두에게 천사 같은 성빈이 인거다. 하긴, 나 따위에게만 천사 같을 리가 없지. 애초에 천사 같으니까 나 같은 애한테도 말을 걸어준 거잖아. …아니 이 사나이 정웅도가 뭐 어때서! 내가 왜 ‘따위’ 야!! 사실 여자애들이 자꾸 「노예」, 「변태」 따위로 칭하니까 나도 그 영향을 받아 점점 자존감이 약해지나보다. 아무튼!! 성빈이라면 좋은 정보를 기대할 수 있다. 왜, 여자애들끼리만 오가는 소문이라던가, 정보 같은 게 있을 거 아니야. 잔뜩 기대하고 있는 내 눈을 보며 성빈이는 입을 열었다.


“희세는, 같은 중학교 출신이 아니라 정확한 정보는 나도 몰라. 단편적인 내용은 네가 보고 있는 거랑 같아.”

“그래.”


성빈이의 말에 나는 조금 실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여기서 부연설명을 하자면 우리학교 애들의 70% 이상은 한 중학교 출신이다. ‘성빈여중’ 이라는 사립 중학교. ‘성빈여고’랑 같은 재단이라고 하고, 여긴 제대로 된 여중이 맞단다. 근데 왜 여기만 여고가 아니라 남녀공학인건데?! 아무튼, 대부분의 애들은 성빈여중 출신이고, 그래서 리유가 지금까지 핍박 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리유도 성빈여중 출신, 성빈이도 마찬가지. 다른 애들도 대부분 마찬가지. 그래서 타지 애들이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그도 그럴 게 어차피 70%의 애들은 인사할 것도 없이 서로 다 알고 있는 상태니까! 그래도 애들은 애들인지라 금방 친해져서 자기들만의 무리를 찾았다. 나도, 어떻게 보면 내 무리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지. 리유하고, 성빈이. 성빈이는 좀 자유롭긴 하지만. 어쨌든! 난 조금 실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역시 하나 뿐인가. 관찰하는 수밖에.”

“그렇겠네. 사실 나도 딱히 관심 갖고 있지 않았거든. 다른 애들도…”

“그래?”

“응. 그 사건 이후로는 딱히. 아, 내가 막 희세 뭐라 하고 그런 건 아니야! 난 지금도 희세랑 잘… 응? 잘 지내나?”

“아아, 오해하는 거 아니니까.”


성빈이는 약간 얼굴이 빨개져서 말한다. 저번에 나를 무시했던 전적이 있기에 그런 거에 민감한 성빈이다. 나는 그 쪽으로는 생각도 안 했는데, 민감한 애구나, 성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은 학교로 가서 살펴보자고 말했다. 성빈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리유는 자기가 먼저 말을 꺼내놓고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인다.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성빈이 손을 잡고 걸을 뿐. …뭔가 억울한데?


나희세, 17살. 성빈여고 1학년 1반. 품행단정, 성적우수, 운동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다. 더불어 글래머러스한 몸매까지… 솔직히 고1이라고 하기엔 반칙급인 몸매다. 그에 따라 나이에 비해 좀 노안, 노안 까진 아니지만 확실히 나이 들어 보이는 단점도 있지만, 그건 성숙해 보인다는 표현을 써야겠지.

확실히, 학기 초까지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것 같은, 일반인으로써는 범접하기 힘든 능력치의 희세였다. 정말 만화에나 나올 법한, 전교 1등에 얼굴도 예쁜데다 몸매도 좋고, 성격도 착하고 일도 열심히 하고 성실하고, 어른들이나 선생님들에게 예절도 바른 착한 애. 거기다 감투 욕심도 없어서 선뜻 반장자리에도 안 나가면서도 또한 반장과 학급 일을 도맡아 해서 모두의 호감을 산, 정말 어떻게 보면 학교의 아이돌이다. 남녀 공학이었으면 정말 인기 폭발이었겠지. 아니, 여고임에도 인기 폭발이었다. 「이었다」. 지금 희세는…


“…….”

“…….”


쉬는 시간, 나는 가만히 희세를 보고 있다. 옛날의 부흥은 어디로 갔을까. 사람 일은 정말 아무도 모른다더니, 그 말이 딱 맞다. 희세는 지금, 조용히 책을 읽고 있다. 책 읽는 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예전이라면 저러고 있을 희세가 아니다.

혼자 있을 때엔 책을 읽기도 하는 게 희세지. 아침에 일찍 왔을 때, 나랑 둘이 어색하게 있을 때엔 책을 읽고 있었잖아. 하지만 아이들이 온다면 곧 희세는 돌변해서 사교적으로 변한다. 혼자 있을 때엔 조용히 책을 읽지만 애들이 있다면 곧장 활달하게 얘기하고 노는 희세. 지금처럼 점심 후의 쉬는 시간이라면 당연히 자기 패거리 여자애들과 수다를 떨고 있거나 어딜 거닐고 있거나 해야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조용히 책을 읽고 있다.

가만히 희세를 보다가 다른 여자애들도 힐끔 쳐다본다. 다른 여자애들 역시 자기들끼리 잘도 놀고 있다. 자는 애도 있고, ‘빵! 빵 먹으러 가자!’ 하면서 뛰쳐 나가는 애도 있고. 가만히 앉아서 수다 떨고 있는 애도 있고. 뭐, 다소의 분위기는 다르지만 같은 사람인지라 결국엔 남중 때 봐 오던 풍경과 그리 다를 것도 없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희세를 거들떠보는 애는 없다. 참 이상하지,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애들의 중심에 있던 희세였는데. 권력의 허무함과 인생의 허탈함을 그대로 느끼는 듯한 희세의 뒷모습. 이제 은거해서 재야인사가 되면 되는건가. …뭔 개소리야.

희세와 놀던, 그 활기찬 패밀리 여자애들은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며 놀고 있다. 물론 희세와는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쳐 있는 양 전혀 얘기를 하지 않는다.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은데. 거의 리유의 존재감과 맞먹는 현재의 희세다. 아니, 뭔가 더 처참하다. 처음부터 그랬던 리유와는 다르게 한 때는 반의 중심이자 빛이자 희망이자 별이던 애가 저러고 있으니까.


“확실히… 문제가 있네.”

“응. 나도 유심히 보는 건 처음인데.”


나는 조심스럽게 옆자리 성빈이에게 말했다. 성빈이 역시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한다. 이러고 있으니까 꼭 스파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다. 아니, 같은 반에 있는 건데 쳐다볼 수도 있는 거지! 가만히 관찰해보니 확실히, 그리 눈치가 없는 편인 리유가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근데 왜 나랑 성빈이는 눈치 채지 못한 거지.

나라면, 사실 신경을 안 쓴 것이 크다. 말싸움 했다는 그 얘기는 나는 기억도 안 날뿐더러 별로 연관되고 싶지도 않다. 내가 벌인 일이긴 하지만, 정말 내 의지와는 무관한 일이었고. 무의식 속의 내가 벌인 일이겠지만. 어쨌든 그 뒤로 희세랑은 확실하게 어색해졌고, 뭐 애초에 처음부터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서 신경 쓰질 않았다. 걔가 뭘 하든, 애초에 난 내 주위 애들만 신경 쓰는 타입이니까. 그런다기보다, 다들 그러지 않나? 반 전체 애들 전부 신경 쓰고 어떻게 살아. 어느 정도는 신경 쓰겠지만, 다 자기 주위 애들하고만 노는데. 여고는 그게 더 심한 것 같다. 자기 무리, 자기 해처리(?) 주위에서만 노는 애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가장 잘 통하는 곳이 바로 이 곳 여고인 것 같다.


“쟤네, 희세랑 놀던 애들 아니야?”

“응, 맞아.”

“지금은 희세랑 안 노네?”

“…그렇네.”

“흐음…”


나는 감히 손가락으로 가리키진 못하고 힐끔 눈빛으로만 가리키며 성빈이에게 말했다. 성빈이도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그리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은 성빈이다. 나름대로 착하고 성격도 맞아 보였던 성빈이와 희세였는데, 저런 광경을 보니 썩 기분이 좋진 않겠지.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성급하게 물어봤다.


“근데, 너랑 희세랑 친하지 않았어? 왜 신경 끈 거야?”

“…신경을 껐다기 보다는.”

“아, 미안. 말을 너무 막 했나. 음… 그래, 신경을 덜 쓰게 됐잖아?”


격한 표현에 성빈이는 조금 말하는 걸 망설인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 최대한 돌려 말했다. 그래봤자 말은 그 말은 그 말이지만. 성빈이는 희세를 보다 나를 보다 머뭇거리다 말한다.


“너, 너 왕따시켰다고 생각하니까… 그리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았어…”

“……어. 어어. 고마워, 그건 정말.”

“아, 아니 딱히 이상한 뜻으로 한 게 아니라! 그냥, 그냥 꺼림칙해서 그런 거니까!”


성빈이의 말에 난 4초 정도 대답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성빈이와 눈이 마주치니 성빈이는 흰 볼이 왈칵 붉어져서 내뱉듯이 말한다. 나도 괜히 부끄러워져서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이 든다. 성빈이가, 그만큼 나를 생각해줬구나, 그렇게 생각이 드니까 괜히 더 의식이 된다. 이거… 좋은 거 아니야? 어째 희세 얘기 하는데 성빈이 쪽으로 빠져버린 나는 더는 희세 왕따 사건에 대해선 별로 생각도 잘 안 든다.


“아무래도 조사를 더 해야할 것 같아.”

“응, 그, 그러자.”


성빈이의 말에 나는 어색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의식하지 마, 의식하지 마! 다행이 정신은 다시금 불쌍하고 가련한 희세 쪽으로 돌아왔다. 성빈이를 힐끔 보니 다시 아까의 진지한 눈으로 희세를 보고 있다. 발그레 하던 볼은 다시금 원래대로 흰 피부로 돌아왔다. 그래, 내 착각이었겠지. 성빈이도 마찬가지로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했는데. 난 아직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느낌이다.


작가의말

우와, 오늘은 글이 정말 안 써지네요. 이러다 비축분을 써 버리는 날이 올 지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9

  • 작성자
    Lv.66 rosemary..
    작성일
    14.01.21 03:35
    No. 1

    어...얼른 내게 비축분을 줘!! 마약이 필요해!! 내놔!(정중히 부탁드립니다..(__)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21 03:43
    No. 2

    하앍... 기를 모아야 합니다... 연참대전이 아니라면 쓰는 족족 올릴텐데, 아깝잖아요. 연참대전인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바람의향수
    작성일
    14.01.21 05:08
    No. 3

    변태짓을 능글맞게 한다해서 너구리가붙어버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21 06:05
    No. 4

    너구리라... 너구리는 귀여운데! 변태라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0 똑딱똑딱
    작성일
    14.01.21 05:22
    No. 5

    연참대전이 끝나는 순간...쓰는 족족 올리시면 됩니다:D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21 06:05
    No. 6

    후후... 그렇지요.
    하지만 그의 글이 계속 올라오는 일은 없었다. 연참대전에서 모든 힘을 쏟아부은 그는 거짓말처럼 연재중단에 들어가게 된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2 지키미삼
    작성일
    14.01.21 09:39
    No. 7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21 09:54
    No. 8

    재미있게 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전서리
    작성일
    18.08.16 20:31
    No. 9

    후후 여기까지만보고 결말을 제방식대로 마음대로 개연성따윈 개나줘버리고 써보겠습니다(추천글로쓰지않는드아아!!!)
    /
    "드디어.."
    아쉽..아니,아니 내가 무슨소릴,..그래, 아..아쉽기도 했지만 드디어 평범으로 돌아가는거다.
    "이로서 제36회 졸업ㅅ..."
    그동안 뭐했냐고? 했냐..아니,뭐라고? 했냐니!아직은 아니지마..음..크..크흠.그..그건 넘어가고. 선생님방으로가서 확인할게 있다.그동안 선생님의 섹드립을 견디다니..장하다!웅!

    "우훗, 왔어? 수능치면 해줄까,웅?♡"

    엄청난 수위.하지만 이젠 익숙하다.

    "그만해요, 이제."
    "흐응..나도 선물이 있다구?"
    "응?"
    잠시만.저건..똑같은..라노벨2권..아니,선물?
    "꼬꼬마가 좋아할만한거야아~지금열지말고."
    "??!"


    ..후에 본거지만, xxx보이.이미 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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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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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10화. 나는 정말 나는 정말 나는 정말 그럴 의도가 - 1 +16 14.01.28 2,573 72 18쪽
38 09.5화 - 2 +13 14.01.27 4,211 129 20쪽
37 09.5화. 잉여잉여 - 1 +13 14.01.27 3,204 56 19쪽
36 09화 - 4 +10 14.01.26 2,899 66 20쪽
35 09화 - 3 +7 14.01.26 2,986 67 17쪽
34 09화 - 2 +12 14.01.25 3,155 60 18쪽
33 09화. 친구가 돼 주세요!! - 1 +21 14.01.25 3,652 69 19쪽
32 08화 - 4 +12 14.01.24 3,410 110 18쪽
31 08화 - 3 +20 14.01.24 3,071 71 18쪽
30 08화 - 2 +16 14.01.23 4,800 165 17쪽
29 08화. 격전!! - 1 +13 14.01.23 3,151 57 19쪽
28 07화 - 4 +14 14.01.22 3,475 58 19쪽
27 07화 - 3 +11 14.01.22 3,084 63 21쪽
26 07화 - 2 +4 14.01.21 3,105 62 21쪽
» 07화. 다시 시작된 그것 - 1 +9 14.01.21 3,518 61 20쪽
24 06화 - 4 +10 14.01.20 3,667 97 20쪽
23 06화 - 3 +13 14.01.20 3,797 63 20쪽
22 06화 - 2 +11 14.01.19 4,079 65 20쪽
21 06화. 자연스럽게! - 1 +7 14.01.19 4,313 72 18쪽
20 05화 - 4 +17 14.01.18 4,517 139 19쪽
19 05화 - 3 +24 14.01.18 3,923 72 19쪽
18 05화 - 2 +24 14.01.17 3,474 100 17쪽
17 05화. 크아아아 흑화한다 +12 14.01.17 4,655 124 21쪽
16 04화 - 4 +10 14.01.16 3,771 80 19쪽
15 04화 - 3 +18 14.01.16 3,287 79 18쪽
14 04화 - 2 +16 14.01.15 3,312 73 25쪽
13 04화. 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11 14.01.15 3,736 92 20쪽
12 03화 - 4 +9 14.01.14 3,538 85 20쪽
11 03화 - 3 +7 14.01.14 4,217 127 18쪽
10 03화 - 2 +7 14.01.13 3,881 9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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