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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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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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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14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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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03화 - 4

DUMMY

밥도 먹었겠다, 다시금 일터로 복귀했다. 이른 시간에 점심을 먹은지라 기숙사 앞으로 가니 밥을 먹으러 나오는 여자애들과 마주쳤다. 신기하다는 듯 바깥으로 나와 있는 짐들을 쳐다보는 여자애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니 재빠르게 눈을 피하고 달아나듯 저들끼리 떠들며 멀어진다. 흠. 기분이 썩 좋진 않네.

“절반의 일이 끝났다! 이제 절반만 하면 끝난다! 하하하하!”

“에에에에!!”

“얼른 하자.”

“어, 고마워.”

나는 마치 적진으로 출진하기 전 장수가 병사들 앞에서 일장연설 하는 것처럼 비장하게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성빈이의 무표정한 얼굴과 선생님의 싸늘한 표정 뿐. 리유는 야유하듯 소리치고, 성빈이가 방긋 웃으며 말해줘서 겨우 어색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개소리는 집어 치우고 일이나 해야지.


짐을 창고에 넣는 작업은 단순히 빼는 것보다 훨씬 고도의 지능을 요구로 한다. 차곡차곡 공간 활용을 잘 해서 넣어야 함은 물론이요, 그 짐들 모두를 넣는 게 아니라 뺄 껀 빼고, 버릴 건 버리고, 다른 곳에 비치해야 할 건 또 빼고, 하여튼 이런 복잡하고 귀찮은 분류작업을 거쳐야 하기에 더욱 까다로워졌다.

물론 그 분류 작업은 선생님이 지시하고 계신다. 학생인 나나 리유, 성빈이가 뭘 알겠는가. 그나마 어른이고 사감인 선생님이 분류해주시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결국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구나. 선생님은 먼저 분류 작업부터 시작했다. 먼저 분류부터 해야 일을 하기 편하다나. 나와 리유, 성빈이는 충분히 선생님의 수족이 되어 열심히 분류 작업을 했다.

“너 하나 때문에 참 많은 사람이 고생하는구나. 나중에 꼭 은혜 갚아야 된다”

“물론이죠, 제가 능력은 없지만 은혜를 잊진 않는다구요.”

“후후, 그럼 기대해도 되지”

“뭐…… 뭘요”

“은혜갚기♡.”

“왜 끝을 그렇게 미묘하게 올리시는데요?! 무슨 은혜갚기요?!”

선생님이 조금만 천천히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말씀하시면 괜히 야한 농담을 하는 것 같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은혜갚기라니, 최대 대미지 102에 디메리트 없이 난사할 수 있는 기술도 아니고. 아, 아니면 10배 갚기! 헉!

“후아.”

체육 창고와 기숙사는 강당을 사이에 두고 조금 떨어져 있다. 분류 작업은 끝냈고, 노동력이 별로 들어가지 않는 잡물건은 선생님의 지도하에 리유가 함께 하고, 짐을 나르는 건 그나마 힘을 쓸 수 있는 성빈이가 나를 돕기로 했다. 물론 힘세고 강한 남자애인 나는 선택의 여지도 없나보다. 뭐, 애초에 내가 살 집 정리하는 일이니 불평은 없다. 크고 아름다운 교탁 같은 단상을 둘이서 들고 옮기고 있다. 무거워 팔이 뻐근하지만 나보다는 성빈이가 더 걱정된다. 얼굴이 빨개져선 연거푸 무거워서 쩔쩔맨다. 벌써 두 번째 쉬는 시간.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이 든다. 여자애의 근력으로 이 정도 무게는 확실히 무리지. 나조차도 팔이 뻐근할 정돈데.

“많이 힘들어”

“응, 좀 무겁네. 미안. 거치적대서.”

“아니, 아니지. 혼자 날랐으면 허리 나갔을걸. 그나마 네가 도와주니까 이렇게 안 힘들게 나를 수 있잖아.”

“응.”

성빈이는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나는 교탁에 자리잡고 앉아서 느긋하게 말했다. 끝나는 시간 정해져 있어서 급박하게 타임 어택으로 끝내야 하는 일도 아니고, 느긋하게 해야지. 그런 심정이다. 어차피 세 사람이나 도와줘서 내가 예상했던 이틀이란 시간보다 훨씬 빨리 끝날 것 같고. 아마 오늘 짐은 다 옮기고 내일이면 바닥 정리하고 벽 정리하고 하면 되겠지.

“여자애들이 너 쳐다보고 무시하는 것 같으면, 기분 나빠”

“응”

교탁에 앉아 있는 나는 성빈이를 등지고 앉아 있었다. 그래서 뒤쪽에서 성빈이의 갑작스런 질문이 들려온다. 몸을 돌리고 성빈이를 보니 상기된 얼굴이 조금 가라앉은 성빈이의 단정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기숙사에서 나올 때, 여자애들이 너 힐끔 보고 지나가면서 좀 그러잖아. 비웃는 것 같고. 기분 나빠하는 것 같아서.”

“아아, 아니. 그냥. 좀 신경 쓰이긴 하지.”

“……그 점은 내가 대신 사과할게. 다들 착한 애들이고 좋은 언니들인데. 정말, 어색해서 그런 걸 거야. 다들 네가 이만큼 착한 애란 걸 알면 좋아할거야.”

“하하, 늘 그 소리네. 알아, 다들 악감정 없다는 건. 다만 쓸쓸할 따름이지. 네가 미안해할 건 아니잖아 너는 도리어 나한테 되게 잘해주는걸. 항상 고맙다구, 그건.”

“……응.”

나는 앉아 있고 성빈이는 서 있기에, 난 성빈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싱긋 웃으며, 나름 상큼하게 대답했다고 대답했는데 성빈이는 좋게 봤으려나. 아직도 힘든 게 회복이 안 됐는지 상기된 얼굴로 답한다. 난 그런 성빈이가 참 예뻐서 한동안 쳐다봤다. 성빈이는 머리띠를 풀더니 다시금 머리를 정리해서 한데 묶는다. 편한 사복 차림에 일 하려고 포니테일로 단정히 머리를 묶은 성빈이는 학교에서 보던 청초한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어디서 보기 힘든 양갓집 아가씨 같은 느낌. 게다가 성격도 좋고, 배려도 잘 해주고. 계속 쳐다보니까 성빈이는 고개를 갸웃 거리며 나를 본다.

“왜”

“아니, 참 예쁜 거 같아서.”

“에, 에에엣…….”

성빈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보다 내 대답에 눈에 띄게 당황한다. 겨우 회복되었던 상기된 볼은 다시 발그레 해진다. 한눈에 부끄러워하는 걸 알 수 있을 정도. 아니, 이건 립서비스가 아니라 진심으로 한 말이다. 반응이 너무 피부에 닿을 정도로 즉각적이고 눈에 보여서 보는 재미가 있지만.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얼굴도 예쁘고. 무엇보다 마음이 예쁘잖아. 처음에 네가 내 옆자리 앉았을 때, 그 때 처음 올려다 본 얼굴이 아직도 신선하게 기억이 나. 뭔가 포토샵으로 뽀샤시 처리한 것 같은 느낌 하하.”

“……별로 안 예쁜데. 꾸미지도 않구.”

“안 꾸몄는데도 그 정도니까 예쁘다는 거야. 꾸미면 정말 양민학살이구.”

“……우우.”

나의 계속된 칭찬에 성빈이는 기어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습니다. 리유 만큼은 아니지만 성빈이도 조금은 알기 쉬운 점을 하나 알아냈습니다. 칭찬에 약하구나. 그것도 엄청 부끄러워하는구나. 목덜미까지 약간 붉어질 정도로, 부끄러워 하는 게 눈에 대놓고 보인다. 하하. 이건 또 이것대로 재밌네. 놀리는 건 아니지만, 선생님이 이래서 나를 놀려먹는구나 싶다. 뭐라 답변할 말이 없는지 성빈이는 ‘나 이제 괜찮으니까 이거 나르자.’ 하곤 자세를 고친다. 그래,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금 교탁을 든다.

“웅도 넌…… 내가 어때”

“응 아하하. 뭘 그런 걸 물어본데.”

짐을 계속 나르며, 이번엔 둘이 짐을 드는데 내가 앞에서, 성빈이는 뒤에서 나르게 됐다. 아까는 둘이서 마주보고 옆으로 걸어가며 날랐는데 너무 불편해서 지금처럼 나르는 방식으로 바꿨다. 기차놀이 하듯이, 손이 좀 아프긴 하지만 몸이 월등히 편하다. 다시금 기숙사를 벗어나 강당 즈음으로 오자 성빈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냥, 궁금해서.”

“그러게. 음. 약간 천사 같은 느낌”

“…….”

성빈이는 담담한 말투로 말한다. 난 조금 과장 섞어서 대답했다. 아니, 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그걸 있는 그대로 말한 건 순전히 성빈이의 부끄러워하는 반응을 보고 싶어서 그런 거다. 과연, 보이진 않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는 성빈이다. 아마 내가 한 극찬에 어찌 대답해야할지 몰라 당황해하고 있겠지. 얼굴까지 약간 상기됐을지도 몰라.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게 즐거워 나는 실실 웃으며 이어 말했다.

“보면 늘 모든 애들한테 친절하게 대해주잖아. 특히 그 웃는 얼굴. 정말 날개 없는 천사 같다고 해야 하나 다른 여자애들도 너 반만 닮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누구에게나 따뜻한, 한줄기 빛 같은 천사랄까”

“……너, 너무 심하잖아, 과장이. 따, 딱히 그 정도 까진 아니잖아!”

“아니야~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건데 왜.”

“……으응! 창피하잖아!”

“하하하하.”

계속 이어지는 천사 타령에 성빈이는 참지 못하고 말한다. 나의 너스레에 기어이 성빈이는 성빈이답지 않은 앙탈 비슷한 소리를 내며 말한다. 하하, 귀엽네. 부끄러워하는 상기된 얼굴을 못 보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말만 들리는 상황에서 상상하는 것도 나름대로 그 재미가 있다. 잠시 뒤 성빈이가 힘들다고 하고 내려놓을 때 표정을 살피는 게 참 즐겁겠구먼. 그렇게 성빈이와 재미나게 얘기하며 짐을 날랐다.


“얼추 다 날랐네.”

“그러게요.”

정신없이 까지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성빈이와 함께 짐을 나르다보니 반 이상은 날랐다. 분류된 잡다한 짐들과 쓰레기는 선생님과 리유가 금세 다 치운 모양이다. 기숙사 앞엔 이제 몇 안 되는 짐들과 쓰레기 몇 개만 남았다. 오후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이 정도 성과라니, 참 대단하다. 선생님이 지휘를 잘 한 탓이기도 하다. 혼자 했다면 3일 정도 걸리지 않았을까 싶다. 선생님은 놓여 있는 짐짝 중 책상에 앉아 느긋하게 쉬고 계신다.

“리유는요”

“응 방 구경 간다고 방 들어갔는데.”

“하하. 나 참, 거기 뭐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방 구경을 하겠다고…”

일하느라 한참은 리유를 못 봤기에, 살짝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천천히 방으로 향했다.

“뭐해”

“어, 웅! 이거 봐.”

리유는 방에서 깨금발을 짚고 벽 쪽을 보고 있다. 그래도 일을 돕는다고 도왔는지 옷이 여기저기 더럽게 돼 있다. …이건 뭐 쓰레기장에서 뒹굴기라도 한 걸까. 선생님이 어차피 빨 거라고 말하니까 너무 막 다루는 거 아니야. 그런 마음과 동시에 한 편으로는 귀엽게 말하는 리유가 귀여워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머금어진다.

“이거, 뺄 수 없는 거야”

“빼려고 하는데 안 빠져.”

리유는 책장을 가리키며 말한다. 낡을대로 낡은 책상. 하지만 그건 아까 빼 보려고 혼자 안간힘을 써 봤지만 어째 영 빠지질 않는다. 바닥에 아예 못 박아 둔 것도 아닐 텐데. 그대로 방치하기도 애매하고, 너무 낡아 내가 쓰기에도 불안하다. 책 몇 개 올려놓으면 금세 부서질 것 같은 위태로운 모양이다. 그 전에 책에 썩은 나무의 은은한 향과 무늬가 박힐 것 같아 두려워서 책을 못 놓을 것 같지만.

“이렇게, 이렇게 하면 빠지지 않을까”

“에이, 말이 되는 소릴 해라. 내가 해도 안 됐는데 네가 한다고 되겠냐.”

“으응! 흥! 되, 될 꺼야!”

리유는 작은 손으로 책장을 잡아당기며 말한다. 어이가 없어 실소가 절로 나온다. 애초에 잡아당기는 것도 그렇게 잡아당기면 힘이 전혀 안 들어간다. 거기다 여자애 중에도 유난히 체구가 작은 리유의 힘으로 저런 식으로 잡아당기면 정말 한 톨 만큼의 힘 정도 나올 것이다. 그것 가지고 어떻게 책장을 빼겠다고.

거기다, 설령 책장이 빠진다 해도 그건 그것대로 리유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다. 남자인 내가 정면에 서도 지붕 가까이까지 닿는 책장인지라 크기가 큰데 리유가 앞에 서면 거의 그 책장의 반절 정도 되는 것 같은 크기이다. 설령 든다고 해도 무거워서 바로 깔려버릴 테지.

내가 어이가 없어 실소를 지으며 리유를 무시하듯 말하자 리유는 오기가 생겼는지 볼을 부풀리며 ‘흥흥’ 하며 작은 손으로 낑낑대며 책장을 잡아당긴다. 난 그런 리유를 재미있는 눈초리로 쳐다본다. 백날 해 봐라, 그게 당겨지나. 그래도 혹시라도 위험할 수도 있기에,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가 뒤에서 리유를 쳐다본다. 어차피 조금 하다 제풀에 지쳐 그만 두겠지. 아침부터 일하고 있으니 힘도 많이 빠져 있을테고.

‘우지끈.’

‘꽈자자작!’

‘와장창!’

“에, 에엣!”

잠시 바깥에 있는 성빈이와 선생님 쪽으로 시선을 돌린 사이, 기묘한 소리가 난다. 우지끈 내 방에서 그런 소리가 날 만한 게 없는데. 고개를 돌리니, 눈 앞에 엄청난 사태가 발생하고 있었다. 나무 책장이 부서지며, 리유를 덮치고 있었다!

아마 너무도 오랜 세월 방치되어 썩을 대로 썩은 나무 책장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부서지는 거겠지. 한계까지 방치돼 있는데 내가 들려고 들썩들썩 해서 임계점까지 갔고, 형태만 유지한 상태에서 비록 작은 힘이지만 리유가 어떻게든 잡아 빼 보려고 흔들흔들한 충격 덕에 무너지는 것 같다. 중간에서부터 쩍쩍쩍 갈라진 나무 책장은 리유를 그대로 덮어버릴 기세로 쓰러진다. 그 짧은 순간 굉장히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 같지만 실상 나는 굉장히 감성적이 돼 있다.

“으아아아앗!”

“꺄아아아아─!”

‘와장창! 쾅!’

“…….”

불문곡직, 이런 거 저런 거 따질 틈도 없이 바로 몸을 날렸다. 정말 날렸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뛰어서 리유를 낚아채서 몸을 날렸다. 짧은 순간 내가 달려들어 리유를 구할 수 있는 시간보다 책장이 쓰러지는 속도가 더 빠를 것 같아 쓰러뜨리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내가 넘어뜨리면 리유는 밑에 깔리고 위에서 내가 대미지를 흡수할 테니 리유는 무사하겠지. 그래서 그렇게 했고, 곧 요란한 소리와 함께 책장은 쓰러졌다.

“에에엣!”

“뭐야, 뭐”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드니 들리는 건 요란한 여자애들 소리다. 서너명 쯤 되는 여자애들. 아마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고 있던 것 같다. 딱히 이 사단의 소리를 듣고 후다닥 달려온 것 같진 않고, 우연히 나가려다 우릴 본 것 같다. 힐끗 고개를 다시 돌려 리유를 보니 다행이 리유는 아무 상처도 없다. 나는 다리 쪽에 나무 조각들이 무너져있어 몹시 아프지만 그거 외에는 딱히 별다른 타격이 없다. 헉, 하고 놀란 나는 얼른 상체를 일으켰다.

리유를 쓰러뜨린다고 쓰러뜨렸는데, 조금 밀려서 쓰러트린 덕에 내 얼굴하고 양 손은 정확하게 리유 가슴 쪽에 가 있었다. 고개는 들고 있어 봉변을 면했지만 양 손은 정확하게 리유 가슴을 만지고 있었다. 아니, 만진 게 아니라! 그냥 닿고만 있었어! 애초에 만질 가슴도 없고! ……조금, 아주 조금 말캉한 느낌이 있긴 한 것 같은데. 나는 당황스러운 걸 애써 억누르고 리유에게 말했다.

“괜찮아”

“우우우웅…… 아퍼.”

“다행이다, 다친 데는 없는 것 같네.”

“웅이는 괜찮아??”

“응, 나는 다리 좀 깔린 거 빼곤 괜찮아.”

“에엣! 지, 진짜네.”

리유는 다행이 상체를 일으키며 말한다. 머리 쪽을 쓰다듬으며 아픈 듯 말하지만 별다른 타격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또 다행으로, 내가 가슴 만진 것도 별로 의식하지 않는 것 같다. 가슴이 별로 없어서 느낌이 없는 건가. 아니, 그런 건 아니겠지. 워낙 놀랄만한 상황이니까 자각을 하지 못한 거겠지. 리유는 내 천연덕스런 말에 내 다리 쪽을 보고 흠칫 놀란다. 그러더니 다가와서 나무 더미들을 난감하게 본다.

“아, 아프지 않아??”

“으응, 뺄 수 있을 것 같아.”

“뭐야. 또 무슨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거야.”

“아, 선생님. 그게─”

나무더미에 깔렸다고 하지만 그리 크게 다친 건 아니다. 멍들고 까지고 한 수준 애초에 그리 부피가 크지 않은 책장이다. 책장이 커서 무너지면서 반대쪽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면서 떨어져서 그나마 충격이 분산된 탓이 컸다. 그래도 날카롭게 조각난 나무조각들이 조각조각 박히지 않아서 다행이다. 우으으, 내가 상상했는데 굉장히 잔인하네.

선생님은 그제야 이상한 소리를 듣고 성빈이와 함께 와서 본다. 선생님께 사정을 말하고 우장창 하며 다리를 뺐다. 성빈이는 깜짝 놀라서 교복 찢어진 틈에서 피 난다고, 호들갑을 떨며 걱정해준다. 이 와중에 치유해주는 건 역시 성빈이 뿐이구나. 거기다 더해 정말 치유해주려고 의료 상자를 찾으러 간다. 선생님은 ‘조심 좀 하지.’ 하며 그래도 걱정은 되는지 괜찮냐고 물어보신다. 나는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엄청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리유를 구했으니까. 리유도 약간 감동받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훗, 조금 멋있었으려나.

힐끔힐끔 나와 리유를 보던 여자애 셋은 조금 아니꼬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더니 셋이서 수군수군 떠들며 기숙사 바깥으로 나간다. 으음. 뭔가 마음에 안 드나 아니면, 역시 멋지게 보였으려나! 하, 하긴─ 남자애가 위기에 처한 여자애를 구한 장면인데, 감동적으로 보였겠지. 무엇보다 확실하게 구해냈으니까! 비록 본인은 다쳤지만, 여자애를 위해 자기 한 몸 바친 정의의 사나이! 크으─ 아마 이미지가 더 좋아졌을 거야.


‘웅도인가 걔, 기숙사에서 리유인가 그 애 구하느라 다쳤다며’

‘우와. 진짜 대단하네.’

‘생각보다 착한 애인가봐.’


─이럴지도 모르고~~ 뭐래, 병신이. 어쨌든 리유는 미안해서 계속 옆에서 애처로운 표정으로 ‘괜찮아 괜찮아 어떡해.’ 하면서 앉아 있고, 나는 벽에 기대앉아서 ‘괜찮다니까~ 왜 그래 괜히, 미안해지게.’ 하고 너스레를 피운다. 강아지였다면 낑낑대면서 미안하다고 상처를 핥았겠지. 리유가 강아지…… 헉! 따, 딱히 리유가 내 상처를 핥는다거나 그런 변태 같은 상상은 안 했어!! 하하. 친구 없이 혼자 놀다보니까 점점 미쳐가는 것 같다. 곧 성빈이가 의료 상자를 들고 와서 과산화수소수로 소독을 해 준다. 으악, 따가워!


“후아아─ 끝이다!”

“아아. 하나의 큰 전투 같았어.”

“정말 고생 많았어. 다치기도 하고.”

“미안, 미안해서.”

드디어, 드디어 끝이 났다! 시간은 거의 저녁이 돼 가는 늦은 오후. 해가 뉘엿뉘엿 지는 게 보인다. 책장이 부서진 탓에 더러워진 방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좀 더 추가됐지만 이럭저럭 정리를 마쳤다. 나랑 성빈이가 대충 체육창고에 짐을 쌓아 놓은 것을 보고 선생님한테 혼나고 다시 한 것도 조금 시간이 추가됐다. 어찌됐든 마음 놓고 모든 짐을 다 정리했다. 나는 기분이 좋아져 운동장을 쳐다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옆에서 선생님, 성빈이, 리유가 한 마디씩 해준다. 리유는 여전히 주인이 다친 걸 걱정하는 강아지처럼 계속 낑낑대며 미안해한다. 이런 건 또 뒤끝 있구나, 리유가. 괜찮다고 아무리 말해도 ‘그치만 나 구하느라…’ 하면서 울상이다. 귀엽네.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불안한 표정이 조금은 가신다.

“다들 정말 고마웠습니다.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기숙사는 언제 들어오게 규율이나 알려 줘야지.”

“에…… 규율이요 헤헤. 그런 게 있나요”

“너는 특별 적용이지.”

“하하하하.”

선생님은 들어오기도 전부터 견제하는 말씀을 하신다. 아아. 하긴, 좀 거시기하긴 하다. 여고 기숙사의 남자애니. 지고 있는 해를 보니 뭔가 가슴이 울렁울렁 하는 기분이다. 목표로 한 일을 마쳐서 그런 걸까. 새로운 희망이 가득하다. 뭔가 조금씩은 풀리는 기분.

친구도 숙소도 없이 홀로 외따로 떨어져 쓸쓸한 나날을 보내던 나였으나 지금은, 이제 사나이 정웅도 어느 정도는 가슴을 당당히 펴고 학교를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숙소도 생겼고, 리유나 성빈이 같은 친구들도 생겼고. 어느 정도 여자애들하고도 잘 얘기하면 얘기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얼른 학교에 가서 다른 애들하고 친해지고 싶은 긍정적인 기분이 막 샘솟는다.


이대로 헤어지기도 그러니 저녁 먹으러 가자고, 저녁은 내가 사겠다고 했다. 리유와 성빈이는 좋다고 따라오고 선생님은 됐다고 하고 기숙사로 들어가신다. 여자애 둘을 양 쪽에 붙이고 저녁을 먹으러 간다. 하하, 정웅도 많이 컸네! 마음이 개운해진 기분이다.


작가의말

슬슬 1권이 중간까지 왔네요... 아, 어디까지나 제 머릿속 가상의 단위지만요... 책이 나온다면, 이 정도에서 1권일까. 하하. 그런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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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05화 - 2 +24 14.01.17 3,474 100 17쪽
17 05화. 크아아아 흑화한다 +12 14.01.17 4,654 124 21쪽
16 04화 - 4 +10 14.01.16 3,771 80 19쪽
15 04화 - 3 +18 14.01.16 3,287 79 18쪽
14 04화 - 2 +16 14.01.15 3,312 73 25쪽
13 04화. 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11 14.01.15 3,736 92 20쪽
» 03화 - 4 +9 14.01.14 3,538 85 20쪽
11 03화 - 3 +7 14.01.14 4,217 127 18쪽
10 03화 - 2 +7 14.01.13 3,881 9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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