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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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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13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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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03화 - 2

DUMMY

어디서 준비하셨는지 사감 선생님은 목장갑 비슷한 면장갑을 준다. 손 다친다면서. 역시, 안 챙겨준다면서 챙겨줄 건 다 챙겨주는 선생님이다. 이런 걸, 전문용어로 “츤데레”라고 하던가? 새삼 고마움을 느끼며 창고로 들어갔다.

“……?”

“뭐 해, 안 빼?”

“저…… 선생님하고 리유는 안 하나요.”

“네가 우선 빼야 우리가 도와줄 거 아냐.”

“맞아 맞아!”

“아 네.”

철컥 하고 가장 위에 있는 책상을 빼는데 선생님과 리유는 가만히 구경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너무도 당당하게 말한다. 아아, 네. 무거운 건 안 들겠다는 말씀이시군요. 하긴, 어떠한 노동력을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이건 그냥 응원 정도로 넘어가자.

리유는 신이 나서 내가 든 것과 똑같은 책상을 빼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다. 다행이 뒤에서 사감 선생님이 받쳐 줘서 넘어지진 않았지만. ‘위험하잖니’ 하면서 선생님은 리유를 어린아이 다루듯 한다. 다뤄지는 리유도 딱히 신경은 안 쓰는 것 같다. 최강의 조합이려나, 저 두 사람. 귀여움 받는 걸 좋아하는 리유와, 귀여운 걸 좋아하는 사감 선생님. 저렇게 둘이 나란히 있으니 꼭 큰언니와 터울 많이 차이 나는 여동생 같기도 하군. 훈훈한 두 미인과 미소녀를 보며, 나는 노비처럼 짐을 나른다.

“후우.”

“겨우 이 정도로 힘들어 하는 거? 남자답지 못하네.”

“무, 무슨 말씀이세요! 잠깐 숨 좀 돌린 거잖아요?”

“그래, 그럼 얼른 날라야지. 이제 겨우 30분 지났다구.”

말없이 짐만 나르니 참 우유도 없이 빵만 씹어 먹는 것처럼 팍팍하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큰 책상을 내려놓고 잠시 한숨 돌리고 있는데 선생님이 와서 등을 툭툭 치며 말씀하신다. 히, 힘든 게 아니니까! 사실 슬슬 힘이 들긴 하는데. 여고에서야 남자애니까 자존심 세운다고 하지만 사실 남자애들 사이에서 그렇게 힘이 세거나 일을 잘 하거나 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냐면, 중간, 음─ 중간 정도일까. 평균 보다는 조금 약한 것 같은데, 어쨌든 뭐. 5-10kg는 될 것 같은 책상과 이런저런 것들을 계속 옮기니 팔이 벌써부터 후들후들 거린다. 몸에선 열이 샘솟는 것 같다. 이래서 일할 때 옷을 벗는구나. 뭐, 불편해서 마이는 일 시작할 때부터 벗긴 했지만.

리유는 여전히 깔깔대며 조그만 짐을 나르고 있다. 뭐, 애초에 리유의 노동력은 그리 크게 기대하지 않았으니. 저런 거라도 나르면 0.5인분 정도 노동력은 하는 거겠지. 사감 선생님은 의외로 또 힘이 센 것 같다. 몸매가 글래머라고 근육까지 많은 건 아닐 텐데, 틀림없이 힐끔 봐도 팔뚝도 나보다 얇고 가녀린데 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무거운 짐을 나르신다. 여자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완력이다. 하하, 설마 노처녀라서 아줌마로 진화하는 중이라 저렇게 힘이 강하신건가.

“무슨 여자가 힘이 이렇게 쌔, 이런 생각 했지?”

“아! 아뇨! 신기하긴 하네요!”

“나도 힘들어. 힘든데. 좀 습관처럼 됐다고 해야 하나. 남들한테 지기 싫어하는 거.”

“……열 일곱 살 짜리 꼬마애한테도요?”

“습관처럼 됐다고 했잖아, 멍청아.”

“아, 네. 죄송합니다.”

이 생각을 선생님이 읽으면 목이 달아나겠다 하는데 근접하게 맞추는 선생님. 아무래도 초능력 같은 게 미약하게 있으신 것 같다. 조금 농담조로 대답하니 선생님은 주먹을 불끈 쥐며 나를 때리려 하신다. 바로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 사죄한다.

“근데 이렇게 기숙사 앞에 놔도 되나요? 물건들?”

“내가 사감이데 뭘 어쩔 거야. 상관없어.”

“아……… .”

교탁 같이 큰 나무 단상을 선생님과 함께 옮긴다. 마주보며 옮기는 상태라, 선생님을 보고 물었다. 선생님은 어두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신다. 아아, 왠지 불안한데. 뭔가 기숙사의 독재자 같은 느낌일 것 같아, 사감 선생님. 사실 사감 선생님에 대해 잘 모르잖아? 몇 번 밖에 못 만나봤고.

선생님은 성인 여성임에도 거의 나와 비슷한 수준의 노동력을 내 주셔서 일이 굉장히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다. 벌써 짐의 1/3을 나른 것 같다. 아직 1시간 30분 정도 했지만. 조금 힘들어서 선생님께 쉬면 안 되냐고 하니 그러라고 한다.

아아. 죽겠네. 벌써 허리가 뻐근하려 한다. 팔은 후들후들 떨리려 한다. 아직 반 넘게 남았는데. 게다가 내놓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걸 도로 다 정리해서 체육창고에 넣어야 되는데. 모르겠다. 일단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잖아. 쉬는 동안 얘기하고 놀아야겠다 하고 리유를 살피는데 리유가 없다.

“응? 어딨어 리유?”

“……”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영 보이질 않는다. 애초에 일할 때 별 도움이 안 돼서 그리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어딜 간 거지. 내 혼잣말에도 별 대답이 없던 리유는 잠시 뒤 ‘여기~’ 하면서 목소리가 들린다. 창고 쪽이다.

“뭐하고 있─ 으아아!”

“히히히! 왕가슴!”

밖에서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있던 난 리유의 목소리를 듣고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른 의미로 경악했다. 리유가, 가슴이 빵빵해져선 힐쭉 웃고 있다. 근데 그 빵빵하다는 게 너무 부자연스러워서, 누가 봐도 공 같은 걸 넣었다는 걸 알 수 있을 수준이다.

“뭐하는 거야!”

“너 가슴 큰 거 좋아하잖아.”

“아니야!! 누가 언제 그래!!”

“그게, 선생님 보고……”

“아니야, 아니야!! 로리 거유는 사도라고!! 아니, 그게 아니라!”

“응??”

리유는 뻔뻔하게 말한다. 내가 언제 그런 기준을 세워 줬다고! 흥분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본심이 나와 버리고 말았다. 물론 전문 용어(?)를 알아들을 리 없는 리유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이라는 듯 나를 빤히 올려본다. 정말 어린애 같은 얼굴과 빵빵한 가슴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뭔가 죄를 짓고 있는 기분. 얼른 리유를 다그친다.

“어쨌든 공 빼! 그거 더러운 거잖아!”

“네가 만족한다면, 이런 더러움 정도는……”

“의도가 대체 뭔데!! 얼른 빼라니까!”

“흣. 으앙! 엄청 더러워! 옷 까매졌어!”

“그러니까! 어휴.”

리유는 나를 보고 웃으며 말한다. 엄한 대사까지 치면서, 자기 딴에는 최대한 요망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는 것 같다. 실제로는 전혀 요망하지 않지만. 도리어 리유는 옷에 먼지가 잔뜩 묻어 더러워진걸 보고 울상이 된다. 으이구, 그럴 줄 알았다. 왜 그렇게까지 나를 골탕먹이려고 안달인거지. 나 골려 먹는 게 그렇게 재미있나? 나로서는 어떻게 해줄 수가 없어서 선생님을 불러야겠다. 그나저나 다행이네. 앞에 나도 모르게 한 말을 선생님이 못 들어서. ‘로리거유’ 이 발언을 들었다면…… 어휴.

“너 그런 취향이었구나. 그럼 베이글녀는 별로 안 좋아하겠구나.‘

“에이, 주는 걸 왜 마다하겠─ 가 아니라! 무슨 말씀 하시는 거에요!”

“어머. 응큼하긴. 누가 준다고 했니.”

“주긴 뭘 줘요!! 아 좀 그런 야한 말 좀 그만하세요!!”

“이 정도가 야한 말이야? 난 야하게 말한 적도 없는데.”

“어쨌든 좀 그만 해주세요!”

하지만 어째서일까, 당연하게 선생님은 내 말을 들었고 나는 난감해하며 또 선생님의 패턴에 휘말리고 있다. 아아, 안 되는데. 리유는 옷이 더러워졌다며 선생님한테 징징대며 매달린다. 선생님은 냉정하게 ‘참 도움이 안 되는 애구나.’ 하고 말하신다. 어이어이, 너무 직설적이잖아. 리유는 그 말에 또 ‘도움 되고 싶었는데……’ 하면서 울상이 된다. 뭐, 그 말 그대로 그리 도움이 되진 않는 리유다. 선생님은 옷을 빨아준다면서 리유를 방으로 데리고 간다. 아하. 혼자 일하기도 그렇고, 난 밖에서 책상에 기대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참 평화롭구나. 기숙사는 약간 학교와 떨어져 있어 학교 같은 느낌을 그나마 덜 받게 된다. 그래봤자 눈앞에 펼쳐진 너른 운동장과 멀리 학교 교사가 보여 어디까지나 ‘덜’ 받게 되는 거지만. 그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리면 나름 괜찮다. 야트막한 산이 있어서. 풀숲이 우거져 있어 절로 푸른 느낌이다. 아직은 초봄인지라 그나마 나무와 풀이 듬성듬성 있지만, 여름이 되면 엄청 우거지겠지. 나중에 저기로 봄나들이 가면 좋겠다. 숲 좋잖아.

“웅도? 여기서 뭐해?”

“엇.”

바깥을 보며 느긋하게 쉬고 있는데, 뒤쪽에서 가냘픈 목소리가 들린다. 익숙한 목소리에 뒤돌아보니 서 있는 여자애는 성빈이. 기숙사에서 나오고 있다. 어째서?

“기숙사 살았어?”

“응. 학교로 공부하러 가고 있었는데. 넌 여기서 뭐해? 이것들은 다 뭐고?”

“아, 그게.”

성빈이는 웃는 낯으로 내 쪽으로 오며 말한다. 늘 단정한 교복차림의 성빈이만 봤는데 사복을 입은 성빈이의 모습도 산뜻하니 괜찮다. 적절한 분홍빛 니트와 면바지를 입었다. 그래, 여자애가 이렇게 단정하고 깔끔하게 입어야지.

간단하게, 지금 사정을 성빈이에게 설명했다. 마음 착한 성빈이는 내가 여기 산다는 말에도 다른 여자애들처럼 놀라거나 질색을 하거나 하진 않는다. 도리어 ‘그럼 자주 볼 수 있겠네?’ 하면서 방긋 웃어준다. 아아, 얼마나 착한 여자애인가. 계속 냉소적인 말투로 나를 질타하거나 혹은 변태적인 말로 나를 농락하는 사감 선생님이나, 어린애처럼 징징대기나 하고, 왠지 모르게 자기가 귀여운 걸 잔뜩 어필하려는 리유 사이에서 답답하게 숨통이 막히던 난데 이런 천사 같은 성빈이를 보니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성직자 같은 느낌이랄까. 치유계?

“그럼 나도 도와줄까?”

“어. 그래도 되? 공부하러 가는 건?”

“으응, 그거야 뭐 내일 해도 되고. 너 일주일동안 찜질방만 전전했잖아. 그건 건강에도 안 좋으니까, 한시바삐 네 터전을 만들어야지.”

“오, 고마워. 정말 정말 고마워.”

성빈이는 야무진 말투로 말한다. 오오. 정말 이 아이는 성녀 같은 것일까. 미천한 나 같은 남자애에게 너무 많은 배려를 해 주는구나. 벙어리 삼룡이가 아씨를 볼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정말 고마워서 연거푸 고맙다고 말한다. 아직 리유처럼 친하진 않아서 덥썩 손을 잡진 못했지만.

“나 참. 뭐, 여자애들이라도 손은 달려 있으니까. 자, 나르자.”

“네.”

“넵!”

선생님은 곧 리유와 함께 나오신다. 그리곤 합세한 성빈이를 보고 기가 차다는 듯 말한다. 그래도 뭐, 일손이 늘었는데 나쁠 건 없잖아? 한 명이서 시작한 일은 어느덧 네 명이 되어 차근차근히 짐을 나르고 있다.

“은근 인기 많은데, 꼬꼬마? 이러다 나중에 옴므파탈 되는 거 아니야?”

“그럴 리가! 없! 잖! 아! 요! 아오! 뭐가 이렇게 무거워!”

“으흥흥. 무거운 거 들면서 선생님한테 신경질 내는 게 말이 돼?”

“아, 죄송해요. 너무 흥분해서 저도 모르게 짜증을.”

“흐흥, 같이 들자고 하면 될 것 같구.”

선생님은 아까 분명히 ‘나도 힘들어’ 라고 말씀하셨지만 어째 나는 힘들어서 한 마디 말도 잘 못 하는데 선생님은 주저리주저리 잘도 말 하신다. 그것도 날 놀려먹으려는 말들로만. 성빈이는 기본 여자애라 나보다는 무거운 걸 잘 못 들지만 리유의 어린애 근성과는 차원이 달라서 훨씬 도움이 된다.

리유는 한참 큰 선생님의 츄리닝을 입어서(그것도 선생님은 작아서 못 입는다는 건데.) 온통 옷이 헐렁헐렁해 안 그래도 도움 안 되는 노동력이 가치가 더욱 떨어졌다. 지금은 숫제 그냥 노닥거리는 걸로만 보인다. 애초에 사기 증진 용도(?)로 데려온 리유니, 그러려니 한다.

계속 하다 보니 어느새 창고 짐의 절반 넘게 꺼냈다. 생각보다 진행이 빨라서, 잘하면 오늘 안에 짐을 다 뺄 수 있을 것도 같다. 다 여러 사람들이 도와줘서 이뤄낸 성과지. 종류도 양도 터무니없이 많은 짐들을 가지런히 기숙사 앞에 놓으니 이건 이것대로 참 장관이다. 어수선한 광경이 꼭 이사 가는 집 앞 같은 분위기랄까. 뭐, 짐 나르는 사람들이 흔한 대학생 같은 이삿짐센터 알바가 아니라 여자애들인게 좀 이상해 보이긴 하지만.

“쌤 이거 뭐에요?”

“응, 꼬꼬마 여기로 입주하거든.”

“꼬꼬마? 엑, 설마 쟤……?”

“어. 맞아. 너희가 생각하는 그 예상이.”

“에에엑~~”

“기분나빠!”

“남자애잖아요!”

“기숙산데!”

“얘, 듣겠다.”

“깔깔 까르르”

한 무리의 여자애들이 계단에서부터 시끌벅적하게 시끄럽게 떠들며 내려온다. 그리곤 입구에서부터 엄청 시끌시끌하게 기숙사 앞에 차려진 진풍경을 보고 사감 선생님께 물어본다. 선생님은 특유의 쿨한 말투로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 여자애들의 반응은 예상한대로 질색을 표한다. 여자애들은 힐끔힐끔 나를 보며 저들끼리 까르르 웃는다. 비웃는 게 아니라 그냥 자기들끼리 웃는다는 것 정도는 알지만 그래도 기분이 썩 좋진 않다. 단지 남자애란 이유만으로, 이렇게 배척 당해야 되는 거야, 난?!

“괜찮아, 방 들어오면 더 심해질 거니까. 이 정도로 그런 표정 짓지 마렴.”

“……정말 도움이 되는 위로네요.”

“그, 다들 어색해서 그런 걸거야. 놀리는 건 아니구.”

“응, 알아. 성미하고 지선이하고 얘기해봐서 아니까.”

옆에서 선생님이 내 어깨를 툭툭 쳐주며 진솔한 위로를 해준다. 정말 마음에 상처가 되는 위로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선생님은 사실 날 강하게 키우려고 이러시는 거겠지? ……사실 그런 거 없고 그냥 나 놀려먹으려는 거 아닐까. 그게 정답인 것 같은데.

가만히 성빈이가 옆에서 진정한 치유가 되는 말을 해준다. 그건 성미·지선이 건으로 잘 알고 있으니까. 그 마음을 알게 해준 건 성빈이니까. 리유는 옆에서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 후훗. 그래도 이렇게라도 나랑 같이 어울려주는 여자애 두 명이 있으니 마음이 뿌듯하구먼.


─“다 했다!”

“우와아아!”

“다 하긴, 이제 정리하는 게 일인데.”

마침내 짐을 다 뺐다. 나는 텅 빈 방 안에서 기쁨의 환호를 내뱉었다. 옆에서 선생님이 냉소적인 말 한 마디로 나의 감상을 무참히 깨부숴 버리지만. 방은 생각보다 넓어서, 처음 방을 보고 상상했던 면적보다 훨씬 넓다. 이만하면 원래 내 방하고 그리 차이가 심하게 나지 않을 정도 크기이다. 딱 한 사람 살 만한 방 정도. 물론 바닥은 엄청나게 더러워서 차라리 장판을 다시 까는 게 나아 보일 정도다.

“자, 이제 이 바닥 정리를─”

“그 전에 저것들 정리를 해야겠지? 저렇게 내놓고 전시할 일 있어?”

“아, 그렇네요. 그럼…… 다시 목표, 창고다!”

“와아아아─!”

“후훗.”

선생님의 말에 나는 다시금 전열을 정비하고 적진으로 나서는 장수처럼 비장하게 말한다. 리유는 장단에 맞춰 함성을 지르고, 성빈이는 그런 리유가 귀여운지 방긋 웃는다. 기세 좋게 강당 쪽으로 향하지만 사실 체육 창고가 어디 있는지는 잘 모른다. 선생님은 ‘네가 그렇지.’ 하고 말씀하시며 다른 길로 인도한다.

강당 뒤 으슥한 곳, 굉장히 낡아 보이는 건물. 양철 지붕은 낡아서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고, 물 흐르는 난간 역시 녹슬어 큰 구멍이 뚫려 있을 정도로 낡았다. 문조차 뻘건 녹 자국이 있을 정도로 낡은 건물이다. 애초에 벽돌로 지은 건물이 아닌, 컨테이너라고 해야 할까 그런 형식의 건물이다.

“여기가 체육창고에요?”

“그렇지. 여고에서의 체육 과목 입지와 비슷한 처지지?”

“그렇네요. 어디.”

잘 열리지 않는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갔다. 기숙사의 내 창고 방은 비교도 못할 정도로 뿌옇게 먼지가 인다. 마른기침을 몇 번 하고 창고를 살피니 생각보다 여러 물건들이 있다. 이 정도 공간이면 다 들어가지 못할 것 같은데.

“좀 좁은데요. 마법의 공간 활용을 해야 하나. 그래도 좀 역부족일 것 같은데……”

“다 안 들어가면 애초에 빼자고 하지도 않았지.”

“네?”

선생님은 의미 모를 말을 하시더니 성큼 창고로 들어가신다. 그러더니 안쪽의 벽으로 걸어가신다. 아무것도 없는 회색 벽인데. 하고 생각한 순간 선생님은 벽을 붙잡고 쭈욱 미신다. 삐걱거리며 천천히 열리는 문.

“뭐, 뭐에요!? 비밀 문??! 이세계로 가는 차원의 문?!”

“오, 차원의 문! 멋있어!”

“……그럴 리가 있겠냐. 바보 녀석들. 그냥 문이야. 먼지 때문에 잘 안 보이지만.”

“헤에.”

마법의 문이 정말 있는 걸까. 벽하고 너무 똑같이 생겨서 문인지 어쩐지도 몰랐다. 열린 문 쪽은 아예 텅텅 빈 공간이다. 오, 이 정도면 충분히 옮길 수 있겠다.

“자, 그럼 여기부터 차곡차곡 옮기면 되겠다. 다들 일하러 가자!”

‘꼬르륵.’

“웅, 나 배고파.”

“아, 어디. 그러네. 점심 때 다 됐어.”

나는 기세 좋게 말하곤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발걸음을 떼자마자 바로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난다. 묘하게 창피해지려는데 장단을 맞춰준 건지 아니면 진심인지 리유가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아직 12시 조금 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배가 고프다. 하긴, 겨우 라면 1개 먹고 아침나절부터 힘 쓰는 일 했으니 배가 안 고프면 그게 이상하지. 성빈이에게도 ‘배고파?’ 하니 성빈이도 아침을 안 먹어서 배고프다고 한다. 리유야 말할 것도 없고.

“좋아, 그럼 밥부터 먹자!”

“꼬꼬마가 쏘는 거야?”

“넵? 아, 선생님, 왜 그러세요…… 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여기선 당연하게 더·치·페·ㅇ…”

“찌질해. 남자새끼가.”

“크헉!”

“에에~~ 찌질해! 찌질해!”

선생님의 호쾌한 한 마디에 나는 바로 넉다운 됐다. 옆에서 리유까지 같이 부추기며 말한다. 그게 더 찔린다. 크읏. 그 부분만큼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남자의 자존심이거늘! 나라고 안 그러고 싶어서 그러겠냐구요! 5일간의 찜질방 생활로 용돈이 바닥을 보이는데! 치명적 마음의 상처를 입은 나는 깊은 슬픔을 느끼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선생님은 여유로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말한다.

“꼬꼬마는 참, 이런 반응이 너무 귀여워서. 선생님이 사줄게. 중국집 갈래? 난 탕수육 먹고 싶은데.”

“와, 정말요! 탕수육! 탕수육! 진짜 진짜 맛있는데!”

“선생님 사주시는 거에요? 처음 봐요, 선생님이 사 주는 거.”

“응, 여자애들은 잘 안 사주지만─ 꼬꼬마는 이래뵈도 남자애잖니. 본인 말로는 아무리 그래도 달려♂있다고 하는데.”

“으아아아! 무슨 말씀 하시는 거에요! 아아아악!”

선생님은 다시금 내 기운을 북돋는 말씀을 해 주신다. 대신 리유나 성빈이가 들어선 안 되는 말도 하신다. 애써 막으려고 시끄럽게 굴어서 겨우 애들은 듣지 못한 것 같다. 정말, 난감해서 살 수가 없다니까. 다들 우르르 선생님 자동차로 향했다.


작가의말

연참을 해서 그런가, 보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진 것 같은 기분입니다. 굉장히 즐겁네요. 한 편으로는 전 작품까지 꾸준히 댓글을 달아주시던 독자분들은 보이지 않아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기도 합니다. 작품의 방향성이 너무 바뀌어서 읽으시지 않으시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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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04화. 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11 14.01.15 3,736 92 20쪽
12 03화 - 4 +9 14.01.14 3,539 85 20쪽
11 03화 - 3 +7 14.01.14 4,217 127 18쪽
» 03화 - 2 +7 14.01.13 3,882 9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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