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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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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2,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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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1.22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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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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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글자
19쪽

07화 - 4

DUMMY

“이따 열람실 갈래?”

“어? 열람실?”


여자애랑 같이 걸어가면서 매너도 풍류도 없이 혼자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며 걷는 나. 성빈이는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없이 지켜보다 가만히 한 마디 한다. 나는 그제야 정신이 퍼뜩 들어 ‘이러니까 네가 여자친구가 없지!’ 하는 딴 생각을 하며 대답했다. 으이그, 말하면서도 또 다른 생각을 하다니. 이러니까 여자친구가 없지!


“열람실? 나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에엣. 왜, 좋은데. 공부 하는 분위기 때문에?”

“아니… 2층 이상 올라갈 때마다 선생님한테 허락 맡고 올라 가야 하는 특별 규정이 있어서.”

“아… 그런 게 있었어? 어쩐지.”


성빈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열람실은, 기숙사 4층에 있는 크고 아름다운 공부방 같은 것이다. 교실 하나보다 큰 공간인데. 책상도 의자도 학교의 그것보다 훨씬 질이 좋다. 거기다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쳐 있기 때문에 공부하기에는 안성맞춤일 것 같다. 하지만 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이유는 위에 설명한 선생님 탓이 크지만. 근데 어떻게 이리 잘 아냐고? 아, 한 번은 올라가본 적이 있네. 선생님이 시설물 설명해줄 때. 딱 보기에도 굉장히 공부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던데. 이래서 괜히 기숙사 들어오는 기준이 성적순인 게 아니구나 싶다. 기숙사를 들어오는 우선순위는 역시 제 1은 학교에서 집까지 떨어진 거리이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제 2의 요인이 성적이다. 그래서 기숙사 애들은 대부분 성적이 좋은 편이다.


“열람실에선, 뭐 하려고?”

“열람실에서 뭐 딱히 할 게 있겠어? 공부 하는 거지.”

“에… 하하, 난 끝나면 그냥 딱 끝내는 스타일이라.”


성빈이는 내 질문에 방긋 웃으며 대답한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이 되어 억지웃음을 짓고 대답했다. 지금도 충분히 야자까지 하고 돌아가는 길인데 어째서 열람실까지 올라가서 공부를 이어 해야 하겠는가. 공부를 못 해서 나머지 공부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이미 질릴만큼 충분히 했다는 생각이 들기에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성빈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른스런 웃음을 지으며 나른 쳐다본다.


“그게 아니라, 공부하는 척 하면서 얘기하려고 했는데.”

“아, 그래. 그런 거면 뭐, 얼마든지. 근데 그래도 되? 혼나거나 그런 거 없어?”

“선생님이 안 오시는 걸. 그래도 3학년 언니들 많아서 조용한 분위기이긴 하지만.”

“아 그래.”


성빈이가 눈을 찡긋하며 말하자 난 그제야 알아들었다. 아, 이런 멍청이! 여자애 쪽에서 먼저 말할 때까지 알아채지 못 하다니. 이러니까 여자친구가 없지! 떠드는 거라면, 당연히 환영이다. 성빈이랑은 수업시간에 쪽지로 필담을 나누는 것만으로 재미있는 사이니까.


”희세에 대한 거, 얘기하고 싶어서.”

“아하. 그렇다면 더더욱 가야 겠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제안은 리유가 했지만 정작 관심 갖고 해결하려 하는 건 성빈이가 훨씬 큰 것 같다. 나보다도 더 의욕적인 것 같다. 하긴, 희세도 그렇고, 성빈이도 서로 친한 친구라고 여기는 것 같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기숙사로 들어간다.




“어머, 꼬꼬마가 어쩐 일로?”

“고, 공부 좀 하려구요.”


기숙사의 입구, 나와 사감 선생님 각각의 방 앞.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 참 수식어도 많네. 성빈이는 기숙사 입구에서 ‘그럼 이따 봐─’ 하곤 쪼르르 종종걸음으로 계단 쪽으로 간다. 나는 평상시처럼 기숙사 입구 난간에 기대어 몽둥이를 들고 정겹게(?) 사생들을 맞이하고 있는 사감 선생님 앞으로 걸어갔다. 선생님은 씨익 웃으며 안경을 올리며 나를 반긴다. 조명이 없는지라 주위가 어두워 선생님 얼굴이 어둡게 보여 더욱 위압감이 느껴진다. 나는 괜히 겁을 먹은 것처럼 주볏거리며 선생님에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저, 여, 열람실 좀 이용하려고 하는데요… 이따가 점호 끝나구요.’ 하고 궁색하게 말했다. 선생님은 특유의 비웃는 것 같은 미소를 띠고 나를 지그시 쳐다보며 묻는다. 어째 말이 더듬으면서 나온다. 다, 당당하게! 실제로 공부 하러 올라가는 거잖아! 공부하는 척이겠지만. 선생님은 기대고 있던 엉덩이를 난간에서 떼고 자세를 바로 한다.


“요즘 되게 잘 나가던데. 여자애들하고 얘기도 많이 하고. 여자애들한테 평판도 좋아진 것 같고. 여자애 두 명 꼭 끼고 다니고.”

“엣… 그래요? 평판 좋아요?”

“아니. 거짓말. 다 변태라고 하더라고.”

“아아…”


선생님의 말에 나는 반짝 표정이 좋아져서 물어봤다. 하지만 선생님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말한다. 그 냉정한 말투에 나는 다시금 좌절하게 된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예전 막장 이미지에 비하면. 선생님은 ‘후후’ 하고 웃으며 입구에서 기숙사 건물 안, 그러니까 선생님 방 바로 앞으로 들어가신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공부는 뒷전이고 사실 떠들려는 거지? 그… 누구더라. 성빈이? 걔랑.”

“……혹시 독심술 같은 거 익히셨나요?”

“후후, 척 하면 척이지…”


선생님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말씀하신다. 나는 순간 부정하려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냥 솔직하게 대답했다. 저번에 서로 선물을 교환하고 난 뒤론 선생님이 한층 나한테 더 부드럽게 잘 대해주시기에, 직접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잘 해주시기에, 그냥 솔직하게 얘기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 그렇게 했다. 선생님은 어른의 웃음을 지으며 귀엽다는 듯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너무 떠들지는 마. 3학년 애들 스트레스 받으니까. 너희의 미래이기도 하니까, 되도록 조용히 해. 정 떠들고 싶으면 열람실 밖에 쉼터 있으니까 거기서 떠들든가. 떠드는 것 가지고는 뭐라 안 하니까. 알겠지?”

“넵.”

“그럼, 뭐 더 볼 일 있어?”

“아… 오늘따라 예뻐 보이시네요.”

“개소리 집어쳐, 어디서 아첨질이야. 때끼한다, 들어가?”

“네, 넵!”


선생님의 자애로우신 해결방안에 나는 감명 받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더 할 말이 없어 적당히 선생님 외모를 찬양하려는데 그런 거 싫어하시는 선생님이 강한 어투로 훈계하신다. 나는 90도로 인사한 뒤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


점호가 끝난 뒤의 기숙사. 조용하다. 내 방에 혼자 가만히 있으면, 위층에서 떠드는 북적북적한 소리와 애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쿵쾅쿵쾅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하지만 점호가 끝난 후에는 굉장히 조용하다. 2층, 3층을 지나 4층까지 올라가는데, 괜히 계단 탁탁 올라가는 소리가 신경 쓰일 정도로 조용하다. 우으, 이거 뭔가… 무서울 정도로 조용한데. 4층까지 올라와서 조용히 작은 복도를 지나 열람실에 도달했다.


열람실은 조금 무시무시한 분위기다. 여기저기 머리를 똥머리로 묶은 우악스런 여성 동지들이 무서운 기세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들의 눈은 하나라도 더 많은 글자를 읽고자 번뜩이고 있었으며 그들의 손은 한 글자라도 더 많은 글씨를 쓰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이나 예쁨, 귀여움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야말로 야생 상태 그대로의 모습. 개중에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피부가 극도로 안 좋아져 기미, 주근깨, 여드름 등의 질환을 보이는 여성 동지들도 보인다. 게다가 또한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으로 인한 비만 증세를 보이는 여성 동지도 눈에 띈다. 여러모로 ‘과연 이 사람들이 2년 전에, 아니 불과 1년 전만 해도 아름답게 청춘을 누리던 같은 고등학생이 맞나’ 싶을 정도의 외양이다. 그렇다, 그들은 고3 누나들. 무시무시한 존재들이다.

어찌 보면 불쌍하고 애처로울 정도다. 인터넷에서 ‘성형괴물’ 어쩌고, ‘의란성 쌍둥이’ 어쩌고 하며 외모지상주의를 까내리는데 바쁜데 여기는 전부 머리를 바싹 틀어 올리고 안경을 쓰고 같은 책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공부를 하고 있어 다른 의미로 같아 보인다. 나중에, 그 예쁘고 참한 성빈이나 희세도 저렇게 되는 걸까. 내가 등장하면 아무리 내가 한낱 소시민 같은 폼의 남자애라 해도 ‘남자애’ 니까 깜짝 놀라며 옷매무새라던지, 조금은 단정을 하는 다른 여자애들과는 달리 저 누님들은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아니, 내 쪽은 쳐다도 보지 않는다. 오로지 책에만 신경이 쓰여 있다. 우와, 무서워. 진짜 무서워, 이 누나들! 엄청 독해!


저런 지경이니, 열람실에선 감히 떠들 엄두도 나지 않을 것 같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처절한 복장과 처절한 외모로 공부하고 있는 누나들이 열람실의 절반이다. 거의 대부분의 고3 누나들이 다 올라온 것 같은 느낌. 기숙사는 기본적으로 1학년이 많고 2학년은 중간, 3학년 누나들은 거의 없는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 숫자면 거의 다 올라온 셈이다. 보면 볼수록 경이롭다.


“…….”


잡생각은 그만하고, 슥 둘러보며 성빈이를 찾는데 저 쪽 구석자리에서 성빈이가 입모양으로 ‘여기 여기!’ 하면서 손짓한다. 과연 성빈이 옆 쪽 끝자리가 비어있다. 그 쪽으로 가서 앉았다.


“엄청난데.”

“언니들?”

“응.”


나는 누나들의 기세에 압도당해서 조금 작은 소리로 말했다. 성빈이는 고개를 들어 누나들을 보더니 피식 웃는다. 그러더니 가느다랗게 한수을 내쉬고 ‘우리의 미래야…’하고 자조적으로 말합니다. 그렇긴 하네.


“희세 문제에 대해서, 좀 생각해봤는데.”

“생각해봤는데?”

“응, 그게…”


내 맞장구에 성빈이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대답한다. …좀 뜬금 없었나. 말 끼어든 것 같아서 어색하다. 하지만 성빈이는 잔잔한 미소를 띠고 계속 말한다.


“아무래도 너 때처럼 「주동자」를 찾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

“응, 아무래도 그렇지.”


성빈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따돌림이란 건 모든 애들의 암묵적인 동의를 받고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애들이 범인인 건 아니다. 틀림없이 그 분위기, 그 생각을 주동하는 몇몇 애들이 있고 그 몇몇 애들 중에서도 특히 그 생각을 가장 강하게 지니고 있는 주동자가 있을 것이다. 내 때를 예로 들자면 그런 게 희세였고. 실제로 희세가 소문을 더욱 크게 냈다고 하고. 그 때 내가 리유 덮치는 걸 본 애들 말에 따르면, 사실 셋은 그냥 자기들끼리 웃기는 말로 하고 있었는데, 그걸 들은 희세가 ‘그거 엄청 성희롱 아니야?’ 하면서 의혹을 퍼뜨려 그리 됐다고 한다. 뭐, 내 앞에서 대놓고 말하기 미안하니까 어느 정도 자기들 죄를 축소하고 왜곡해서 말한 것도 있겠지만 전말이 그렇다니.

그런 주동자를 찾아 담판을 지으면 일이 훨씬 수월하게 풀릴 수 있다. 나 때와 마찬가지로, 주동자와 본인이 직접, 애들이 많이 보는 데에서 담판을 하여 오해를 푼다면 효과는 더욱 극대화된다. 좋은 소문은 빠르게 퍼지진 않지만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다들 알게 되니까.


“문제는 주동자를 찾아도, 우리가 어떻게 말을 할 수는 없는 거. 희세 본인이 직접 말을 해야 할 텐데.”

“그러게. 그건 어떻게 안 되는데.”


성빈이의 속삭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설령 내가 아무리 빨빨거리며 깝치고 다녀 희세를 모함하는 여론을 만든 주동자를 찾아낸다 해도, 그 애에게 ‘희세 괴롭히지 마!’ 하고 말한다면, 그 애가 나에게 ‘네가 뭔데. 네가 뭔데 참견이야!’ 하고 말해버린다면? 그럼 정말 할 말이 없어진다. 거기다 역으로 그 애가 또 소문을 안 좋게 내서, 예를 들자면 ‘나희세 그 년은, 지는 나한테 한 마디도 못하면서 다른 애 시켜다가 이렇게 하더라?’ 이런 소문을 낸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희세의 이미지만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희세는 다시금 나를 불러다 정말 때리거나 정말 폭언을 하거나 하겠지. 아아, 악순환인데, 아무리 봐도.


“그래도 일단 찾아는 봐야될 것 같아. 누군진 알고 싶거든.”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내 말에 성빈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조용조용 말하느라 괜히 몸도 숙이고, 서로 마주보고 작게작게 말하니까 이거 여간 부끄러운 게 아니다. 게다가 조금 눈치 보이기까지 하고. 몸을 들어 주위를 보니 어째 다들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다. 이렇게 떠드는 건 우리밖에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나가자.”

“응? 왜?”

“…좀 너무 눈치 보여서.”

“아, 그래. 그럼.”


내 말에 성빈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일어날게’ 하고 일어난다. 같이 나가면 또 그건 그것대로 눈치 보이니까. 성빈이가 나가고 잠시 뒤에 나왔다.




“후아─ 답답해 죽는 줄 알았어.”

“하하. 그렇게 눈치볼 건 없는데.”


열람실 앞에는 작은 탁자가 두 개 정도 있고 의자도 있다. 탁자는 그, 편의점 앞에 우산 꽂고(?) 앉을 수 있는 것 같은, 접이식 작은 탁자. 의자도 적나라하게 ‘패밀리마트’ 라고 적혀 있는 것이다. 또 어디서 주워 오셨나. 여긴 공부하다 잠깐 머리 식히고 쉬라고 있는 곳인지라 뒤쪽 벽에 음료수 자판기까지 하나 있다.

시원한 데다, 아무도 없어 얘기하기엔 훨씬 편하다. 그렇다고 대놓고 깔깔 까르르 큰 소리로 떠들 순 없지만. 집에서 보내온 편안한 축구 유니폼을 입고 있는 나. 마찬가지로 편해 보이는 니트와 무난한 바지를 입고 있는 성빈이. 이 정도 친밀도로 이 정도 편한 복장으로 서로 편하게 마주보고 얘기할 수 있는 건 기숙사라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아, 물론 정상적인 학교라면 기숙사가 남녀 혼숙이 절대 불가니까 이런 경우는 발생하지 않겠지만.

나는 조금 답답한 마음에 ‘희세 얘기는 잠깐 접어두고 다른 얘기나 하자’ 하고 말했다. 성빈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응, 희세 얘긴 내일 해도 되니까.’ 하고 말한다.


그 뒤로는 뭐, 잡다한 얘기를 주고 받았다. 성빈이는 잠자코 내 얘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어서 얘기하기가 좋다. 그리고 성빈이도 마냥 듣기만 하고 말수가 없는 건 아니고 은근 말하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어서, 내 얘기를 잘 들어주다가도 적당한 타이밍에 자기 얘기를 막 꺼내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수다를 떨었다. 사실 난 남자애 치곤 수다 떠는 걸 좋아하긴 한다. 생긴 거랑은 다르게. 그리고, 남중에서도 남자애들도 엄청 떠들어 대니까. 심각하게 과묵한 애 아니라면 다들 엄청 떠들어대서, 물에 빠지면 주댕이만 둥둥 떠서 떠들고 다닐 것이라는 한 선생님의 평도 있었다. 그렇기에 성빈이와의 수다는 꽤나 즐거운 시간이 됐다. 의기투합하여 장시간 얘기를 나누니 시간이 꽤 지났다.


“웅도는… 희세 같은 여자애 좋아?”

“어, 어? 그런 건 왜 물어봐, 허허.”


얘기하다 어떻게 주제가 ‘좋아하는 이성’ 에 대한 주제로 바뀌었다. 슬쩍 내 눈치를 보며 물어보는 성빈이. 근데 갑자기 희세는 왜 나오는 건데.

희세 귀엽지, 나도 좋아해. 얼굴도 예쁘고, 목소리도 예쁘고, 무엇보다 가슴이, 이야… 엉덩이가, 이야…… 꿀꺽! 스읍! 어우, 뭐라는 거야. 하지만 그걸 성빈이 앞에서 말했다간 영락없이 변태 같기에, 그리고 솔직히 다른 여자애 있는데서 다른 여자애 칭찬하기가 좀 그렇잖아. 성빈이는 조금 아쉬운 것처럼 말한다.


“희세 스타일 좋잖아.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고. 남자애들이 좋아할만한 스타일 아닐까 싶어서…”

“으응, 물론 예쁘긴 하지만, 나는 뭐랄까. 그런 스타일은 너─무 지나치다고 해야 하나. 난 적당한 게 좋아. 예를 들자면… 너 정도? 그 정도가 딱 적당하지 않나 싶어.”

“…내가 겨우 적당한 수준이야? 희세는 지나칠 정도로 예쁘고?”

“아,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오해야 오해! 그, 맛이 다르다는 거지! 각자의!”

“……변태. 무슨 맛으로 표현한데?”

“아아, 아아아… 죄송합니다.”


대화의 결론은 내가 변태라는 것이다. 아, 그 정도 선에서 끝난 것으로 감사해야지. ‘적당’을 가슴에 대입해서 그걸로 꼬투리 잡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변태가 되니까. 뭐, 성빈이 가슴이 딱 적당하긴 하다. 뭘 당연하게 말하는 거야?!!


“그럼 너는 어떤데? 네가 좋아하는 스타일 남자애는?”

“나? 나, 나는…”


왠지 오기가 생긴 나는 성빈이에게 질문했다. 성빈이는 순간적으로 흰 볼이 왈칵 붉어지며 머뭇거린다. 그런 성빈이를 보며 귀엽다는 생각과 동시에, ‘아 여자애한테 괜한 걸 물어봤나’ 하는 후회도 든다. 이놈의 입이 문제지. 이러니까 여자친구가 없지!


“나는… 솔직히 외모 보다는 성격을 많이 봐.”

“흐음─ 그래도 키 크고 잘 생긴 남자가 좋잖아.”

“나는… 자기 일보다는 다른 사람들 일에 더 열의를 다하고, 그걸 자랑삼지 않아 하고, 실은 누구보다 따듯하면서 아닌 척 하고, 좀 부끄러워하는 면도 있지만, 강한 척하려고 객기 부리면서도 속은 약해서, 그치만 그래도 성실하고 착한 그런 남자가 좋아. 무뚝뚝한 듯하면서도… 실은 정의롭고 착한, 그런 남자애.”

“헤에. 그러기도 힘들 텐데.”


성빈이는 마치 꿈결을 헤메는 듯한 눈빛을 하고 내 눈을 피한 체 말한다. 얼굴까지 발그레한 상태로 그런 말을 하니 정말 이상형을 생각해 부끄러워하는 순수한 소녀의 모습 그대로다. 아아. 그런 걸 전문용어로 「츤데레」라고 하지 않나? 어쨌든 나하고는 거리가 멀구먼. 정의감도, 무뚝뚝함도 없으니. 남 일 관여 안 하려는 것도 있고. 뭐야, 거의 상극이잖아, 성빈이 이상형인 남자애랑. 아아, 이래서 안 생기는구나, 여자친구. 한숨이 절로 나오려 한다. 성빈이랑 한동안 얘기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자정을 넘어간다. 하품을 하는 성빈이를 보고 이만 자러 가자고 했다. 성빈이는 졸린 듯 눈에 고인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책들을 가지고 2층에서 성빈이와 헤어지고 내려왔다.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공부는 많이 하셨나.”

“넵! 아, 네!”

“개뿔, 성빈이랑 떠들기만 했잖아.”

“이젠 기억까지 읽으실 수 있는 건가요!!”

“아니, CCTV. 아주 즐겁게 떠들던데.”

“CCTV 있습니까! 판옵티콘도 아니고!!!”


집에서 몰래 컴퓨터하고 방으로 살짝 들어가는 것마냥 슬쩍 내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사감실 문이 열리며 나지막한 선생님 목소리가 들린다. 선생님은 배시시 웃으며 말씀하신다. ‘아주 사귀어라 사귀어’ 하고 비꼬듯 말씀하시고, 나는 나대로 ‘좀 주무세요! 이렇게 늦게까지 안 주무시면 피부 늙어요! 헉, 죄, 죄송합니다!’ 하고 뒤이은 선생님의 주먹에 명치를 가격당해 고통스러워한다. 아무래도 ‘늙음’ 쪽은 건드리면 안 되는 카테고리였나. 선생님은 ‘한 번만 더 그것과 비슷한 발언을 하면 아주 편안하게 잘 수 있게 잠들게 해줄게♡’ 하고 농염하게 말씀하신다. 너무 무섭다. ‘죄, 죄송합니다!’ 하고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 다음날을 기대하며 잔다. 아니, 그리 기대는 안 되는데. 희세 일… 리유 일… 머릿속이 복잡하다. 꽃피는 학창시절은 언제쯤 펼쳐지는 것이냐. 여고인데 어째 사는 게 더 힘들어…


작가의말

후후후... 사람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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