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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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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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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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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4.01.1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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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글자
21쪽

05화. 크아아아 흑화한다

DUMMY

나는 희세를 힐끔 보며 생각했다. 내가 알고 있는 희세에 대한 정보를.


나희세, 나랑 같은 반. 전교 1등. 입학식 때 학년 대표 연설을 했다. 지금까지 시험이 배치고사밖에 없어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확실히 공부는 잘하는 것 같다. 수업시간에도 곧잘 발표하고 선생님이 시키는 것에도 막힘없이 문제를 풀고, 희세가 푼 문제 중 틀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저 그런 모범생 같지만 희세는 좀 괴물 같은 면이 있다. 뭐랄까, 만능 엔터테이너라고 해야 할까. 공부는 뭐 이미 전교 1등 선언으로 증명된 것이고, 운동도 결코 못하는 것 같진 않다.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은 적당히 튼실한 몸으로, 체육시간 때 기초적인 달리기나 그런 걸 했을 때 굉장히 멋지게 예를 들어서 아이들의 박수를 받았던 희세다. 거기에 희세는 외모마저 뛰어나다. 신은 공평하다던데.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데 얼굴까지 예쁘다. 꼭 화장이라도 한 듯 흰 피부와 붉은 입술이 도드라져 보이는데 확실히 화장한 건 아니다. 고압적이고 기가 세 보이는 강한 인상의 눈매가 좀 드세 보이게 하는 면은 있지만 도리어 그게 더 소녀스럽기도 하다.

무엇보다 도드라지는 건 바로, 희세의 통솔력이라고 해야 될까. 사람을 이끌어 모으는,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다. 희세는. 입학하고 처음 이틀 정도는 어색해서 그런가 혼자 다니는 희세였지만 어느 정도 반에 적응이 된 뒤로는 적극적으로 애들과 친해져서 지금은 아마 반에서 모르는 애가 없을 것이다.

솔직히 누구라고 친해지고 싶지 않을까. 공부도 운동도 잘하는 만능 엔터네이너에, 선생님들한테 예의도 발라서 인기도 좋고, 무엇보다 본인이 처음부터 살갑게 애들한테 대하는데. 예쁘장하긴 하지만 묘하게 고압적으로, 나쁘게 말하면 싸가지 없게(?) 생긴 외모와는 반대로 희세는 반 친구들에게 굉장히 부드럽고 착한 느낌으로 대한다. ……나 빼고.

그러니 인기가 없을 리가 없다. 반장 선거 때엔 희세가 입후보를 하지 않아서 다른 여자애가 뽑혔지만 지금에 와선 반장보다는 거의 희세를 중심으로 반이 돌아간다 할 정도다. 그렇다고 희세가 그걸 이용하거나 여왕처럼 군림하는 건 또 아니다. 도리어 반장하고 가장 친하게 지내고 반장을 가장 잘 도와주는 게 희세다. 반장도 그런 희세를 굉장히 좋아한다.



성적 우수, 품행 단정, 아이들에게도 인기 만점. 허허, 이건 무슨 최종보스인가. 상대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난적이다.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과연 주동자가 희세가 맞는지도 확신이 들질 않고.

특이한 점은 희세의 성향. 이건 지금 발견한 건데, 바로 애들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가 크단 거다. 애들이 있을 때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는 걸 보기 힘든 희세다. 굉장히 사교적으로 움직이며, 아이들과 어울리고 수다를 떨고 무언가 사먹으러 가고, 그런 행동들을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혼자 있을 때엔, 그저 조용히 독서를 할 뿐이다. 이럴 땐 모범생 본연의 이미지이긴 한데.

그러고 보니 학기 초, 아직 애들끼리 서로 어색할 때에도 희세는 가만히 앉아 책만 봤다. 그래서 나도 처음엔 희세가 범생이 같은 애일 줄 알았다. 지금 와선 엄청난 거물이 됐지만. 다시금 이렇게 책 읽고 있는 희세를 보니 그 모습이 참 어색하다. 혹시, 부끄럼 타는 성격? 아니, 그러니까 역으로, 사람들하고 같이 있을 때엔 무엇 하나 두려울 게 없지만, 정작 혼자가 되면 부끄러워지는, 그런 타입. ……근데 내가 지금 희세 타입 걱정할 상황인가. 내 문제가 당장 앞에 들이닥쳐 있는데. 아니지, 희세가 대장이니까! 아니, 희세가 대장인지 어쩐지도 잘 모르겠다니까! 으아아, 어떡하지!


시간이 흘러 반 애들은 속속들이 등교하고, 나는 무심한 표정으로 애들을 쳐다보다 창밖을 보다 했다. 이제는 여자애들의 적개심 어린 시선의 이유를 알기에, 되도록 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당장 머리로는 ‘저 여자애들은 선동돼서 그런 거야. 진심이 아닌 거지. 오해를 풀면 다 성빈이처럼 미안하다고 할 거야.’ 하고 낙천적으로 생각하지만 마음은 아니다. 특히 어제 비수 같은 말을 한 여자애들은 감히 쳐다도 못 보겠다.

희세는 친구들이 오자 금세 책을 덮고 사교적 활동을 개시한다. 아까 전 나와 둘이 있을 때엔 볼 수 없던 행동이다. 뭐, 내 예상이 어느 정도 맞는 걸까. 나 나름대로 명탐정인 듯? 아무 정보도 없이 상황만 보고 눈치로 성빈이의 행동이 거짓된 것이라는 추리도 맞았고, 이제 희세가 최종보스라는 가설만 맞으면 진짜 탐정 해도 될 것 같다. ……친구가 없고 말 한 마디 안 하니 속으로 이런 실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다. 정말, 천하의 정웅도,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안녕.”

“어, 어! 안녕.”

‘끼기기기긱.’

“!”

여자애들과 시선이 마주치면 상처 받을 수 있으니 난 창문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와 나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성빈이. 방긋 웃으며 인사하는 그 모습은 평소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애들이 다 쳐다보고 있는데! 아, 안 돼! 분명 애들이 한통속이라고 생각하고 널 따돌릴 거라구! 아무리 성빈이 네가 이미지가 좋아도! 그런 말을 속으로 생각하고는 있지만 미처 못 하고 있는 사이, 성빈이는 자기 책상을 끌어 내 쪽으로 붙인다.

“이제 원래대로 됐네?”

“어어. 원래 자리로 가야지, 그러면.”

“아아, 그런가? 헤헤.”

성빈이의 말에 나는 1초 정도 여자애들의 눈치를 살폈다. 다들 주목한 상태로 나를 보고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여전히 어제와 같이 적개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지만 일부 애들은 놀란 표정으로 성빈이를 보고 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성빈이 책상을 원래 자리에 놓고 내 책상도 도로 붙였다. 하루 만에 다시 붙었구나, 그 간극도. 나에게 뭐라고 했던 성미의 표정이 볼만하다. 뭐, 놀리는 말은 아니지만.

“안뇽! 웅!”

“응, 안녕.”

“어제는 잘 잤어? 기숙사 처음 들어갔잖아.”

“잠자리가 불편하더라고.”

“헤에─ 혹시 설레서 그런 거 아니야? 위층에 여자애들 잔뜩 있으니까!”

“……그럴 리가.”

그리고 곧 리유가 왔다. 리유의 발랄한 인사와 그걸 받아주는 나의 무심한 듯 시크한 표정에 또 놀라는 여자애들. 뭐, 그렇다 해도 성빈이가 인사했을 때만큼의 파괴력은 나오지 않지만. 하지만 리유가 하는 말에 곧 반 전체가 얼음이 어는 듯한 분위기가 됐다. 야이…… 그런 말 해 버리면 내가 또 이미지가 뭐가 되냐! 리유가 그런 것까지 생각하고 말했을 리는 없고, 그냥 그런 분위기를 파악하는 눈치가 없어 그런 거겠지. 애써 여자애들의 눈초리를 무시하고 리유와 얘기했다.



수업시간. 어제만큼 심리적 부담이 큰 건 아니지만 오늘은 다른 이유로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주동자에 대한 것 때문에. 희세가 맞을까. 아닐까. 명확하게 확신이 들질 않는다.

“?”

「딴 생각 해? 수업 집중 안하구!」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무언가 옆구리를 꾹 찌른다. 흠칫 놀라 옆을 보니 성빈이는 시치미를 뚝 때고 앞을 보고 있다. 내 교과서 위를 보니 쪽지가 놓여 있다. 저번에 하던 것과 같구나. 쪽지엔 성빈이의 예쁜 글씨체로 써 있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와 미소를 머금고 「주동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 라고 써서 성빈이의 자리 위에 놓았다. 성빈이는 여전히 시치미를 때고 열심히 수업을 듣는 모범생의 얼굴로 수업을 듣는다. 그러다 힐끔 책을 보는 척 책 위의 쪽지를 보더니 다시금 책 위에 필기를 하는 것처럼 쪽지에 글을 적는다. 이야,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데. 이러고 많이 놀았나 보구나, 성빈이. 감탄하고 있는데 성빈이가 쪽지를 스윽 넘긴다.

「주동자? 무슨 주동자? 왕따?」

“…….”

「응, 아무래도 소문을 낸 주동자한테 직접 오해를 푸는 게 가장 빠를 것 같아서. 난 희세라고 생각이 드는데.」

쪽지로는 대화가 오가고 있지만 보이는 건 성빈이와 나는 평소와 같다. 성빈이는 열심히 수업 듣고 있고, 나는 짐짓 지루해서 하품이나 하며 딴청 피우는. 이거 은근 재밌네! 필담이라고 하나, 이런 걸? 좀 길게 써서 성빈이에게 보냈다. 성빈이도 재미있는지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쪽지를 보다 흠칫 놀란다. 그러더니 빠른 속도로 글씨를 쓴다.

「희세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희세가 얼마나 착한데. 다만 희세가 좀 완벽주의니까 변태라는 네 소문에 엄청 싫어하는 거겠지. 소문은 다른 애가 냈을 거야」

「그런가. 아무래도 확신이 안 돼서. 역시 아니겠지?」

글씨에서 성빈이의 놀람과 희세를 옹호하는 게 보인다. 하긴, 그렇겠지. 단편적으로 어제 나한테 엉덩이를 내밀어서 스스로 도발한 것 말고는 딱히 접점도 없는데. 거기에서 이 일의 최종보스라고 희세를 노리는 건 너무 비약이 심한 것이었을까. 게다가 희세가 정말 적이라면 그거야 말로 최강·최흉보스가 돼 버린다.

당장 성빈이의 이 반응만 봐도, 희세의 사교성을 알 수 있다. 민심(?)이 모두 희세를 향하고 있는데, 그런 희세에게 내가 조금이라도 심한 말을 한다면─ 그건 진짜 반역이지. 매장당할 거야. 차라리 희세가 주동자가 아니길 빈다. 성빈이는 앞을 힐끔 보더니 다음 쪽지에 「이제 그만 해야 될 것 같애. 선생님이 쳐다봤어」 라고 적고 은밀하게 보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빈이도 내 눈을 보고 승낙의 뜻을 읽었다. 무슨 비밀 결사도 아니고, 뭐가 이렇게 비장해. 나는 기어이 「ㅇㅇ」라고 적힌 쪽지를 작게 적어 성빈이 책상에 놨다. 성빈이는 쪽지를 보고 피식 웃는다.


쉬는 시간이 되어, 나는 바깥으로 나왔다. 아무리 성빈이와 리유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커밍아웃 하듯 말을 트긴 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반에서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공기가 답답하다. 분위기도 답답하고. 내가 나오니 리유가 자동적으로 따라 나온다.

“후아─ 시원해.”

“너도 공기 답답해서 나왔구나.”

“아니, 네가 나오길래 나온 건데. 너랑 놀려구 했는데!”

“하하. 다시 들어갈까?”

“아니, 괜찮아. 여기가 좋아 시원하구.”

리유는 귀엽게 말하며 내 뒤를 따른다. 기분이 좋아져서 앞으로 걷는다. 여자애들이 지나다니는 그냥 복도에선 얘기하기가 좀 그래서 저번에 리유와 함께 얘기했던 계단 구석 쪽 복도로 갔다. 어차피 같은 복도인지라 걸어서 1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

“엣, 희세라구?”

“쉿, 조용히!”

“아, 미안.”

계단 옆 조용한 복도. 나는 넌지시 주동자가 희세 같다고 말했다. 이에 리유는 깜짝 놀라며 큰 소리로 말한다. 거의 외치는 수준. 나는 입에 검지를 대고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리유는 자기 입을 손으로 가리며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주위엔 아무도 없다. 다시금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다.

“그냥,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그치만 난제가 너무 많아서.”

“근데, 무슨 주동자?”

“아아, 처음부터 설명해야 하나.”

앞에 ‘희세라구?!’ 한 건 뭘로 이해하고 말한 거냐.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간략하게 설명을 했다. 리유는 잘 이해가 안 가는 눈치로 꿍한 표정으로 있다 말한다.

“그러니까, 일기토 하는 거?”

“아니, 그런 어휘는 어디서 주워다 쓰는 거야.”

“삼국지! 헤헤헷.”

“뭐, 비슷하긴 한데. 주동자에게 오해를 풀고, 그걸 최대한 여자애들이 많이 보는데서, 정당한 방법으로 오해를 풀게 된다면 될 것 같아. 나쁜 소문이 퍼지는 속도만큼은 아니겠지만 많은 여자애들이 그 광경을 본다면 소문이 빨리 퍼질 테니까.”

“오해. 오해? 근데, 무슨 오해?”

“아, 그것부터 설명을 다시 해야겠구나.”

어째 리유를 성빈이랑 동일시해서 그냥 내 생각을 막 설명해 버렸다. 리유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제로인데도. 주말에 리유를 내가 덮쳐서 그걸로 오해가 생겨 내가 변태라는 오명을 얻게 된 것부터 차근히 설명했다. 그리고 희세가 의심되는 이유도 조곤조곤히 설명했다. 리유는 예전의 그 탐정이 고민하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검지로 턱을 괴고 진지한 표정을 짓는 리유. 물론 보는 입장에선 하나도 안 진지하고 오히려 어설퍼서 굉장히 귀엽지만.

“아! 그러고 보니까 그 때 가슴 만졌네! 변태!”

“아니! 너부터가 그러면 어떡해! 아무 느낌도 없었어!”

“그, 그게 더 나빠! 어떻게 아무 느낌도 없을 수가 있어?!”

“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 말 그대로!”

“그, 그, 그거…… 그거 성희롱이야!! 변태얏!!”

리유는 생각난 듯 손뼉을 치며 말한다. 나는 다시금 억울함이 치밀어 올라 말했다. 이에 리유는 얼굴이 빨개져서 말한다. 나의 몰아세움에 곤란해하며 눈을 질끈 감고 막 소리친다. 다른 여자애들이 변태라고 하는 건 괜찮은데 리유가 변태라고 하는 건 왜 이리 마음이 시큰할까?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리유가 빈유인 건. 오, 라임 좀 되는데?

“그치만 나, 전혀 몰랐어. 그깟 가슴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때엔 네가 날 구해준 거니까. 안 그랬으면 깔려서 뇌진탕 걸려서 죽었을걸?”

“그러니까 내 말이! 아, 그리고 그깟 가슴은 아니지. 작든 크든 가슴은 소중한 거잖아.”

“으…… 변태, 이제 대놓고 말하는구나?”

“아, 아니! 뭐, 중, 중요한 건 중요한 거니까!”

“알았어, 그 정돈 뭐 농담으로 넘길게.”

“……칫!”

리유는 부끄러운 듯 가슴을 가리며 나에게서 세 발자국 정도 떨어지며 말한다. 나도 괜히 창피해져서 리유에게서 시선을 떨어뜨렸다. 내가 대놓고 말한 건! 뭔가 성적인 이상한 느낌이 아닌 순수하게 신체 기관인 가슴에 대해 말하려고… 아니, 이게 무슨 소리래. 어쨌든 어색함을 떨쳐내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 건데 도리어 리유에게 가슴 밝히는 변태로 찍혀 버린 것 같다. …뭐, 그 전부터 이미 선생님 때문에 농락될 대로 농락된 내 이미지일까.

“흠흠! 그래서, 뭐가 문젠데. 확정이 안 되는 거?”

“어어, 그렇지, 아무래도. 어디까지나 내 가설일 뿐이니까. 설령 맞다 해도, 여자애들 사이에서 희세의 지지도는 엄청나니까, 잘못하면, 아니 거의 100%로 내가 더 까이면 까였지, 잘 될 일은 없을 거야.”

“흐음. 나랑 성빈이가 증언해준다면?”

“그럼 확실히 엄청 크게 도움이야 되겠지만. 모르겠다.”

어색한 분위기는 리유가 먼저 헛기침을 하며 나에게 말을 걸어서 해소됐다. 나는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했다. 아까 수업시간에 생각하던 거. 그 놈의 지지도. 나는 여자애들 사이에서 원래부터 존재감 0인데다 지금은 이미지가 마이너스여도 한참 마이너스다. 말을 객관적으로 들어줄 리가 없지.

“아니, 왜 본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그걸 본 다른 증인까지 있는데 못 말할 게 뭐야?! 난 오히려 너무너무 고마워서!”

“알아, 네 마음 충분히. 나도 답답한데, 원래 이미지란 게 그런 거잖아. 나쁘게 되긴 쉬워도 회복시키긴 어려운 거. 더럽혀진 대자연 원래대로 돌려놓기 힘든 거랑 비슷할까.”

“칫! 너무하잖아. 왕따 당할 짓 한 것도 아닌데 그런 단순한 오해로 이렇게 되는 건.”

리유는 자기가 답답해서 불평하듯 툴툴거리며 말한다. 나도 충분히 그 심정 이해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 리유하고 얘기해도 결국 결론은 나지 않고 답답함만 증가한다. 리유에게 물어본 건 ‘희세가 주동자인지 어쩐지’ 였는데 결론은 ‘어쩔 수 없지’ 다. 뭐, 딱히 답을 원해서 리유에게 말한 건 아니지만. 그냥 말할 대상이 필요했던 거지, 마음이 답답해서.

그나저나 정말 어떻게 해야 이 난관을 해결할 수 있을지, 입구가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가고 있는 것 같다. 그건 내 미래일까. 어둡다. 크큭… 흑화 한다!! 아, 이러면 안 되지. 아무리 미칠 것 같은 세상이라도 정신줄은 확실히 붙들고 살아야지.

“어머. 꼬꼬마랑 꼬맹이, 뭐 하고 있어?”

“아, 선생님…… 이야, 기숙사랑 완전히 다르네요.”

윗층 계단에서 사감 선생님이 내려오신다. 이젠 정겹기까지 한 특유의 낮은 톤의 냉소적인 목소리. 나는 힐끔 선생님을 보다가 절로 감탄을 했다. 요 며칠 기숙사에서의 편안한 복장인 선생님만 봤는데, 지금은 아주 환골탈태 수준이다.

단정한 세미 정장에 깔끔한 블라우스, 골반을 강조한 검은 정장 치마까지. 처음 봤을 때 나를 위압하게 만들었던 그 이지적이면서 지적이고 농염한 성인 여성의 매력이 드러나는 모습 그대로다. 이렇게 정장으로 싹 빼 입으니 정말 사람이 달라 보인다. 약간 나이 들어 보여서 30대 초반 정도로 보일뿐더러 위압감도 더욱 증가했다. 안경이 더욱 잘 어울려 보인다. 선생님은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둘이 뭐하고 있었어. 사랑의 속삭임? 어머, 벌써 그런 사이였니? 비밀의 밀회를 가질 만큼 은밀한 사이……?”

“아뇨!! 왜 저희 담임선생님이 하는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비약을!!”

“후후, 그건 정말 기분 나쁜데. 누굴 누구에 비교해?”

“죄, 죄송합니다! 제가 경솔하게 실언을 내뱉은 것 같네요! 용서해주시면 만대 은혜로 삼겠습니다!”

내 발끈한 말에 선생님은 안경을 번뜩이며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온다. 나는 두려움에 황급히 허리를 숙이고 정중히 사과했다. 다행이 자애로우신 선생님은 용서해 주신건지 다시금 멈춰 서서 나를 쳐다본다.

“그래, 주동자는 찾았어?”

“아뇨…… 의심 가는 애는 있는데 걔가 맞나 싶기도 하고… 맞아도 문제고 안 맞아도 문제고. 도통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흐흥. 짝사랑 하는 남자들이 왜 사랑에 실패하는 줄 알아?”

“네? 그게 갑자기 왜─ 히익! 으아아, 으아아아~~”

선생님의 물음에 나는 답답한 내 마음 그대로 말했다. 이에 선생님은 재밌다는 듯 나에게 물어본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보다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표정이 굳었다. 선생님이 갑자기 가까이 다가와서.

가까이 다가온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갑자기 손을 내 가슴 쪽에……! 으아아아! 거기다 검지와 중지를 교차해가면서 움직여서 점점 내 목 쪽으로 손가락이 온다. 그러더니 그 손가락은 다시금 스윽 훑듯이 내 쇄골 쪽을 건드린다.

온 몸의 소름이 쫘악 돋는 것 같은 기분이다. 뭔가 짜릿짜릿한 것 같기도 하고.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만 같다. 선생님은 도발적인 표정으로 내 귀에 대고 한 마디 하신다.

“우·유·부·단 해서 그래. 바보같이.”

“……그걸 왜 이런 예시로 드는 건데요!! 깜짝 놀랐잖아요!”

“후후후, 반응이 재밌잖아. 역시 어린애는 어린애구나.”

“으아아아아! 제발!! 리유도 보고 있는데!!”

“우리 꼬맹이, 너는 나중에 커서 이런 거 하면 안 돼요?”

“으우우…”

“애초에 애가 보는 데서 이런 걸 하지 않으면 되잖아요!! 어른이!!”

‘우유부단’ 이란 말을 특별히 강조하곤 흐흥흥 웃으며 나에게서 떨어지는 선생님.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다. 으아, 진짜 죽을 뻔 했어. 코피가 나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야했어. 완전히 선생님 손에 놀아나는구나. 게다가 점점 수위가 강해지는 것 같은데. 그래도 저항할 건 저항한다. 리유는 선생님의 말에 약간 부끄러운 표정으로 볼이 상기돼서 말한다. 리유가 내 반응을 봤다고 생각하니 더욱 부끄러워서 괜히 선생님한테 더 신경질을 냈다.

“그런 우유부단한 너를 위해서. 선생님이 자신감이 증진되는 약을 줄게♡”

“……말끝에 부분이 너무 콧소리 들어간 거 아니에요?”

“후훗, 야하지 않아?”

“아 쫌! 제자한테 야하면 뭐 좋은 거 있어요?!!”

“어, 네가 당황해하잖아. 후후훗. 그것만큼 좋은 게 어디있어.”

“아아. 저도 이젠 모르겠네요, 모르겠어요……”

“그럼 그냥 선생님한테 몸을 맡겨♡ 재미있게 해 줄게♡”

“으아아! 방금 전 말은 진짜 위험하잖아요!! 뭘 맡겨요?! 교장 선생님한테 그대로 전할까요??!!!”

마치 북한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계속해서 도가 지나친 도발을 계속하는 것처럼, 선생님의 도발은 점점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짓을 반복한다더니. 나는 어째 늘 선생님의 유혹과 도발을(그것도 장난!!) 당하면서도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다니. 다 내가 잘못이지. 내가 처음부터 말려 들어서 그런거야.

계속해서 야한 농담을 하고, 그것에 일일이 반응하는 나를 아니꼬운 눈으로 바라보는 리유. ‘아, 미안미안’ 하고 리유에게 말했다. 리유는 여전히 기분이 언짢아 보인다. 아무렴, 자기 존재감이 묻혔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선생님은 그런 나와 리유를 흐뭇하게 바라보신다.


작가의말

오늘도 대충 이렇게 어물적 하루를 보내버리겠네요- 아아~ 아까워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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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07화. 다시 시작된 그것 - 1 +9 14.01.21 3,517 61 20쪽
24 06화 - 4 +10 14.01.20 3,666 97 20쪽
23 06화 - 3 +13 14.01.20 3,796 63 20쪽
22 06화 - 2 +11 14.01.19 4,079 65 20쪽
21 06화. 자연스럽게! - 1 +7 14.01.19 4,313 72 18쪽
20 05화 - 4 +17 14.01.18 4,516 139 19쪽
19 05화 - 3 +24 14.01.18 3,923 72 19쪽
18 05화 - 2 +24 14.01.17 3,474 100 17쪽
» 05화. 크아아아 흑화한다 +12 14.01.17 4,655 124 21쪽
16 04화 - 4 +10 14.01.16 3,771 80 19쪽
15 04화 - 3 +18 14.01.16 3,287 79 18쪽
14 04화 - 2 +16 14.01.15 3,312 73 25쪽
13 04화. 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11 14.01.15 3,736 92 20쪽
12 03화 - 4 +9 14.01.14 3,538 85 20쪽
11 03화 - 3 +7 14.01.14 4,217 127 18쪽
10 03화 - 2 +7 14.01.13 3,881 9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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