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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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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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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1.27 21:09
조회
4,211
추천
129
글자
20쪽

09.5화 - 2

DUMMY

“오오.”

“생각보다 괜찮은데?”

“그치그치? 오길 잘 했지?!!”


언덕에 올라와서 나와 희세는 거의 동시에 말했다. 나는 감탄사, 희세는 감탄하는 말. 언덕 위의 풍경을 보고서. 리유는 팔짝팔짝 뛰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언덕 위는 그야말로 꽃천지이다. 한 그루 중앙에 있는 벚나무는 풍성한 꽃잎을 자랑하며 흩날리고 있다.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색색의 개나리와 진달래도 단아하고 예쁘다. 사진이나 영상에서나 볼 법한 광경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잠시 숨을 고르고 적당한 땅바닥에 앉는다. 리유는 더럽다 그런 개념이 없어 그냥 내 옆에 털썩 앉는다. 성빈이는 저번처럼 비닐을 깔고 앉고, 희세는 ‘에엑, 바닥에 앉아서 먹는 거야?!’ 하며 놀라지만 곧 별 불평 없이 성빈이랑 같게 비닐을 깔고 앉는다.


“잘 먹겠습니다.”

“풋, 누구한테 하는 말이야, 그 인사?”

“그냥.”


습관적으로 식사 인사말을 했는데 성빈이가 웃는 낯으로 물어본다. 머쓱해진 기분으로 웃으며 밥을 까고 먹는다.


“음─ 이렇게 먹으니까 진짜 운치 있다.”

“응, 꽃놀이 온 것 같애.”

“에헤헤. 좋잖아, 왜 다들 안 온다고 해서!”


성빈이가 먼저 말하자 희세가 웃으며 그 말을 받는다. 리유는 자신만만하게 자기 말을 왜 안 듣냐고 말한다. 그러게, 확실히 좋긴 하네. 꽃 냄새와 풀 냄새까지 은은하게 나는 것 같아 굉장히 상쾌한 기분이다. 삭막하고 답답한, 네모난 학교에서 벗어나 잠시 자연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 아, 밥하고 반찬에 자꾸 벚꽃잎 들어가네. 짜증나게.


“학교만 아니면 여기 좀 더 있고싶다아─”

“그러게. 낮잠 자고 싶다, 나무에 기대서.”

“흐흥.”


그 중에 특히, 성빈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다. 연신 흩날리는 벚꽃잎들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약간 몽롱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런 멍한 표정의 성빈이도 순수하게 예쁘다. ‘꽃 좋아해?’ 하고 물으니 퍼뜩 정신이 든 것처럼 눈에 다시금 총기가 돌아와선 나를 보고 ‘응!’ 하고 대답한다. 후후, 귀엽네.


“웅! 나 갑자기 생각났어!”

“응? 뭐가?”


리유는 시끄러운 평소 모습과는 다르게 얌전하게 내 옆에서 밥을 먹다 문득 무언가 생각이 나선 나를 툭툭 친다. 나는 밥을 씹으며 멍하니 꽃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고개를 돌렸다. 리유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하곤 말한다.


“희세 별명!”

“…아, 그래. 좋네.”

“에에! 반응이 너무 시큰둥하잖아!”


그걸 왜 나한테 말해, 희세 본인한테 말해야지. 가끔 보면 참 이상하다니까, 시시콜콜한 것까지 전부 나한테 말하니.

리유는 그 귀여운 외모와 행동과 일치하게, 친구들 이름을 별칭으로 부른다. …친구가 여기 앉아 있는 세 명 뿐이라는 건 별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이겠지만.

나는 ‘웅’ 이라고 부른다. 아마 ‘웅도’ 라는 멋진 이름을 축약시켜버린 거겠지. 그냥 ‘웅’ 만 말하면 그저 단순한 ‘수컷’이 되잖아. 그게 뭐야, 그게. 그냥 짐승이잖아, 그러면.

성빈이는 ‘빈’이라 부른다. 나를 ‘웅이’ 라고 부르는 것처럼 성빈이는 ‘빈이’ 라고 하는데 거기서 파생해서 ‘비니’라고 하기도 한다. 뭐, 별다른 의미는 없어 보인다. 성빈이도 그리 신경 쓰지 않는 것 같고. 처음엔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다고 조금 싫은 티를 내긴 했지만. 사실, ‘웅’보다는 차라리 ‘빈’이 나은 것 같다. 무슨 희빈 경빈 할 때 그 빈 자 같잖아. 어, 그럼 성빈이가 왕비 비슷한건가? 후후, 그것도 나름 어울리네. 성빈이는 청초하고 청순한 게 매력이니까. 분명 빈 같은 거 해도 어울릴 거야.

그렇다면, 희세는? 그건 지금 리유가 알려주겠지.


“히익!”

“응? 왜. 벌레 있어?”

“아니, 애칭이 힉이라구.”

“…….”


어째서. 왜. 너 같이 꼬마 여자아이 같은 애가 ‘히익!’ 하면 뭔가 위험해 보인다고. 너처럼 귀여운 꼬마 아가씨 같은 여자애가 ‘히익!’ 하고 소리치면 내 나이 이상 되는 남자들은 뭔가 쇠고랑을 차야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단 말이다. 나는 잠시 돌 같은 표정으로 리유를 보다 조금 떨어져 성빈이랑 같이 앉아 있는 희세를 보고 물었다.


“나희세 씨. 이 양반이 당신보고 ‘힉!’ 이라고 부르겠다는데요. 어찌 생각하시나요?”

“딱히 상관없는데? 그보다 이 쪽 쳐다보지 마. 또 음탕한 눈으로 보려고.”

“아, 진짜! 안 봤어, 이번엔 진짜로! 네 눈을 봤다!”

“‘이번엔’ 이란 말이면 예전엔 봤었단 말이네. 정말, 어디까지 변태여야 저 욕정은 만족할 수 있는 걸까?”

“아우, 내가 말을 말지.”


희세는 냉정하고 날카로운 말투로 오로지 나의 변태성에만 집중하는 말을 한다. 정말, 이건 이것대로 큰 짜증이다. 선생님이 섹드립치며 놀리는 것과는 다른 매력(?)이 있는 것이다.

선생님의 놀림이 농염한 성인 여성의 농락(??)이라면, 이건 그냥 대놓고 꼬투리 잡고 짜증내는 거라 더욱 싫다. 차라리 선생님 농담이면 부끄러워서 내가 지려는 거라도 있지, 희세의 이런 말들은 오히려 내 안의 호전성을 끌어올리려 해서 꾹꾹 눌러 참기가 힘들다. 내가 참아야지, 내가. 남자로 태어난 게 죄지.


“그나저나 고민이네. 어떻게 해야 리유 따돌림 해결할 수 있을까.”

“음─ 글쎄.”


내 말에 성빈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한다. 성빈이의 말대로, 딱히 무언가 할 만한 게 없다.

애들한테 직접 물어볼 수는 없다. 그건 최악의 수지. 가뜩이나 쉬쉬하고 있는데, 그걸 표면으로 꺼내 공론화하면. 무엇보다 그렇게 하면 마음 약한 리유가 견디지 못하고 울어버릴걸. 그 꼴은 못 보지.

그렇다고 나나 희세 건처럼 ‘주동자를 찾아 단기대결’ 하는 방식은 그리 좋지 않다. 아니, 사실 실행할 수가 없다. 애초에 따돌림이라는 게 주동자가 확실하게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니고, 나와 희세는 따돌림이 시작되고 얼마 안 돼서 잡기 위해 노력을 했기에 주동자를 쉽게 잡을 수 있었지만 리유 같은 경우는 벌써 1년도 더 된 일이고, 내 쪽에서 모르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성빈이도 리유도 영 얘기를 잘 해주질 않는다. 게다가 방금 말했듯 그 일들을 다른 여자애들한테 물어보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거기에 더욱 힘든 건 리유의 반응이다. 분명 내가 양호실에서 왕따 사건을 해결해줄게! 했을 때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지금은 왕따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썩 반응이 좋지가 않다. 적극적으로 임하려는 태도는 전혀 없고, 오히려 딴 얘기로 주제를 돌리려고까지 한다. 마치 자기 존재와 자기 얘기를 꺼내지 않고 돌리려는 다른 여자애들처럼! 게슈탈트 붕괴 현상인가, 다른 여자애들이 리유를 없는 사람 취급하니 자기도 자신을 그렇게 여기는. 아니면, 그 쪽 일이 큰 상처라 그다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 그런 걸지도.

정보 부족, 비협조적. 어쨌든 그런 연유들로 굉장히 난처하게 전혀 진행이 안 된다.


“별 생각 없어, 리유야?”

“응? 뭐가?”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려 리유를 보고 물었다. 리유는 반짝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며 말한다. 흰 볼에 주황색 고기 양념과 기름이 묻어 있다. ‘으이그, 칠칠치 못하게.’ 하고 손으로 양념을 닦아 주니 ‘헤헤헷’ 하고 혀를 내미는 리유다. 가끔 이렇게까지 하는 거 보면 어린애 같은 정신상태까지 합쳐져 정말 나보다 한참 어린 여동생 돌보는 기분이 든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아이는 나와 동갑이다. 실제론 한 5~6살 정돈 어려 보이지만. 아니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지금은 리유 왕따 생각 하고 있었잖아.


“왕따인 거 말야. 아무래도 네가 협조를 안 해주면─”

“나, 괜찮아.”

“……응?”


리유는 중간에 내 말을 딱 끊어버린다. 그 의외의 말에 난 살짝 놀라 멈칫 하며 물었다. 리유는 나를 보지 않고 한 마디 말했지만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 말한다.


“애들이 무시해도 상관없어. 웅이랑, 빈이랑, 히이도 있는걸. 그러니까, 괜찮아.”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걸 해결하자는 말이잖아, 내 말은?”

“친구가 더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리유는 내 말에 조금 큰 소리로 말한다. 리유 답지 않게 진지한 목소리여서 속으로 살짝 놀랐다. 리유는 잠시 숨을 고르고 똑바로 눈을 뜨고 나를 보며 말한다.


“너희들 만으로 충분해, 난 그거면 되.”

“……그래도.”

“나한테 말 걸면 다른 애들이 무시해, 내 얘기만 꺼내도 정색해. 나는 언급도 하면 안 돼, 그건 나도 알아.”

“…….”


리유의 말에 성빈이도 희세도 표정이 굳어진다. 그 말이 사실이지만 그걸 리유 본인이 직접적으로 말하니 참 기분이 묘하다. 성빈이도, 희세도, 아마 다른 여자애들과 친구이기에 피부에 닿게 알고 있겠지. 성빈이는 애초에 그런 여자애들의 반응에 직접적으로 리유에게 그렇게 행했던 애고, 희세는 그걸 모르고 리유랑 사귀었지만 그 뒤로 보인 여자애들의 반응을 직접 나에게 물어봤었고. 나 역시 금세 돌처럼 바뀌는 여자애들의 표정은 많이 봤고. 리유는 말을 잇는다.


“그래도 너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랑 놀아주잖아? 난 그거면 돼.”

“리유야.”


리유는 방긋 웃으며 말한다. 괜히 마음 한 켠이 짠한 느낌이 들어 걷잡을 수가 없다. 그렇게 말하는 리유가 왜 그리 서글퍼 보이면서 동시에 사랑스러워 보일까. 리유의 웃음은 슬픔을 억지로 누르고 강제로 하는 게 아닌, 진짜 그냥 웃는 것처럼 보인다. 리유는 나와 희세와 성빈이를 찬찬히 둘러보다 나에게로 시선이 멈춘다.


“웅이는, 웅이가 왕따 당할 때 나한테 피해 갈까봐 같이 점심 안 먹었잖아. 나도 똑같이 걱정했었는데, 웅이는 그런 거 안 따지고 내가 말 걸어도, 재밌게, 같이 놀아줬어.”

“……응.”


그 때, 저녁시간에 리유에게서 도망치듯 뛰어가다 리유가 죽을둥 살둥 쫓아와 쓰러진 때가 기억난다. 너무 어이없고 감동받아서, 그 날 받은 따돌림에 감정이 북받쳐 올라 리유의 작은 품에 얼굴을 묻었던 게 떠올라 절로 얼굴이 화악 달아오른다. 아, 흑역사다 흑역사. 방긋 웃으며 나에게 말한 리유는 다시 고개를 성빈이 쪽으로 돌린다.


“빈이는, 나한테 서운한 일 있었는데도 용서해주고 다시 친구가 돼 줬어. 마찬가지로 다른 애들이 이상하게 보는 시선 있는데. 그래서 너무 좋아.”

“나도 좋아.”


성빈이는 리유의 말에 마주 웃으며 말한다. 꼭 큰언니가 동생에게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훈훈하다. 리유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희세를 본다.


“히, 히이는. ……흑! 으흑!”

“뭐, 뭐야, 왜 내 차례 때는 우는건데!”

“아아앙─”

“아이 차암. 누가 보면 내가 나쁜 짓 해서 울린 것처럼 보일 거 아냐.”


리유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갑자기 급격하게 얼굴이 찌그러지더니 눈물이 또르르 흐른다. 그리곤 그대로 희세 품에 안겨 앙앙 운다. 오늘 여러번 우는구나. 좀 울보인 듯? 뭐, 솔직히 너무 잔잔한 분위기에 감정적인 상황이 됐으니, 소녀 감수성이라면 울 수도 있을 것 같다. 당황한 건 희세다. 아까도, 지금도 영문을 모르겠는데 자꾸 울어 재끼는 리유니까. 저 기분 잘 알지, 꼭 내가 잘못한 것 같잖아. 근데 리유, 꼭 울 때 희세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우네. 그, 그러면 난… 부럽잖아. 젠장. 저렇게 귀여운 소녀가 가련하게 울고 있는데 난 이런 생각밖에 안 하는구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희세가 눈을 흘기며 나를 쳐다본다. 네네, 안 봅니다, 안 봐요.


리유는 잠시 동안 울고 감정을 추스렸다. 희세가 귀엽다 귀엽다 하니까 또 금방 까르르 웃는 모습을 보면 진짜 어린애 같다. 참, 그렇게 좋을까, 귀엽다는 말이.


밥을 다 먹고도, 우리는 교실로 돌아가지 않고 잠시동안 언덕에 머물러 쉬고 있다. 아까 전 성빈이가 말한 것처럼 허락만 된다면 여기서 한 숨 낮잠이라도 자고 싶은 심정이니까.

성빈이는 벚나무에 기대 앉아 느긋하게 책을 읽고 있다. 벚꽃잎과 함께 성빈이의 긴 생머리가 흩날리니 참 청초하고 예쁘다. 나는 조금 떨어진 그 옆에 앉아, 한적하게 놀고 있는 희세와 리유를 쳐다보고 있다.

희세는 굳이, 놀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은데 리유가 자꾸 강아지처럼 달려 들어서 그걸 도망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여고생들은 보통 몸을 움직이며 노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니까. 리유가 이상한 거지. 리유는 괴상한 ‘뀽뀽’ 소리를 내며 희세 품으로 파고들려고 한다. 희세는 ‘으아아 저리 가! 아아!’ 하고 정말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도망 다닌다. 귀여움성애자의 귀염욕(?)이 너무 치솟아 정상이 아니게 된 것 같다. 저 정도면 저것도 병인데.


“어떻게 생각해, 리유.”

“음─ 뭐를?”


나는 아까 전 리유 말을 생각하며 넌지시 성빈이에게 물었다. 성빈이는 여전히 책 삼매경인지라 책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말한다. 너무 추상적으로 말했나.


“나는 리유가, 저렇게 활발하게 웃고 떠들고 장난치고, 귀여운 행동, 표정 하는 게 참 좋거든.”

“…음, 그렇지.”


내 말을 묵묵히 듣던 성빈이는 책갈피를 끼우고 책을 덮더니 뛰노는 리유를 보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한다. 나 역시 리유를 바라보고 말을 이었다.


“왜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귀여움 받고 싶다는 건, 모두에게 사랑 받고 싶다는 거 아닐까 싶어. 굳이 나, 너, 희세 셋한테만 한정된 사랑이 아니라, 반 모든 애들한테, 나아가서 학교 모든 사람들한테 예쁨 받고 귀여움 받는 리유가 됐으면 좋겠어.”

“…….”

“충분히, 충분히 그럴 만큼 귀엽고 착한 앤데. 왜 그런지 도통 모르겠어. 그리고 왜 리유가 의욕이 없는지도 모르겠고.”


나는 하소연하듯 말했다. 내 일은 아니지만, 그래, 말이아 바른 말이지, 내 일은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리유 문제니까. 그치만 뭔가… 이제는 남 일 같지가 않잖아. 나도 리유한테 의지했고, 리유도 나한테 기댄 적 있으니까. 그건 조금씩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뜻이잖아. 리유가 내 품에서 펑펑 울었던 그 때부턴, 뭔가 남 같지가 않잖아. 측은한 마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아빠를 보는 딸의 마음이 이럴까? 뭐, 절대 비교할 수 없긴 하지만 그런 흐뭇한 마음이다. 귀여운 리유를 보고 있노라면. 성빈이는 말없이 내 말을 듣고 있다. 묵묵히 리유를 쳐다보고 있던 성빈이. 몸을 틀어,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아직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

“……리유가?”


사실 말 뜻을 잘 이해를 못하겠다. 뭐랑 마주하기 싫다는 거야. 부끄러운 자신? 아니면, 아직 미성숙한 자신의 모습?


“좋아하는 애한테 고백하고 싶은데, 고백했다가 사이 나빠질까봐 염려돼서 고백 못 하는 것 같은 거 있잖아.”

“응, 그렇지.”


응, 그건 충분히 공감하지, 이해해. 근데 그 얘기를 왜?


“그거 비슷한 거 아닐까. 지금도 충분히, 나랑 너랑 희세랑 같이 노니까, 이 행복이나마 깨질까봐. 그게 두려워서, 함부로 나서지 못하는 거 아닐까.”

“…그런가.”


글세, 나는 말하면서도 잘 납득이 안 간다.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설령 일을 벌려도 애들하고 어색해지는 경우는 있을 수 있어도 멀쩡히 잘 지내는 세 명하고 사이가 벌어질 리는 없잖아.


“어쨌든, 아직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고 그러는 거니까.”

“응.”


아직은… 일까. 결국엔 그러면 현실 도피잖아. 앞을 똑바로 보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똑바로 봐야 하는데. 아아, 모르겠다.


“리유야!”

“응?”

“일루 와.”


고개를 내저어 복잡한 생각을 털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아지를 부르듯 리유를 불렀다. 리유는 또 그 말에 쪼르르 와선 내 앞에 선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볼이 살짝 상기돼서 잔뜩 좋아하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너무 귀여워서 볼까지 같이 쓰다듬어 주니 눈을 감고 ‘헤헤헷’ 하는 게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머리카락도 부드럽고 볼도 말랑말랑해서 더욱 만지는 맛이 있다. 아아, 하앍! 하앍하앍 리유쨔응! 더 만질 거야! 냄새도 맡을 거야! 핥핥!!


“뭐, 뭐하는 거야, 변태새꺄!”

“아, 왜!! 지금 한참 잘 놀고 있는데!”

“느, 느끼고 있었잖아! 이상한 표정 짓고 있었어!”

“아, 아니거든?!!”


이상한 징조를 느낀 희세가 얼른 리유를 내 품에서 잡아 뺀다. 살짝 이성이 나갔던 나는 리유의 냄새를 맡기 위해 품으로 껴안으려 했는데. 우오, 위험했다. 마성의 귀여움이다. 감촉을 느끼며 변태 같은 표정을 지은 건 사실이지만 그걸 또 곧이 곧대로 인정할 순 없지. 그, 그건! 리유가 너무 귀여운 게 나쁜 거니까! 봐, 리유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잖아!


“헤에. 웅이는 엄청 변태구나? 나 같은 애로 느끼다니.”

“너까지 무슨 소리야! 게다가 ‘너 같은 애’는 무슨 의미인데! 왜 자학해!”

“로리콘.”

“너, 너, 너…! 어디서 그런 못된 걸 배워왔어! 어!”


리유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올리며 나를 당황케 한다. 아니! 외모 상으로 보면 분명 로리콘처럼 보였겠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넌 나랑 동갑이라고! 전혀 죄가 될 게 없어! 아니, 성추행으로 잡혀가긴 하겠지만. 로, 로리콘은 아니잖아! 그, 그런 거지! 야동에서, 법 때문에 페이크로 동안인 배우 쓰는 것처럼! 아니, 무슨 소리야!!!


“저 위험한 변태새끼한테는 가까이 가면 안 되, 알겠지?”

“웅? 그치만 웅이 그렇게까지 변태 아니야. 내 가슴은 쳐다도 안 보는 걸?”

“그, 그건…”

“……나도 가슴이 커지면 쳐다볼까.”

“아아아악!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리유의 연이은 거침없는 섹드립에 나도 희세도 당황하게 됐다. 나는 소리치고, 희세는 ‘어쨌든 접근 금지! 알겠지!’ 하며 리유를 품에 안고 나에게서 5보 정도 떨어진다. 안 돼, 나의 리유 쨩을…! 누구 맘대로 네가 빼앗아 간단 말인가! 크아아… ……‘쨩’은 무슨 얼어 죽을. 한동안 언덕에서 놀다 적당히 시간이 돼 교실로 돌아갔다.


뭐, 지금은 지금 이대로인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래, 리유가 싫다는데, 그렇게 억지로 나서서 일을 해결하려 할 필요는 없겠다. 지금은, 그냥 이대로 살아가는 것도 좋겠어. 적어도 우리랑 있을 때는 리유가 행복한 웃음을 잔뜩잔뜩 보여주니까.

그리고 나는─ 어느 정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 같네. 내 왕따의 주동자여서 어색할 것 같던 희세하고도 친해졌고, 거의 우리 패거리 비슷하게 된 것 같고. 이젠 반에서도 어색한 애가 없이 다 친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고. 이만하면 됐다, 됐어. 이제 가늘고 길게 내 학교 생활을 이어갈 때구나. 문득 앞에서 나를 빼놓고 걸어가는 여자애 셋이 보인다.

귀여움의 리유, 청순함의 성빈이, 섹시함의 희세. 우와, 이렇게 나열하니까 내가 무슨 애니매이션 주인공이고 애들은 나랑 플래그 선 여자애들 같네?! 하하하하! 그것 괜찮네! 하렘마스터 정웅도! 으하하하! 영웅은 뭇 열 여자를 마다하지 않지!


……현실은 그냥 변태 노예 개새끼지, 내가 뭘 하겠어. 아마 안 될 거야.


작가의말

나는 이 작품의 선작을 한 독자(讀者)다! 누구인지 이름을 밝혀라!

작가.

「어디로 가는 길이오?

게임하러.

다음 화는 가져 왔겠지?

그런 건 없다.

다음 연재분이 없다면 여길 지나갈 수 없다! 

「털썩!

「!!!

────────────────


안녕하세요, 글 쓰는 사람 김태신입니다. 처음 의도는 공모전에 낼 글 1권 어치였는데, 어느새 2권까지 덥썩 쓰게 됐네요, 하핫. 


2권까지 이르는동안 더욱 많은 분들께서 봐 주셔서 너무너무 행복했습니다. 제가 문피아에 글을 올린 이래 가장 많은 댓글과 추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피드백을 받기 위해 올려놓은 공지에도 많은 조언을 해 주셔서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탈고도 없이 그대로 달려가기만 하는데도, 재미있다고 해주셔서, 정말 기뻤습니다. 지루한 왕따 부분이 계속돼도, 개연성 없이 내용 떼우는 편이 돼도 재미있다고 댓글 달아주시고 추천 박아주시는 여러분의 정성에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이제 어느새 연참대전이 끝나가네요. 원래 목표는 3권이였지만... 역시, 20일동안 3권을 연재하는 건 좀 무리겠지요. 사실 게으르게 써서 이렇게 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하나는 알게 되었네요. 아직 이게 한계점은 아니구나. 더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 여러분의 성화에 감사드리며- 저는 이만, 물러납니다.



──그 동안 읽어주신 많은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4.01.27 김태신 모두에게 드림









P.S  .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3

  • 작성자
    Personacon 피리휘리
    작성일
    14.01.27 21:23
    No. 1

    네 알고있는데. 맞을래요? 변태씨?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27 21:32
    No. 2

    아앗, 죄송해요, 때리지 마세요 ㅠ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4 서완
    작성일
    14.01.27 21:31
    No. 3

    밑에 P.S없었으면 크흠....
    재밌게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27 21:32
    No. 4

    후훗, PS 달지 말 걸 그랬나...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0 똑딱똑딱
    작성일
    14.01.27 21:40
    No. 5

    Ps가 너무 작아 낚인 일인...sigh 두번 세번 작가의 믈을 읽었다는ㅠ

    잔잔하게 계속 웃게 되는 매력이 최고!

    근데 희세별명이..힉이라니..이상해요. 고기라던가(딱히 세나가 생각나는건 아니고요) 만두라던가
    (하...신사력이 늘어가는구나)
    여튼 히말고 다른 별명은 없을까요? 생각해보니 쓸만한게 없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27 21:50
    No. 6

    별명 문제는 저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리유가 컨셉을 별명 부르는 거로 가서, 그렇게 하긴 해야겠는데... '웅' 이나 '빈' 까지는 괜찮은데... '히익 페도'는... 아니, '히익'이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바람의향수
    작성일
    14.01.27 22:01
    No. 7

    Ps를 못봤는데 댓글로 알았네요
    변태노예작가씨!!!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27 22:11
    No. 8

    아아, 네. 근데 웅도가 제 마음 반영된 캐릭터라그런 건 알겠는데, 왜 여러분들은 다 저를 변태 노예씨라고 부르는거죠? 허허, 저는 웅도가 아닙니다! 딱히 제 마음을 투영한 것도 아니구요! 하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8 큐르
    작성일
    14.01.27 23:44
    No. 9

    사우디 생활에 뭐랄까 활력소가 되어주는 글이네요 이건!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27 23:52
    No. 10

    우와 사우디요?! 중동 말씀하시는거죠? 우와, 생각보다 외국에 계신 분들 많네요. 즐겁게 읽어주셔서 활력소가 된다면 저는 너무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8 Lasmenin..
    작성일
    14.04.01 20:31
    No. 11

    성빈이가좋아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4.12 17:27
    No. 12

    저도 그래요 훗♡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4.08.23 19:20
    No. 13

    다 좋아요 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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